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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넬료의 경건한 신앙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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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의 경건한 신앙 (행 10:1~8)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에 지방도시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지방도시에서 1만 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이니 대단한 교회지요. 어느 날 그 목사님에게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목사님의 설교방송이 나가는데 그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시대통령이 방한할 때 목사님과 3일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첫날은 목사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둘째 날은 목사님과 휴전선을 방문하는데 목사님과 함께 했으면 좋겠고, 
셋째 날은 목사님과 골프를 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전화를 받고 목사님께서 염려가 되는 것이 있었답니다. 10년 전부터 골프를 치기는 쳤답니다. 장로님들이 목사님의 건강을 위하여 골프채를 사주고 “목사님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합니다”라고 하면서 골프 회원권도 주어서 치기는 쳤는데 정식 레슨을 받지 않아서 스윙을 하면 골프공이 똑바로 가지를 않는답니다. 그래서 걱정을 하다가 깨어보니 꿈이더랍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부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만 했는데도 그렇게 기분이 좋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이 뭡니까? 부시대통령보다 높으신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는 부시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는 것보다 더 오래 더 깊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뭡니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하며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고넬료라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가 경건하여”라고 말합니다. 그의 경건함은 세 가지 특징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경건함을 보시고 그를 통해서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모든 민족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28:19에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고, 행 1:8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증거 할 뿐이었고,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서 땅 끝까지 가야 하지만 제자들은 그 이상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 경건한 고넬료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이방인 가운데 복음이 들어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루는 고넬료가 제 구시 기도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천사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었다고 말하고서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즉시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베드로에게 보냅니다. 이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심방을 와서 설교를 할 때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셨던 것처럼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이로써 이방인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는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긍정적으로 쓰이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긍정적으로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다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경건한 사람들이 긍정적인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았고, 신약에도 역시 경건한 사람들이 긍정적인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악한 자들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데 그들은 부정적인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잠 16:4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 긍정적인 일에, 아름다운 일에 크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럼 경건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고넬료가 경건했다고 했는데 경건이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를 보면 “속념을 끊고서 오로지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개념이 잡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제식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으로 가득함” 입니다. 생각이 하나님으로 가득하고 말이 하나님으로 가득하고 행동이 하나님으로 가득한 것 그것이 경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이 경건입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느 여선생이 교장선생 아들과 눈이 맞아서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 준비를 하다가 교장선생님 아들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담임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죽고 싶다느니 더 이상 살 소망이 없다느니 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자매님, 하나님이 헤어지게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청년이 자매님의 짝이 아니니까 헤어지게 하신 겁니다. 걱정하지마세요”라고 말해줬더니, 그 자매는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 아니면 안 됩니다. 그 사람 밖에 없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약 3개월을 세상 근심 다 가진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더니 한 3개월이 지났는데 얼굴이 환해져가지고 싱글벙글하고 다니더랍니다. 알고 봤더니 교회 청년 중에 전문직에 종사해서 한 달 월급이 1,300만원이나 받는 청년하고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 아들은 바람둥이여서 다른 여자들에게도 그 여선생에게 한 것처럼 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많이들 아실텐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부산 일보에 실린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느 분의 아내가 죽어서 장래를 치르는데 그날 비가 많이 왔답니다. 관을 운구하는데 그만 미끄러져서 관이 벽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체가 충격을 받아서인지 깨어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아내가 다시 죽어서 다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비가와서 바닥이 미끄러웠는데 남편이 운구하는 청년들에게 “이보게들 조심하게나. 조심하게나” 하더랍니다. 아마 그 아내는 평생 남편만 바라보고 살았을 텐데 말입니다. 

