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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을 위하여 (빌 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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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을 위하여 (빌 2:12~18)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이문동입니다. 1954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해방촌에서 살다가 홍릉으로 이사했고 58년 회기동에 자리를 잡은 후 이곳, 저곳 잠시 좀 다녔지만 저는 제 평생이라고 할 시간의 대부분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57년 청량초등학교에 입학했었습니다. 당시는 근처에 학교가 없어서 홍릉에서 회기동에 있는 청량초등학교엘 다녔습니다. 57년 3월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슴에 하얀 수건을 달고 오는 날 초등학교 5,6 학년쯤 되어 보이는 형님들이 내 머리를 툭 건드리며 ‘고생문이 훤하다’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교가도 아직 머리에 생생합니다. “맑은 바람 불어오는 시원한 터에 배우는 우리 동무 깨끗한 동무. 바람과 먼지조차 향내 풍기는 청량, 청량 우리 청량학교” 가끔 저녁에 시간이 있을 때 동네 이곳, 저곳을 아내와 함께 다녀봅니다. 큰 길가는 많이 변했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아직도 50년 전 골목이 그대로 있습니다. 골목 하나, 하나에 추억이 있습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집에서 교회 다니던 길, 썰매를 타던 곳, 지금은 산이 허물려져 평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언덕이어서 눈만 오면 대나무를 잘라서 스키처럼 타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신나게 타고 내려오던 아리랑고개..... 그와 같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까지 매일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며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늘 젊은 목사, 젊은 목사 소리를 들었었는데 뭐 아직 늙은 목사는 아니지만 이젠 누구도 저를 젊은 목사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대신 ‘젊어 보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젊어 보인다.’는 말이 좋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제는 젊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벌써 저도 젊은 나이가 아니라 젊어 보이는 나이입니다. 젊어 보인다는 것은 이제 남은 날이 이제껏 살아온 날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말씀 중에 에베소서 5장 15절 이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사람일겁니다. 시편 90편은 모세의 기도입니다. 10절에서 12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멘.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남은 날을 계수하여 때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세월을 아낄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바로 남은 날 계수할 지혜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과 14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시간 계산을 할 줄 모르고, 자기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과 세월이 남았는가는 계산해 보지 않고 밤낮 장사만하고 이익만 생각하는 삶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마치 안개와 같아서 언제 어느 때 갑자기 걷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며 계획을 세웁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주의 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 모릅니다. 신앙고백에 보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다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과 심판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는 날이 바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이 임하시면 옛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날이 임하면서부터 세상은 완전히 주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믿습니다. 저도 그것을 믿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그 모든 포커스가 주의 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울의 삶도 그랬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집착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주의 날에 가장 자랑스러울 일 즉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신랑 맞을 준비를 평소에 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신랑 맞을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혜로운 다섯 처녀 같이 살지를 못하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같이 살고 있습니다.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만 생각하며 삽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을 알지 못하고 주의 날에 주님 앞에 서야 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어리석게 하는 것은 만드는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으로 말미암은 쓸데없는 경쟁입니다. 우리들이 욕심을 부리고 사는 것은 그것이 꼭 우리에게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적이고 육적인 것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문제는 그와 같은 것들을 필요 때문에 얻으려고 하지 않고 욕심 때문에 얻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남과 경쟁하느라고 필요도 없는 것들을 모아두고 쌓아두느라고 우리는 우리의 귀중한 생명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주의 날에 하나님 앞에 내 놓아야 할 우리의 일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안개 걷히듯 인생이 걷히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정말 안개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안타까우셔서 이사야 55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규모 있고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인생의 설계도를 가지고 계획적이고 실수 없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사도바울처럼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바보 같이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신랑 맞을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다가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어느 정도의 세상 준비는 다 한 것 같습니다. 살 집도 있고, 은퇴한 후 크게 넉넉지는 않아도 남에게 돈 꾸러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연금도 들어 놨고,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자식들도 어느 정도 제 앞가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무너져서 그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저의 남은 세월을 무엇을 더 먹고 무엇을 더 소유하고 무엇을 더 욕심으로 채우기 위하여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바울처럼 저의 남은 소중한 세월을 주의 날을 준비하는데 쓰고 싶습니다.

