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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받을 자들이여 (마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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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받을 자들이여 (마 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31-46

이제 곧 금년의 마지막 달 12월이 다가옵니다. 12월은 ‘성탄의 계절’로 우리 주위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약한 사람, 억눌린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돌아보게 하는 계절입니다. 세상에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는 수요일에 케냐 빈민가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합창단’의 연주회가 우리 교회에서 있습니다. 다음 주일 오후에는 전 세계 어려운 어린이들의 소망이 되고 있는 ‘컴패션’(Compassion)과 함께 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런 자리들은 여러분들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드립니다. 

가난이라고 하면 아프리카나 북한을 떠올리게 되는데, 열흘 전 미국 농림부의 발표를 보면 미국에도 약 70만 명의 어린이가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미국 같은 경제대국에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요. 정부가 어린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음식 티켓을 무려 70만 명이나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북한과 아프리카에 제일 어려움이 많지요. 아프리카에서는 3초마다 5살 이하 어린이 한 명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스와질란드 국민의 평균연령은 고작 38세라고 합니다. AIDS, 결핵, 말라리아, 이 3대 질병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현실이 각종 통계와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의 50%가 제대로 마실 물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김세준 장로님이 ‘팀앤팀’이라는 선교단체를 섬기시는데 그 단체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는 일을 합니다. 때로는 150~200m까지 파들어 가야 하지만, 우물 하나를 파주면 온 동네가 너무나 고마워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6.25전쟁 때는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없었습니다. 전쟁을 겪은 제 또래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물 한 방울 얻기 위해 밤을 새워 줄을 서고, 졸졸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서 물 한 동이를 받아 집에 지고 가곤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고 잘 곳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남한은 아무리 어렵게 사는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먹을 것은 있습니다. 어느 미국 교수가 세계기아대책 담당자들과 인터뷰한 것을 봤습니다. 한국에 온지 2년 정도 되었는데 한국의 식량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국에는 굶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자유와 신앙을 주시고 이 땅에서 살게 하신 축복에 감사하십시다. 

가난보다 더 비참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난은 폭력입니다. 용서가 없어요. 다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죽입니다. 가난은 휴가도 없습니다. 피해갈 길도, 살아나갈 길도 없습니다. 가난은 범죄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가난 때문에 얼마나 많은 범죄가 발생합니까! 가난은 악입니다. 이 악을 이 땅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욕심을 내어 전쟁을 일으키는데, 죽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인데 피난민으로 전전하다가 기아상태에 이릅니다. 가난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북한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최근의 북한 실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북한에 들어가서 카메라를 숨겨 몰래 찍은 동영상입니다. 청진역 앞에 배고파 쓰러진 사람들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역무원 같은 사람들이 그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질질 끌어 길 건너편에 탁 버리고 갑니다. 한반도 안에서 휴전선 하나를 놓고 남과 북의 사정이 이렇게 다릅니다. 북쪽 사람들은 기아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함경도와 황해도의 사정이 더 좋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가난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12월을 맞이하면서 여러분과 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27억 명이 하루 2달러로 연명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아무리 가난하고 부족해도 부자에 속합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마실 물이 있고, 씻을 수 있는 더운 물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는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31절). 영광의 보좌에 앉아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인간이 다 태어나고 인생을 다 살고 인류역사가 끝나면 세계의 모든 나라와 모든 종족 사람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양이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와 염소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입니다. 한 부류는 오른쪽에, 한 부류는 왼쪽에 갈라놓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쪽 사람들을 향해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복 받을 자들’에 속한 것을 믿고 감사합시다. 

여러분 모두가 ‘복 받을 자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길 원합니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영원 전부터 준비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아라.” 예수님은 왼쪽의 사람들을 향해서는 “저주 받은 자들아!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똑같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았고, 같은 학교, 같은 직장에 다녔지만, 예수님은 오른쪽 사람들을 향해서는 “복 받을 자들,” 왼쪽 사람들에게는 “저주 받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지금부터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복 받을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심판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오른쪽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맞이하고 친절하게 해주었다. 헐벗을 때 옷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봐주었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찾아와서 위로해 주었다.” 

