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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투자 (마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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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투자 (마 6:19~21)


기독교 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하는 연구 보고서들에 의하면 교인들이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언급하지 말았으면 하는 주제 중에 1위가 돈(헌금)이야기이고, 2위는 정치 이야기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칼빈 당시에도 그런 문제의 제기가 있었던지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돈에 대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라고 말했다고 알려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설교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략 38개의 비유가 기록되고 있는데 그 중에 16개가 재물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거의 예수님의 설교의 절반이 돈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달란트이야기, 데나리온 이야기, 청지기, 과원지기, 품군, 부자이야기등은 다 물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닙니까. 신약성경에 평균 10구절에 한번씩 물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복음서에만 288구절이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경 전체에 무려 2300구절 이상이 돈과 재정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관심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돈은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피해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 소원 성취의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지체 없이 “저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정은 곤난한 듯 “꼭 세 가지를 다 원하시나요?”하자 다시 청년은 “예, 저는 돈 여자 결혼 세 가지가 다 필요한데요”했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지요. 소원대로 해드리지요” 그래서 그 청년은 얼마 후 돈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돈 여자와 결혼 안하시고, 돈 인간으로 살지 않으시려면 돈에 대한 바른 생각, 돈에 대한 바른 헌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상한 교훈의 하나로 알려진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은 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본문의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19절),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20절)”는 말입니다. 저는 이 교훈 속에 성경적 재정관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러면 우선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금하지 않으신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소유를 금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소유를 금한 말씀은 없고, 예수님도 사유재산을 금하는 가르침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Our daily bread)을 주옵시고-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양식은 우리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주인은 아니지만 양식을 맡은 청지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나 극단적 사회주의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2. 저축을 금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 특히 잠언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없는 겨울을 위해 여름에 땀흘려 일하고 저축하는 개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잠6:6을 보실까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6:8입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예수님은 5병2어의 기적의 마당에서 남은 것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개혁자 칼빈은 여기에서 저축의 정신을 찾았습니다.

3. 삶의 즐거움을 금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물질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선하게 보신 하나님의 관점안에는 물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자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목적의 하나가 물질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딤전6:17을 보십시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은 인생이 우리에게 허락된 물질을 적절한 한계 내에서 누리는 것을 질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함께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 예수님께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결코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나, 장래를 위해 물질을 저축해 두거나, 적절한 한계 내에서 물질을 누리는 것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금하신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물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님에 의하면 물질은 필요한 것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 마태복음 6장에서 의식주에 대한 필요를 가르치시던 주님은 마태6:32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 분명하게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우리의 필요를 인정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물질은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목적이 되는 징후가 무엇일까요? 물질을 쌓아두는 그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서서히 물질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물질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맘몬주의의 우상에 빠진 삶의 모습입니다. 

마태6:24을 읽어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 재물이란 단어가 원어에 바로 맘몬(mamonas)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본래 우상 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재물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우상 숭배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경계할 것은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 숭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은 악이 아니지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딤전6:10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2.물질에서 안전을 구하는 삶입니다.

인생에서 돈을 잃는 것은 무엇보다 인생의 안전장치가 제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착같이 물질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인생의 안전을 보장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결코 안전의 보장이 되지 못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붙들고 사는 모든 세상의 보물은 결국 세가지 좀과 동록과 도둑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의복은 시간이 지나가면 좀이 쓸고, 보화에는 동록 곧 녹이 쓸어 부식하게 되고, 우리가 사는 집도 도둑의 표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동 지방의 집들은 흙집이어서 아무리 부자 집도 구멍을 파고 들어오면 도둑을 피할 재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도둑은 더 간교한 모습으로 우리의 재물을 노리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물질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률이 폭등하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에게 다시 이 메시지를 확인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경제위기 속에서 주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물질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셋째는,<본문에서 예수님이 격려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하늘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을 안전하지 못한 땅에 아닌 안전한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세상 은행은 안전하지 못하니 하늘 은행에 안전하게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이 은행의 이름을 아시나요? 바로 ‘천국 기업 은행’입니다. 

벧전1:4을 함께 읽겠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쉽게 말하면 가장 안전한 상급, 영원한 상급을 보장하는 하늘의 기업(천국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이 하늘 나라에의 투자야 말로 영원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이 말씀의 결정적인 의미를 마태 복음 6장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 주시지 않습니까? 마태6:33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늘에 보물 쌓기에 집중하면 땅의 보물은 그분이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여기서 의를 구한다는 의미를 예수님은 막연하게 의로운 행위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태6:1-2에 의하면 예수님은 의를 행함을 구제 행위와 연관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선교와 구제등에 구체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가는 일년 동안의 청지기적 삶을 결산하면서 구체적으로 선교나 구제 그리고 헌금 생활에 얼마나 신실했는가를 결산해야 할 시간입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쓰임새를 절약하는 중에 헌금을 제일 먼저 줄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헌금의 헌신이 줄어들 때 제일 타격을 받게 될 영역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선교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역사 속에는 이런 경제 위기를 직면하면서 오히려 재정적인 후퇴가 아닌 재정적인 헌신을 결단한 의외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작은 서점 사업을 하다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위기와 유사한 경제 공황이 닥쳐 파산을 하고 약 10만불의 빚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진지하게 기도하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무엇보다 과거에 자신의 헌금 생활에 대한 불성실을 회개하고 자기 집을 팔고 빚 정리를 하고 다시 십일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이 마당에 무슨 십일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빚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기도하며 약품 연구를 하면서 약품 제조, 판매, 영업으로 바쁜 새 삶을 살아가며 얻어지는 수입의 십의1조를, 그리고 십의 2조를, 마침내 십의 3조를 드리기 시작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재기한지 3-4년 만에 한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맨소래담 제약회사였습니다.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A.A.Hyde)박사의 스토리입니다. 그는 죽을 때 십의 9조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록을 남기는 성도가 됩니다. 

무디 신학교의 총장을 지낸 조지 스위팅 박사는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묻게 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그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드렸는가?가 될 것이라고.” 

금년 한 해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헌신하는 삶을 사실 수 있으셨습니까? 당신은 어떤 청지기로 한해를 사셨는지요?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투자 실적은 어떠하셨는지요?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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