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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기적의 출발인 감사 (요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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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출발인 감사 (요 6:1~13)

    
지난 수요일 일간지에 조그만 기사 하나가 났는데 혹시 여러분 가운데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개인과 단체 중에서 제일 많이 기부한사람들의 명단을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서 그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을 뽑아서 9명의 이름은 다 밝혔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5년 동안 8억5천만을 내서 개인 1위에 오른 기부자, 이 사람은 공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충 공개하기를 20대의 여성 탤런트다. 이렇게만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본인과 가족이 밝히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탤런트 소속사의 간절한 요청으로 이것을 밝히지 않다보니까, 여러 곳에서 문의가 들어왔고 엉뚱한 사람이 이름이 오르기도 해서 결국은 이 소속 탤런트사가 원하는 언론사에게만 알리기로 하고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기적의 도선관을 만들기 위해 공동 모금한 계좌에 천만원의 기부를 시작으로 해서 시작된 이 탤런트의 기부는 지난 5년동안 8억5천만원을 기부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기부할 테니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부모의 심신당부로 그동안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출연료나 광고료로 받은 5백만원에서 2억까지 수 십 차례에 걸쳐서 기부를 했습니다. 소아암 어린 환자들, 또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써달라고 하면서 한 번도 얼굴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에는 이 탤런트의 도움을 받은 6명의 소아암 환자들이 이 환자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온 이 탤런트가 책에 서명도 해 주고 또 편지도 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독서운동을 벌이는 ‘행복한 아침 독서’에는 3년 동안 1억원을 후원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누군지 아세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탤런트를 시작한 우리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8억5천만원을 기부하고 선을 베풀었던 이 딸, 우리가 흔히 이 탤런트를 국민 여동생이라고 부릅니다. 얼굴이 예쁘고 또 연기를 잘 해서 국민여동생이 아니라 선생을 베풀고 남의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눈 감지 않고 그 곳에 자기의 돈을 내어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여동생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나눔의 계절이 아닙니까? 나눔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눔이 아름다울까요?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나는 돈이 없고 직장이 변변치 않고 가진 것이 없고 나는 아프고,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의 삶을 가만히 보면 풍요롭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가리켜,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유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소유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한다면 소유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다 불행한 것일까요? 소유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존재입니다. 존재는 소유와 반대이지요. 존재는 태도이고 자세입니다. 우리가 많이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거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해 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존재와 소유를 혼동합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행복하니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매일 감사했더니 내 삶이 행복해 졌다고 고백하는 사람, 이런 사람의 삶에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 연출 됩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데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복음을 증언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장해 했었습니다. 저녁이 다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떠날 줄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있게 되자 예수님의 관심은 많은 몇 천 명의 사람들의 배고픔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배고파하고 뭔가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감하시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먹을 것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의 관심인 배고픔을 표명합니다. 이때 빌립이 옆에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지금 돈으로 약 2000만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배고픔과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표명했지만, 빌립은 돈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 합니다. 양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 합니다. 소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안드레가 그 얘기를 듣고 예수님에게 달려옵니다. 예수님, 어린아이가 혼자 먹으려고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있는데 이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직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미 절망해 버립니다. 이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하지요. 

