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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생활 (창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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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생활 (창 12:1~5)


할렐루야!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지만
남들 날들이 더 복되고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멋지고 행복한 12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꾸는 꿈

저는 요즈음, 금년을 잘 마무리하려는 조심스런 마음과 함께
다가오는 새해를 맞을 설레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전과 열정」으로 살아갈 새해를 맞기 위하여 …
점검하고 회복해야 할 <신앙생활의 기본>에 대해 
시리즈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비전과 열정을 품고 살기 위해서는
-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생활전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의 삶,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이 담긴 
성경말씀을 읽고, 성경말씀을 전하는 설교를 듣고, 
성경말씀을 배우고, 성경말씀을 실천하며 살려고 해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일 맡긴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비전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이것을 다른 말로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일반세상에서 ‘장래 희망’이라는 말 대신에
‘비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비전/교회에서 말하는 비전은 
단순히 목표나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이란 말은 라틴어 ‘비지오(visio)’에서 온 말입니다.
(비지오 = “내다 보다”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비전(vision)’은 문자 그대로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다. 
비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는 없지만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야망(ambition)과 비전(vision)은 다릅니다. 
야망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땅의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는 비전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며, 
- 지금 확인되지 않은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고, 
-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한 영생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는 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두 품은 비전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품고 …

오늘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창 12:1~3)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새 땅을 얻을 것이며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중에, 듣는 중에, 배우는 중에 …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발견해야 합니다.

설교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몇 분에 끝날 것인가’만 생각하지 말고 …
‘오늘 주시는 말씀을 내가 어떻게 품어야 될까, 
내가 품을 말씀이 무엇일까, 내가 실천할 말씀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비전 삼아, 그 말씀을 가지고 평생 살았던 것처럼 …
오늘 여러분도 말씀을 붙잡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75세 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을 때, 조카 롯도 함께 떠났습니다.(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12:4) 
여러분, 살던 곳에서 이사하는 일이 쉽습니까?
갈 곳을 알아야 합니다. 집 얻어야지, 직장, 학교 옮겨야지 … 
한번 옮기려면 몇 달이 걸립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이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민을 떠나는 것입니다.
자기 살던 고향, 나라를 떠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살기 위해 갈 준비를 할 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짐 다 싸서 미리 보냈는데도 미국에 가서 한 달 반 만에 짐을 찾았습니다.
미국에 살다 다시 한국에 오려니까 … 
아이들은 영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미국에서의 여러 가지 안정된 조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이 75세에 고향을 떠나는 일이 쉬웠겠습니까?
아마, 주변 사람들이‘미쳤느냐’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나이에 지금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했을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함께 고향을 떠났지만 
두 사람의 출발은 서로 달랐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말씀을 비전 삼아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 그런데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말할 때 
하나님을/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고 사람을 따라갑니다.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삼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해서 잘 된 것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많은 목사님들이 다른 교회 흉내를 내려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무엇을 해서 잘 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다른 교회들도 흉내 냅니다. 
그 교회에서 한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준비했지,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점검해 보지도 않고 흉내를 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일은(단순히 흉내를 내는 식의 일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드는/내가 되고 싶은/내 욕망이 더 크게 담긴 것을 
비전(vision)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짓고 무조건 시행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롯과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같이 움직였지만
양과 소가 많아져서/재산이 많아져서/부자가 되어서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 13:6)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는 껌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온 식구가 돌아가며 다 씹었습니다. 
저녁에 잘 때 동생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붙여놓고 자도
아침에 틀림없이 동생이 먼저 떼어 씹습니다. 
식구들이 껌 하나로도 즐겼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넉넉해지면 같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수건도 따로 쓰고, 화장실도 샤워도 따로 따로 … 
식구들마다 자동차도 따로 써야 한다고 합니다.
살림이 넉넉해지고 부자가 되면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갈라서기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갈 곳을 먼저 정하라고 했습니다. (창 13:9)
롯은 자신이 갈 곳을 정합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10)

롯은 자신의 앞길을 정할 때 조건이 좋고 풍요가 보이는 곳,
누가 가더라도 살기 편하고, 성공할 수 있어 보이는 곳을 정하고 그 곳으로 갔습니다. 
물도 많고 환경이 좋은 곳을 택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훗날 롯은 자신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등지고 
목숨만 건지기 위해 뛰어야 했습니다. (창 19:12~22)


하나님의 원하심

비전은 세상의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하나님의 뜻에서/
하나님의 원하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에 의한 꿈을 비전이라고 착각합니다.
‘비전’과 ‘야망’은 다릅니다.
비전의 시작은 하나님의 원하심/뜻/하나님의 말씀인 것에 반해 
야망은 그 시작이 자신의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야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고 했습니다. 

야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원대한 목표를 가졌다고 해도 …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
결국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욕심의 끝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바램’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 마음에 드는‘비전’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야망’입니까?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벌고 싶습니까?
왜요? 벌어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좀 더 큰 집, 좀 더 큰 집 … 왕궁 같은 곳에서 살고 싶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왕궁 같은 곳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우리가 회복해야 할 비전은 나의 꿈, 나의 욕심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비전’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창 12:2)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창 12:2)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겠다” (창 12:3)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길을 떠난 것입니다.


