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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로 올라갑시다 (창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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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갑시다 (창 35:1~7)
 

1. “오리무중(五里霧中)”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말은 ‘5리(里)에 걸친 깊은 안개 속’이라는 뜻으로,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막연하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오리무중”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환관과 황실의 외척이 세도를 부리던 후한(後漢) 시대, 즉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시대 이전 시대인 후한(後漢) 중엽, 당시 이름 난 학자이자 시중의 고문관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낸 ‘장패(張覇)’는 벼슬과 그와 사귀기를 원하는 권문세가의 요청을 거절하고 시골로 낙향하여 고고하게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완고함을 비웃었고, 얼마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 ‘장해’ 역시 뛰어난 학자여서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고, 당대의 이름 있는 학자들이 모두 그를 찾았으며, 권세 있는 자들이 그와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때 묻은 자들과 섞이기를 싫어하여 시골로 들어가 숨어 살았습니다. 조정에서도 그에게 여러 차례 벼슬을 준다 하였으나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배우(裴優)’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요. 그 사람은 오리나 걸쳐 자욱하게 퍼진 안개 때문에 장해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오리무중'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짙게 깔려 산지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제가 오리무중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 9일 "내년에는 한국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김 원장은 우선 내년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수출 환경이 악화하고 금융 시장 불안이 지속되는 한편 내수 시장도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국제통화기금>, 즉 IMF의 스비르 랠 아태지역 담당 수석은 "한국 경제가 내년 초 바닥을 찍을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랄 수석은 "한국 경제 활동의 일반적인 지표들이 빠르게 감속하고 있다"며 "경제 약화 징후로 기업 신뢰 지수 하락뿐만 아니라 소비 지출과 수출이 약화되면서 전반적인 모든 지표들이 내수 경제 둔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거시적인 전망은 실물 경기와 서민 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성도들이 이미 한차례 이상 홍역을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습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성도들도 무척이나 힘들어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전체로 파급되고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극동방송의 <소망의 기도>에는 이런 경제적인 현실로 인한 기도 제목과 가정의 위기, 또는 육신의 질병으로 인한 문자, 인터넷, 그리고 전화 기도제목이 쇄도했습니다. 기도 제목 가운데 상당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목표와 방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위기로 삶의 목표가 희미해지고, 방향 감각을 잃었으며, 그래서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목표가 희미해지고, 방향감각을 잃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2. 벧엘에서부터 시작하라! 

1) 벧엘로 올라갈 이유

창세기 33장에는 야곱과 에서가 만나 극적인 화해를 이루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와 화해한 후에, 야곱은 고향과는 조금 떨어진 가나안 땅 세겜에서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부른 후 거기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4장에는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34장 1, 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당시 디나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디나는 밧단아람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숙곳으로 왔고, 숙곳에서 2년을 살다가, 세겜에 와서 8년을 살았습니다. 이제 열일곱 살의 꽃다운 나이가 된 디나는 세겜의 축제가 열리자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이 ‘본다’는 말은 ‘눈으로 이것저것을 구경하는 것’, 즉 ‘eye-shopping’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디나는 세겜의 축제가 벌어지자 그 축제를 구경하고, 그 동네의 자기 또래 여자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축제이니 만큼, 아마 디다는 눈에 띄는 옷을 입고 나갔을 것이고, 이런 디나의 모습은 세겜 족속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런 디나를 보고 끌렸을 것이고, “짐이 곧 국가요 법이다”는 말이 있기 전이지만, 자신이 왕과 같다 보니, 마음에 드는 여자를 강제로 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디나가 낯선 이방 남자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세겜은 첫 눈에 디나에게 반한 것 같고요, 그래서 비록 강제로 범했지만, 그 후에는 자신의 진심을 보이면서 디나를 위로했고,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디나를 정식적으로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성폭행을 당한 디나의 입장이 어떻겠습니까? 생전 처음 만난 이방 남자에게 강제로 당했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죽을 맛이겠습니까? 비록 자신을 성폭행하고는 “결혼하자”고 할지라도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10년 만에 복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부남 사건”이라고, 21년 전에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결국 죽이고 말았던 한 여인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폭행은 당한 사람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랑하는 외동 딸, 열일곱 살짜리, 아직 어리다면 어린 딸이 깡패 같은 이방인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왜 그렇게 꾸미고 그리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겠지만, 세겜을 때려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의 심정은 엄청나게 괴로웠을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너무나 기가 막히고 참담한 상황에 처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일로 인하여 낙심하고 있을 때 또 다른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은 디나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아주 적극적으로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세겜과 디나와의 결혼으로 끝내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세겜 부족과 야곱 부족이 혼인 관계를 맺자’고 했습니다(34:9). 그리고 ‘결혼만 허락해 준다면 땅을 주어서 농사하게 하겠다’, ‘함께 매매하며 상업적인 교류를 하자’, 그리고 ‘어떤 혼수와 예물을 청구하더라도 요구하는 대로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겜의 요구에 대해 야곱은 침묵했습니다. 하몰의 제의를 듣고도 묵묵부답,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디나가 강간당한 것에 대단히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의 제의를 받은 후, 한 가지 조건을 들어주면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주고 그들과 결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할례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속에 새기도록, 그리고 겉으로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임이 드러나도록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이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것으로 이스라엘은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이 거룩한 할례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보복하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과 자기들만의 거룩한 표시를 팔아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꼼짝할 수 없을 것이고, 그때 그들을 공격하려고 한 것이죠.

