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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범사에 감사할 일(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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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할 일(살전 5:16~18)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인간이 하늘의 은혜에 공식적으로 감사하는 날입니다. 추수는 전적으로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추수감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초막절 또는 수장절에서 기인했습니다. 

레위기 23장 또는 신명기 16장에 보면 일곱째 달에 7일 동안 초막을 짓고 추수감사제를 드렸습니다. 한국에는 추석, 단오, 설 등 3대 명절이 있듯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 3대 절기가 있습니다. 그중 초막절은 한해 추수를 마치고 지키는 감사제입니다. 추수한 곡식을 저장한다 해서 수장절(출 23:16)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출애굽 후 광야에서 장막을 짓고 생활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도 그 때를 추억하고 기념하면서 종려나무나 무성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임시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온 가족이 7일간을 지냅니다. 그동안 출애굽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모신 곳이면 그곳이 초막이라도 천국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초막절은 감사와 추억의 절기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기인됩니다. 

 또 추수감사절은 기독교가 한국 땅에 들어오면서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절기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이 대부분 미국 선교사들이었으니까 그 문화도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추수감사절입니다. 오늘 미국인들의 최대 명절은 추수감사절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누리려는 일단의 청교도들이 미지의 세계로 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11년 동안 피신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102명이 추위를 이겨가며 1620. 8. 15일 오늘 미국 땅으로 3400마일의 거리를 63일간 쪽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그면서 선상에서 그들은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새 세계에 가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자, 그리고 우리의 일생 모두를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자, 그리고 그 땅을 일구어 신앙의 나라를 세우고 우리의 일생을 마칠 때 하나님을 위해서 다 놓고 가자.” 63일 동안 항해하는 도중 102명중 절반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도착 후 농사를 지어 첫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이미 죽은 동료들이 묻힌 공동묘지에서 추수감사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처럼 금을 캐러 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참된 신앙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 앞으로 이 땅에 신앙의 자유가 꽃피울 것이며 인간의 삶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 우주에 빛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추수감사절의 기원이고 정신입니다. 

 인간의 값은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알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인격이나 삶이나 생각이나 정신이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것은 인격이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 중에서 가장 얄미운 죄가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한 죄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사의 삶은 기본의 삶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하십니다.  
본문은 예수 재림을 설명하는 중에 하신 사도바울의 말씀입니다.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근신하고 깨어서 덕을 세우며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 안에서 화목 하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좆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본문 말씀 중 핵심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이 3요소는 신앙을 신앙답게 만들고 신앙을 여물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성결의 요소입니다. 이 3요소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가장 두드러진 신앙인의 삶의 조건입니다. 여기 “범사”라는 명사는 원문의 “엔 판티”라는 말입니다. 즉 “모든 상황과 환경에도” “모든 일” “all things”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감사하라는 말씀이 366여 번이나 나타납니다. 그 말은 날마다 감사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에는 삶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의 힘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삶에는 다음과 같은 잠재력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힘 

감사하는 사람은 하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은 부모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세상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감사하는 삶은 행복의 열쇠입니다. 

슈바이처가 말년에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면 어쩌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르네, 그러나 슬퍼하지 말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을 받은 사람일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60년 동안 일하고 오늘 내 나이 90세의 노구임에 이 순간에도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이라고 확신하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압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시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기뻐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기쁨과 행복 창조 

브라이언 로빈슨이라는 분이 “행복의 기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행복은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고 스스로에게 예의를 다하고 주변을 관리하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태도만 바꾸어도 인생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잡초를 보지 말고 꽃을 보라, 폭발하려는 감정을 다스려라,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 생각은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니고 모두 성경이 이미 말씀하신 말씀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존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가 감사함을 느끼는 깊이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종교가 윌리엄 로우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 마음에 어두움을 주고 불화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음을 억압하여 고통을 안겨줍니다. 반면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고 마음을 맑고 환하게 하고 그 삶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들이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에 그 마음을 주십니다(시 118:28-29). 그래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삶 치료 

