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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걸작품 (엡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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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걸작품 (엡 2:8~10)


I. 왜 아직도 초라한 모습이 남아 있는가?

우리 인생은 꼭 한번 주어진 일생입니다. 여기는 연습이 없습니다. 리허설이 없습니다. 한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입니다. 실패해서는 안되는게 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나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공동체를 향한 아름다운 설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행복한 가정생활, 아름다운 목장생활, 황홀한 교회생활을 위한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부터 그 빛나는 계획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행이름을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이라고 부릅니다. 

- 우리교회가 눈에 보이는 비전채플을 건축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마음, 공동체의 정신을 세우는 사역이 40일 캠페인입니다. 

- 우리교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확인하고 교회를 다시한번 건강하게 세우는 사역이 40일 캠페인입니다. 

- 초대교회 가정교회에 임재하시던 성령님께서 다시 우리시대 소그룹에 임하여 소그룹 공동체인 목장과 각 사역팀을 건강하게 세우는 운동이 40일 캠페인입니다. 

- 40일 기도기간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업도 건강하게 세워지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확인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나는 작품들입니다.」

「은혜의 영성」의 저자 스티브 맥베이는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최면술을 하는 어떤 사람이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몇몇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 최면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의 의식이 몽롱해 있을 때 그들이 깨어나면 서로 다른 동물이 될 거라고 최면사는 말했습니다. 잠시 후에 한 학생 앞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정말 아이들이 깨어났습니다. 한 아이가 마치 개라도 된 듯이 멍멍거리고 짓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를 깨웠습니다. 원숭이가 되어서 팔을 흔들며 몸을 구부리고 이리저리 교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 그는 닭이 되어서 마치 지금 막 알을 낳은 암탉처럼 꼬꼬댁~ 거리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아이를 깨웠습니다. 돼지처럼 꿀꿀~ 거리고 의자 밑을 기어다녔습니다. 조금 후 최면술사가 그들을 깨웠고 곧바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조금 전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얘기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몹시 당황해 했습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멕베이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면에 걸려 멍멍 짓는다고 개는 아니지 않겠는가? 구태여 최면이 아니더라도 꼬꼬땍 거린다고 사람이 닭은 아니지 않겠는가? 

죄인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과 의인이 죄를 짓는 것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에 빠질 때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던 맥베이이 「은혜의 영성」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다음에도 영적인 열등감에 사로 잡혀 살아갑니다. 나는 죄사함을 받았는데 왜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왜 여전히 옛 모습이 남아 있는가? 이만큼 교회를 다녔으면 뭔가 확실히 달라져야 하는데 왜 초라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여기 새로운 피조물 - creation이란 말은 create - 창조하다란 말에서 왔습니다. 단순한 개선이나 변화가 아닙니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창조물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새로 창조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전 그 당신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요.


II.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 2장 8절 - 10절 말씀입니다. 오늘은 10절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10절 시작하는 말씀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고 했습니다. "만드신 바" 는 원문에 보면 '포이에마'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시' - Poem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쓰는 문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시'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많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작품, 예술작품, 걸작품이 사람입니다. 과연 우리는 걸작품입니다. 걸어다니는 작품 아닙니까? 하나님이 만든 명품입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번 실험 삼아 만들어 본 습작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신비요 기적입니다. 수십억의 내 아버지 인자와 내 어머니 인자가 만나 내가 태어났다는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62억 인구 가운데 나와 꼭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창조이래 600억 인구 가운데, 앞으로 태어날 무수한 인류 가운데, 나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이 지구상에 나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단 한 명이라고 있다면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헷갈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더기로 만들어낸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 에 대해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많습니다. 그동안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들, 고귀한 성품들, 이러한 것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으려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했던 최근 신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우리의 "영"은 물론 정신세계, 심지어 우리의 몸, 육체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을 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토끼처럼 생기신 것 같진 않아요. 노루처럼 생기셔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얘들아 오너라" 그럴 것 같진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하면 우리의 얼굴 생김이나 우리의 모습까지도 하나님을 닮았을 것이라고는 것이 성경을 연구하던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만드신 신비한 작품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39:14에서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요즘 의사들 가운데 최고 인기 있는 과가 성형외과입니다. "자기 외모에 비교적 만족하며 사십니까?" 물었더니 "그런대로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19%정도이고, 80%이상의 사람들은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쳐보고 싶습니까?" 물었더니 남자들의 94%, 여자들의 99%가 "고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작품으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나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얼마 전에 반 고흐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이 몇 점 없어져서 세계 화랑이 발칵 뒤집혀지고 국제경찰들이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게 그 작품 하나의 값이 얼마쯤 되는가? 신문을 보았더니 수 십억, 어떤 작품은 수 백억쯤 되더라구요. 제가 예배 후에 그림을 그린다면 여러분들이 얼마쯤 사줄까요? 한 1억쯤 사시겠습니까? 가만히 나두면 깨끗한 종이는 누가 사갈 사람이 있을텐데 내가 그려놓으면 그때부터 휴지입니다.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값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를 만든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나를 만드셨다. 나는 하나님의 명품이다. 이 얼마나 굉장한 얘기입니까?

