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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의 태도 (출 21:1~2, 막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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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의 태도 (출 21:1~2, 막 14:1~9)


여러분! 혹시 중국선교와 아프리카 선교에 자신의 일생을 드렸던 ‘찰리 스터드’ 선교사를 알고 계십니까? ‘찰리 스터드’는 훌륭한 신앙인인 ‘에드워드 스터드’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합니다. 그는 그 당시 유명한 ‘D.L.무디’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결단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크리켓 선수 중 한 명으로 지칭되는 찰리 스터드, 그는 캠브리지 대학팀 최고의 만능선수이자 주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선교사로서의 헌신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와 함께 헌신한 6명의 뛰어난 재능의 캠브리지 대학생들, 이른바 ‘캠브리지 7인’은 모두 중국 내지 선교회, 오늘날 OMF의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당시 한 신문기사는 그들의 이런 헌신을 가리켜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선교의 역사상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7명의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선교사로 헌신된 예는 아직 역사에 없었을 것이다.”

‘찰리 스터드’ 선교사는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하는 도중 큰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감내해 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선교사들처럼 참으로 그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문에 새겨진 한 글귀를 읽게 되는데 그것이 그의 마음에 충격이 되었습니다. 

“식인종은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식인종들도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문구였습니다. 중앙아프리카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복음을 증거해 줄 선교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고 중국선교를 정리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미 그의 나이는 50이 훨씬 넘었고, 신체적인 질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그의 동역자이자 사위였던 ‘노만 그럽’ 선교사는 ‘찰리 스터드’ 선교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휴식하는 일이 없었으며 한눈파는 일도, 휴일도, 취미생활도 없었습니다. 또 유럽식의 풍요로운 생활을 피하고 아프리카인들과 똑같이 살도록 사역자들에게 강요하였기에 종종 동역자들과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찰리 스터드’ 선교사는 처음에 아프리카의 심장 선교회, '더 하트 오브 아프리카 미션(The Heart of Africa Mission)'이라는 선교단체를 결성했지만 후에는 WEC 국제선교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던 ‘찰리 스터드’라는 한 사람의 비전과 헌신으로 WEC 국제선교회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50여 개국이 참여하고 2천여 명의 선교사가 80여국에서 선교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헌신이 오늘 이러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찰리 스터드’ 그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던 사람입니다. 아니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히 내려놓고 자신을 깨뜨렸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질을 주님 앞에 깨뜨림으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렸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절에 보면 그 여인을 ‘마리아’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당시 향유옥합은 매우 고가,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으로 치면, 한 7만 원 정도 친다면 적어도 그것은 2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의 귀한 향유였습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부어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여지없이 비난의 입을 열었습니다. ‘저 아까운 것을 왜 낭비하는가?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얼마나 좋을 텐데...’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옹호하시면서 오히려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저를 괴롭게 하지 말라. 오히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저 여인은 내게 기름을 부어 내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도 전하여 저를 기념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분명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이 아름다운 헌신은 우리 주님의 마음에 한없는 기쁨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참된 헌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마리아의 헌신을, 그 동기와 태도와, 시기로 나누어서 배워보려고 합니다.

먼저 마리아의 헌신의 동기입니다. 

마리아는 왜 그 귀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행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결코 낭비일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가슴 깊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종종 예수님께서 이 베다니 지방에 방문하실 때에 주로 이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경청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얼마나 감격스럽고 흥분된 일이었을까요? 그 말씀이 마리아의 삶을 지탱해 주었고, 그의 인생의 행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그 은혜에 늘 감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언니 마르다가 한번은 와서 예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예수님! 나는 이렇게 열심히 주방에서 일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잖아요. 좀 오라고 해 주세요. 와서 나 좀 도와주라고” 불평할 정도로 마리아는 말씀 듣는 일에 집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가정에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오빠 나사로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습니다. 그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이 이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마리아, 마르다 자매의 눈물 흘리는 그 안타까움을 보시고 예수님도 민망히 여기셔서 그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묻힌 무덤에 가셔서 돌문을 굴리게 하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 때 죽었던 나사로가 부활해서 걸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그 광경을 목도했을 때 마리아의 마음에 얼마나 큰 감동이 있었을까요? ‘마치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니,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은인이야.’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고, 기회만 되면 그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드릴 수 있었던 헌신의 동기는 바로 주님의 대한 사랑의 동기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드러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헌신의 태도입니다. 

