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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깊은 밤중에 노래하는 사람들 (욥 3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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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중에 노래하는 사람들 (욥 35:9~11)

 
서로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목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천사가 이들 목사님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들 부부에게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 줄 테니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배우자를 바꿔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천사가 먼저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어떤 목사님을 원하세요?"

사모님이 침대 밑에서 자물쇠로 꼭꼭 채워진 상자 하나를 열어 보였습니다.  그 상자 속에는 계란 7개가 들어 있었고, 동전 천원짜리 만원짜리, 그리고 십만원짜리 수표가 각각 몇장씩 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침대 밑에 왠 계란입니까?"
"우리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죽을 쑬 때마다 내가 계란을 하나씩 넣어 둔 것입니다.  나도 사람인데 좀 은혜스러운 설교를 풍성히 맛보며 살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천사가 하는 말이 "아니, 계란이 7개면 죽 쑨 게 일곱 번이고, 십만원짜리 수표는 그래도 홈런 친 설교인 모양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소?"  그랬더니 이 사모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계란이 한판씩 쌓일 때마다 내다 판 돈입니다."

이번에는 천사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목사님은 어떤 사모님을 원하시오"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간섭이나 하려 들고, 늘 불평이나 달고 다니는 아내는 이제 진절머리가 납니다.  순종적인 아내를 하나 보내주십시오.  거기에다 얼굴도 예쁘고 지성적이고 겸손하고 헌신적이고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까지 갖추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을 듣고 난 천사가 아주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이 목사님에게 말하더랍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안되겠어요."
천사의 말에 크게 실망한 목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왜요?"
그랬더니 천사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야,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살지 너 주겠냐!"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 마귀는 사람들의 패역한 마음에 기생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마음으로 대적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입의 습관, 행동의 습관, 태도의 습관보다 마음의 습관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몸은 결국 마음의 노예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가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데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일 저주받은 마음은 강퍅한 마음, 감화와 감동을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그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동을 받는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 놀라운 주의 은혜로 내 심령을 감화 감동시켜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세계에서 제일 큰 훈련은 마음의 습관에 대한 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땅을 차지하고, 겸손한 마음은 하늘을 차지한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도 위치가 있습니다.  마음에도 크기가 있습니다.  마음에도 질이 있습니다.  마음에도 소유가 있습니다.  이 마음의 습관을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어 매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신앙 훈련은 결국 마음의 습관에 대한 성숙 훈련입니다.  이 마음의 습관을 자꾸 성숙하게 해야 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작은 은총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지금 우리들은 너무 값비싼 것에 익숙하고 큰 것에 대한 중독증에 걸려 있습니다.  놀라운 진리는 작은 것에 대한 즐거움에는 중독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제일 아름다움은 작은 것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하는 사람 앞에는 서로가 마음에 안 들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 앞에는 흡족한 모습, 흡족한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불평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불평합니다.  불평하는 마음,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그 마음에 불평이 없어야 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불행한 사람은 물질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의 습관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 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고목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그 영혼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 녹슨 길가에 던져진 고철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여호와의 신에 감동만 받으면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으면 그렇게 못된 사람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사납던 사람이 변해서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교만하고 혼자 잘난 척 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만 받으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이 부족한 종을 감화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위기 속에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듣는 음성은 모든 위기의 해결사는 다툼도 아니고 싸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전략도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위기의 해결사는 의사 소통 능력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하고 한번만 교통되면 됩니다.  여기에서 교통을 우리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교통이란 쉽게 말하면 대화입니다.
 
아무리 아이가 죽을 죄를 졌어도 아버지 앞에 진실을 다 털어놓고 교통만 하면 아버지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고 살려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우리의 죄가 먹과 같이 검을지라도 하나님하고 한 번만 교통이 일어나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과 이 교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것 하나만은 꼭 듣고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무리 나무토막같이 되어 있다고 할지라 도, 여러분들이 아무리 지금 철조망처럼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만 받으면 살 길이 있습니다.  집사님! 하나님의 신에 감동만 받으면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을 받을지어다!

