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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방인의 감사 (엡 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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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감사 (엡 2:11~18)


앞에서 이미 구원의 축복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받은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큰 것이 바로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죄수의 몸으로 수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죄수의 몸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감격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감옥에서 막 나온 사람들보다도 감격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감옥 생활을 한번 해볼 수도 없는 것이고....말입니다.
사도 바울이야말로 옥중 생활을 많이 해본 분으로써 죄수의 몸에서의 해방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깊이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이 감사와 감격이 바로 이방인인 우리들의 감사와 감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만 해도 기쁘고 복된 진리를 말하고 나서 다시 11-18과 19-22절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3장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와 찬송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유대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알아야 하며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교리적 내용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란 참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이방 사람들을 개 취급하였으며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를 통해서만 겨우 이방인을 수용하고 그 외에는 아주 싫어하였습니다.
요새 북미나 남미에서처럼 교회에서 흑인들을 수용하되 아주 형식적이며 실제적으로는 같이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이상으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수리아의 안디옥에 돌아와 보니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잘못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행15:1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 예배 때 ‘복음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잘 못된 교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번 잘못 배우면 고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배울 때 바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행10장,11장에 보면 심지어는 베드로까지도 그가 성령 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도 얼마 동안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2:11-21절에 보면 베드로를 책망한 기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러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갈5:4절에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로마 교인들도 그러하였고, 고린도 교인들도 그러하였다는 사실을 이 서신에서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양면성은 어디서나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과 비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으로,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선포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행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차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포하기를 ‘구원의 풍성함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간에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복음의 진리를 각 교회에 전하였으나 문제의 여파는 아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에베소 교회와 그 주변에 있는 지방 교회는 말씀에 든든히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여 하나가 되어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크게 번성하고 부흥하였고 에베소 교회가 중심이 되어 많은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부흥이란 숫자적인 것만도 아니지만 진정한 교회 부흥의 비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진리 가운데 바로서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 있으면서도 기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것은 과거 자신들의 비참하였던 자리에서 현재의 복된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11절에서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 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 할례 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단들에게까지도 ‘무 할례 당’이라고 무시와 천시를 당하던 자들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거룩하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스스로 할례 당이라고 이방인들을 정죄 하는 저들이야말로 신앙적으로는 매우 형식 적이었으며, 비 진리를 따르는 이단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그것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고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렘6:10절에 보면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며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그가 돌이켜 너를 해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가 아니라 단순히 양피를 잘라 내는 하찮은 외과 수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다 형식적인 신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예레미야도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렘4:4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영적으로 선민이라고 하는 자들이 바로 이방인이요, 이방인이라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다 이방인이요 영원히 버림당할 비천한 존재였음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이 아니었던들 영원히 버린바 된 이방인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전15:10절에 보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과거의 자신의 죄가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알지 못하고는 진정한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2절에 와서 과거의 이방인들의 비참했던 모습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상기시켜 주는 말을 하면 ‘그렇지...나는 참으로 아주 교만하고 못된 죄인이었어....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해...’하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의로운 사람이야....왜 쓸데없이 과거를 들추며 기분 나쁜 소리 또 하는 거야...’하면서 아주 못마땅하게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일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책망의 말씀이던 축복의 말씀이던 언제나 감사함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면, 그렇지 책망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저주받을 나였지....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복을 받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야...그리고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으니 좀더 잘해야겠어...이렇게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성도의 참된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이 12절에서 생각하라고 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종 과거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신5:15절에 보면 “너희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너희가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종종 상기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나라를 잃었으며, 복을 받을 가치도 없는 처참한 존재들이요, 고아와 같이 버린바 된 가련한 존재였으며, 그래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무지 목매 한 죄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아직도 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말씀을 들어도 감격도 없고 은혜도 없고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을 언제나 인식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인정함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이며 은혜 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한 자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밝은 데로 나가면 나갈수록 자신의 모습이 역력히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받은바 은혜에 대해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며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헌신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서 권면하기를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와 현재의 내 자신을 생각하고 지금 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 감격하며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 받은 성도로써 주님을 위해서 복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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