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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사람 (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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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신 33:29)


지금 온 세계가 다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성취감에 행복해할 사람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자인 버락 오바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 행복할까요?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듀크의과대학교의 교수 조나단 데이비드슨 박사의 논문에 실린“대통령들의 정신 질환”을「뉴욕 타임스」가 요약하여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약 절반이 정신 질환에 시달린 병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우울증인데 고독이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대개 고독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울 증, 불면증, 심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태에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백악관 안주인들에게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소감을 모은 기사에서는, 트루먼 전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을‘호화로운 감옥’이라고 했고, 포드 전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을‘금붕어 항아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존슨 전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을‘숨을 곳이 없는 성’라고 했고, 레이건 전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을‘외로운 장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모든 표현이 백악관 생활의 고독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행복입니까?

백안관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곧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권력과 명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의 것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부와 권세와 지혜와 명성을 한 몸에 지녔던 솔로몬 왕은 전도서 1:2에 말하기를“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짧은 한 구절에 헛되다는 말이 다섯 번이나 반복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너는 행복자로다.”고 하셨습니다. 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살펴보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一. 여호와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옥의 영원한 형벌아래 놓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생명을 빼앗기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으로 인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의 짧은 생명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28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고귀한 생명을 우리는 값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싼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인류의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9에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전혀 깨닫지 못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누구나 올수 있지만 아무나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에 올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6:44에 밝히시기를“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만이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지금 하나님의 집 교회에 올 수 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2:3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신이시기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이 내안에 계신 사람만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주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내안에 성령님이 임재 해 계신 증거입니다. 

또한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이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8:15에 밝히시기를“너희는...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끌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행복자인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 무디가 어느 주일, 교회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한 거지 소년이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고 안내를 맡은 직분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무디가 그 소년에게 다가서자 직분자들이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얘는 안 됩니다. 예배분위기가 훼손돼요. 들여보낼 수 없어요.” 그러나 무디는 그 거지 소년의 어깨를 감싸 안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아해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무디는 강대상 위에까지 그 소년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 무디는 그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소년은 입장불가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오니까 성전안만 아니라 이 강대상 위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죄인인 모든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남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안고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가셨습니다. 이 소년이 입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날 성도들은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구원에 대한 감동과 감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곧 값없이, 이유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본문은 말씀하시기를“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하셨습니다.


二. 여호와께서 도우시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사무엘상 2:6~8에 밝히시기를“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6~7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두우실까요? 

첫째, 주님 앞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이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모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눈먼 소경은 더듬거리면서도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어떤 중풍병자는 네 사람이 맨 들것에 들려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혈루병으로 고통당하던 한 여인은 정해진 관례를 어기면서까지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당시 혈루병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가까이 갈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이 정성을 보신 예수님은 여인의 혈루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1에 말씀하시기를“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은 기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2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4:6~7에는“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7~8에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가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8~9에 성도의 삶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석유 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부호였던 록펠러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원금까지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밀린 임금을 요구하며 폭도로 변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린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까지 생각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기업을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신앙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나임의 말씀인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어려움에 처해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 해쳐나갈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습니다.“너무 염려하지 말고 낙심치 말아라.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노라.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포기하지 말고 땅을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을 가지고 폐광을 더 깊이 파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땅속에서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석유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록펠러는 실패를 딛고 일약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나무꾼이 하루 종일 장작을 팼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장작을 팹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1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다시 1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이렇게 쉬엄쉬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이 패놓은 장작을 보니 쉬면서 일한 나무꾼의 장작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약이 오른 나무꾼이 묻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나는 한 시도 쉬지 않았고, 자네는 쉬엄쉬엄 일했는데, 어떻게 자네 장작이 더 많을 수 있는가?”

그러자 다른 나무꾼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다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의 날을 갈아야 합니다. 성공하기 어려울 때 가도해야 합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일 때 기도해야 합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三. 여호와께서 영광스럽게 하시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대적을 이기게 하시므로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승리자에게는 언제나 영광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시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약한 자, 외로운 자, 병든 자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며 멀리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6~29에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정을 이룬 자식이 생활고에 허덕인다면 부모님의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떠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노부부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세 아들 가운데 늘 둘째 아들 집에 와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둘째가 넉넉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첫째와 셋째 아들에 비해 생활이 형편없습니다. 둘째가 남달리 부모님께 잘해드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착한 효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에게 머무시는 까닭은, 

둘째 아들 집에 어머님이 머물고 계시면, 넉넉하게 살고 있는 첫째와 셋째가 자주 부모님을 뵈러 옵니다. 올 때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용돈과 먹을 음식을 많이 들고 옵니다. 이렇게 첫째와 셋째가 가져온 것을 둘째 가족과 함께 먹고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를 남달리 사랑하셔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높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고자 마태복음 11:28~30에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는 신분의 차이가 있습니다. 먹고 살아가는 외적인 것은 같지만 신분의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자녀를 돕지 아니하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우시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은 그 누구도 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여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연단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시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시므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보호와 복을 받아 누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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