삼손이라는 사람이 큰 역사를 일으킬 때마다 나오는 것이 '저가,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아'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던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하나님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아"  "엘리야가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아"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을 받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제일 안타까움이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고집에, 내 경험, 내 전략, 내 방법,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메마른 내 영혼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주시옵소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 가운데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때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아주 신비스러운 약입니다.  수많은 철인과 현인들이 고난에 답을 주기 위해 크고 작은 글들을 써보았지만 별로 신통한 정답을 내놓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고난이란 깊고 오묘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맞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가시에 찔리는 작은 고통 속에서도 대못에 찔린 듯한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때로 큰 대못에 찔리고도 씩 웃고 넘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다에는 언제나 바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공이 돛을 올리면 배는 안전하게 더 빨리 항해를 할 수 있지만, 돛의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면 배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 믿음으로 그것을 잘 이용하면 더 전진하고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 잘못 대처하면 그 고난 속에 짓눌려 질식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의 밤에 목놓아 우는 사람도 있고, 같은 고난의 밤에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깊은 밤과 노래!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이처럼 어울릴 수 없는 양극단의 조화 속에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이 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시작된 천군 천사들의 축하 찬송과 목자들의 노래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대합창으로 끝이 납니다.  기독교는 생일날에도 노래하지만 장례식장에서도 노래를 합니다.  신앙 안에서는 빛 가운데 기쁜 찬송이 있고, 어둠 가운데서도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찬송이 있습니다.  신앙인! 그는 깊은 밤중에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낮과 밤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낮이 있으면 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당신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까?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남편의 직장이 어떻게 될까봐 염려하고 있습니까?  사업이 어떻게 될까봐 당신의 가슴을 애태우고 있습니까?  남편 문제로 인하여 가슴에 멍이 들어 있습니까?  자식 문제로 인하여 엉클어진 머리를 붙잡고 눈물 흘리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도 고난의 밤이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싫어하는 인생의 밤을 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만 이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이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고통의 무게가 있습니다.  이 고통을 나 혼자만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 고통이 너무 무겁고 힘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당하는 이 고통, 이 고난보다 더 무겁고 힘든 것은 무너져 내리는 내 마음의 무게입니다.  암담한 현실보다 더 힘들고 절망적인 것은 꿈과 비전과 열정을 잃어버린 무너진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하면 안됩니다.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든 부정과 근심과 미움과 염려를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다 날려버리십시오.  그리고 무너지는 내 마음을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욥이라는 이름은 고난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욥을 생각하면 우리는 곧장 고난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는 먼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당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는 내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욥이 당하는 고난이 이 고난입니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욥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한 마디로 욥은 의인이요,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욥은 끝까지 자기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래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고난이 욥이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욥이 어떤 고난을 당했습니까?  욥이 당했던 고난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한 번 조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욥의 고난은 재산을 잃은 고난입니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 안 입고 안 먹고 안 써서 모은 그 재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평생토록 애써서 모아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기고 거지가 될 때 이것은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과 같은 고통입니다.  욥은 참으로 부자였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욥은 동방의 제일 가는 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됩니다.  무슨 대단한 잘못도 없이 재산을 약탈당합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당대에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 욥이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식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재물이 아무리 귀해도 자식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화목하게 지내던 열남매가 형님 댁에서 잔치를 하다가 집이 무너져 다 죽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 더 한층 뼈아픈 고통이 자식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는 사랑하던 아내와 모든 친구들이 욥을 저주하고 떠나가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는 고난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것도 큰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건강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종기가 나서 이것을 기왓장으로 긁고 잿더미에 뒹굴며 몸부림합니다.  이 얼마나 처참한 모습입니까?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욥, 그는 지금 전부를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욥은 자신이 당하는 이 고난의 이유도, 의미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워합니다.
"어머니! 왜 나를 낳았습니까?  왜 나에게 젖을 먹였습니까?"
그는 이처럼 처절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생일을 저주합니다.