함께 … 형통케 …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복된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히 사람들이 비전에 대해 말할 때, 꿈을 꾼‘요셉’을 예로 듭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창 37:7~10) 요셉은 어릴 적에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꿉니다.
사람들은 요셉이 이 큰 꿈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큰 꿈을 가졌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았던 것은 어릴 적에 꾼 꿈이 아니라 
그 꿈을 꾸게 해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떤 곳으로 팔려가도,
어떤 일을 하고 살아도 …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았을 때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형통케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어도 함께 하셨고
하나님은 범사에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요셉은 인생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곳까지 추락했습니다. 
노예가 되었고,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
그 시간들이 요셉을 연단시키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이복형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 ”(창 45:7~8) 
‘내가 노예가 되었고, 죄수가 되었던 것은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고백이요,
‘내가 애굽에 먼저 온 것은 당신들이 나를 팔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하심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고백입니다. 

요셉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은
부모 형제의 절을 받는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하나님의 뜻하심을/하나님의 원하심을 비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성경 말씀에 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하나님 뜻하심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대단한 것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잘난 사람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세요.
위대한 사람, 세계를 움직였던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만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평균 키보다 작은 사람들이 큰일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 키 크고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십니까? 
잘난 척하지 마십시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 자신이 키 작고, 못 생겼다고,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십니까?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모세가 가진 보잘 것 없는 막대기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창과 칼이 아닙니다.
냇가에서 주은 돌맹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위대하게 쓰임 받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비전에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담대하게, 당당하게”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든 작든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을 택하여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있는 자리가/하는 일이/주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에서도 어떤 분들은 
‘나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못하겠다’고 투덜댑니다. 그런 핑계대지 마십시오. 
주어진 자리에서 옆 사람과 어울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최선의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사람을 만나도 소용 없습니다.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대우를 찾아 떠나 방랑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더 좋은 조건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더 좋은 사람 찾아다니는 방랑자는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고, 세상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녀로서, 부모로서 …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
학생으로서, 한 기업의 사원으로서 사장으로서 …
교회에 등록한 성도로서/맡은 직분, 맡은 일에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은 교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이 곳 저 곳 다니면 안됩니다.
목사님들 중에도 1년 혹은 2~3년에 한번씩 
교회를 옮겨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세미나에 가서 열심히 강의를 받아 적었더니
어떤 목사님이 ‘뭘 그렇게 적느냐, 3년 터울로 교회를 
옮겨 다니면 참 쉽다’고 하시더군요.
3년 정도 설교할 자료만 있으면 옮겨 다니면 편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그 목사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분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목회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 중에도 
여기서 이 사람 싫어서 다른 교회로 가고, 또 거기서 저 사람 싫어서 
또 다른 교회로 쉽게 쉽게 옮겨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옮길만한 이유가 있어 옮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옮겼으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사람 싫어서 옮기고, 저 사람 싫어 옮기면 …
늘 방랑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박수 받을 일이 아닙니다. 칭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기다리라

비전을 가졌다면/비전을 가진(품은) 사람이라면 
그 뜻이/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급합니다. 서두릅니다. 기다릴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결과를 빨리 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자기가 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과거 정부 끝날 때 쯤, 
다음 정부가 꼼짝 못하게 하는‘대못질’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부시 정권이 그렇습니다.
다음 정권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듭니다.
‘대못질’을 한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기들의 생각대로만 되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전에 일하신 분들의 공이 큽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 선교회 회장도 전 회장들의 공이 크지만 
다음 회장이 자기처럼 못할까봐 잔소리를 하고, 
자기처럼 안한다고 협조하지 않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참아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끔 미국에 가서 보면 
‘내가 없는데도 미국이 돌아가는 것이 신기합니다’
내가 살 때는 내가 있어서 돌아갔는데 
내가 없는데도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세상엔 내가 없어도 잘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하나님의 사람, 비전의 사람은
-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딤후 4:7)
-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신 푯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빌 3:14)
그리고 달려가는 일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실패, 시련, 풍랑을 만나도, 폭풍을 만나도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잡아 흔듭니다. 상처를 냅니다. 일하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때려치우고 싶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듭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우리를 잡아 흔듭니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되게 하옵소서.
한숨 변하여 찬양되게 하옵소서.
기도 제목이 변하여 간증되게 하옵소서.
오늘의 고난이 변하여 추억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소리치며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 구원받았고(요3:16),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빌3: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 소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잘 했다”(마25:21)는 칭찬의 소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들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 예배의 성공자가 되고
-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며
- 부름 받는/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고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목사가 되셔서 지금까지 일하셨는데 후회하신 적 없으십니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제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 … 입을 열었습니다.
“Every single day …
매일 매일 가슴을 쥐어뜯고 탄식하고, 후회했습니다.
내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안해도 됐을 텐데 …
내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내 아내가 이렇게 눈치 보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내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내 아이들이 다른 사람 의식하며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 
교회에서 만나는 이런 저런 어려움들 … 
내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이것을 안했다면 어땠을까? 
매일 매일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여러분, 세상 어떤 것도 쉽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흔드는 일들은 끊임없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된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
우리를 불러 주심 감사합니다. 우리를 세워 주심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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