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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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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38~44)


1. 우리교회의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요즘 날씨가 추워도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고 전기매트로 이겨낸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워낙 경제가 어렵다보니까, 절약에 또 절약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년 전 IMF를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압니다. 

그러나, 요즘은 위기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위기, 교육 위기, 생태계의 위기, 경제적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심지어 인문학의 위기, 교회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돕니다. 예전에도 이런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조금만 힘들어도 위기라고들 야단법석입니다. 

위기라는 영어 단어는 crisis 입니다. 이 crisis(위기)는 영어의 criticism(비평) 과 연결됩니다. 작금의 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 위기라면 어떤 위기인지를 냉철하게 비평적으로 통찰해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짜 위기가 많습니다.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내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금융위기의 본질이 진짜 금융의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데 있는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는 가능한 한 돈을 사용하지 않고 절약만 하는 것이 능사입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모아두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옳은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유명한 학자들과 논객들 중 많은 분들이 오늘날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본질은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합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금융시스템도 바꾸어야 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탐욕을 없애지 않는 한, 또 다른 위기가 돌출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보일러 가동을 가능한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 갖고 오늘날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돈을 바로 벌고, 바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무조건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용하되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 오늘날 위기는 여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위기는 믿음의 위기인 셈입니다. 


2.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나사로의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를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탁을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4절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로 내려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틀을 더 머물다가 베다니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 부탁을 드렸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몹시 속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오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예수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많이 고쳐주시면서 왜 그토록 사랑하시는 오빠를 고쳐주러 오시지 않고 오빠가 죽게 내버려두었단 말입니까?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죽었지 않습니까? 

왜 나사로를 고치러 바로 내려가시지 않으셨을까? 
왜 이틀 후에 나사로가 죽고 난 후에 내려가셨을까? 이런 의문이 듭니다. 
그에 대한 대답이 11:15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틀 후에 베다니로 내려가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나사로의 병과 죽음은 믿음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 이 내용을 담은 요한복음 11장은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병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의 문제, 부부간의 대화의 단절의 문제, 자녀교육의 문제, 건강의 문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생태계의 위기 등은 모두 본질적으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회복되면 부부의 대화도 회복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방황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무릎으로 나아갑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구름 너머 빛이 있음을 믿습니다. 
언젠가는 먹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비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 인생을 누르는 먹구름에 결코 낙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의 전반은 믿음과 연관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결코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뻐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항상 평안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범한 사람들입니다. 
비범한 사람들에게는 비범한 문제가 닥칩니다. 비범한 문제는 우리가 비범한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비범한 문제는 비범한 미래가 있음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에 큰 어려움이 닥친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큰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 가정에 닥친 죽음의 문제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큰 축복, 큰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큰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큰 믿음의 사람임을 감사하십시오. 
지금의 큰 문제는 큰 축복의 미래가 열릴 것임을 믿으십시오. 
작은 문제는 그 사람이 작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큰 문제를 감사하시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기쁨으로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째 되던 날에 나사로의 마을로 오셨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생명은 주님께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다시 말하여 결코 죽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줄 믿습니다.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산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사는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는 여러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날개아래 보호받으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섭니다. 
시험에 떨어져도 다시 공부하면 됩니다. 
직장에서 쫓겨나도 다시 취직할 수 있습니다. 
살림이 바닥나도 죽지 않습니다. 
비밀이 다 탄로 나도 오히려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더 감출 게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을 항상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성도는 오히려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인간관계, 돈, 실력을 믿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다 무너져버렸으니 이제는 하나님만 붙잡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길, 축복의 길, 영광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아니 오히려 죽어야 삽니다. 
죽어야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나올 때, 주님께서 다시 살려주십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서 실패했다고,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낙담해 있는 분이 계신다면, 두 손들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살려주시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4.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왔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석회암을 깎아 만든 굴을 돌로 막아 놓은 형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주님,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이 말은 죽어서 송장냄새가 나는데 무덤문을 연다고 무슨 수가 생깁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0절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르다는 아직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 것입니다. 

앞의 21-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오셨을 때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에게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하셨을 때,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죽어도 산다는 것을 믿는다고 분명히 대답했는데,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을 때, 죽어서 송장냄새가 나는 시체를 어찌하시겠다고 무덤문을 열라고 하십니까? 라고 반문한 것입니다. 

믿음은 믿는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2% 부족합니다. 
믿음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돌을 옮겨놓으라 하실 때, 돌을 옮겨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축복을 불러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하실 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왔습니다. 

홍해 앞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어 홍해가 갈라지게 하라.”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밀 때, 바다가 갈라져 육지가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은 축복을 불러옵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의 일화입니다. 
일본에 심한 가뭄이 들어 모두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찌무라 역시 아들과 함께 “하나님, 가뭄이 극심한 이 땅에 비를 내려 주십시오.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 아들이 학교에 가면서 “아버지, 우산 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이때 우찌무라는 “맑은 날에 우산은 왜 찾느냐?” 고 하자, 
아들은 “그러면 조금 전에 기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버지의 믿음대로 비가 내릴 줄로 믿고 우산을 가지고 가려 한 거죠” 하더랍니다. 

이때 우찌무라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맑은 하늘이지만 곧 비가 올 것을 믿는데, 자신은 “비가 올 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해놓고도 맑은 날씨에 무슨 비가 오겠느냐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우찌무라 간조와 비슷하지는 않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걱정하고 염려하는 우리네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믿음으로 사십시오. 
오늘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축복의 현장, 기적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5. 오늘날 우리의 위기는 다름 아닌 믿음의 위기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만사형통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립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은혜, 믿음으로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을 누리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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