그때 옆에서 욥의 상황을 지켜보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엘리후입니다.  계속 듣기만 하던 그는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가 발견한 귀중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고난의 밤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성숙시키는 지혜라는 사실입니다.  자연계에 밤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지혜입니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해 밤에 준비를 합니다.  아름다운 봉오리가 이슬을 머금고 입을 벌려 피어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 동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밤이 없다면 꽃은 피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우리 인생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깊은 밤 동안 인간에게 꽃을 피울 준비를 시키십니다.  만일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못하고, 신앙의 꽃은 영글지 못한 채 시들고 말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교만과 완악한 자기 자랑에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무서운 고난의 골짜기를 용광로로 이용하셔서 당신이 필요한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시인 테니슨은 그의 시집 '용광로'에서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용광로 쇠봉에 비유했습니다.  쇠붙이를 벌겋게 용광로 속에 달구어서 원하는 형태로 두들겨 찬물에 담급니다.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는 다시 달구고 두들겨 패서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바로 쓰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인생의 밤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이 좋다고 하는 분들을 가만히 보면 대개가 밤을 통과하신 분들입니다.  인간은 밤을 통과하지 않고 온전히 만들어지지 아니하는 아주 고약한 기질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마치 채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지 않고는 순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을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고난의 용광로 속에 던지시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걸어가신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십시오.  잔인하고도 무서웠던 십자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당하신 잔인한 고난의 밤길을 말입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전 인류를 위하여 피 흘리게 하시고, 그 처절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죄 용서함 받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밤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사람들이 이것을 볼 때 참으로 미련하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이 밤의 방법이 하나님께는 지혜로운 구원의 길이요 능력의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밤이라는 방법이었다면 한평생을 세상에서 살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밤이라는 용광로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광부는 불순물이 잔뜩 섞여있는 채광석을 용광로 속에 던지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광부의 관심은 불순물에 있지 않고 잠시 후에 흘러내릴 순금에 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욥의 고난을 통하여 엘리후가 우리들에게 소개해 준 하나님의 독특한 성품이 있습니다.  그분은 밤을 허락하시는 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밤중에 노래하게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고난만 허락하는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깊은 밤중에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밤중에 기도와 소망과 찬양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깊은 밤중에 노래하는 사람들.  이 얼마나 장쾌하고 멋있는 사람들입니까?  인생의 깊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밤을 지나가고 있을지라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낮에 부르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만물은 고요 속에서 침묵합니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고독한 외로움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처절한 실패와 눈물 그것뿐입니다.  이 속에서 무덤 같은 침묵을 깨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고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밤중에 무덤 같은 절망을 깨뜨리고 일어나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공한 자가 감사하고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고 노래하는 자가 성공을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잘먹고 잘사는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찬송 대신 교만의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공과 행복이 자기가 잘나서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자랑합니다.
 
보십시오.  지금 세계가 당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위기는 인간의 나약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의 국가, 거대한 미국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  인간의 교만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 정책 가운데 소위 최고의 경제 교과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 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미풍과도 같은 작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신앙을 배신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없었던 이들은 신앙이 마치 인생의 악세사리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귀여운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낙심합니다.  혹은 교회 온 사이에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신앙을 버립니다.  혹은 예배당에 왔다가 고무신 한 켤레 잃어버리고 낙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교회에 등록했더니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고 신앙을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밤을 만난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노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시련의 깊은 밤중에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련과 고난!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가 있어야 내가 이길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누가 사업이 안될 때, 직장이 어려울 때, 내 삶의 형편이 어려울 때, 질병의 고통이 있을 때, 가정에 시험이 있을 때 찬송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신앙인만이 토해낼 수 있는 위대한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절망의 밤에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맙니다.

내 인생의 깊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저도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깊은 밤중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캄캄한 밤중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밤중에 제가 깨달았고 붙잡았던 말씀이 세 개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시편 23편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은 로마서 8장 31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렇습니다.  나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실패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되시는 나의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이 깊은 밤중을 지나 머지 않은 때에 반드시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후원자가 되시고 나를 밀어주신다면 나는 이 깊은 밤을 지나 찬란한 새벽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의 절망의 밤은 하나님을 만나는 밤입니다. 고통의 밤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고난의 밤이 찬송의 밤으로 바뀌어 질 때 축복의 아침은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합니다.  당장 좋지 못한 일이 있다고 원망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패망합니다. 기차가 터널 속에 들어갔다고 눈을 감아버리고 인생과 신앙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저 앞을 바라보십시오. 다시 빛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검은 구름 저 뒤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나로 하여금 깊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히 바르게 살려고 하다가 당하는 고난, 신앙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고난의 밤중에도 노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당신의 입 속에 승리의 찬송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나는 반드시 정금 같이 나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한 말씀을 붙잡고 이 성전을 나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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