세겜과 하몰은 이것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34:18). 그리고 하몰과 세겜은 세겜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부족 사람들에게 히브리인들처럼 할례를 받는 것이 자신들에게 득이 된다고 했습니다. 할례를 행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결혼하고, 그 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합법적으로 빼앗자고 한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도 이에 동의하여 모두 할례를 실시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할례를 하고 고통하고 있을 때에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모든 남자를 죽였습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양과 소와 나귀 등 세겜 사람들의 모든 재물을 노략질하여 강탈했고, 그들의 자녀들과 부인들을 포로로 잡아왔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복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할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악을 악으로 갚다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더욱 더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악이 악을 낳는 악순환만 만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의 아들들의 이 보복 사건은 남은 세겜 사람들과 가나안 부족 전체가 합세해서 야곱의 일가족을 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4:30,31).”고 했습니다. 즉 앞으로 더 큰 보복 사건에 휘말릴 것이고, 결국 약자인 자신들이 전멸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 야곱이 당한 상황이 오리무중의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딸, 하나 밖에 없는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디나가 성폭행을 당한 일도 너무나 괴로운 일이지만, 동생이 성폭행 당했다고 오빠들이 작당을 해서는 대대적인 살인을 저지런 일은 더더욱이나 야곱을 힘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이어가는 집안,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녀들에게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성폭행을 당한 일도 그렇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족과 재산을 강탈한 것도 그렇고, 앞으로 엄청난 보복이 가해올 것을 예상해도 그렇고 ‧‧‧ 야곱은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 지,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임하셨고, 친히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말씀하습니다. 35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혹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말씀을 하시기보다는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벧엘이 야곱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셨냐 는 것입니다. 벧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을 지은 사람이 바로 야곱 자신입니다. 야곱은 늙고 병들고 눈까지 먼 아버지를 속였고, 형의 장자 권을 합당치 않은 방법으로 빼앗았습니다. 이것을 안 형 에서가 흥분하여 자신을 죽이려 하자 도피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도피하던 중에 바로 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의 말씀, 즉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이 티끌 같이 많아져서 온 세상으로 펴져나갈 것이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너의 후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떠나지 않겠다(28:13~15).” 

이 복된 약속을 받은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세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습니다(28:21,22).” 

그러했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 온 후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냥 숙곳과 세겜에 머물러 있었고, 그러던 중에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겜은 야곱이 거주할 땅이 아닙니다. 세겜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주신 땅이기 때문에 야곱은 하나님이 주셨고,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한 엗엘로 가야했습니다. 즉 야곱과 그 가족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세겜에 살다보니 영적으로 흐려져서 35장 3절에 보면, 그들은 “모든 이방 신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른 바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밧단아람에서부터 신상(神像)을 가져와 숭배하고 있었고, 가나안 지역의 우상들까지 섬기고 있었습니다. 즉 야곱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우상숭배를 묵인했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터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가 있어서는 안 되는 세겜을 떠나라는 말씀이고, 약속의 땅인 벧엘로 가라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모두에게 너무나 힘든 시기이고,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현실에서 만약 여러분이 ‘세계적인 경제공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만났기 때문에’, ‘모두가 다 힘들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러한 말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저는 창세기 26장에서 가나안 지역 전체에 대대적인 흉년이 들었으나 그랄 지역에 거주하던 이삭이 한 해 농사로 100배의 결실을 거둔 사건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모두가 힘들지만, 이삭은 철저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쫓아내면 말 한 마디 없이 떠났고요, 유목민과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우물을 힘들여 팠으나 그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면 아낌없이 주고는 다른 데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사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거부가 되게 해주셨고, 또한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도가 어려운 것은 경제적인 공황이기 때문이거나 누구나 다, 모두가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배하지 않고, 주님과 그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그것이 경제적인 위기, 삶의 어려움, 가정적인 위기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기를 만나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삶의 위기 앞에 놓인 성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단을 쌓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어려운 문제를 예배를 통해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회복과 새로움과 더 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타개하고 해결하는 첫 단추는 벧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의 세겜을 떠나도록 명령하십니다. 세상의 것들과, 신앙과 관계없는 것들과, 바쁘다는 핑계로 에배를 소홀히 했던 것들과 결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주님을 처음 만났던 때, 그때 가졌던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회복하는 것, 주님께 예배하는 것의 감동과 감격을 회복하는 것, 십자가의 감격과 성령의 감동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벧엘입니다. 날마다 구원의 감격과 예배의 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입니다.


3.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위기관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을 잘못 대처할 경우, 개인이나 가정이나 조직 혹 기업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위협’을 위기라고 합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재정적 손실, 인명 피해, 명예의 훼손, 심지어는 파산까지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즉 “위기관리”는 위기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여 위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위기를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자는 의도에서 고안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분명 위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세상의 위기는 성도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다들 어려울 때,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할 때, 다들 문을 닫는다고 야단일 때, 그때 성도는 더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셔서 성도와 그 기업을 복되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들 힘들고 안 될 때 똑 같이 안 된다면, 다들 어려울 때 하나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복됨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벧엘로 올라가는 일입니다. 이 설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여러분이 밤마다 <벧엘기도원>으로 올라가신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아니면 밤마다 교회 와서 기도하는 일도 좋은 일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규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여러분의 모든 것은 불황의 시대에 도리어 호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참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보일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이 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로 달려가도 피곤치 않을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복으로 여러분과 가정과 일터에 부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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