아이들이 보는 책 가운데 "우리 몸의 이야기"라는 책에 보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속에 내장기관 하나 하나 신비가 아닌게 없어요. 심장은 1분동안 펌프질하는데 4리더 정도의 피의 양을 펌프질합니다. 양동이로 ½ 분량입니다. 결국 우리 심장은 1시간에 30통, 하루 720 양동이로 피를 퍼 올리고 있습니다.

신경의 신호는 빠른 신호인 경우 1초에 120m 전달합니다. 1시간당 432km를 우리 몸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데 얼마나 섬세한지 1만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겉으로 얼굴만 봐도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널찍한 운동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밑에 송충이 같은 눈썹이 있는데 옆으로 비스듬히 났어요. 왜 그러나 그랬더니 땀을 흘리면 땀을 옆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그렇답니다. 어떤 사람은 싹 밀어버린 사람이 있는데 땀이 눈으로 들어갈 거예요. 눈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눈이 한번 깜짝깜짝 할 때마다 기름을 쳐서 눈을 얼마나 맑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코가 구멍이 밑에서 뚫려서 다행이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코가 뒤집어서 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구요. 만약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비가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큰일납니다.

귀가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보통 동물들은 일어서서 못 다닙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은 걸어서 다니고 뛰어다니고 그렇게 밀어도 안 넘어집니다. 이는 사람의 귀에 균형잡는 달팽이관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가 소리를 듣는데 너무 파장이 큰 것도 안들립니다. 너무 파장이 작은 것도 안 들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 지구 돌아가는 어마어마한 큰 소리가 납니다. 데쉬빌이 너무 높기 때문에 우리 귀를 스쳐 지나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 날로 고막이 파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너무 작은 소리도 안 들립니다. 그것도 복이예요. 제가 5층 아파트에 사는데 지하실에서 개미 밥 먹는 소리까지 다 들려보세요. 그게 복이겠습니까? 안 들리는 것도 복이예요. 그래서 적당한 소리만 듣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신비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육체만 보아도 하나님의 걸작품인데 우리에게는 영이 있고 혼이 있습니다. 기억을 합니다. 말을 합니다. 판단을 합니다. 느낍니다. 사랑을 합니다. 행복을 느낍니다. 꿈을 꿉니다. 결단합니다. 행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 아닌게 없습니다. 

