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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귀한 것 (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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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것 (빌 3:1~9)
   
    
여러분은 삶 가운데 무엇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십니까? 삶의 귀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믿음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복되고 가치 있는 삶과 무가치함과 어리석음을 구별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져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가 우리에게 축복이요,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앙의 생활이란 무가치함, 헛됨, 어리석음을 포기하고 가장 보람차고 가치있는 귀한 것들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놀랍고 큰 가치로 말미암아 오늘 여기에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또한 큰 기쁨과 감사속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3장에 결론적으로 말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을 귀히 여겼던가? 무엇을 그의 생에 그토록 선하고 아름답고 복되게 생각했던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보화를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이 귀한 것 때문에 그는 늘 기뻐하고 또 빌립보교인들을 향하여 기뻐하라 했습니다(빌3:1) 사람이 그 마음에 귀한 것을 가지게 되면 기뻐집니다. 제가 어릴 때에 어머니가 긁어주시는 누룽지를 보게 되면 학교갈 때 그렇게 기뻤습니다. 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소중한 것을 간직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그것이 귀한 만큼 그에게 충만해집니다. 
    
마 13장 44절이하의 천국비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귀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보화를 발견하고는 기뻐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삽니다. 제가 교회학교에서 교사할 때 아이들이 오래 앉아 있으면 지루하여 불렀던 노래인데 ‘꿀먹은 벙어리 어흥 제 혼자 좋아서 어흥’ 하면서 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앉았다 일어나는 그런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벙어리가 꿀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고 달아서 표현을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니 앉았다고 일어났다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그 가슴속에 놀라운 감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기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1절~3절에 약간의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그러나 이런 세상의 유혹에서 너희들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뻐하는 것이다 네 속에 갖고 있는 놀라운 보화를 인하여 기뻐하라’ 
   
여러분 기쁨으로 일을 감당할 때에 땀흘림의 수고가 보람차며 그것이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과 기쁨으로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귀한 것 때문에 가슴이 벅차고 울렁거리며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그래서 자기는 옥 안에 있으면서도 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 했습니다. 저들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저들의 조건이 어떠하든지 그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사막과 같습니다. 기뻐해야 할 일보다 슬퍼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면 어려운 세상의 삶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즐거워하면 엔돌핀이 나와서 몸이 건강해 지고 우리의 삶에 활력소만 더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근심과 걱정은 우리의 뼈를 마르게 하고 기쁨은 우리에게 양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하지만 우리는 기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인간의 발견과 연구는 위대하게 생각합니다. 
   
바울은 뭔가 그 가슴속에 보배를 가졌습니다. 그가 발견하고 보았던 존귀함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슴이 벅찹니다. 신앙의 생활이란 바로 그와 같습니다. 바로 바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 귀한 것 때문에 내게 닥치는 시련과 핍박, 비난, 사람들의 생각은 아무것도 내 귀에 들리지 아니하고 내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그 보배만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속에 이런 귀한 보배를 간직하고 그것때문에 즐거워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우리는 그것을 믿음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나아가서 그는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 귀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오늘 7, 8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을 폐기물이나 오물처럼 버렸다’ 했습니다. 인생의 오솔길은 언제나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하는 지혜를 요구하고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거니와,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가져보려는 욕심 때문에 죄를 범하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합니다. 
   
오늘 성공한 사람들, 소위 존경을 받는 사람들, 그들은 많은 것들을 택했던 사람들이 아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를 택했던 사람들입니다. 신앙인 그들 또한 많은 것들을 버릴 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그 가치때문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이 농부는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이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만일 귀한 것을 위해서 여러분의 전부를 포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길에 용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길에 누구보다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랑과 정열을 부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 이것도 저것도 행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포기했는가를 보십시다. 7,8절에 보면 그에게 주어졌던 기득권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첫째, 자기는 그 부모가 유대인이어서 나면서부터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라 인침을 받았습니다. 나면서부터 바울에게 주어진 기득권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나고보니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백성가운데서도 할례를 받고 열두 지파가운데 초대 사울왕을 냈던, 주 앞에 가장 충성스러운 베냐민지파에 태어나게 되었지만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요즈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해야한다고 하여 구조조정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오늘까지 이 회사를 위해서 가장 많이 수고한 사람이지만 이제 그만 두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젊은 날부터 시작해서 거의 한평생을 그 회사를 위해 몸담아 수고했지만 조퇴니 명퇴니 하여 얼마나 섭섭했습니까? 한때는 그 사업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파트였으나 이제는 그 부서를 없애고 다른 부서로 편입을 시킵니다. 그리고 다른 부서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구조조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변화되지 아니하는 회사는 살아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찌 이것이 회사만이겠습니까?  우리 개인의 삶이 그러하고 우리의 교회가 그러합니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교회는 늘 그 모양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자기의 자랑을 버렸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에는 의에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백성은 온 이방으로 흩어지고 포로되어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민족인 히브리인의 정신을 갖고 그 습관을 익히고 그 언어를 말하므로 히브리인이라 했습니다. 이 얼마나 힘드는 일입니까? 요즘 이민가서 사는 우리 교포들이 그렇습니다. 그 땅에서 우리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 땅의 말을 배우고 그 나라의 풍습을 익히기는 쉽지만 거기서 우리나라의 전통을 지키고 우리의 언어를 말하고 우리의 문화를 배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애들에게 가르쳐보면 왜 배워야 하냐고 합니다. 학교에서 한국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한국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전통과 습관에 따라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며 쓸모없는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것 아닌가합니다.
    
