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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때 (살전 5:16~18, 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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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에너지

(살전5:16~18 빌1:12)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이 기록한 14권의 서신을 보면 은혜와 평강, 감사라는 말로 서신의 서두를 시작한다. 그 중 감사한다는 말이 들어간 서신은 모두 8권이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디모데후서, 빌레몬서 등이다. 그러고 보면 바울은 감사를 생활화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대개 그 감사의 내용은 ①주를 믿는 성도들과의 교제 ②그들의 믿음이 전파되고 ③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감사였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유익보다는 성도들의 믿음 생활을 생각하며 감사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울의 삶의 중심은 성도들 그리고 교회였다.

고전1:4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엡1:16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빌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의 감사는 어디를 보든지 성도에 대한 것이었다.


왜, 이렇게 바울은 삶의 중심이 오직 성도와 교회였을까?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신랑 그리스도께 순결한 신부를 소개하는 중매장이라고 자처했다. 그래서 성도는 존귀하고 소중하다. 성도가 믿음으로 서 있을 때 너희들과 교회에 대해서 셀 수 없는 감사를 반복한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권면에 앞서 감사의 표현을 제일 앞세우는 바울! 

그는 믿음의 사도, 소망의 사도, 사랑의 사도이면서 하나 더 붙인다면 감사의 사람, 감사의 사도였다. 그러므로 살전5:18은 우리에게 힘있게 다가온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 생활은 성도의 길이요,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삶이라고 수용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 범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Every Thing이다. 이것은 감사가 되고 저것은 감사가 안되는 선별의 뜻이 아니다. 범사란 All Circumstances, 즉 모든 환경들, 상황들, 모든 경우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직 할 수 있는 성도의 선택은 삶이 어떠하든지 감사 생활이라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은 이런 경우를 담고 있다. 


1. 좋은 환경의 때에 감사하라. (신8:14)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이 형통하는 것은 좋은 때이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 주어질 때 사람은 이상하게도 어리석어진다. 감사할 것 같은데 감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 자신을 잊어버린다. 

신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라고 하였다.

교만이 문제다. 땅에 잘 될 때 교만이 감사를 가로막을 수 있기에 잘 될 때 감사해야 한다. 


2. 안되는 환경의 때에 감사하라. (민14:27)

범사의 삶은 잘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큰 위기일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될 때가 더욱 삶에 대해 진지하고 하나님에게 더욱 매달리는 삶을 산다. 안 될 때 잠시 내 마음에 불만이 들어오고 원망이 찾아오지만 그 안되는 것이 곧 나를 실패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안되는 것 때문에 잘 될 때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알고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원망이라는 것에 마음을 내주지 말고 안되는 것을 감사하라. 원망하다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민14:27)


3. 모든 것을 상실하는 환경의 때에 감사하라. (욥1:21)

잘 될 때 보다는 안 될 때가 상황이 어렵고 안될 때보다 잃어버렸을 때 상황은 더 어렵다. 인간적으로 감사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특히 소중한 것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릴 때 상심이 크다. 잃어버리는 경험은 사람을 낙심시키고 절망하게 만든다. 허나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기에 낙심되는 사건 앞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욥1:21에서 욥은 물질도 잃어버리고 10명의 자녀도 잃어버렸다. 한꺼번에 아내마저도 잃고 건강마저도 잃었다. 그런데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소서.” 하고 어리석은 원망을 하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는 아들 둘을 여순 반란 사건에서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는 감사하였다. ①죄 많은 세상에 더 죄 짓지 않음을 감사하고 ②아들을 먼저 천국에 보낸 것에 감사하고 ③자기의 집에서 순교자가 나온 것에 감사하고 ④믿음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⑤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랑하고 양아들 삼은 것에 감사하고... 잃어버리고도 감사하였다.