빌립이 그랬고, 안드레가 그랬고, 숫자를 생각하고 소유를 생각한 절망하고 좌절했던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들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눠주라고 이야기 합니다. 기적은 여기에서 일어났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이 먹고 남은 광주리가 12광주리였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성경 어디에 읽어봐도 5,000명이 12광주리가 남은 다음에 감사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나눠주기 전에 기적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작은 것 들고 기도했더니 감사했더니, 기적이 벌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구절이지만 오늘 주님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은 다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의 관심은 배고픈 사람들의 필요였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남들의 필요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훨씬 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가정의 상처로 인하여 직장을 잃거나 또는 사업이 안 돼서 부부간의 문제 때문에 자녀의 문제 때문에 육신의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조금만 늘 우리의 관심은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나는 돈도 없는데 직장도 별로 안 좋은데, 사업도 잘 안되는데 몸도 아픈데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데, 우리들 자신에게 이기적이고 나 중심에 관심을 보이지만 예수님은 늘 다른 사람들의 관심,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늘 눈을 돌리셨습니다. 말씀을 증언하시면서도 배고파하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보시고 관심을 가지셨던 예수님! 제자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예수님, 이 사람들이 배고픈 것 같은데 뭐 먹을 것 좀 주세요. 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여러분의 관심을 여러분 자신에게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돌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늘 우리들 자신의 필요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남들의 필요에 눈멀어 있습니다.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누가 될 수 있을까요?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누군가, 아버지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쌍둥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 중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어느날 신하들을 다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쌍둥이 두 아들을 불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왕위를 너희 둘 중에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할 텐데, 왕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고 고난스러운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러나 너희 둘 중에 누군가가 되어야 하니 이제 숙제를 낼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끝까지 가면 신하들이 여럿 있을 텐데 너희들이 그 곳까지 가서 그 신하가 주는 짐을 지고 여기 왕국에 다시 되돌아 올 것이다. 

이 두 아들이 왕국을 떠나 그 나라의 끝까지 걸어갑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까 세상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중에 제일 힘든 것은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다가 보니까 한 과부가 장애인이 외아들을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들이 상여를 쫓아가면서 우는 장면을 보고 동생은 저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그런데 형은 이야기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갈 길이 바쁘다. 우리나라 끝까지 가서 거기서 신하가 주는 그 짐을 가지고 와야 한다. 그러나 동생은 이야기 합니다. 우리, 그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줘야 하지 않습니까? 형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가다가 보니까, 어느 한 논두렁에 마차가 쓰러져있고 그 마차 밑에 농부가 깔려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마차를 들어 사람을 꺼내는 장면을 보고 동생이 쫓아가서 도와줍니다. 그랬더니 형이 꾸지람을 합니다. 갈 길이 먼데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여기서 지체할 수 없다며 이끌고 갑니다. 

결국 그 나라의 끝에 가서 신하들이 주는 커다란 짐을 지고 왕국으로 돌아오는데 또 다시 그런 여러 가지 종류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형은 그 때마다 가자고 이야기 합니다. 형과 동생의 의견차이로 형이 먼저 왕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동생은 오던 길에 만난 사람들을 다 도와주고 며칠 후에 왕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형과 동생을 따라갔던 신하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다 보고를 합니다. 왕이 두 아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백성들의 고난과 관심과 필요에 눈을 감았던 큰 아들 보다 누군가의 아픔과 고난의 삶에 관심 갖고 도와준 작은 아들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정말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우린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데 내 코가 석자인데 이것은 사치고 불가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돕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없음에도 있다면, 힘들고 어렵고 나 자신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도운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넉넉하게 채워줄 수 있는 기적을 연출해 주십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늘 숫자에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오늘날에 2천만원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빌립은 바로 우리를 상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는 월급이 이것밖에 안되는데요. 하나님, 나는 우리 집 평수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안 되는데요. 나는 은행에 잔고가 없고 나는 너무너무 숫자가 부족합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숫자를 이야기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마음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숫자와 관계없이 마음과 그 태도를 올바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거지가 될 수밖에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에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이 0.3초의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어마어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읽은 글이 생각이 납니다. 뉴욕에 있는 어느 방송국에 근무하는 어느 여자 앵커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피츠버그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갔습니다. 수속을 다 마치고 비행기에 탔는데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다가 갑자기 서는 것이었습니다. 한 5-6분 서 있다가 갑자기 기장이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비행기에 기체 결함이 있는 것이 발견이 돼서 비행기가 이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계류장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다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앵커는 뉴욕으로 돌아가 생방송을 진행을 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욕도 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환불을 받거나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게 됩니다. 앞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하다 보니 꼴찌로 하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운이 나쁘구나, 뭐가 되는 일이 없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감사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이야기 합니다. 내가 도대체 감사해야 할 이유가 뭐냐? 내가 고마워야 할 이유가 뭐냐? 라고 스스로 묻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 관계하는 직원과 이야기 하는데 이 직원이 죄송합니다. 이 비행기가 다 수리가 되면 타실 수 있는데 언제가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때 이 앵커가 그 직원에게 이야기 합니다. 괜찮습니다. 다행 이예요.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왜, 감사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만약에 이 비행기가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사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환불을 받고 다른 비행기로 가기 위하여 걸어가는데 함께 했던 어느 회사 사람들이 모여서 햄버거를 먹고 있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네들은 뉴욕 외곽에 있는 어느 개인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가려고 하면 이 번호로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하나 줍니다. 그 명함을 받고 가면서 속으로 고마워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이제 먼 곳 게이트에 도착해 그곳에서 표를 살려고 했더니 불행하게도 그 비행기에 마지막 자리를 앞사람이 타고 맙니다. 그곳에서 속으로 투덜댑니다. 그래도 이곳까지 운동하면서 걸어오지 않았느냐? 마음 속 깊은 곳에 고마워하자 감사하자 분명히 뭔가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 한 10분 쯤 앉아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가방을 들고 뛰어 들어가 비행기를 탔는데 화장실 앞쪽 맨 뒷 자석에 앉았습니다. 속으로는 화장실 앞이 뭐야 냄새나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감사하자, 고마워하자 하고 이제 눈을 감고 감사하고 있는데, 잠시 후에 승무원이 오더니 하는 말이 가방을 들고 저를 쫓아오세요. 왜 그럽니까? 했더니 맨 앞쪽 1등석에 한 자리가 비었으니 거기 앉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가방을 들고 1등석 자리에 앉아 감사합니다. 정말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고맙다는 말을 했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자리가 마련이 되었고 늦지 않고 뉴욕에 도착하였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하는 말이 0.3초 밖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쳐 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면 품을수록 여러분의 삶의 현실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집니다.

