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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임마누엘 (마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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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3)

세계적인 명절인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가리켜“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임마누엘”이란 히브리어로“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사무엘하 5:10에 말씀하시기를“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은“강성”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유목가정의 팔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 나라의 골리앗을 죽인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전쟁에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 사람의 신분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배경과 상관없이, 강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기잡이로 근근이 살아가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뭇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를 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3:6에 말씀하시기를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즉 임마누엘의 은혜를 힘입는 사람보다 더 복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임마누엘의 사람은 승리자가 됩니다. 성공자가 됩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발디가 고금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그 날 저녁, 콘서트홀은 입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하면 세상에서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알려진 악기였습니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청중들은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되었습니다. "역시 악기가 좋으니까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청중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그쳤습니다. 잠에서 깨듯 청중들이 무대 위를 바라보는 순간 비발디는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힘껏 내리쳤습니다.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놀란 청중들은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일어났습니다. 세계적인 명기를 저렇게 깨어버리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또 하나의 바이올린을 들고 등장한 사회자가 놀란 청중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저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싸구려 바이올린입니다. 비발디 선생은 여러분에게 참된 음악은 악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평범한 악기라도 유능한 연주자의 손에 들려지면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는 것같이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누구가 나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내가 누구의 손에 사로잡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요? 


一.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 대하여 구약성경 역대하 15:15에 말씀하시기를“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민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나라 형편에 대해 역대하 15:5~6에 기록하기를“그 때에 열국에 거한 모든 백성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며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멀리한 결과입니다. 캄캄한 어두움을 헤매는 상황입니다. 국가적 암흑기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왕위에 오른 아사 왕은 백성들과 함께 결심하여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만나주셨습니다. 즉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역대하 15:15에 말씀입니다.“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날이 12월 15일 성탄절인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12에 말씀하시기를“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멀리하는 사람은 스스로 흑암을 향해 달려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대적들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뛰쳐나갔습니다. 이때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등지고 나가는 모습을 요한복음 13:30에 기록하기를“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가룟유다가 나가자 곧 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을 먹은 후인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이 밤은 자연의 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멀리하는 가롯유다의 안타까운 처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후 가룟유다는 캄캄한 밤길을 헤매다가 스러진 사람처럼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은 삼십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훗날 그는 자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절한 말로를 맞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빚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 아모스 5:4에도“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강 같은 평화를 주십니다. 
그것이 곧 역대하 15:15에 말씀입니다.“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하나님을 찾되 어떠한 마음으로 찾아야 하겠습니까? 잠언 2:4~5에 말씀하시기를“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하셨습니다. 

잠언 8:17~21에“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시편 34:15절에“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있습니다. 


二. 화평을 구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찬양한 내용을 누가복음 2:14에 말씀하시기를“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9에는“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화평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7~18에는“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하셨습니다. 어디에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화평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다운 삶인 것입니다. 

분쟁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며칠 난장판이 된 국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국회에서 주먹다짐, 욕설, 햄머, 전기톱, 분말소화기가 동원되었습니다. 이 망신스러운 광경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송되었습니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국회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상상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교회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그렇다고 합니다. 국내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이 모인 교포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삶의 지혜가 아닙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3:17-18에 말씀하시기를“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하셨습니다. 화목 즉 화평하지 못하고 불화하는 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라면 그 출처가 어디이겠습니까?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출처는 사탄입니다. 사탄의 목표는 파괴하는 것입니다. 화목 된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사이, 화목한 형제들과의 사이, 화목한 부부의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시기하며, 끝내 원수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된 성도의 생각과 삶에 대하여 갈라디아 5:2-23에 말씀 하시기를“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웃에게 화평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위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장 포웰이란 프랑스의 시인이 말하기를 인생에서 날마다 생활이 향상되고 인격이 성숙해지려면 세 가지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조화의 능력이요, 둘째는 책임감이요, 셋째는 타인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평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성품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나타내시는 삶의 열매입니다. 화평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날이 성탄절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사람위에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평화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 프랜시스>

성 프랜시스의 소망과 기도가 우리의 소망,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三. 통회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시편 34:18절에“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돌아보며 잘못을 뉘우쳐 회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찾아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자기가 지은 많은 죄로 인해 늘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이 많은 한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당신은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립니까?”“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당신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아닙니다. 다시 붙여서 사용합니다.”그러자 늙은 수도사는 그에게 말하기를“당신이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며, 돈도 그 가치 때문에 찢어진 것도 버리지 않고 다시 붙여 사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어찌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찢어진 옷만 못하며, 찍어진 화폐만 못하겠습니까?”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서 쓰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장 난 것도 잘 고칩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의 공생애는 고장 난 영혼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장 난 심령들을 고치셔서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회개함으로 깨끗해진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에 말씀하시기를“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四.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마태복음 28:18~20에“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증거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님은 먼저 믿은 성도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증거를 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은 말하기를“선교적 비전을 상실한 교회는 이미 교회
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선교할 줄은 몰랐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기들끼리의 사랑은 깊었지만 선교에는 무관심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친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직접 선교명령을 받고도 이를 거역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교회는 로마의 박해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위해 억지로 흩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지금까지도 교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의 마지막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1세기는 한국교회 선교시대입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마지막 선교주자로 택하시고 그 바턴을 넘겨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님 오실 때까지 세계를 복음화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기독교의 이목이 한국교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하여 한국교회를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1천2백만 명의 성도를 주시고, 5만 개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10만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케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선교의 자원입니다. 이 선교명령에 순종하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19세기 까지는 영국이, 20세기는 미국이 세계선교를 주도하면서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선교를 뺏기면 축복도 빼앗기고, 선교를 빼앗으면 축복도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입니다. 가장 좋은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가장 성경적인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동참해야 합니다. 직접 선교지로 가지 못해도 기도와 물질로 얼마든지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선교가 복입니다. 선교시계를 보면 영국은 저녁 8시, 미국은 오후 2시, 한국은 오전 7시 라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제 시작입니다. 선교하는 개인은 복 받고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되고, 선교하는 나라는 부강해집니다. 복음증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개인이나 나라와 함께하십니다.

지난주 이 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KBS에 방영된 “대한민국 길을 묻다.”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경제 분야의 강사로 나온 서울대 경제학과 송병락 명예교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미국 골드만삭스의 피터 드레커 박사의 견해를 인용해서 말하기를

“앞으로 2050년 이면 세계경제의 1위가 미국, 2위가 일본, 3위가 한국이 될 것이다.”라고 내다 봤습니다.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인구도 많지 않은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증거로 몽고의 징기스칸 때를 예를 들어 말했습니다. 징기스칸 때 몽고의 인구는 100만 정도, 군사는 10만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백만 인구, 십만 군사로 러시아와 중국과 인도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오천만이면 능히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몽고족은 4살 때부터 말을 탔고, 그들은 하루에 말을 바꾸어 타면서 500km를 달렸다고 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함께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에 말씀하시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임마누엘 은혜를 입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찾되 간절히 찾는 사람입니다. 
둘째, 화평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셋째,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쫓아 영혼 구원을 위해 국내외에 복음을 힘써 전하는 사람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가 성탄절을 맞아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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