그녀는 어떤 태도로 주님 앞에 옥합을 깨뜨려 드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한마디로 말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 앞에 옥합을 깨뜨려 헌신했습니다. 그 고가의 나드 향유 옥합, 그것을 그녀는 아낌없이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그녀는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까지 씻어드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대여인들의 풍습이 있습니다. 그들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들은 나드 향유를 준비하는 것이 그들의 결혼필수품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지역은 마음대로 물을 쓰지 못합니다. 땀이 늘 흐르고 늘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부부생활에 있어서 향유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여인들은 여유만 있으면 조금씩 그 향유를 모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옥합을 채우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나도 이제 결혼할 수 있겠구나.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정성껏 준비했던 그것을 바로 주님을 위해서 마음껏 부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한 헌신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마리아가 정말 힘을 다하여 내 장례식을 준비했다고 예수님은 힘주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녀는 힘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저는 우리들이 정말 주님 앞에 헌신할 수 있다면 바로 최선을 다해서, 힘을 다하여 헌신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음은 헌신의 시기입니다. 

마리아는 언제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부어드렸을까요? 그것은 유월절 이틀 전이었습니다. 성경 본문 1절과 2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이틀만 지나면 유월절이 옵니다.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에 어린양이 되어서 대제사장들에게 붙들려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당한 이 처지가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들은 밤을 세며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뿐일까요? 제가 읽지 않았지만 10절,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그를 팔아버리려고 흥정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대제사장들과 흥정을 벌이면서 예수님을 얼마에 팔면 너희가 내게 돈을 주겠느냐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 여러분이 한 번 서 보십시오. 가장 믿었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그를 팔아버리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해도 부족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여기 궤계라는 말, 그것은 간사한 꾀, 음모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 이신대 그의 마음에 왜 우울함이 없겠습니까? 아니 예수님이라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즐거웠겠습니까? 오죽했으면 예수님도 겟세마네동산에서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는 결국 십자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마음의 이 어두운 그림자, 이 우울함을 기쁘게 해 드린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마리아의 헌신입니다.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드릴 때 예수님의 마음에 격려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고,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모든 시기와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헌신이라면 그 빛을 더욱 발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 8장을 언젠가 읽다보니까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신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을 맞이해서 양식이 없어 굶주릴 때에 사도바울은 이 마게도냐, 유럽지역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너희가 함께 구제헌금을 해서 예루살렘교회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대답만 하고 순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오히려 그들의 가난이, 오히려 그들의 시련이 더 풍성한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가난 가운데, 핍박 가운데 열심히 헌금 했습니다.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했다고 바울은 입을 모아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을 낼 수 없는 시기에 그들은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에 마음에 흡족함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3년 전 우리에게 아름다운 성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확히 2004년 11월 11일 11시에 우리가 기공을 하고 1년 2개월 만에 우리는 아름다운 성전에 입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갑니다. 정말 우리 세대에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요, 보람이요, 기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유명한 다윗왕도 자기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의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에 너는 건축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 아들 솔로몬 대에 가서야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세대에, 저와 여러분의 세대에 우리가 이 아름다운 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작정하고, 우리의 물질을 드리고, 여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보람일 수 밖 에 없습니다. 더더욱 감사한 것은 1년여 간의 공사기간 중에 아무런 사고 없이 이 건축공사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감사한 하나님의 열매였습니다. 또한 건축하면서 교회가 분열된 일도 없고, 온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열심으로 동참한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문하신 목사님들은 이 아름다운 건물을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적어도 5년 전, 10년 전에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분들은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입을 벌립니다. “그 높은 4층 위에, 언덕 위에 있던 그 빨간 벽돌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여러분! 