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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적인 유혹과 싸워 이기자 (요일 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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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인 유혹과 싸워 이기자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마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잇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한1서 2:15-17)

진정한 사랑은 나누어지지 않으며, 또한 독점적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두 여자를 향하여 “나는 당신들, 둘 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그 사랑의 고백을 믿을 수 있을까요? 

만일 어떤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상관없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랑의 고백을 믿을 수 있을까요? 

사람 사이의 사랑은 나누어지지 않으며 독점적입니다. 


영적인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나누어지지 않으며 독점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이치를 부인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함께 세상도 사랑하라고 유혹합니다. 
‘그게 뭐, 어떠냐?’고 유혹합니다. 
성도가 넘어지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고, 세상의 것들은 삶의 수단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사탄의 유혹 

마귀는 언제나 그럴 듯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외국잡지에 실린 담배 광고를 보십시오. 
카우보이가 멋진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저런 모습으로 담배를 피울 줄 알아야 진정한 남자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담배가 가져오는 폐해에 대하여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사탄은 항상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고 넘어뜨립니다. 

사탄이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것을 보세요. 

창3: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먹음직스럽지 않다면, 보암직스럽지 않다면, 탐스럽지 않다면 유혹이 되겠습니까? 
사탄은 행복할 것 같고, 만족스러울 것 같고, 기쁠 것 같고........그런 것들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참혹함에 대하여 일절 입을 다뭅니다. 


2. 인류를 향한 유혹 

요한l서 2:15-17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마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① ‘육신의 정욕’ 

사람이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욕. 수면욕, 성욕, 소유욕 등입니다. 
이런 욕구들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생존과 번성을 위해 필요합니다. 

식욕이 없다면 우리는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게 될 것입니다. 
성욕이 없다면 우리는 자손을 번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욕구들이 지나쳐서 탐욕으로 변하면 악이 됩니다. 
육신의 정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소유욕입니다. 

더 가짐으로 행복해지려는 욕구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소유욕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파트 평수를 늘려서 만족해 봤습니까? 
30평짜리에 살면 40평을 넘봅니다. 

저금통장으로 만족해 봤습니까? 
5천만 원 만들면 1억 원 아귀 맞춰놓으려고 합니다. 
소유욕에는 ‘이만하면 됐다’가 없습니다. 
따라서 더 가짐으로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모자람이 없었던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자꾸만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진다.’고 유혹합니다. 
재물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재물은 삶에 필요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② ‘안목의 정욕’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것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는 것이 욕심으로 이끌어져 갈 때 악이 됩니다. 
안목의 정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쾌락에 대한 욕망(성욕)입니다. 
쾌락에 대한 욕망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목마를 때 소금물을 마시는 것 같아 늘 갈증을 느낍니다. 
쾌락에 대한 욕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십니까? 

잠언 5:8-11절을 보겠습니다.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쾌락에 이끌려 가면 명예를 잃게 됩니다. 
쾌락에 이끌려 가면 수한이 짧아집니다. 
쾌락에 이끌려 가면 재물을 잃게 됩니다. 
쾌락에 이끌려 가면 육체에 병을 얻게 됩니다. 


③ ‘이생의 자랑’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뽐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3절 “세상 부귀영화와 즐겨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4절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가가임을 고백하길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은 알아주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인 김춘수는 ‘꽃’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들꽃도 이름을 불러주어야 존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흔하디 흔한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자기 이름을 불러주기를 욕망합니다. 
사람들은 인사를 나눌 때 “이름을 많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번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좀 더 다가와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의 떠남을 슬퍼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좀 더 직접적으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의 떠남을 가슴 치면서 애통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러고 보면, 사람이 알아준다는 것은 허무할 뿐입니다. 
성도란 하나님의 알아주심에 행복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3. 사탄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사탄은 40일을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시는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 때 어떻게 주님은 사탄의 유혹을 이겼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사탄의 유혹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4: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신명기 8:3절의 말씀입니다. 
또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유혹할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4: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 말씀은 신명기 6:16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할 때도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4: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신명기 6:13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려면 성도는 항상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2) 성령 충만으로 이겨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갈5: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3) 경건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성도는 경건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도 기도하고 10분 후에 바로 죄의 구렁텅이에 뒹굴지는 못합니다. 
유혹을 받고 난 다음 그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보다 유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상상해야 할 것과 상상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도는 볼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도는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도는 머무를 곳과 지나쳐야 할 곳을 구분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지난 2008년 11월 19일 동아 일보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3-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18.4%에 그쳤습니다. 
캐톨릭을 신뢰한다는 35.2%, 불교를 신뢰한다는 31.1%였습니다. 

그러면 개신교가 신뢰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교인들의 언행일치(42%)가 으뜸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의 ‘말씀 따로 행동 따로’의 삶이 우리기독교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다고 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거룩하게 사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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