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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랑스런 삶 (빌 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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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삶 (빌 2:12~18)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가 그의 말씀에 잘 순종하여 아름다운 교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말씀대로 ‘자랑스런 삶’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인생은 소중하고 삶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을 존중히 하고 우리 삶의 귀함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 소중하고 귀한 삶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희를 향한 수고와 모든 아름다운 교훈을 통해서 너희들이 내 자랑거리가 되고 내가 너희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를 자랑하면서 내 얼굴에 빛이 나게 되어집니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 얼굴이 빛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누구를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누군가가 나를 생각할 때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자랑스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한 순간을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되는 우리의 삶인데, 부끄럽지 않게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런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짐승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무엇이 보람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아름다운 삶이기에 타락되어진 삶의 모습을 가르쳐 부끄러운 것을 자랑으로 삼고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다 하였습니다. 타락한 잘못된 삶은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삼고 그뿐만아니라 배를 하나님으로 삼습니다. 잘못된 삶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자랑스런 삶, 누가 우리를 기억할 때마다 참으로 행복한 삶이 되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어떤 삶이 자랑스러운 삶인가를 새겨봅시다. 
   
첫째, 경건한 삶입니다.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구원을 이루라’하셨습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경건한 삶이 자랑스러운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가진 자이겠습니까? 다 많이 배운 자이겠습니까? 이 땅위에 태어나 남들이 할 수 없는 큰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경건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삶입니다. 깨끗하고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며 하나님을 섬기며 불의와 죄를 멀리하며 살 때에 그것이 자랑스런 삶입니다. 신앙의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떳떳한 삶이요 당당한 삶이요 부끄럽지 않은 삶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가난한 것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없음이 때로는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졌다고 다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배워서 많은 것을 안다고 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않았으면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삶입니다. 가지고 배워 교만하고 어그러진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끄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 쇼핑센타에 부자고객을 위한 특별한 코너가 있다고 합니다. 소비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너무 소외시키고 위축시키지 않느냐 하면서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자본주의가 아니겠냐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가 좋은 옷을 입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옷을 입고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옷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네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네 생명이 먹는 것보다 더 소중하지 아니하냐’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속 사람이 어떤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고 자랑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가진 자들이 많이 써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입니다. 미국에는 고급품만 파는 큰 백화점이 따로 있습니다. 그곳으로 구경을 가는데 국민들은 어떤 백화점은 중류이하품을 팔고 어떤 백화점은 고급품만 팔며 그곳은 고급품을 사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고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사람들이 가는 백화점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부끄러워하며 나오는 사람없고, 고급백화점에 갔다오면서 자랑스럽다는 사람 아무도 없으며 다 자기나름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유함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뭐 하면 소외시키느니 하면서 자본주의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전제주의입니다. 가진 자도 없는 것처럼, 없는 사람도 가진 것처럼 하기 때문에 위선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가지고 누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건하게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진실하게 사는 것, 정직하고깨끗하게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깨끗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것이 보람찬 삶입니다. 
    
어떻게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항상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가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요즘 성인병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는 가운데 식이요법으로 음식을 바꾸면서 건강해진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공기가 깨끗해서 피곤치도 않고 얼마나 가슴이 시원해지는지 모릅니다. 서울 시내안에서 잘 먹고 잘입고 잘 써도 공기가 탁해지니까 금방 피곤해지고 졸립고 힘이 듭니다. 
    
초등학교때 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람이 하루에 쉬는 공기양이 50섬이라고 합니다. 하루동안 허파에 그렇게 많은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공기가 오염된 것이라면 많이 먹고 또 영양이 있다해도 무슨 소용입니까? 그래서 시골에 살면 건강해집니다.  숲속를 거닐고 산보할 때에 우리 육체도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신선한 공기가 우리 속에 들어가면 음식물이 갖고 있는 영양이 우리의 체질을 바꾸어놓고 그 요소가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경건하게 살고 어떻게 정직하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이 말씀이 무엇을 얘기하고 내가 고쳐야 될 것이 무엇인지 내게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고, 그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내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내 속사람을 새롭게 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경건해지고 우리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요 여호와를 묵상함으로다’. 복있는 사람이 자랑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우리가 경건에 이르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을 잘못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 한 것은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경건에 이르도록 힘쓰고 더욱 성결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구원이 완성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이를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복종함으로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이 그 가치와 속사람의 인격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것을 보면 선해지고 악한 것을 보면 악해집니다. 좋은 말을 들을 때에 우리 맘이 기쁩니다. 슬프고 악한 말을 들을 때에 우리가 악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면서도 가려볼 줄 알고 또한 그것을 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적당한 경건함과 긴장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삶이 흐트러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신앙의 생활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자신있어’라는 생각은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겸손하고 모든 일에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두렵고 떨림으로 성숙을 향하여 매진하라 그래서 구원을 이루어나가라’ 하셨습니다.
    
