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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맑고 순결한 청도교 신앙 (룻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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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순결한 청도교 신앙 (룻 2:5~11)
  

독일에서 탄생된 경건주의 운동이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면 영국에서 만들어진 퓨리터니즘(Puritanism) 즉 청교도주의도 우리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 퓨리턴들이란 가톨릭 요소를 제거하고 교회 안에 비성서적이고 미신적 행사를 타파하여 신앙의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퓨리턴들은 영국 국교회에 반기를 들고 국가의 시녀로서 교회가 거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퓨리턴들은 잠시 동안의 공화정(크롬웰)을 이룩하였지만 국교의 탄압으로 인해 네덜란드로 망명(1607~8)을 하였고 그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떠났다. 결국 미국의 시작은 영국의 퓨리턴들에 의해 시작된 나라인 것이다. 

1620년 9월 16일, 180톤급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20명의 사람들이 63일간 3,400마일을 항해하며 메사츄세츠 주에 도착하여 이민의 나라가 된 것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국을 떠났고 프리내스에 상륙하기 전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과 같이 서약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독교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여기 본 증서에 의해 엄숙히 서약한다.”

퓨리턴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신앙의 향상이었다. 신앙을 위해 그들은 고국을 떠났고 반 이상이 죽는 죽음과 싸우며 낯선 대륙에서 농사를 지었다. 배고픔과 허기짐을 이기지 못할 때 그들은 야생 칠면조를 사냥하여 굶주림을 이겼다. 그들에게 있어서 칠면조는 광야에서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메추라기와도 같았다.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가 되었는데 진딧물에 의해 가을 수확이 다 망가지게 되었다. 약으로도 안되고 일일이 손으로 진딧물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때 그들은 모든 방법을 내려놓고 기도하였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늘의 천적이 나타나더니 모든 진딧물을 잡아 먹었다. 

그들의 농사하는 방법은 기도 농법이었다. 그 추수한 곡식으로 하나님의 응답이 너무나도 감사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고 그 해에 교회를 지었다. 그래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법으로 선포된 국경일인데 개척 초기의 시절, 끼니를 대신한 칠면조 고기를 먹고 교회를 짓고 감사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작된 퓨리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와 예배를 잊지 않았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룻이야말로 순수한 퓨리턴이다. 그는 모압 여인으로 신앙의 하나님을 찾아서 베들레헴으로 왔다. 룻1:16을 보면 어머니를 따라 모압을 떠날 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과 언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고자 베들레헴으로 이민 온 것이다.

이민을 온 룻의 삶이 어떠한가? 글자 그래도 퓨리턴들이 북미 대륙에서 고생하는 것처럼 고생을 한다. 그리고 그 주어진 삶을 감사한다. 
  

1. 말씀을 좇아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다. (룻2:2)

이삭을 줍는 일은 성경이 주는 권리였다.

레19: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러니까 이삭을 줍는 것은 가난한 사람, 외국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에서 나온 권리였다. 룻은 이민의 삶을 시작하며 먹고 살기 위한 고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밭에 가서 고생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 곡식에서 떨어진 낟알을 주어본 적이 있다.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이삭을 줍는 것을 양보할 수 없는 먹고 살기, 그건 전쟁이었다. 돌아보면 거지가 따로 없다. 그러나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롯의 삶이 바로 가난한 삶이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은 이삭 줍기이기에 부끄럽지 않다.
  

2. 부지런히 근면하게 일한다. (룻2:7)

룻2: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작은 이삭 한 톨씩 줍는 일, 그것을 위해 룻은 부지런했다. 이삭을 위한 부지런함, 그것은 이삭의 중요함을 아는 것이요 룻은 가난한 이가 양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근면, 이것은 올바른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덕목이다. 일용한 양식을 위해 근면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살후3:10) 룻은 이방 여인으로 근면하게 살아간다.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인들은 다 부지런해야 한다.
  

3. 룻은 지극히 작은 것을 감사한다. (룻2:10)

보아스의 밭에 나가 일하는 룻을 발견한 보아스가 룻에게 세 가지 친절을 베풀게 된다.

①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
② 사환들에게 건드리지 않도록 보호의 명령을 내리다.
③ 생수를 길어다 놓은 것을 마셔도 된다.

그때 룻은 룻2:10에서 그 베푸신 친절한 배려를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나는 룻의 감사 앞에 그 순수하고 맑은 믿음을 본다. 정말 보아스의 미래에 신부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의 태도를 본다. 어떻게 냉수 한 그릇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음에 대하여 은혜 베푸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냉수가 은혜로 다가오는 사람, 그 여인이 룻이다.

