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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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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8절~12절 
제   목 :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 
 

1. 빅뉴스(Big News)

지난 1989년 10월 9일, 계절이 점점 가을로 향해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날이 한글날, 당시는 공휴일이라 고된 군사훈련이 없었고, 또 평상시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저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아침 일찍 훈련소의 배려로 어렵사리 집에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응, 딸 낳았어. 자넬 닮은 것 같애!” 그때 그 소식은 정말 제겐 ‘빅뉴스’였습니다. 비록 출산하는 아내 곁에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아빠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아주 건강한 떡두꺼비 같은 딸(!)을 낳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흥분하여 가슴이 벅차고,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던 그런 기쁜 소식을 몇 번이나 들어보셨는지요?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로 음식을 먹는 일조차 잊었던 경험,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그 감격을 나누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기다리시는 가장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생각지 않았던 거액의 돈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자녀들의 성적이 갑작스레 오르는 일이나, 대학에 보기 좋게 합격하는 것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기다리시는 가장 큰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뭔가 좋은 소식, 이른바 희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소식을 기다리면서도 자신들에게는 그런 희소식이 없을 것이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엄청난 소식, 최대의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 이 사람들까지 감동시킨 소식이라면 ‧‧‧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목자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 그 탄생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들이 왜 하필 목자였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왜 하필 목자들이었을까요?

“목자”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적으로 드는 느낌은 ‘성경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목자와 양에 관한 기록이 많기 때문에, 또 하나님을 목자라 하고 그 백성을 양이라 하셨기 때문에 “목자”라는 말이 아주 익숙하게 들립니다. 그리고 이 “목자”라는 말은 목가적인 분위기, 즉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시골 들녘의 평안한 안식과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의 목자들의 삶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자들은 어떤 소식을 들어도 반갑지 않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여겼을 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자들은 불행하다고 여겼습니다. 

목자들이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진 것은 유대 역사에 있어서 상당히 오래된 일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은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 중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돼지, 낙타, 토끼, 솔개, 까마귀, 타조, 다호마스, 학, 박쥐, 개미, 갑충, 곰, 도마뱀, 족제비, 쥐, 뱀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부정하다’고 구별할 사람들에 대한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경, 절뚝발이, 손 부러진 자, 곱사등이, 난쟁이, 눈에 백막 있는 자, 괴혈병, 버짐을 가진 사람, 피부병, 고름 흘리는 자, 피 흘리는 자, 설정한 자, 사생아 등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기에다 몇 몇을 더 보탰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루 세 번씩 드리는 “쉬모네 에스레”라는 기도문에 나옵니다. “하나님, 나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노예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나귀 몰이꾼, 낙타 몰이꾼, 뱃사공, 마부, 푸줏간 주인, 투전꾼, 고리대금업자, 세금징수원, 구리 대장장이, 무두장이, 피장이, 행상, 직조인, 이발사, 철구석공, 목욕탕 관리인, 의사, 목동 등이 아니라서 감사”했습니다. 즉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직업의 사람들은 부정하거나 인간 불량품으로 여겼고,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전통과 사회적인 통념이 이렇게 목자를 부정한 사람, 인생불량품으로 여기다보니, 목자들은 신분상으로는 평민이었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 또 경제적으로 천민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종교적으로도 불결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공식적으로 법률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하고, 극심한 천대와 증오를 받았으며, 당시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즉 시민권을 박탈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진술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목자들은 종교적으로는 죄인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천민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했고, 법적으로는 신분이나 그 어떤 사회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목자직보다 더 천대받은 직업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자들의 삶은 철저히 소외당하고 가난하고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당시 사회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난하고 힘든 그들에게 성탄의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 천사들이 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드디어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 중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일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큰”은 ‘위대한, 거대한, 매우 많은, 웅장한’ 등의 뜻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에게, 혹 어떤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기쁜 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일’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죄로 인해 흑암 아래에 놓였고 절망과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죄와 공중권세 잡은 자가 사람과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통하여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나라를 로마가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가 자신들의 모든 것을 통치하고, 이방인인 에돔 사람이 중간 관리자로 있는 기가 막힌 현실, 앞길이 막막한 미래,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어렵고 한 숨 나오는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로서는 로마 제국의 막강한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죄의 사슬을 끊고자 노력은 해보지만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죄의 권세는 인간의 힘과 능력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그 권세를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에 불과했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장차 자신들에게 임할 진노의 심판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놀람으로 숨이 막혔습니다. 이러한 비참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 갇힌 자들을 구원하시러 우리 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죄 문제와 로마의 통치로 고통 하던 유대인들에게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날 밤, 천사들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있던 목자들, 무엇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쓸쓸함이 감도는 빈들에서 지내는 목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가슴에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61장에서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3).”고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면 인간이 만들어서 자신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사회적이고 신분적이고 법적인 차별과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없이 하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비록 삶은 구차하고 힘들어도 구원의 주님으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구약에 예언 된 그 메시아가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과, 그리고 이 소식이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존재들에게 자신들도 인간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며, 종교적 희망마저 가질 수 없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며, 가장 불행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소식이었습니다. 목자들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소식 자체가 목자들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 즐거운 소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기 예수를 만나고 이 사실을 확인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어둡고 우울한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그들의 가슴은 뛰고 있었고, 벅찬 감격의 눈물은 그때부터 이미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메시야의 나심은 그들에게 최고의 희소식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으로 인하여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죠.