그러자 오른쪽 사람들이 “왕이시여,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들이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믿었고 말씀에 순종하며 평생 목자이신 주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사는 분들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해방시키고 병든 자를 고치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오신 우리 주님을 이해하고 주님처럼 이 땅에서 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 그렇게 하였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작은 어린 아이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내가 그 어린 아이 안에, 그 어른 안에, 그 과부 안에, 그 고아 안에 있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왜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약한 자, 가난한 자, 짓밟힌 자를 위해 선을 베풀며 그들에게 축복이 되며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사랑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두 명의 선생님이 한 아이를 끌어안고 예배를 드리고 함께 놀아주고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그 부모님들도 특별한 사랑을 가진 분들입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평생 섬깁니다. 이 세상 어느 사람들보다 더 그 아이들을 섬김으로써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사랑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부 사역자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아이들에게서는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느끼며 자신의 사랑을 바쳐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사랑부에 대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사람들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쩌다가 한 번씩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lifestyle)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부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사랑과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알고 믿은 후부터 그들의 삶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섬김이 행사가 아니라 날마다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때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록한 것도 아니요, 누군가 기억해 주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입니다. 선을 향해 살므로 선행이 전혀 특별할 것이 아닙니다. 기록해 둘만 한 것도 아니고 기억해 둘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날마다 행하며 살 뿐입니다. 

우리말이 재미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하면 보통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사를 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부끄러워해요. 선을 베푼 것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하면서 주의 백성들을 섬긴 분에게 한마디 칭찬을 하면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그분들은 삶의 방식에 따라서 의례히 하는 일이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 일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을 행한 후에는 바로 잊어버리십시오. 선은 선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칭찬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선이 습관화되어 선이 선인줄 모르는 경지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자연스런 습관이 되는 인생이기를 원합니다.

이번 수요일에 케냐의 ‘지라니 합창단’의 연주를 꼭 들으러 오십시오. 한국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어떤 위대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 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을 CD를 통해서 봤는데 너무 감동이 되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쓰레기더미 속의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노래를 할 줄 몰랐던 아이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깁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한국 선교사님들이 여러분 대신 수고를 참 많이 하십니다. 

여러분은 못 가지만 그분들이 여러분과 저 대신 세계 방방곡곡에서 선한 일들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고 동네 사람들도 데리고 오십시오. 그리고 지갑을 꼭 가지고 오십시오. 지갑에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것을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베푸십시다. 

제가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해외에서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설교를 부탁해서 그들의 선교 이야기를 듣고 설교가 끝나면 즉석에서 선교헌금을 드리자고 제안을 하곤 했습니다. 사랑의 헌금입니다. 준비한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참 좋았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보니까 미국 사람들은 자주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어느 분이 저에게 와서 “목사님, 너무 자주 그렇게 하지 마십시다. 헌금 자주 하는 것이 부담 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여러분, 헌금하는 것에 절대로 부담을 느끼지 마십시오. 헌금은 세금이 아닙니다. 헌금은 우리가 원해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과 교회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 입니다. 마침 그때 주머니에 돈이 있는 사람은 하면 되고 없는 사람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헌금 아닙니까! 앞으로도 어쩌다가 제가 헌금하자고 하면 여러분은 아무 말씀 말고 하세요. 부담된다고 이야기를 해서 남들이 헌금하고 싶어 하는 것을 왜 막습니까? 

심는 자는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거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습니다. 심는 대로 30배, 60배, 100배를 거둡니다. 물론 그렇게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한 것이니까 하는 것이지 꼭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을 때마다 주십니다. 그것은 심어본 사람만 압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지체하지 말고 사랑과 선을 베푸는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저에게 헌금이 부담된다고 말했던 분이 누군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질 않습니다. 제가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면 그분을 볼 때마다 ‘당신이 옛날에 나한테 그랬지!’할 텐데, 아 축복된 건망증입니다. 옛날 어느 노교수가 한창 강의를 하다가 “여러분, 여러분도 나이가 많아지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자꾸 잊어버립니다. 둘째는~ 아, 생각이 안 나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망각도 일종의 축복입니다. 선을 행하고는 잊어버리는 것도 축복입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천원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서 밖에 나갔다 돌아온 손자에게 “너 그 돈 어디에 썼냐?”고 물었습니다. “길거리에 거지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 할아버지에게 빌려줬어요.” “빌려주다니! 거지 할아버지한테는 못 받아!” “성경에는 받는다고 했던데요.” 그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손자가 너무 귀하고 예뻐서 천원을 또 줬답니다. 그랬더니 손자가 “아니, 나는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네!” 하더랍니다. 여러분, 빨리 응답이 되든지 안 되든지 선은 선이기 때문에 언제나 여러분의 인생은 선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아,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속 받아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이 왼쪽에 있는 염소같이 생긴 사람들에게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준 적이 없다”고 하시자 “우리가 언제 안 했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왕이신 예수님은 “이 작은 자 하나에게 안 한 것이 바로 나에게 안 한 것이라. 저주 받은 자들아,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엄히 심판하셨습니다. 이들은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내 삶과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웃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저주 받은 자들아!”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러분과 저는 “복 받을 자들아!”라는 말을 꼭 듣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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