홍해가 갈라지는 것 같은, 큰 산이 옮겨지는 것 같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아니, 산이 옮겨졌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땅은 적어도 4층 높이의 언덕, 산이었습니다. 우리는 산을 옮겨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건축마무리가 다 되지 못해서 아직도 건축 상환금이 남아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 복음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또 건축헌금에 대해서 또 호소하게 된 것을 매우 죄송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도대체 어떤 설교를 전해야 할까요?”하고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함께 기도하는 중에 출애굽기 21장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무엇인가 펴 보았더니 구약의 종 제도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종이 되는 것은 전쟁을 치르다가 전쟁에 지면 종으로 끌려가서 일생을 살게 됩니다. 아니면 같은 유대인 중에서도 어떤 채무관계가 있을 때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빚 대신, 채무 대신 내가 종으로 그 집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그것을 때워야 합니다. 그가 종에서 풀려나려면 그것은 바로 그 빚을 탕감해 주던가, 부채를 갚던가, 아니면 유대 법에 의해서 안식년, 7년이 되어서 그들은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단신으로 들어갔다면 단신으로 나와야 합니다. 만약 주인이 어떤 여종과 그를 결혼시켰다면 그는 그 아내는 두고, 자기만 나와야 합니다. 혹 여종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도 자기의 소유가 아닙니다.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데려올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종은 소유도 없고, 특권도 없고, 아무런 자격도 없습니다. 그는 그 부채를 다 감당할 때까지 거기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종의 이야기를 저에게 번뜩 생각나게 하셨을까요? 저는 가만히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 건축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교회 건축이 아직 상환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금융기관에 매여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매여 있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가 이 채무를 해결해야만 날개를 펴고 훨훨 비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당회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가 제2차 작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제직회에 비준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1차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헌금을 낸 것이 8년이 꼭 됩니다만 30억이 넘는 돈을 우리 교인들이 헌금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 감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2차로 또 건축헌금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호소를 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져 줄 수 없는 짐이라면 이왕이면 기쁘게 져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 교회 1500교인이 이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짐을 지고 함께 기도하고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면 비록 지금 경제사정이 어렵고 한국사회가 여러 가지로 불황에 처해있지만 저는 한국의 이 불황도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4년 동안 우리가 이 헌금을 위해서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우리 한국의 이 경제위기의 풍랑도 잔잔케 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교우들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보호받아야 되고, 여러분의 사업이 잘 되어야지 여러분이 약속한 헌금을 드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에, 나로 인해서 정말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넉넉할 때, 건강할 때, 형편이 좋을 때, 돈이 넘칠 때 드린다면 그것도 헌신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할 때, 우리가 쪼들릴 때, 경제 불황이 왔을 때, 어둠이 짙게 깔려있을 때 마치 하나의 촛불이 더 빛을 내듯이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 더 영광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정한 헌신이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는 것이 진정한 헌신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제 주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내어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왕이면 믿음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드립시다. 저는 우리 장로님으로부터 33억 원을 헌금한 우리 교우들 명단과 그 내용을 통보받으면서 꼭 물질이 많다고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분들만이 헌금할 수 있더라고요. 믿음은 현금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작정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 27년 중 세 번의 건축을 직접 중심에 서서 진행했습니다. 해남에서 시골교회에서 한번 건축을 했고, 양평에서 두 번째를 했고, 여기 와서 세 번째를 했습니다. 여러분! 건축을 시작할 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막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인 저도 분명히 앞장서서 작정을 하고 드려야 하기 때문에 저도 믿음으로 작정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때마다 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셨습니다. 제가 양평에서는 두 번 했기 때문에 거기서 다 감당을 못하고 제가 그 교회를 떠나올 때 제가 퇴직금을 받아가지고 건축헌금 남은 것을 다 드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채워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천지에 주재되신 분이라면, 그리고 그 분이 우리 인생에 공급하시는 분이라면,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작정할 때 하나님이 반듯이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삶에도 풍성함을 더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그런 확신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조금씩만 나눠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백지장도 나눠들면 가벼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헌신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왕 드릴 거 믿음으로 드리십시오. 