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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 뭐길래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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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길래 (요 12:1~8)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도 “사랑합니다”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는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 성인으로 자라났습니다. 아니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고 있지만, 이제 힘도 없고, 돈도 없고, 건강도 없으신 우리의 부모님은 그래도 자식에게 감 하나 더 먹으라고 권하고 밥 한 술 더 떠 주며 먹으라고 야단이십니다. “아니, 충분하다고. 배불리 먹었다” 고 말씀드려도 마음껏 먹여보지 못한 한에 맺힌 어머님은 아랑곳없이 다 큰 자식에게 밥 한 술 더 떠줍니다. 사랑이 뭐길래, 자식 사랑 때문에 목숨을 기꺼이 던집니다. 사랑이 뭐길래, 당신께서는 사먹지 않고, 사입지 않고 꼬기꼬기 모아둔 돈을 손자녀석 손에 안겨줍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삽니까? 감히 말하건데,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밥만 먹고 우리가 이렇게 커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선생님과 성도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먹고 이렇게 컸습니다. 사랑을 하도 많이 먹어서 우리도 이제 자식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제자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성도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2. 오늘 우리는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있었던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과 나사로 가족 사이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엿세 전에 예루살렘 옆 동네인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이 동네는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준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 바로 베다니입니다. 한센병 환자 시몬을 고쳐준 사건의 현장도 이곳 베다니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자주 베다니에 들르셔서 나사로의 집과 한센병 환자 시몬의 집에 들르셨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이 두 가정을 사랑하고 아껴주셨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현장은 한센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받은 시몬의 집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누구의 집에서 묵었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한센인 시몬의 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의 집에서는 예수님을 접대하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도 예수님을 접대하러 시몬의 집에 왔습니다. 

마르다는 원래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니까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준비를 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집에서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마리아는 향유가 가득 들어있는 옥합병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무릎을 꿇고 옥합병을 깨뜨려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온 집안에 향유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이 향유가 얼마나 비싼지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나갑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유대나라 화폐단위인데,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적어도 5만원은 되겠지요. 이 향유가치가 300데나리온이니까, 주일은 쉬고 1년 번 돈에 맞먹는 비싼 향유입니다.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 가치가 나가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깝습니까?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 돈 있으면 보태서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갈 수도 있는데. 
그 돈 있으면 등록금도 내고, 빚도 좀 갚을 수 있는데. 발에 부어 허비하다니. 
이럴 수 있습니까? 

이것을 본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이 비싼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어떻게 여기에 허비하느냐?” 고 화를 냈습니다. 
가룟유다의 마음이 그렇게 잘못된 마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가룟유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감이니라.”

정말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두어라. 이것은 나의 장례식을 위한 것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곧 세상을 떠나실 것인데,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과 나사로 가족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뭐길래 1년간 번 돈을 발에 다 쏟아 부을 수 있습니까?  

먼저, 사랑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사랑하면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아낌없이 줍니다.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은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더 못 줘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교회가 성전건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3년 전에 이미 우리는 건축헌금을 작정하여 이미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여러분께서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시는지 그 때 이미 다 고백하셨습니다. 1억, 얼마나 큰 돈입니까? 평생 벌어 모은 돈인데, 그 돈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그 돈을 드린 분은 아깝지 않게 드렸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1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목숨을 나를 위하여 주셨는데, 1억이 뭐 그리 아깝겠습니까?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기쁨으로 드렸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분이 한 분도 계시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교회에 가 보면,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왜 짓나? 뭐 그렇게 크게 짓는가? 그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면 더 좋을 걸. 건물에 다 퍼붓다니.’

이런 분은 분명히 가룟유다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면 비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는 자기 옷 사는데 수십만원씩 쓰면서, 자기 아파트 사는데 1-2억씩 쓰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는 한 달에 십만원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마리아는 어떻게 예수님께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릴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데 예수님께서 오빠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죽은 오빠가 살아 돌아오다니, 이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그 뿐입니까?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오빠와 언니와 함께 외롭게 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주 들르셔서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힘든 인생을 힘차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무릎 아래 앉아 자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곤 하였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았기에 마리아는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삶의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삶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마음에 참된 평화가 생겼습니다. 아멘입니까?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은 여러분,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계십니까? 
사랑한다고 하면서 바빠서 봉사 못한다고 하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한다고 하면서 밥 한그릇 사주는 게 아깝다면 사랑한다는 건 빈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다시 말하면 너에게 있는 것 몽땅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랑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남들이 보면 아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몇 년 전에 김정영선교사님께서 사역하시는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건국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의대생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본과를 마치고 단기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1년간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미 그 전에 아프리카 지역에서 1년간 단기선교를 마쳤고, 이제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1년만 하고 돌아오기로 되어 있는데, 김정영선교사님이 1년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 분은 본과를 마치고 단기선교사로 1년을 바치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벌써 2년이 다되어 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얼마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거룩한 낭비입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새해에 각 사역부서에서 봉사할 사역신청을 오늘까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서 받은 은사대로 힘써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장 귀중한 시간을, 재능을, 물질을 주님께 다 드리고도 더 드릴 것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랑, 그 사랑의 낭비가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4. 두 번째로 사랑의 표현방식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도 은사대로 합니다. 마르다는 일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하는 것이라면 마르다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셨을 때에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방에 들어가 버렸는데, 마르다는 부엌에서 음식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짜증이 났습니다. 왜 자기 혼자만 일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리아도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더 낫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마르다와 같은 일꾼이 없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주방에서 점심식사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함께 식사하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방송실에서 작업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기에 우리는 편안히 앉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찬양대원들이 있기에 우리의 예배가 훨씬 은혜롭습니다. 말없이 흔적없이 우리를 위하여 늘 기도해주는 중보기도대원들이 있기에 우리는 힘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새가족 양육부원들, 안내위원들, 재정위원들, 꽃꽂이 봉사자들, 차량봉사자들, 의료봉사자들 등 구석구석에서 일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행복하게 예배드리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줌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 좋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교회 안에도 나사로처럼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기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기도, 기도생활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분들을 말합니다. 

마리아는 물질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막내이니까 아마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가보로 내려오던 나드 한 병을 마리아에게 물려준 것 같습니다. 교회에도 마리아 같이 말씀 듣기를 좋아하고, 주님께서 주신 물질로 교회를 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가진 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섬기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은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교회에서 무슨 큰 행사할 때, 밖에서 안내하시는 분들과 주방에서 음식준비하시는 분들은 예배에 참여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감동적인 예배에 참여하는데, 자신은 일만 하니까 화가 날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마르다 같은 분들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남들은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은사대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표현방식이 이렇게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한 섬김이 모여 오케스트라같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룹니다. 


5. 마지막으로,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모르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할 기회가 왔을 때, 마음껏 사랑하십시오. 

어떤 집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한숨 좀 돌릴 수 있어서 봉사 좀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데려가시면 안 되는데.”

많은 분들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후회합니다. 
“주님, 한 달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내 아내에게 마지막 사랑을 베풀어주고 싶습니다.” 
“1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 이대로 서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힘있을 때, 봉사하십시오. 돈 있을 때, 돈으로 섬기십시오. 
건강있을 때, 열심히 뛰어다니며 봉사하십시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님을 사랑할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으로 주님을 섬길 기회가 왔습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놓치면 일년, 아니 평생 후회할른지 모릅니다. 
사랑할 기회는 늘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섬길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헌신적으로 섬기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최고의 것을 깨뜨려 여러분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 드리지 않으렵니까? 여러분이 깨뜨린 사랑의 옥합이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그리고 이 사회를 향유냄새가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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