더더구나 우리의 영혼을 한번 보십시오. 영적인 기능, 우리가 무엇인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솔로몬 성전도 추하고 작아서 계실 수 없는 그 분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거하시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비한 영적인 교제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찬양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시간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이 모든 영적인 기능, 이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작품입니까? 나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나 하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투자했습니다. 내가 예수님하고 맞바꾼 존재입니다. "너는 내 피로 값주고 샀다" "내 피를 흘려야 할 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나 자신을 볼 때에, 또 다른 사람을 볼 때에 성취, 공로, 이 땅의 신분 등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서로들 이름을 소개하지요. 직업이 뭡니까? 그래서 내 맘에 들고 좀 높여 보인다 싶으면 껌뻑 죽습니다. 그리고 조금 내가 무시할만하다 싶으면 그 사람을 무시합니다. 아니요. 그것이 그 사람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나를 보고 너를 보아야 합니다. 네 눈이 범죄하거든 눈을 빼어버려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는 의식이 생기거들랑, 내가 나 자신을 볼 때 자존감이 깨어지거들랑, 내가 나를 보더라도 못마땅하거들랑, 그 눈을 뽑아 버려야 됩니다. 시각을 바꿔야 됩니다. 관점을 바꿔야 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안경을 끼고 나를 보고 너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보고 너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성취나 공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제게는 딸이 하나 있고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내 가정에 내 자녀로 태어나면 그들이 아빠 엄마의 속을 썩인다 할지라도 이 신분, 이 관계가 깨어지지 않습니다. 한번 태어난 내 아들은 영원히 내 아들입니다. 

한번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거듭났으면 영원히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행동에 의하여 우리의 실수에 의하여 우리의 연약함에 의하여 우리의 허물에 의하여 이 신분은, 이 관계는 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III. 화려한 변화에 집중하라

우리는 분명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새로운 걸작품인데 그 작품답게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체면에 걸려 동물처럼 행동했던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순간이나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동물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이 체면에서 깨어나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았을 때 동물처럼 행동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단의 거짓말에 속고 있습니다. 자신의 느낌에 속고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추한 죄인이라는 느낌 속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이 들자마자 사단은 그 느낌을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을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분이나 관계가 아니라 행위나 공로로 나를 판단합니다. 아마 최면술사가 아이들을 계속 속일 수 있었다면 아이들은 평생 멍멍, 꼬꼬댁 꼬꼬, 꿀꿀 소리 지르고 다녔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떠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나의 존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거짓된 사단의 체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신은 존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그 나라의 모든 창녀들에게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죄를 묻지 않을 테니까 각 가정으로 돌아가 자유하게 살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창녀들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엘돈자라는 창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의 고백은 커녕 심지어 자기 자신도 거부하던 창녀 엘돈자는 돈키호테의 끈질긴 구혼에 자기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돈키호테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아까 창녀에게 사면령을 내린 왕이 한 창녀에게 왕비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시다. 그 창녀가 왕비가 되었을 때 그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정체가 달라졌습니다. 왕과 결혼한 이 왕비는 왕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된 것입니다. 삶이 달라졌습니다. 행동이 달라지게끔 된 것입니다. 

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신부로 초대하셨고 신부로 받아 주셨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아니올시다.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왕이시며, 우주를 운행하신 분이시며, 내 죄를 대신해서 죽어주신 분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대동하고 이 땅에 심판주로 임하실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신부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신부로 받아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당신의 정체성과 신분을 올바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옛 창녀로 돌아가도 좋을 존재가 아닙니다. 최면에 걸려 멍멍거리고 꿀꿀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영광스런 신분에 우리는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 이 신분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이 신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신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징그런 애벌레가 한 마리 예쁜 나비가 되었을 때에 아무도 그 나비를 보고 "어머 애벌레가 날개를 달았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비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끔 이 나비는 애벌레곁에 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벌레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애벌레와 함께 논다고 그래서 애벌레는 아닙니다. 이미 나비가 된 것입니다. 화려한 신분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꽃을 찾아 날아갈 것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공로로 나를 보고 너를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탄생,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관계속에서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볼 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IV. 작품의 정체성

우리의 변화된 그 신분, 그 작품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1. 우리를 성자라고 부릅니다. 

너는 성자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을 보내면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갈라디아에 있는 성자들에게 말하기를"이라 하며 서두를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성자라고 번역된 Saint(성자라는 부름)는 신약성경에 63회쯤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놀리기 위해 성자라고 부르는게 아닙니다. 내가 성자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나는 성자가 아니야. 아닙니다. 여러분의 느낌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행동을 믿지 마십시오. 성경이 여러분을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자라 일컬었으면 누가 뭐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성자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자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과 업적에 의해서 성자라고 부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성자라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자가 된 것입니다. 


