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 118:17~21)

  • 잡초 잡초
  • 274
  • 0

첨부 1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 118:17~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지내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모쪼록 오늘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라는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 위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실물경제가 침체되고 그 경제적인 영향이 그대로 성도들의 가정과 기업과 일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어져 가는데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경제 한파로 얼어붙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고통과 아픔의 문제들을 여전히 안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로 고통 받으며 간절한 치유의 소망을 가지고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경영하는 사업의 길이 막히고 자금 압박으로 인한 부채의 문제가 점점 늘어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 취업과 진학의 문제들로 인한 고민들도 있습니다. 

중보기도실에서 안타까운 기도 제목들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제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아파서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제대로 기도가 되어지지 않아 힘겨운 기도를 드리고 내려올 때가 많습니다. 

감사절이 감격과 기쁨으로 드려지는 온전한 감사가 되면 좋을 것인데 때론 억지 감사를 해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진실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야 하는 것이 마땅한 성도의 감사이기에 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감사가 진실한 고백으로 드려지는 감사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저는 오늘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렇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 저와 함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고 살펴보면서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시인과 같은 진실한 감사가 회복되고 고백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편은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마침내 성전 건축을 마치고 그 낙성식을 할 때불려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시편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학개서의 말씀을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학개서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역사가 여러 가지 방해와 어려움으로 중단되었고 15년 이상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학개 선지자는 유다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고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에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에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핑계하면서 뒤로 미룬 채 방치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학개 선지자가 외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하였던 것들이 무엇이 남아있느냐는 것입니다. 너희의 모든 수고가 헛되었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불어버리셨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촉구하기를 너희들은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재건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은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하시면서 모든 백성들이 성전 재건의 역사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서 성전 재건의 역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학개 선지자는 이렇게 축복의 말을 선포했습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모든 백성들은 새로운 변화의 삶으로 다시 시작하기를 결심하며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재건된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시가 오늘 본문의 시편인 것입니다. 
시편118편 1절과 마지막 29절은 똑 같은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시오. 그리고 꼭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그 사랑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인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본문 2절-4절에서 이런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신학자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나 공의보다, 그 자비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을 맛보지 않고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선포하십시오. 그러나 무작정 아무 의미없이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포하는 이유가 여러분들의 고백 속에 담겨져서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고백입니까? 

첫째, 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바벨론의 70년 포로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강제 이주되어 바벨론의 포로로 강제 노역에 끌려 다니며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가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다시 회복하시는 은혜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음을을 들으셨습니다. 응답해주셨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고 바사왕 고레스가 즉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여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 민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7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고통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렘33:3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개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혹시 고통 중에 계십니까? 믿고 구하십시오. 부르짖으십시오. 반드시 응답하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낫고 방백을 의지함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대적을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하시고 끊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13절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성전재건의 역사를 시작하였을 때 사마리아인들의 공격과 방해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 방해로 성전 재건은 중단되고 말았지만 결국 유대 백성들은 그 모든 방해를 극복하고 성전 재건의 역사를 이루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권력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계속 실패하고 넘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더 의지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공격과 위험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7절과 8절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데 자기 의와 고집에 빠져있는데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편에 권력의 편에 선 것은 아닌가를 말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편에 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편에 서시는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성전재건의 역사를 방치하고 자기 일에 빨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학개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곡식과 열매를 불어버리시는 징계를 하셨지만 죽음에는 내 몰지 않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 여전히 문제가 많고 떠나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 내몰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방의 우겨쌈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고통이 있지만 망하게 하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게 하시고 가난과 아픔과 실패들을 허락하시지만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드넓은 광야와 같은 곳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열방이 - 모든 나라가 벌 떼처럼 일어나 자신을 에워싸고서 대적하고 있습니다. 대적자들이 자신을 밀쳐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겨우 목숨을 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인은 시의 처음과 마지막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시인이 이렇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시인에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을 했거나 어떤 큰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인은 지금 굉장히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회복하시고 세워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참으로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계속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었고 우리의 삶이 풍요하지 못했기에 힘들었습니다. 나라 안팎에서는 날마다 불안하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객관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감사할 꺼리가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평범한 감사는 고사하고, 억지 감사를 하려고 해도 쉽게 머리속에 떠오르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로 징계를 주시지만 완전히 망하게 하시지는 않으시는 것을 믿습니다. 성도들은 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질을 바라보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처럼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말씀을 정리합니다.
시인은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라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진정한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주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인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형편이 가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오늘의 내 모습 그대로를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평강 가운데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에 영적인 풍요를 가져다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으로 풍성히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