그리고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십시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기쁘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소망가운데 드리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렵지만 우리가 이 건축의 채무를 다 해결하고 나면 우리교회가 앞으로 정말 선교하는 일에, 양육하는 일에, 구제하는 일에 더욱 힘쓸 수 있고, 더 집중할 수 있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우리가 소망 가운데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5110의 비전을 향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지하실에서 우리 구제부와 여신도회장님들, 주방부원들이 열심히 김장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김장을 이렇게 빨리 하나? 김장을 뭐 하려고 담고 있는가?”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이 지역에 가난한 분들에게 김장을 전달해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흐뭇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이 지역사회의 어려운 분들에게 쌀을 나눠드리고 김장을 나눠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가 이 건축 상환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정말 이 지역에 꼭 필요한 교회로 성장하고 거듭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왕이면 기쁘게 드리십시오. 역대상 29장 9절에 보니까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윗 왕 시대에 성전건축을 위해서 자신들의 물질과 헌물을 드릴 때 그들은 너무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너무너무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저녁에 한 10시쯤 무슨 방송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교도소가 나왔습니다. 청주여자교도소라고 합니다. 제목이 ‘죄와 벌’ 24시간 밀착취재하면서 교도소내의 생활을 보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니까 여자교도소는 남자와는 다릅니다. 방에도 온돌이 있는지 장판이 깔려있습니다. 여자들이 있으니까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비록 감옥이지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방을 비춰주는데 거기에 아기가 있었습니다. 교도소에 웬 아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하고 아기가 창살 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임신한 채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사기죄로 15년형을 받았는데 교도소에 들어와서 아기를 출산한 것입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젖을 먹어야 하니까 교도소에서 엄마와 같이 생활합니다. 창살 안에서. 아기 젖병도 있고, 옷도 있고, 양말도 있고, 장남감도 있고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무언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밖에 있는 남편이 아내를 면회 옵니다. 그러면 아기하고 엄마는 이 창살 안에서 아빠를 보는 것입니다. 아빠는 면회실에서 이 아기 이름을 부르면서 아기를 만지고 손을 잡고 합니다. 아기는 “아빠, 아빠” 합니다. 아기가 18개월 동안은 엄마와 함께 감옥에 있지만 18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엄마와 또 떨어져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마의 잘못 때문에 아기까지 그 창살 안에 갇혀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감옥에서 출생하고 감옥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게으름 때문에, 우리의 나태함 때문에, 우리의 불 충성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이런 금융기관에 매여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힘을 다해서 이 건축 상환을 조속히 이룰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이제 양 날개를 펴고 하늘로 활활 날 수 있는, 비상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왕 감당해야 한다면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 선교사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선교사가 중국 농촌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 농부들이 감자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감자를 심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감자는 열매를 직접 심습니다. 따로 씨앗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자 자체가 씨앗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을 가만히 보니 큰 감자는 다 먹어치우고 작은 감자만 가져다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자가 늘 작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우리 미국에서는 그렇게 안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작은 것을 먹고 큰 것을 가져다 심으면 아주 큰 감자가 열립니다.” 중국인들이 그 말을 듣고 큰 감자를 심었더니 그 다음에는 큰 감자를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쁨으로 동참하십시다. 제가 서두에 ‘찰리 스터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찰리 스터드’의 기록에 보면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그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정말 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시고 죽으셨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분을 위해서 치르는 어떤 대가도 결코 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위해 드리는 어떤 헌신도 결코 크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에 종 되었던 우리들을, 마귀에 종 되었던 우리들을 그 분 자신이 우리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고난을 당하시고, 그가 죽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 때문에, 그분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무엇을 드리고, 무엇을 헌신할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이 아름다운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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