그래도 바울은 히브리인의 전통과 습관과 언어를 지켰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의 한사람이었다. 보수주의자였고 근본주의자였다. 나는 7일만에 금식하고 하루에 세 번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율법에 흠이 없다. 나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을 열심히 핍박했던 자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만이 잘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교회와 유대교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유대교를 보호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7지사가운데 첫 번째 스데반의 순교때 죽여도 좋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나는 율법으로 흠이 없다 보수주의자로 히브리인의 모든 습관과 관습을 지키면서 나는 율법에 흠이 없음을 인간적으로 사람앞에 자랑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포기했다. 마치 강렬한 햇빛을 받고 보니 촛불이 부끄러운 것처럼 내 의와 내 자랑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포기하는 자가 얻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침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버릴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새로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좋아하는 가장 가치있다고 하는 것을 위해서 무엇을 포기했습니까? 무엇을 버려보았습니까? 무엇이 그것 때문에 아무런 가치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 안에서 찾게 되어지는 보배입니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그의 가슴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7,8절 말씀을 주목합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한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저 함이니라’
   
바울이 왜 이렇게 어리석고 아그립바왕 앞에 섰을 때에 미쳤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을가? 그는 오직  가슴에 품은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예수 그리스도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에게는 기쁨이 되었고 그것이 시련과 역경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에게는 신앙과 그의 인격과 성숙의 힘과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자 내가 이 모든 것을 버렸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리스도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얼마나 위대한 간증입니까? 이러한 것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하여 그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는 나의 구주시오, 생명이시오 나의 길이시요, 그는 죄인인 나를 의롭다하시고 멸망받아야 할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나를 후사되게 하셨다. 내 이 비천한 몸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내 이 죄된 삶이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는 예수그리스도가 가장 소중하다’ 이것이 그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요 주를 믿고 주를 따르는 모든 자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에 지닌 보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일도 교회를 향하여 즐거움으로 나오고 예배들 드릴 때도 우리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는 용기와 힘과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장기려 박사님, 그는 87세까지 한 인생을 부산대학병원원장으로, 복음병원 원장으로 지내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가로 조합장을 창설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많은 에피소드와 많은 간증들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는 이북에 사랑하는 자녀와 부인을 두고 둘째아들만 데리고 내려와 언제나 이북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그 마음에 보배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두가지만 소개하면 어느날 한 부인이 와서 진료를 했는데 아무병이 없었습니다. 그저 영양실조였습니다. 진찰을 하고나서 장원장은 병이 하나도 없고 다만 영양이 부족하니 가서 닭이나 두어 마리 잡수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닭 사먹을 돈이 있어야지요 하며 돌아서는데 장원장은 간호원을 시켜서 이 아주머니에게 닭 두 마리 값을 자기 월급에서 가불해서 주도록 했다는 얘기입니다.
   
또 그는 어느날 병이 다 나아 진료를 마친 환자에게 퇴원하라고 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퇴원을 안해서 다른 의사선생들과 그 이유를 물어보니 밀린 의료비 때문에 퇴원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시더니 그러면 할 수 없지 하면서 다른 선생을 나가라고 하고서는 환자에게 오늘 저녁에 내가 입원실 뒷문을 열어 놓을테니까 보따리를 싸서 도망치라고 합니다. 원장이 환자와 짜고 환자를 도망시켰습니다.
    
짧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만 그가 돌아가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쉬워하고 그를 가르쳐 작은 예수,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하고 모든 언론이 그를 기렸습니다. 그는 유언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내 비에는 이렇게 써주십시오. 주를 섬기다 간 사람, 내 속에 귀한 것 주님을 섬기다 간사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나는 배울 수 없지만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주님처럼 섬긴다’ 
   
그가 있는 동안에 1만여명이나 되는 생명이 출산했는데 의료사고 한번 없었고 그가 수술할 때마다 보조의사와 간호원 앞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이 소중합니까? 무엇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고, 오늘을 살아가야되겠다는 용기와 믿음으로 시련과 역경속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까? 
    
바울의 가슴속에는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놀랍고 크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귀히 여겼기에 그를 섬기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하여 그는 고난 당할 자로 여김을 기뻐했습니다. 조지?  라는 젊은 청년이 대학을 중태하고 난 다음 목사의 아들로서 방송국에서 독창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져 가요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원했고 그곳으로 진출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는 갈등을 느끼면서 어머니와 의논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평생에 좋아하시던 시 한수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밀러가 지은 시였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세상의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렸네 세상 자랑 다 버렸네 

   그는 이 가사에 감동되어져 곡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고,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이끄는 전도단의 한 일원이 되어서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으로 여러분 가슴속에 지닌 주님의 존귀함때문에 그를 높이고, 그를 섬기기 위하여 여기 내게 주어진 이 삶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보람차고 감동스러운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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