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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하지 말라 (마 6: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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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마 6:24~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6:24-34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관하여 연구한 결과를 보면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400~50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자라는가 봐요. 나이가 들수록 웃음의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어른은 하루에 15번 정도 웃을까 말까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아갈수록 염려와 근심과 고민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민하고 염려할수록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고민할 일이 없어지나요? 아니지요. 뭐든지 많이 할수록 잘 되는 법이어서 근심도 꾸준히 반복하고 연습하면 더 잘됩니다. 점점 근심걱정이 많아지고 웃음이 사라집니다. 웃음에 필요한 근육도 점점 쓰지 않으니 표정이 딱딱해지고 성품마저 굳어져서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70~80세가 되면 얼굴에서 웃음이 거의 사라지면서 결국 영원히 웃지 않기로 작정을 한 듯 굳은 얼굴로 끝날 수 있습니다.

요즘 경제위기 때문에 웃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통을 당하고 힘들어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모두들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금년은 2008년이고 오늘은 11월이 23일인데 내년 중반의 일을 미리 고민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형편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되 염려는 하지 말고 살아라.”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생명을 지탱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눈을 주신 것은 볼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귀를 주신 것은 들을 것이 있고, 입을 주신 것은 먹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손은 손으로 잡을 것이 있기 때문이요, 발은 갈 곳이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 수행할 일들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도 주실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옛날에 저처럼 북한에서 내려온 같은 학년의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북한에서 집을 여러 채 가지고 부유하게 살았던 집안이었으나 자본주의자로 찍혀 더 이상 북한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어요. 부모님들은 집을 다 두고 빈손으로 6.25전쟁이 나기 2년 전인 1948년에 아홉 명의 자녀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오셨답니다. 온 가족이 고생을 참 많이 했고, 제 친구도 학교에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공책을 팔아 어렵게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를 굶었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루 밖에 안 굶었으니까요. 사흘, 아니 며칠씩 굶은 사람들도 많죠. 그 가운데 한 명이 저 입니다. 옛날에 굶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단 하루만 굶고 나머지 날들엔 다 먹었으니,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먹여주실 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간증이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루도 안 굶어 본 사람은 그 친구와 같은 간증이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하되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노력은 하되 근심은 빼고 하십시오. 거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근심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염려하고 근심해서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능력이 있느냐?” “걱정하면 네 몸의 세포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여 몸도 마음도 영혼도 다 망가진다. 걱정은 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걱정은 접어놓고 살아라.” 우리가 염려하는 수많은 염려들이 사실상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긍정적 사고의 능력”이란 책의 저자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가운데 40%는 절대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30%는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하니 70%가 쓸데없는 걱정인 셈입니다. 나머지 30% 중 22%는 별 것 아닌 사소한 걱정이며 4%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걱정거리는 4%밖에 안 됩니다.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일이 될지 안 될지 염려와 고민하면서 하면 될 일도 잘 안 됩니다. 에너지가 분산 되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늘 걱정을 하는 것일까요? 평생 걱정을 훈련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별로 걱정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삽니다. 저도 중학교 때부터 걱정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걱정거리가 더 많아지고,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까 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걱정이 걱정을 낳아 걱정이 더 커지는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분이 매일 하도 걱정이 많아서, 자기가 걱정 많은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걱정이 많지?’ 그래서 궁리를 하여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에만 걱정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수요일을 ‘걱정의 날’로 정하고 상자를 하나 만들어 마음속에 있는 걱정거리들을 적어 넣었습니다. 다음 수요일에도 똑 같이 걱정거리들을 적어 넣기를 반복했습니다. 나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서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상자에 넣는 것은 내 마음속의 걱정을 상자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걱정거리들을 떼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걱정하는 것을 ‘불안’이라고 하지요.