탈무드교훈에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줄에 서고 가난한 자가 되려면 가난한 자의 줄에 서라는 교훈이 있는데 해설을 보니 부자의 줄 끝에 선 사람이 가난한 자의 줄의 맨 앞에 선 자보다 낫다고 합니다. 부자가 선 맨 끝줄에 선 사람도 사고를 부자처럼 하는데 가난한 자의 선 줄 맨 앞에 있는 자의 사고도 가난한 자의 모습이 되어 가난함을 못 벗어난다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지게를 잡고 정치를 좌우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노벨상을 받는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줄을 잘 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다. 우리는 부자다’라고 생각하고 줄을 잘 선 것입니다.
    
우리가 선 줄은 어디입니까? 천국줄, 하나님줄에 섰습니다. 할렐루야! 부자줄입니까? 가난한줄입니까? 부자줄입니다. 부자면 크게 생각하고 꿈을 갖고 투자를 하고 베풉니다. 가난한 사람은 없으니까 언제나 아끼고 아끼다보니 남는 것도 없지만 언제나 가난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모험도 못하고 투자도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경건의 줄에 서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따라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 줄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경건된 모습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셨으니 나도 경건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경건의 줄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 안에서 새로운 성숙으로 매진되어져 갈 것입니다.
   
    
둘째, 수고가 헛되지 않는 삶입니다.
    
16절 말씀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수고를 많이 하고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면 그것이 뭐 자랑할 것이 남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성을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경성함이 허사로다’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아니함을 압니다.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결과가 있음을 바라봅니다. 거기서 우리는 보람을 찾습니다.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실 때에 그것이 우리의 간증이 되어지고 자랑이 되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까?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고 자랑스런 인생의 삶이 되려면 나를 기쁘게 하고, 내게 유익하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기쁘심이 무엇인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고 자랑스러운 기록이 되어집니다. 
   
예수님이 앉아 계실 때에 그들의 풍속에 의하면 물을 떠다 발을 씻겨드리고 기름을 부어 손님을 대접하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제자들이 ‘네가 해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고 내가 먼저 예수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느냐’고 하며서 모두가 자기를 세우다가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마리아가 삼백데나리온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 머리위에 부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하여 이 귀한 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을 괴롭히지 말아라 잘 하였도다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한 일도 기념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삶의 수고와 눈물과 땀이 보람차고 자랑스럽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비젼을 갖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을 위해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를 전도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못하면 다른 교회가 할 것입니다. 인간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돌들로 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쁨과 감사로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원망과 시비없이 감사함으로 진실함으로 할 수 있을 때에 거기에 수고와 보람된 가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떤 이는 일을 참 잘합니다. 그런데 말이 많고 조건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원망과 시비가 많습니다. 무엇때문에 하는 겁니까?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립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수고와 땀흘림을 보람차게 하려면 사람을 소중히 하고 생명이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곡되어지고 변동많은 세상에서 너희의 행하는 선한 일들의 수고가 세상의 빛이 되게 하라 그럴 때에 그것이 자랑스런 삶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고 모든 것의 모범이 된다고 하면 무슨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CEO의 위대한 경쟁자들은 다른 회사보다 잘 되는 이유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변화시킬 때 구매자의 욕구를 돋구고 생각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더 큰 일이겠지만 우리가 삶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패턴을 바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말, 작은 행위, 생각을 바꿔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자랑스러운 삶은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고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섬김의 삶입니다.
    