2. 우리를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력해서 공로로 얻은 이름이 아니올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로 거져 얻은 이름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한국사람이 된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김치를 많이 먹으면 한국사람이 된다고 해서 김치를 많이 먹었습니다. 하루에 두 독씩 먹었습니다. 한국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한국사람은 된장을 좋아한다고 해서 된장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10년을 먹었습니다. 한국사람이 된 것입니까? 그러면 한국말을 하면 한국사람이 된 것입니까? 여러분, 외국인들 가운데 나보다 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벙어리도 한국사람입니다. 나는 한국 땅에서 한국의 부모님 안에서 태어나 한국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된 것입니다. 의로운 행동을 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3. 우리를 거룩하다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뜨거운 물에 녹차 팩을 담그면 이제는 더 이상 맹물이 아닙니다. 아무도 뜨거운 물에 녹차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녹차입니다. 

내 안에 의로운 예수님이 계시면 성경은 우리가 그 예수로 인해 의롭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를 때에 성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있는 성자들에게 성령님은 이 시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중한 성자들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우리보다도 우수한 점을 기록한 책을 보니까 263가지나 우리가 엄두도 못할만큼 굉장히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봅니다. 십일조 한가지만 놓고 봅시다. 그들은 정확하게 속이지 않고 십일조를 했습니다. 또 다른 십의 하나를 떼어서 구제하고 선교했습니다. 또 1년에 한번씩 또 십일조를 떼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음식의 십일조를 먹지 아니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물질의 십일조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 성전에 나아가 정확히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바리새인보다 낫다. 십일조를 드릴뿐만 아니고 구제헌금의 십일조를 떼어서 구제한다. 또 다른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긴다. 금식의 십일조를 위해 금식한다. 시간의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바리새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계십니까? 

그러면 성경은 뭐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5:20)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심각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손을 들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까? 

나는 바리새인보다는 의가 나은 것 같아요.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해 보니까. 왜냐하면 나는 내 공로나 내 성취나 나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내 공로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의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름다운 관계속에서 나는 그분의 신부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모든 의가 내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훨씬 나은 줄로 나는 분명히 믿었기 때문에 내 의는 바리새인 의보다 나은 것입니다.

내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내 성취 때문이 아닙니다. 내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운 관계 때문에, 성경에 진리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그 영광스러운 말씀 때문에, 우리는 성자가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제 성자이니까 성자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거룩하니까 거룩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의롭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본질대로 신분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멍멍거리는 것은 본래 우리가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은 본래 우리 모습이 아닙니다. 빨리 돌아 와야 합니다. 본질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애벌레 속에서 파묻혀 산다할지라도 나는 애벌레가 아닙니다. 이미 나는 천국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신분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나는 금방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신분에 집중하십시오. 


V. 거지처럼 살아도 부자는 부자다

1930년도에 미국에 대 경제 공항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에 "예인츠”라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려서 거대한 농장을 건설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은행 이자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빛을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자를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부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석유 탐사대가 예인츠의 농장을 지나가다 그 농장 밑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매장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석유가 펑 쏟아지는 그날 8만 드럼의 석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묻습니다. 이 백만장자 예인츠가 언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 석유를 개발하여 시장에 내다 팔고 돈을 가졌을 때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석유를 개발하여 석유를 보는 순간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석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땅을 소유했을 때 그는 백만장자였습니다. 단지 그가 모르고 살았을 뿐이지요. 

부자는 거지처럼 살아도 부자입니다. 임금의 아들은 거지처럼 살아도 왕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못마땅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보더라도 도무지 못마땅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모습은 본래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 안에서, 예수의 공로로, 우리는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분명히 선포하십시다. 죄를 짓고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여러분을 조롱하는 사단을 향하여 선포하십시다. 여러분을 비웃는 세상에 모든 느낌들을 향하여 선포하십시다. 나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부요로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성자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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