3.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시 가장 불행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목자들이 성탄의 소식을 맨 먼저 들었고, 그래서 그들이 감동했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겼던 목자들이 만족하고 행복해 한 소식이었다면, 다른 사람들 즉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역시 즐거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목자들이 예수 탄생의 뉴스를 들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복음의 문턱은 매우 낮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천사가 전하여 준 메시지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고 확인되어집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일은 “온 백성에게 미칠(for all the people, NIV. NASB.)”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죠. 

1) 예수님의 탄생은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11절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오심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❶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와 그로 인한 저주의 사슬을 끊어주셨습니다. 나의 지난 죄와 죄로 인한 죄책감의 고통과 죄로 인해 장차 받게 될 형벌을 없애주셨습니다. 지옥의 심판이 따르는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길이요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입니다. 바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죄의 사슬에 단단히 묶여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고, 또한 꺼지지 않는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를 기쁘게 할 소식이 이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❷ 예수님이 오심으로 죄 문제만 해결하셨습니까? 세상의 아들, 사람의 아들로서도 천덕꾸러기 같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거룩한 하늘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만 해도 감동과 감사가 넘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❸ 어디 그 뿐입니까? 제가 지금까지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엄청난 일과 사역의 복, 사람과 만남의 복, 돈의 복도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❹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때 받을 복이 저와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국 가는 그것만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이지만,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제게 주실 복과 상급을 생각하면, 일할 곳이 없어 하루 종일 노닥거리다가 퇴근 시간 한 시간 남겨두고 간신히 일을 얻어 갔다가 겨우 1시간 일했을 뿐인데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과 똑 같은 삯을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가 오셨는데 이제 보니 순전히 타락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감당하기 벅찬 은혜입니다. 나와 상관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복음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바로 나를 위한 복음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이와 똑 같은 이유로 성탄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느 한 계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나심을 인정하고 기뻐한 사람들과 그것을 부인한 사람들의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고 무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인 헤롯왕으로부터 귀족들, 보통 서민인 여관주인과 또 집주인들이었습니다. 

반면 아기 예수님을 영접했던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방인이었던 동방박사들이 있었고, 비천한 신분인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대 사회와 성전의 책임자였던 대제사장들에게는 성탄이 불쾌하고 골치 아픈 소식이었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던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에게는 평생을 기다리던 감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의 능력은 그것을 기뻐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성탄은 지금의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최고의 소식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여러분에게 최고의 소식은 무엇입니까? 경제 한파가 지금 당장 풀리고, 환율이 내리고, 주가가 뛰고, 펀드가 살아나고, 이왕에 내렸던 기름 값은 더 내리고, 그러면서 문 닫기 일보직전의 회사가 회생하고, 자금이 돌고, 수출이 호황을 이루고, 크고 작은 공장이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실업자들이 없어지고, 아이들 성적은 뛰어서 갑자기 일등을 해버리고, 아프던 몸이 깨끗하게 치유되고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곧 그리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삶은 늘 널뛰기와 같습니다. 치솟았다가 내려앉았다가, 그러다 잘못하면 바닥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 그래서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은 이미 앞서 말씀드린 것들, 즉 우리를 죄와 그로 인한 저주의 사슬을 끊어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거룩한 하늘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는 것, 지금까지 예수 안에서 많은 것을 얻게 하셨고, 앞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기대치 않았던 복과 상급을 주신다는 것 …. 이것이 여러분을 가장 기쁘게 만드는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예나 지금이나 하늘과 땅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하여 준 천사의 말이 끝나자, 목자들의 눈앞에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천군 천사들로 구성된 하늘 찬양대가 나타나 소리 높여 주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13). 우리가 보지는 않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장엄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와 비슷한 장면을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베들레헴 인근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하늘 찬양대의 찬양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감격스러운 체험을 했습니다. 

하늘 찬양대의 찬양 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지닌 궁극적인 의의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14절 상반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나타난 첫 번째 의의는 ‘주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드러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탄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즉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하게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 구원의 날이 시작되었다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 했기 때문에 하늘 찬양대가 힘껏 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 것입니다. 

하늘 찬양대의 찬양의 두 번째 내용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하반절)”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까지는 싸움, 원수, 미움, 불화 등등의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것의 원인은 죄였습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켜 우리로 하나님의 원수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불같이 타오르는 진노와 무섭고도 두려운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안은 사라지고 공포와 두려움이 사람들을 짓눌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 늘 불화가 일어났습니다.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분쟁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끝이 났습니다. 사람의 심령에, 가정에, 사회와 온 땅에 참된 평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천사 찬양대가 “평화”를 노래한 것입니다. 


4. 2008년도 최고의 소식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비천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탄의 소식을 듣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유대 광야와 베들레헴까지 제법 먼 거리인데, 게다가 아직도 어두운 밤인데도, 그들은 달려서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가서 아기 예수를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오늘 본문이 여러분과 우리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당시 가장 어렵고 가난하고 불쌍한 목자들이 최고의 희소식으로 받아 감격했던 소식이라면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도 당연히 최고의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는 의사가 된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인 진료를 했습니다. 그가 80회 생일을 맞았을 때 몇 가지 생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을 때 천하를 얻은 기쁨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민족적인 기쁨을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한 기쁨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기쁨은 이 기쁨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옛날 목자들이나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최고의 소식은 성탄의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으로, 그리고 죄인들 곁으로 오셔서, 구속주가 되시고 섬기는 종이 되셨습니다. 영적인 결박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푸시고 고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만왕의 왕이시고, 창조주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능자를 우리 곁에 모시고 살게 된 날입니다. 하늘의 것, 하나님의 것을 내 소유로 삼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게 된 날입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 삶의 현장으로 오셔서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시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2008년도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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