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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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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25~35) 


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목사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옥중서신(Letters & Papers from Prison)에서 그는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때라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다." 즉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인 '너희는 여호와 곧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는 계명을 실천하는 자에게만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는 모습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기다리며 모셨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시므온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한 것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주재(主宰)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노래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라며 시므온은 히브리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구현될 구원의 역사를 예견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시므온은 예수를 보자 고백합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예수의 탄생 자체가 인류의 빛이요 이스라엘에게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때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감격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버리셨는지 의심하면서 원망합니다. 이렇듯 변덕이 심한 휘청거리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왜 시므온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보는 기회를 주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났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은혜도 입었습니다. 시므온처럼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라는 고백이 가능한 삶이 되려면, 


첫째로 의롭고 경건하게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땅콩을 재배하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지아주지사를 거쳐 1977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능력이 모자라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카터는 대통령직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Habitat for Humanity)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관심을 끌게 됩니다. 

헤비타드(Habitat)란 말은 '거주지 혹은 동물들의 서식처' 라는 뜻입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무주택자를 위한 봉사와 섬김이라면 망치와 페인트통을 들고 달려 갈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카터는 2001년 한국을 방문하여 전국 6개 지역에서 9천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74세대를 지어서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봉사와 헌신에 대하여 물으면 카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대통령직을 잘 감당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마친 뒤 시키실 일이 있어서 대통령을 시킨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는 일에 망치를 들고 못박으며 일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고령의 나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고 보살피는 작은 예수의 삶을 즐겁게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여기의 '의롭다' 는 '디카이오스' 로 '공정하다, 정의롭다'는 말입니다. 또 '경건하다' 는 말은 '율라베스' 라는 말인데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즉 시므온의 삶이 '의롭다' 는 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분명하다는 것이고 '경건하다' 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의 자세가 반듯하고 율법의 요구함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가 간절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아기 예수의 오심을 볼 수 있었으며 품에 안는 은혜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마음이 있어도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나이 많아 늙도록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마지 못하는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참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귀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말년까지 물질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다면 비록 가난하다할지라도 그보다 귀한 복이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의롭고 경건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메시야가 분명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감동으로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성공하지 못한 교사였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브룩스를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괴로움을 당하던 어느 날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고, 불행하고, 거의 죽을 지경입니다". 얼마 후 브룩스는 해고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내게 무슨 일이 다가올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잘 보살필수 없었다". 

그러나 브룩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실패한 그에게 새로운 기쁨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적인 목사가 되었습니다.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책상에 앉아 찬송시를 썼습니다.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잠잠히 있으니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온 하늘 두루 비춘 줄 너 어찌 모르나." 브룩스는 소망과 두려움들에 관해 알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새로운 시작이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열려 있음을 깨닫도록 이 찬송을 쓴 것입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여기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는 '계시를 전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온 시므온에게 하나님은 계시의 전달자인 성령을 통해 메시야를 보리라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으로 인도함받게 됩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시므온처럼 메시아를 대망하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하여금 메시아를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형식화된 종교 의식을 준행하며 잘 믿는 것처럼 보였으나 진정 메시아를 영접한 사람은 시므온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종교의식의 준행보다 내적 경건과 성령의 감동에 따라 사는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아니하고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기도에 힘써 예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로 축복하며 전해야

'연탄 은행' 이란 봉사단체를 만든 허기복 목사의 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정신, 별거 없어요. 한번 둘러보세요! 없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돕는 게 크리스마스예요." 겨울의 산동네는 을씨년스럽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과 아이들인 산동네의 눈 덮인 골목길에는 하루 종일 추운 바람 소리만 스칩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허목사가 오는 날을 기다린답니다. 아랫목을 덮혀 줄 연탄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것도 고맙지만, 사람들이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입니다. 

연탄은 검습니다. 그리고 투박합니다. 손에 그 검댕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연탄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질 때 특히 그렇습니다. 이들이 모인 연탄은행이란 단체는 형편이 어려워 연탄조차 마음껏 때지 못하는 전국의 불우 이웃을 돕는 봉사단체입니다. 전국에 지점이 16곳이나 있습니다. 시작은 원주 밥상공동체에 무명의 독지가가 지원한 연탄 천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이는 시므온이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안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야를 바라보니 힘이 납니다. 영적 즐거움과 환희가 솟아납니다. 넘치는 기쁨으로 예수의 장래 사역에 대하여 예언을 합니다. 구원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기에 이제라도 기쁘게 죽을 수 있노라 고백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부정과 부패가 많아도 시므온처럼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여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축복하며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산세베리아(Sansevieria)는 어두운 녹색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화훼식물입니다. 산소를 만들어내는 식물로 인기가 있습니다. 공기 청정 효과가 탁월한 식물로 새로 지은 집의 건축 자재들에서 발생하는 발암 물질, 포름알데히드를 흡수하는 효과가 더욱 있습니다. 다른 식물보다 30배 이상 음이온을 발생해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물은 한 달에 한번, 한 모금의 물만 주어도 잘 자라고 음이온을 발생시켜 공기를 맑게 해 준다고 합니다. 메시아의 탄생 소식만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뛰고, 구원의 기쁨으로 모든 이의 삶을 이롭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신 성탄의 소식은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신앙으로 기다린 사람만이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더욱 하나님의 성전을 찾으시고,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며 시므온처럼 성령 안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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