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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벧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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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벧전 4:10)


사람이 사는 사회는 좋은 일 나쁜 일로 삶을 얼룩지게 한다. 한 사회를 책임지는 것은 그 나라의 국가가 그 책임성을 인간들에게 확장하여 국제적, 국가적 인간의 경제적인 삶을 살핀다. 여기에는 부조리와 부패가 따르며 그 극복을 목표로 하는 공익적인 일로 부정부패를 척결(剔抉)하는 것이 경제정의 사회로 가는 길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 해소를 위해 '국제비정부기구(NGO)'가 있다. 1993년에 설립되어 그 본부는 독일의 베를린에 있다. 설립자이자 집행이사회 의장인 '피터 아이겐'은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경제개발 프로그램 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부패가 후진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퇴직 후 '국제투명성기구'를 만들었다. 

전 세계 82개의 공식 국가지부를 포함하여 100개 이상의 단체가 산하 지부로 활동하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이 단체의 자문으로 일하고 있다. 이 기구가 하는 일은 부패지수가 기존의 부패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집계해 지수를 산출하는데 지수의 신뢰성을 위해 한 국가 당 3개 이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하고 각 조사 자료별로 지난 3년간의 조사 결과를 취합하여 매년 조사를 실시하는 기관의 데이터에 높은 가중치를 준 것 등을 원칙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한국의 부패 지수는 10점 만점에 기준하여 96년 5.02, 97년4.29. 98년 4.2, 99년 3.8, 2000년 4.0, 등으로 나타나고 1, 2, 3위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3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3국가는 효율적인 행정 감시제도 등 투명한 국가경영 시스템을 구축하여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구조를 일찍이 정착시켰음을 알게 한다. 금년 11월 7일 우리나라 청소년의 반부패 윤리의식이 방글라데시, 인도, 한국, 몽골 등 아시아 4개국 가운데서 한국의 청소년의 윤리의식 수준이 최악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 7일에 발표한 4개국 중고생들의 반부패 인식 지수를 보면 10점 만점에 방글라데시 8.45, 인도 7.55, 몽골6.64, 한국이 6.1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은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22.6으로 제일로 높았다. 방글라데시3.1%, 인도8.4%, 몽골12%이었다. 이번 조사는 청소년의 나이가 어릴수록,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각각 반부패 윤리의식이 높았으며 도시보다는 농촌지역 청소년들의 준법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08년 8월에 '한국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도덕 불감증은 '감옥에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에 대한 조사 결과는 '저지를 수 있다가 17.7%,이고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사용하겠다가 20%,로 반부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가 87.4%였다'고 소개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의 윤리의식수준이 국제적으로 망신사리를 펼치며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매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하는 국가청렴도에서 우리 한국은 조사국가 중 180개 나라에서 41을 차지한다. 

경제규모는 세계13위에 서 있음을 자랑하지만 청렴도에서의 부끄러움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청소년들의 이러한 윤리의식을 보며 기존의 세대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할까? 하는 우리는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다. 우리사회가 무엇보가 경제를 앞세우고 물질만능에 빠져 있고 교육현장에는 이렇다 할 반부패의 윤리교육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권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패가 터져 나오고 공직자들의 직불금 파동으로 온 나라가 요동을 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각종 부정부패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가뜩이나 혼란한 우리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시 의장 선거부정, 국회의원 공천로비, 군납비리독직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부정의 연속임을 어느 정권에서와 같이 보아 온다. 

10여년 전 우리는 외환위기의 악몽을 겪으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한 '저 신뢰사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임과 국가부도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바 있다. 이를 계기로 '부패방지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반부패국민연대'(현 한국투명성기구)라는 시민단체도 만들어져 우리 사회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전개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국제투명성기구'의 명칭이 '국가청렴위원회'로 바뀌고 현 정부에서는 다른 조직과 합쳐 이름도 "국민권익위원회'로 바뀌고 그 기능도 상당히 축소해 버렸다. 그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투명하다고 전제하고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권익 증진만 펼치면 된다는 식으로 가고 있는 것은 지탄(指彈)받아 마땅하다. 

일반적으로 윤리라 하면 목표(goal), 동기(motive), 수단(means)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윤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목표, 동기, 수단이 받아들일만한 것인가를 주시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경제활동과 관련하여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행복은 한마디로 '효용'(utility)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효용에는 유익, 실질적인 이익, 쾌락, 선(善)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렇게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행복에 일련의 입장을 말하여 '쾌락주의적 공리주의'라고 한다. 이 주의가 전통적인 윤리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무엇이 인간의 행복인가를 기준으로 삼는 말을 알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의무이고 마땅한 것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면 어떤 가치를 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경제는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관련하고 희소자원은 석유나 광물과 같은 직접적이고 구상적인 물질도 있지만 시간과 재능도 포함함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를 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알게 한다. 경제의 희소한 자원도, 시간과 재능도 이것은 인간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하늘이 주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앙인'이 되면 아는 믿음의 사실이다. 19세기에 활동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이며 경제학자인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는 '정치경제학의 목표는 전체 대중에게 유족함과 위안을 확산하는데 있다. 이때 인간의 즐거움을 배양하는 외적 수단과 자료들을 복제 또는 확대시키는 방법을 취한다. 

물론 이런 일은 다른 가치들의 실현을 고려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대중의 경제적 행복을 위해서는 도덕, 종교, 교육이 국가정책의 제일과제가 된다'라고 했다. 그의 이 말은 웨스트민스트의 소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리고 즐겁게 하는 일은 대 원리의 부속적인 경제규범이다. 

그 경제규범은 1) 현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선한 행위이어야 한다. 2) 창조적인 선한 노동이어야 한다. 3) 선한 이익을 내기 위한 사업이어야 한다. 4) 선한 물질적 부요이어야 한다.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알게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많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선한 사업을 위하여 물질로나 정신적으로 사회에 앞장서서 해 왔고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또한 반독재 투쟁과 경제정의를 위해 시대적 역할과 사명을 다하여 왔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갈수록 폐쇄성을 가속화시키고 각 교회 간의 분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신앙자와 비신앙자를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접근해 한국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교회는 자기세력을 키우고 나면 무조건 교회의 규모를 늘리고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형빌딩을 짓고 건물과 땅을 매입하는 등 부동산사업을 하는 사람들인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교회는 이러한 구실로 기업화되고 각종 혜택을 받고 모든 조직에 군림하는 태도, 교만해지는 모습에서 과연 그 교회의 규모와 기능을 생각할 때 그 만큼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수용하고 있는지 오늘의 교회의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1929년 세계대공황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라고 한다. 

금융위기의 악영향은 2가지의 방향으로 나타날 전망인데 한 방향은 일반국민 경제전반에 미치는 경제파탄이고 두 번째 방향은 전 세계금융시장을 강타하는 것이다. 그러면 금융위기의 책임은 경제주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 주체는 소비자들과 자금관리자들과 정부를 말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효율만 추구하다보니 장기적인 전략이나 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아 총체적인 금융위기와 경색을 결과로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 자산은 '내 것'이라는 개인주의적인 재산권에서 유래함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적인 재산권은 분명히 모든 자신의 절대적 소유자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다만 부여 받은 자산을 잘 운영해야 하는 '청지기'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말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신앙인의 윤리의식'은 인간의 자아의식과 가치관을 자기소원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생활과 하나님의 소명을 통하여 경제적 윤리의식을 확고히 함으로 경제행위를 청렴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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