얼마 후에 이 사람은 그동안 상자 속에 넣었던 걱정거리들을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것들로 잔뜩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내가 걱정했던 일들은 실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난 일들도 내가 걱정한 그대로 되지 않았네. 내가 그동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걱정해왔구나!’ 여러분도 이 사람처럼 여러분의 걱정거리를 적어서 상자에 넣어보세요. 그리고 2~3주 후에 꺼내 보십시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돌보시리라.” 베드로 사도의 권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너희들이 목숨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먹여주시고 입혀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저 공중의 새를 좀 봐라. 저 들에 있는 백합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루 있다가 없어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거든,” 그리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들이 저 공중의 새나 저 들의 짐승, 꽃이나 풀보다 얼마나, 얼마나 더 귀한 존재인가! 너희들은 너무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수가 없다. 무관심하게 팽개쳐두실 수가 없다.” 이런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귀한 보물이 있으면 잘 돌보고 보관하지 아무데나 팽개쳐 놓습니까? 아닙니다. 잘 돌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너무 좋다, 너무 훌륭하다, 너무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저 ‘좋다’고만 하셨습니다. 너무도 귀한 우리가 망가지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자기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귀했으면 그런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라요. 하나님은 우주보다 우리 한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나라에 갈 때까지 일평생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고 돌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염려를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다면 한 가지 염려를 하십시오. 약해진 믿음을 염려하십시오.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약해진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약한 것을 염려하십시오. 내 믿음이 왜 이렇게 작아 졌는가, 내 믿음이 왜 이렇게 부족한가 염려하세요. 믿음이 너무 약해져서, 너무 흔들려서 내가 지금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는데 이렇게 염려로 나 자신을 망치고 있다니! 스스로를 돌아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믿음이 부족한 저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제 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걱정하고 고민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내 믿음을 강건케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작은 믿음을 키워주시옵소서. 내 부족한 믿음을 채워주시옵소서.’ 이런 걱정은 많이 하면 할수록 축복입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지난주 동안 근심과 걱정과 염려에 묻혀 살았다면 오늘 이 자리를 떠날 때 절대로 그것들을 다시 가지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모든 근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 이것이 제 걱정이었고, 이것이 제 근심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돌봐주실 것을 믿고 맡기오니 맡아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염려는 뒤에 두고 평안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께 아뢰는 분들은 해결을 받습니다. 문제가 풀립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제가 대학생 때 읽은 칼라일의 “행복론”이라는 책을 보면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잠을 못 자는 때가 있었습니다. 칼라일은 잠이 안 올 때는 양을 세라고 합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아흔 아홉 마리를 세면 잠을 잘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어떤 날은 200마리를 세어도 잠이 들지 않더군요.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따뜻한 우유를 마셔라”, “샤워를 해라”, “저녁에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라” 등의 조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책에 보면 잠이 안 올 때는 일어나서 뭐든지 하라고 합니다. 잠이 안 올 때 불을 꺼놓고 누워있으면 어두운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생각할수록 뭔가 잘 안 될 것 같고 희망이 안 보입니다. 잠이 안 오면 불을 켜고 열심히 책을 읽든지, 성경을 읽든지, 기도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잠이 오는데 그 때 자면 된다는 것입니다. 잠은 언제 자야 하는가? 잠이 올 때 자는 것입니다. 잠이 안 온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도 “내가 여호와께 구함에 그가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건지시리로다”라는 말은 신앙고백입니다. “내 앞에 걱정스럽고 두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믿으면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근심 걱정과 믿음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강해질수록 근심이 사라지고 근심이 커질수록 믿음이 작아집니다. ‘주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믿음을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문제가 크면 클수록 내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주셔서 믿음으로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주께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대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김칫국을 이미 마셨는데 어떻게 합니까? 떡을 주실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이렇게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돌봐주십니다. 

왜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하나?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돌봐주실 준비가 이미 되어 계십니다. 32절에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만약 3살짜리 아들이 “엄마, 내일 아침에 먹을 거 있어? 없을 것 같아 걱정이야!”라고 한다면 엄마가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서 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께 여러분과 저의 일생을 끝까지 돌봐주실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도 목사님, 인생을 걱정 안 하고 살 수 없잖아요! 조금씩은 해야죠.” 그래요. 정말 걱정을 해야 한다면 하루씩만 하십시오. 주님이 그러셨죠. “그러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문제가 일어나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까지 몇 달, 몇 년 후의 것들까지 꾸어다가 미리 걱정을 하려니까 너무 힘들고 우리 삶에 평화가 없습니다. 

본문에 “네가 눈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질서와 섭리를 여러분이 눈을 들어서 보십시오. 새와 꽃과 짐승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깨달으십시오. 들의 토끼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 토끼도 돌보시는데 하물며 나를 돌봐주시지 않으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자연을 보고 지혜를 배운 것처럼 눈을 들어 자연을 보시면서 여러분도 인생을 배우십시오.

28절에는 “생각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배우고 머리로 생각해 보고 배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머리를 주셨으니 이치적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이지요. 사물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돌봐주시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요? 더욱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간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은혜인데 앞으로 남은 인생도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돌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저도 종종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까지 은총 베푸신 하나님께서 남은 인생도 베푸실 줄로 믿습니다.’ 믿는다는데 하나님께서 안 하실 수가 없습니다. 생각은 하고 눈은 떠서 보되 염려는 버리십시요. 일은 하되 염려하지 마세요. 믿기는 하되 염려는 하지 마세요. 기도하되 염려는 하지 마세요. 감사하되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하나님과 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실 것이고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끝까지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많으면 제대로 키우기 힘이 드니까 아이를 안 낳든지, 아니면 한 둘만 낳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최소한 4~12명을 낳으셨습니다. 그 시대 우리 부모님들이 부자였습니까? 아니지요. 얼마나 못 살았습니까! 그런데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 잘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남과 북에 양쪽에 있는 저희 형제자매가 아홉인데 모두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원 나온 형제들도 몇 명 있고요. 돈이 있어서 공부했나요? 공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 제가 돈은 없는데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공부하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저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가져왔던 염려를 도로 갖고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셔서, 우리의 염려는 접어놓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화 속에 기쁨으로 감사하고 기도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찾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평생 체험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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