매튜 헨리는 강도를 만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때 그는 4가지 감사를 깨달았는데 ①이전에 도둑 맞지 않음을 감사하고 ②생명을 빼앗기지 않음을 감사하고 ③무엇인가 아직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④자신이 도둑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였다.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극단의 행동을 하며 좌절감, 우울감에 떨어져 버리기 쉽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심을 기억하며 감사로 나아가야 한다. 잃어버리므로 천국을 얻고 잃어버리므로 지옥을 피하는 복을 받는 사람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4. 고난의 환경 속에 있을 때 감사하라. (시119:71)

일상의 삶 속에서 고난을 피하지 못하고 항상 고난 속에 사는 이들이 많다. 건강 문제로, 자녀와 가정 문제로, 사람들의 조롱과 누명 씌움 때문에 고난 속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그 고난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고난 때문에 철이 든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은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축복을 가져다 준다. 

몽골의 왕인 징기스칸, 그의 이야기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9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 백성은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나기도 했다. 나는 나를 극복한 순간 징기스칸이 되었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 대제국을 정복한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고난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므로 그는 대제국의 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릴 적 부족에서 쫓겨나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문제에 눈을 뜨고 그 죽음의 고개를 뛰어넘는 고난을 안고 살았다. 그것이 그를 위대한 황제로 일으킨 힘이었다.

성경 속 인물인 요셉을 보라. 야곱을 보라. 그 면면을 볼 때마다 공통점은 고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고난이 새로운 삶을 도전하고 계획하게 하고 결국 쓰임 받은 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라. 고난의 삶을 감사하며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라는 복음송의 내용처럼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을 미리 보면서 감사하라. 고난은 나를 도약시키는 디딤대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함은 바울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감사의 삶, 그것이 위대한 삶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감사는 인생의 에너지다. 기쁨과 행복의 에너지다. 감사로 끝나면 그 에너지는 소극적인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바울은 그 감사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며 복음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적극적 에너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감사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교만, 원망, 낙심, 고통을 박살냈다. 그런데 그 감사의 에너지를 땅의 행복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살리는 천국의 에너지로 사용하였다. 

바울의 인생 중 가장 밑바닥인 두 가지의 옥중 생활을 보라. 행16:25에서의 빌립보 감옥에서의 첫 번째 옥중 생활 중 기도하고 찬미하는 것은 감사의 에너지 때문이다. 매를 맞고 옷을 찢고 발을 착고에 채워 빌립보 깊은 옥에 갇힌 바울이 감사의 에너지를 기도로, 찬양으로 표현할 때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겨지는 창조의 다이나마이트가 되었다. 잠을 자던 간수는 감동을 받아 구원을 배우게 되고 그의 가족은 다 세례를 받게 되었다. 

두 번째 옥중 생활인 로마! 거기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빌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옥에 들어가 갇혔지만 바울은 로마의 시위대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감사의 에너지를 가지고 사는 바울은 옥 안에서 좌절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감사의 삶을 뛰어넘어 그 에너지로 옥 중안을 바꾸어 놓는 복음의 에너지로 폭발시켰다. 

바울의 삶에 나타난 그 감사의 영성은 4차원적이다. 우리는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모든 것을 가졌을 때도 감사를 잊는 저차원의 삶인데 바울은 감사를 복음의 에너지로 사용하는 하늘의 사람, 하늘의 정병인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를 힘입으면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다.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의 힘을 입으면 넉넉히 감사하고 풍성하게 감사할 수 있다.(골3:17) 추수 감사절의 감사가 하루 1,000원 감사를 한다면 365일 감사는 365,000원이다. 500원 감사하면 182,500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감사할 수 있다. 

나는 아예 호소하기로 작정했다. 추수감사헌금 1억이 나오게 해주세요. 오늘 배운 감사의 방법으로 식구수대로 감사하는 가정이 100 가정이 순종하면 된다. 추수감사헌금 1억이 나오면 베트남도, 중국도, 건축 사역도 요구하는 선교 사역을 지원할 수 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의 힘을 입으면 그 감사의 에너지가 모아져 바울처럼 창조적 일을 시도할 수 있다.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직장과 삶의 현장을 바꿀 수 있다. 

감사의 삶에서 도약하여 하늘의 사람으로 서자. 모든 것을 변화시켜 놓은 개척과 창조의 사람이 되자. 그 에너지가 감사 생활이다. 아무리 핑계할 것, 불평할 것이 많아도 감사로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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