지난 날 룻이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큰가? 남편을 잃어버리고 시아버지를 잃어버리고 가문의 재산과 명예를 잃어버리고 희망도 잃어버리고 빈 손으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귀화하여 온 것이다. 그의 상실의 크기는 셀 수 없으며 그가 베들레헴 밭에서 누리게 된 것은 목마를 때 마실 수 있는 냉수 한 그릇이었다. 울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비극의 여인, 그 룻은 삶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 듯 냉수 한 그릇을 은혜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힘인가? 바로 하나님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를 고난 속에, 절망 속에 가두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신앙이 그를 붙잡고 있는 모든 과거의 상념들을 끊어버리고 단절시켜 주어서 뒤돌아보지 않게 하였다.  

룻은 새 삶을 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의 이민에서 룻은 신앙의 눈으로 자기의 삶을 바라보았다. 밭에 나온 것도 은혜요,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도 은혜요, 세 가지의 배려를 받은 것도 은혜요, 모두가 은혜다. 냉수 한 그릇을 받아 들게 된 룻은 작은 것조차 은혜로 말한다. 이것이 진짜 신앙이다. 

나는 룻을 보면서 룻이야말로 퓨리턴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으로 고난을 감사하며 살기에 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고 복의 통로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퓨리턴 신앙으로 건국되었을 때 초대 강국이 되는 복을 받은 것처럼 룻에게 퓨리턴 신앙의 원형의 모습이 있다. 

나는 가끔 기도한다. 룻과 같은 성도, 어떤 일을 해도 말씀을 붙잡고 일하는 성도, 부지런히 근면으로 일하는 성도, 작은 냉수 한 그릇을 받고 은혜라고 기뻐하는 성도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냉수 한 그릇 주었다고 은혜라고 좋아하는 친구,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하시고 이런 사람이 많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이 퓨리턴, 맑고 순결한 신앙이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이 반드시 보장하신다. 

이민 온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무너진 가문을 회복하고 베들레헴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방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구속의 인물로 세워졌다. 이 시대 속에서 우리도 퓨리턴의 원조인 룻처럼 살면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복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미국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를 회생시킬 것이냐, 의견이 분분하다. 총기 사건, 마약 범죄, 가정 붕괴, 향락 산업, 겉으로 보이는 미국은 온 세계의 글로벌 경제까지 흔들고 있다. 모건 시티, 금융 회사들이 3천명에서부터 1만5천명에 이르기까지 감원을 한다. 그러나 살 길은 있다. 미국이 겸손히 엎드려 퓨리턴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우리의 경제도,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날이 크게 느껴질수록 퓨리턴 정신을 가져야 한다. 룻의 섬김과 희생, 그리고 신앙에서 나온 감사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해답이다. 요엘의 정신이다. 

평앙의 100년 전 신앙은 퓨리턴 신앙이었다. 남의 돈을 떼어 먹은 것을 회개하는 평양이었다. 거짓말한 것도 회개하는 평양 교회였다. 그래서 잘 살았다. 그런데 그 북한 땅에 해방이 왔으나 어느 날부터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되는 삶이 시작되었다. 퓨리턴 신앙은 다 사라지고 인간의 노력과 제도 그리고 통치 수단, 이념주의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저들은 해방 50년이 지난 이후 무수한 탈북자 시대를 맞고 있다. 

왜, 사람들은 그 땅을 벗어나야 하는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크로싱을 보면 그곳에서 결핵약이 없어 약을 구하러 중국으로 나온 아버지 차인표를 보라. 남한에 와서 보니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주는 약이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고 탈북한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김문수 도지사의 홈페이지에 실렸던 탈북자의 시, 「우리의 밥은...」은 이렇다.

우리는 쌀을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의 밥은 나무다. 껍질이다.
우리의 밥은 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도 아프다.
아파도 먹어야만 한다.
두꺼운 나무껍질, 슬픔이 끓는 물에 삶아내어
꺼내선 죽도록 망치로 때리고 
또 끓이고 또 때리고
그래도 목을 죄는 밧줄 같아
마지막엔 양잿물을 섞으면 마침내 반죽되는 나무껍질
그것도 밥이라고 그릇에 담기라고 우리는 밥을 빚는다.

한 줌 속에 나무를 빚는다.
오, 그리운 그 몇 덩이, 우리의 눈물덩인가
볼수록 꽉 메는 목구멍
그 몇덩이도 없어
그런 받도 없어
먹고 사는 전 세계 목숨들이여
이 나라엔 산이 모두 벗겨지고도
그러고도 나무가 모자라
수 백만이 굶어 죽었다.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그들보다 먹고 사는 것이 나아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처럼 모든 것이 다 없어도 순전하고 맑은 신앙이 있는 것으로 회복과 축복과 삶의 소망이 약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는 것, 그것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 신앙을 가르치는 교회가 있고 내가 예배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룻의 감사 신앙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환경을 바꾸고 새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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