돈도 마찬가지고,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에 목매지 마시고, 돈에 목매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충만한 경건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절에 보니 고넬료는 경건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경건함으로 나타낸 열매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고넬료의 경건의 열매 3가지를 살펴보고 우리도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하려고 애써서 고넬료처럼 하나님 앞에 귀하게,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1.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해서 범사를 조심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는 조심해서 행동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괜찮아”라고 해도 하나님을 의식해서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요셉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 일을 볼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반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어느 날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두 사람만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다 싶은 여인이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게 화근이 되어 요셉이 감옥에 갇히지만 하나님은 경건한 요셉, 하나님을 의식했던 요셉을 감옥에 내버려두지 않고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올리십니다. 의인은 망하는 것 같아도 결국이 다른 것입니다. 의인은 안 되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꾸만 사람과 상대하려고 합니다. 사람과 상대하면 결국 우리도 그들처럼 됩니다. 하나님을 상대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을 상대로 싸우면 나도 괴롭고 내 가족도 괴롭고 이웃도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대하면 좀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다윗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났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왔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숨어있는 굴에 사울이 들어왔고, 또 한번은 사울과 사울의 일행이 심지어 사울을 지키고 있는 호위병들 까지도 깊은 잠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장막에 들어갔는데도 아무도 몰랐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칼로 사울의 목을 한번 내리치기만 하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윗은 도망 다닐 일도 없고, 또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너무나 명확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자기가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워서 사울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사울을 죽이지 못해서 또 오랫동안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울을 대신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상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더 쎄게 나가서 그를 묵사발 만들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가 나보다 약하면 묵사발 내겠지만 그가 나보다 강하면 얼마나 자존심 상합니까? 그가 나보다 강하든지 약하든지 그를 상대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사람 찾아가서 변명하고, 설교시간에 나간사람 비난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다 올려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때로는 속상해도, 때로는 억울해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시 139편에 보면 하나님은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도 아시고, 내 생각도 밝히 아시고, 나의 길도 아시고, 내가 눕는 것도 아시고, 나의 모든 행위도 아시고, 내 혀의 말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 억울한 것, 내 속상한 것, 내 힘든 것, 내가 고생하는 것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억울하고, 속상하고, 힘들고, 고생이 될수록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 앞에 왜 나가야 되는지 알지 못해도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게 곧 경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성도들 은혜 받고, 축복받는 것이 소원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약해지면 목사는 마음의 근심이 쌓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보다 세상을 가까이 하면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울게 됩니다. 그래서 늘 하는 기도가 “우리 성도들 은혜 받게 해주세요. 우리 성도들 복 받게 해주세요”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기도를 하는데 성도들 축복하는 기도가 안 됩니다. 왠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데 어떻게 축복해달라고 합니까? 우리가 교회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걸 보니까? 축복은 고사하고 매 맞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사람들이 있어요. 아르바이트 한다고, 공부한다고 하나님의 일 팽개치고, 생활이 어렵다고,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하나님의 일을 팽개치고, 기분 좋으면 하고 기분 나쁘면 안하니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공에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십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0,11)


2.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고넬료의 경건은 백성을 많이 구제하므로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그는 물질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축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열심히 구제했습니다. 2절에 보니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말씀합니다. 4절에 보니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습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 한분은 매학기 마다 교인 중에 10가정을 찾아가서 한 가정에 300만원씩 장학금을 준다고 합니다. 대학생 공부시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한 집에 대학생이 둘만 되어도 가장의 허리가 휘청하잖습니까? 그런 집 10집을 찾아가서 학비에 보태라고 300만원씩 보태주니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구제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과 교회는 밭입니다. 가시나무 심어놓으면 나도 찔리고 내 아들도 찔리고 손자도 찔립니다. 사과나무 심어 놓으면 나도 사과를 따먹고 내 아들도, 내 손자도 사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잠 11:25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 가운데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인이 약 10만 명 정도 되는 교회 목사님이 어느 날 설교를 하시다가 “이상하게, 성경에 나오는 것은 아닌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성도들 중에 한 사람을 크게 축복하셔서 엄청난 사업가로 만드실 것 같은 마음이 옵니다. 이건 성경에 없는 것인데, 제가 방석을 강단에서 던지는데 그 방석이 어깨에 닿는 사람을 그렇게 축복하실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내 마음에 그런 감동이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먼저 천만 원을 헌금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후 성가대 쪽에 방석을 던졌습니다. 