실제로 두 부류의 의사를 놓고 실험했다고 합니다. 10명의 의사와 또 다른 10명의 의사 두 부류에게 어떤 실험을 했는가 하면, A라고 하는 바구니에 과일과 사탕과 초코렛 등 먹을 것을 담아 주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진료는 탁월했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써서 주었고, 또 다른 부류의 의사에게는 아무런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카드 한 장에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만 써서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고맙습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칭찬했던 그룹의 의사의 진료는 똑같은 실력의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수고했습니다.”라고 만 썼던 의사보다 훨씬 더 정확한 진단과 진료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이 도파민은 언제 나타나는가 하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라고 하는 이런 적극적이고 좋은 말을 들을 때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 또는 내가 할 때 이 도파민이 배출이 되어 사람의 얼굴 모양이 환해지고 의기가 생기고 적극적이 되고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드레날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나오는 것이냐 하면, 화를 내거나 불평 불만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평불만을 하게 되면, 이 아드레날린이 나와 침이 마르고 입이 마르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가슴이 뛰는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 말은 우리의 뇌에서 도파민이라고 하는 좋은 신경전달물질을 나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은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를 드립니다. 양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객관적으로 많지 않아도 하나님 내게 남편을 주시고 사랑하는 아내를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이 불경기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도판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나오게 합니다. 하나님은 거지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아름답고 좋은 것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이호정 집사님, 이태정 집사님 형제되시는 이유정 집사님이 며칠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이 올해 환갑이세요. 술 담배도 안하시고 아주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주무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로님들과 교우들이 그곳에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는 저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새벽에 제가 일어났는데 조금 몸이 안 좋아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살아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유정 집사님이 그렇게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셨는데 눈 한 번 제대로 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언제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까? 부모님이 계시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일터가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까?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과거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지금보다 미래를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얼마 되지 않는 것이지만, 감사를 했더니 몇 천배의 기적을 이루셨듯이 여러분의 삶에 주변에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순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몇 천배의 기적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 여러분의 삶이 기적으로 바꾸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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