욕심이 제일 문제입니다. 욕심은 쓸데 없는 것을 자꾸 붙잡게 합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놓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번에 높은뜻 숭의교회 담임목사라는 자리를 놓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목회라고 하여도 그것을 인간적인 욕심으로 잡고 있으면 세상의 것을 욕심 부리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늘 놓을 준비를 하고 살았습니다. 다만 시간 계산이 저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 3-4년 후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당기셨습니다. 순종하고 보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은 때입니다. 놓고 보니 인간적으로 좀 섭섭합니다. 사실은 좀이 아니라 많이 섭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이고 생각해보면 아주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섭섭하다고 끝까지 그것을 잡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사람이 추해집니다. 어리석어 집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중에 결국 그것을 뺏기게 될 것입니다. 나는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뺏길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려 그것을 놓음으로 그것을 주의 날에 자랑할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붙잡고 있어야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내 것이 되게 하려면 뺏기기 전에 내려 놓아야만 합니다. 내려 놓은 것은 내 것입니다. 내려 놓은 것만이 내 것입니다.

높은뜻 숭의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내려 놓은 것을 연습 삼아 다른 것들도 내려 놓는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물질을 내려 놓는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물질을 다 내려 놓을 작정이 아닙니다. 제 노후를 위한 것과 어느 정도 자식들의 몫을 챙겨 주는 일까지 다 내려 놓을 생각은 아닙니다. 저는 내려 놓음에도 절제가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물질과 재산을 욕심으로 붙잡고 있다고 날리고 싶지 않습니다.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혜롭게 잘 내려 놓고 주를 위하여 쓰는 것으로 내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심으로 붙잡고 있다가 놓칩니다. 물질도 재능도 자리도 다 놓칩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물질과 재산을 주를 위하여 써보지도 못하고 날리고 싶지 않습니다.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써보고 싶습니다. 쓸데 없는 곳이 아니라 정말 귀하고 쓸데 있는 곳에 써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이제 몇 주만 있으면 이곳에서의 예배가 끝이 납니다. 높은뜻 숭의교회의 시대가 끝이 납니다. 여러분 그 동안 참 감사했었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참 행복했었습니다. 지난 주에 높은뜻 하늘 교회는 분립감사 예배를 드렸고 어제는 높은뜻 광성교회의 예비 모임이 예배 처소가 될 현장에서 모였습니다.

높은뜻 숭의교회를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 교인들이 너무 교회에 충성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변질되어 교회의 주인 노릇 하는 것이 너무 위험해 보여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목회를 해 왔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하나를 잘 하면 다른 하나를 놓치는가 봅니다.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노릇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막았는데 반면에 교인들은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그냥 교회의 손님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떠 돌이 손님은 아니고 단골 손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는 부조(扶助) 문화가 발달 되어 있습니다. 너무 지나쳐 조금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함부로 폐기해서는 안 될 좋은 장점이 많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결혼 시킬 때 친구와 친지들의 부조는 많은 힘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힘은 부모들이 씁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위하여 지는 짐과 친구와 친지들이 나누어 지는 짐은 다릅니다.

그 동안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를 하나님의 잔치라고 비유한다면 부조를 하는 친구와 친지들이 많아서 별로 부족함 없이 제법 풍족한 잔치를 해 온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7년 높은뜻 숭의교회를 마감하면서 하나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뜻 숭의교회의 잔치를 친한 친구 아들 잔치가 아닌 내 아들 잔치와 같이 생각하고 기쁘게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며칠 있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네 개의 교회로 분립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 중에 한 교회를 선택하여 가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로운 높은뜻 교회를 가시게 되시거든 손님 같은 교인노릇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를 잔칫집과 같은 교회로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잔칫집의 하객이 되지 마시고 혼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높은뜻 하늘 교회에 갔더니 예배당에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이제 곧 사려고 한다고 하기에 제가 말렸습니다. 조금 기다려 보라고.... 그냥 개척 예산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면 교회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교회에 출석하시는 교인들 중에는 어려운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그래서 마음은 있어도 피아노를 교회에 기증하기 힘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하늘 교회 교인들 중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피아노 한 대 정도 기증할 분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하늘 교회에는 시각 장애인 가정 한 가정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면서 교회에 필요할꺼라면서 사무실을 청소할 수 있는 청소기를 사오셨습니다. 사실 청소기는 그다지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청어람 일층에 보니 분립될 교회에 필요한 스피커들이 잔뜩 쌓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회 분립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척 들었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돈을 아낄려고가 아닙니다.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는데 그냥 부조돈 들고 부담 없이 참여할 하객만 가지고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뭐 필요한 것은 없을까?’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어떤 몫을 감당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을 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쓸데 없는 경쟁 때문에 너무 많이 붙잡고 있다가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없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 되는 삶을 살지 마시고 내려 놓고 주를 위하여 씀으로 오히려 소중한 것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분립되는 네 교회는 높은뜻 숭의교회보다 더 건강하고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새 교회에 가셔서는 손님처럼 다니지 마시고 보다 적극적으로 교회와 교회의 일에 참여하시고 헌신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또 교회의 주인이 되지는 마시고 그냥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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