본문 17절 18절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섬김의 삶을 살 때 그것이 자랑스런 삶이 되고 기억할만한 아름다운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옛 속담에도 말을 타면 종을 앞세우고 싶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행복하고, 가지고 누려보려고 하는 것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나 남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손해나는 일인 것 같고 내가 버리는 일같으나 그것이야말로 나의 재산이요 자랑이 됩니다. 섬길 때에 우리속에 참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대구에 있을 때에 갱생의 집을 마련해서 교도서에서 나와 의지할 곳이 없는 분들을 모아 청년들이 6개월동안 늘 기도하고 교화원에 참여하도록 하고 또한 직업도 구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철야예배때에 학생들이 예배드리고 헌금을 하여 그 헌금으로 리야카를 하나 사주어 거기에서 우동을 팔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번 것을 가지고 선물을 사라고 하니 오래간만에 힘써서 모은 돈인데 우리를 도와주어야지 우리가 누구를 돕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 리야카를 다 뺏는다 하니 할 수없이 저들이 선물을 사서 고아원을 찾아갔습니다. 저들이 다 너희 동생들이다, 너희들도 다 저런 시절이 있었다, 부모형제 떠나 사는 저들이 얼마나 외롭겠느냐, 다 하나씩 나눠 주되 한 명씩 껴안고 얼굴을 맞대고 선물을 하나씩 나눠주라고 하니 어릴 때 자기 생각을 하면서 안아줍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빵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나도 줄 수 있고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찡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제 1호로 민간교도소를 경영하도록 우리 기독교에서 수탁되어진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994년 시작해서 민간교도소 법을 만들어 국회에 통과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출소를 2년 앞두고 있는 5백명을 정원으로 하고 상담자 1000명과 더불어 삼백억의 예산을 드려, 3만 5천평의 교도소를 짓기로 했습니다. 거기에서, 아침에 일찍 새벽기도하고 저녁에 7시부터 10시까지 성경공부와 특수활동을 하며 그들이 자게 될 청사와 그리고 일하는 공장과 이 문제를 개발하기 위한 상담소와 지원자들 1000명이 있는 곳과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을 가운데센타로 만들어서 생활하도록 하고, 가족과 헤어져 있는 그들을 한 주에 한 두번씩 가족을 만나게 하여 가정이 깨어지지 않게 부모들과 자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민간교도소를 이제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벌써 95개국 여러나라에 설립되었는데 브라질에 가장 모범적인 민간인교도소가 있다고 합니다. 교도소 생활후에 재범자가 5,60%가 되는데 이곳을 거쳐가는 사람은 재범자가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민간교도소의 통계가 되었습니다. prison fellowship이라고 해서 이것을 권장하는 교수가 한동대학 raw school에 강의하러 왔다가 이것을 운영하는 모든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이 재단을 아가페라고 이름을 지어, 섬김과 사랑을 통하여 그들이 내적인격을 변화시킬 때에 그들 속에 범죄가 진입하지 못하고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람찬 삶을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섬기기 위하여 너희 수고와 헌신을 위해 내가 제물로 나를 전제를 드리기 원한다’는 바울의 이 놀랍고 귀한 진리의 말씀을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기쁨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한국기독교가 이 사회속에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나가고,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춰지는 귀한 삶이 우리들 가운데 충만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서로 섬길 때에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너를 섬기고 너는 섬김을 받아 내가 너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서 기쁨을 받아 우리가 함께 기뻐하자’했습니다. 
    
이 세상은 패자를 짓밝고 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웁니다. 수많은 사람을 패자로 만들고 한 사람을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섬기면 함께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섬기고, 자녀들이 서로 섬기며, 이웃이 다른 이웃을, 또한 교회가 사회를 섬기면 우리가운데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게 자랑스러운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스런 삶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가 기뻐하고 내가 기뻐하고 네가 기뻐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짧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삶을 나눠주려고 하십니까? 우리의 부모님과 선배들은 위대한 업적을 이뤘지만 우리가 다 그런 삶이 될 수 없고 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가난하였지만 경건하게 사셨고, 우리 부모님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진실하고 정직하며 경건한 분이었다. 나는 오늘 가진 것이 많지 않고 배운 것이 많지 않지만 나는 내 일생동안 경건하고 깨끗하게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의 거룩한 기쁨을 자아내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성공적이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참으로 자랑스러운 삶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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