성가대원들이 천만 원 헌금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다 피합니다. 다시 성도들을 향해서 방석을 던집니다. 성도들 역시 천만 원 때문에 다 피합니다. 다시 다른 쪽으로 던졌는데 역시 다 피합니다. 목사님이 마지막 방석을 던지면서 하나님이 재벌 수준의 복을 받는 사람이 나오게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던졌는데 이번에는 복도에 떨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오늘 여러분 중에 방석에 맞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방석이 내 어깨에 닿으면 천만 원 헌금하려고 했던 사람이 있으면 내일 새벽에 드리세요”라고 하고는 끝났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 교장선생님 부인 권사님이 강단에 천만 원을 올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사업을 할 것도 아니지만 감동을 따라 천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교장선생님 아들의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시작해서 지금은 엄청난 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것은 사모해야 합니다. 야곱처럼 악착같이 받아내려고 해야 합니다. 구제하고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3.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고넬료의 경건은 항상 기도하므로 표현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만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만의 한 청년은 연모하는 여인에게 2년 동안 700여 통의 연애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것은 연애편지 역사사상 세계 신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누구와 결혼한줄 아십니까? 700여 통의 연애편지를 전해 준 우체부와 결혼했습니다. 
글로 접하는 사람보다는 날마다 얼굴로 대했던 사람이 더욱 호감이 갔던 것입니다. 
세상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만나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면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물론 기도응답의 방법이 꼭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때는 즉시 임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와 맞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내용은 좋으나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도는 내가 구한 것과 다른 것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 구했기 때문에 합당한 것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응답이 안 되는 기도가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해놓고도 기도응답에 대해서 확신을 못하고 응답이 와도 우연의 일치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이런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밥(Bob)이라는 사람이 철길을 산책하다가 철로 받침목 주위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에 발이 끼게 되었습니다. 발을 빼려고 했지만, 빠지지 않았습니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발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기차가 오는 것이 보입니다. ‘큰일 났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구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할 수 없다. 기도하자’ 그리고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만약 발을 빼주신다면 그 동안 내가 술을 많이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발은 빠지지 않습니다. 또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발을 빼주신다면 술을 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욕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빠지지 않습니다. 다시 낑낑대다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만약에 발을 빼주신다면 술을 끊고 욕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재산 모두를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습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렇게 빠지지 않던 그의 발이 쑥 빠졌습니다. 그래서 사고 없이 기차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안도의 숨을 쉬면서 밥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좌우간 감사합니다. 내 힘으로 빠져나오긴 했지만.” 

저는 여러분들에게 새벽기도를 권하고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응답의 시간에 대해 약속한 것은 새벽 밖에는 없습니다. 시 46:5에 보면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새벽기도는 한 번만 해도 복이 됩니다. 계속하면 더 큰 복이 임할 것입니다. 새벽기도 한번 해서 복 받은 사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국이민자 중에 직장을 잃은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세상 모든 나라는 전세가 없고 월시 혹은 주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월세를 사는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되면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분이 직장을 잃고 몇 개월이 지나도 다른 직장을 얻지 못하니 결국 처갓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무척 눈치가 보였는데 장인이 사위를 보통 미워하는 게 아닙니다. 이분이 장인 눈치도 보이고, 아내 눈치, 자녀들 눈치 보느라 괴로워서 못살겠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나 하자’라고 생각하고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하나님께 하소연 하느라고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었는데 기도가 끝나고 나니 다 돌아가고 자기만 남았더랍니다. 날이 밝은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쓸만한 의자 하나가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자 들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장인이 의자를 주어서 들고 오는 사위를 보고는 미워가지고 “이 사람아, 우리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려고 하나, 갖다버려” 하더랍니다. 

그래서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장인이 “철사하나 있으면 구해와”라고 합니다. “예”하고 대답을 한 후 의자를 보니 고 철사 하나가 삐쭉 삐져나와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철사를 휙하고 잡아 당겼더니 의자가 찢어지면서 100불 짜리가 후두둑하고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세보니 4만 3천불입니다.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미국에서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돈은 주은 사람 것이 된답니다. 이 분이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뉴욕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이런 특별한 역사를 바라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언제 역사하실지모릅니다. 

기도는 신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를 모를 뿐이지 반드시 역사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넬료처럼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여러분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하나님은 경건한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공식적으로 복음이 들어가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고넬료를 쓰신 것입니다. 그의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함 즉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표현되었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봄으로 표현되었고, 항상 기도함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경건도 고넬료처럼 표현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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