감사는 병든 마음과 병든 생각과 상한 감정과 열악한 환경을 치료합니다. 뱀에 물리면 독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서 피를 응고시켜서 죽게 합니다.  그래서 뱀에 물리면 빨리 해독제를 주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피가 굳는 것이 방지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불평의 독이 들어가면 온 몸에 퍼져서 다 굳게 만듭니다. 미움, 분노, 불화, 절망, 탄식 등 이것이 독입니다. 이것들이 오늘 현대인들을 사정없이 몸과 마음과 감정과 관계를 굳게 만들어가는 독입니다. 빨리 해독제를 놓아야 합니다. 그 해독제가 감사의 삶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온통 불화와 갈등과 불만과 미움과 절망과 탄식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삶에서 감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의 조건들은 많은데 그 조건들을 보고 느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흔히 3중고 즉 말을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3일간만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3일간만 눈을 떠 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불만하고 원망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그 감사를 발견하지도, 느끼지도, 소유하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현대인들에게 무서운 중병들이 발생하는 것도 이 같은 미성숙한 삶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후나세 슌스케라는 분이 “항암제로 살해당하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암으로 죽었다면 110번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당했다고 신고하라“입니다. 일본에서 암 전문의 271명에게 “당신 자신이 암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소위 3대 치료방법인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암전문의 271명중 1명만 빼고 모두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일본 후생성 관리가 말했습니다. “항암제로 암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그러면 암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 방법은 감사와 웃음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암환자들을 모아놓고 3시간 동안 희극을 관람하게 해서 실컷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해 보았더니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인 NK세포 수치가 무려 6배나 증가하더라고 했습니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평균 연령이 7년 정도 단명합니다. 그 원인이 남성과 여성의 생활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들은 조그만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갑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습니다. 여성들이 만나면 하루 종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여성들은 머리 파마한 것 가지고 적어도 30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면 쓸 말은 몇 마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들이 삶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요소들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세상을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은사를, 달란트를, 소질을 주셨습니다. 그것들을 활용해서 매사 억지로 일하지 말고 재미있고 기쁘게 일하며 살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습니다. 

오늘 부모들이 아이들의 재능이나 개성도 무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도 알고 보면 무지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어느 암환자가 마라톤을 해서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이제 죽을 것 같으니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하자해서 마라톤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남편이 암환자인 부인들이 모두 남편들에게 마라톤을 하라고 밖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랬더니 남편들이 다 죽었습니다. 마라톤으로 병을 고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마라톤을 했기 때문에 병을 고친 것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니까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네 가지입니다. 첫째 “암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에서 벗어나라”, 둘째 “암은 웃으면 사라진다”, 셋째 “암이 자연치료로 치료되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넷째 “암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감사”라고 했습니다. 감사에는 이런 강한 힘이, 능력이, 살리는 바이러스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강조합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넉넉함이 주어지고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누고 베푸는 삶 

감사는 행복을 낳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천국을 만듭니다. 이 천국이 마침내 나누게 하고 베풀게 하고 삶의 내용을 밝게 만듭니다. 초대교회는 은혜가 충만했고 성령이 강하게 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모이고 떡을 떼며 나누며 기쁨으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감사의 삶은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나눔의 기쁨을 누리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늘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삶은 마음에 은혜가, 성령이, 행복함이,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것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윗집 아저씨가 동네에 돌아다니며 간밤에 나귀를 잃어버렸다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그 나귀를 찾으면 보답으로 그 나귀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사람에게 주려면 뭐 하러 찾느냐고 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그러자 나귀주인이 말했습니다. “잃은 나귀를 찾으면 나는 두 배의 기쁨을 동시에 맛보게 됩니다, 하나는 잃은 나귀를 찾아서 기쁘고 또 하나는 값진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니까 기쁩니다.” 이런 사람이 주는 기쁨과 줌으로 주어지는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행복이나 기쁨이나 감사는 나눌 때 상승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나누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나누지 않고 쌓아놓으면 다 썩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 부작용이 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누지 않는 곳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고 썩습니다. 형제간에, 부자지간에 부부사이에 재산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은 나누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원리를 나누며 살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깊이 들여다보면 나누며 살아가는 원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다리 한쪽이 없어 걷지 못하는 여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 여우는 어떻게 살까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큰일입니다. 곧 잡혀 죽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지켜보다가 순간 놀랐습니다. 호랑이가 잡은 먹이 감을 여우에게 나누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구의 여우를 먹이시는 방법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참으로 절묘한 세상을 조화롭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세상 관리모습입니다.   

 어느 부자가 길을 하고 있는데 구걸하는 소녀가 돌아다니며 아무것이나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그 아이는 옷이며 얼굴 모습이 완전한 거지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이 부자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 저런 소녀 거지를 돌보지 않으십니까”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그 소녀에게 도움을 베풀었느니라, 내가 너를 창조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큰 원리 하나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함께 서로 나누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천국이 임하고 소망이 넘쳐나고 잘됨이 주어지고 넉넉함이 만들어집니다. 금년 가을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 북쪽은 부족해서 야단이고 이 남쪽은 넘쳐서 고민입니다. 그것을 보고도 감사함이 없다면 그 삶은 본명 지옥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하십시오. 넉넉하게 이 가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삶에 천국이, 넘침이, 행복이, 감격이, 성취가, 찬양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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