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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환경을 초월한 감사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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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초월한 감사 (합 3:16~19)


어떤 가정에 남편이 좀처럼 변화되지 않고 결혼한 지 10년 동안 계속 술에 찌들어 사는 그런 가정이 있었답니다. 아내는 교회에 나가서 남편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퇴근시간이면 술에 취해서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옵니다. 

어느 날은 또 술 취해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있는데 부인은 너무 서럽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동안 이렇게 내가 술 취한 남편하고 산다는 것이 너무 재미없고, 인생의 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설움에 북받쳐서 울면서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보니 어느 날 지난 주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목사님 설교 말씀에 “잘 안 되도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술 취해서 들어와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감사할 것이 뭐 있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아! 이것이 감사하다. 옆집에 아줌마는 남편 일찍 여의고 혼자 사는데, 참 힘들게 사는데 나는 이렇게 믿음직한 남편이라도 있으니까 의지할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 비록 술을 먹어서 그렇지만 이런 남편이라도 있으니까 그래도 감사하네요. 하고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또 뭐 감사할 것이 없나? 하고 생각해 봤더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술이 아무리 취해도 자기 집은 꼭 찾아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안 가고. 그것을 생각하니 또 감사한 조건이었습니다. 또 뭐 감사할 것이 없나 생각했더니 술은 좋아하지만 여자는 자기만 좋아하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또 뭐가 감사한가 생각했더니 다른 남자들은 술 취해 들어오면 집안 기물도 부수고 아이들도 자는 거 깨워서 괴롭히고 온가족을 힘들게 하는데, 우리 남편은 술 취해 들어오기만 자는 겁니다. 그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또 감사의 조건을 찾았더니 우리 남편은 이렇게 술을 좋아해도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하니 또 감사했습니다. 또 없는가 생각했더니 우리 남편은 이렇게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와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정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합니다. 회사를 결근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 감사한 것이 없나 생각했더니 토요일이면 술을 더 많이 먹고 들어와서 주일까지 계속 잔다는 것입니다. 집도 하루 종일 지켜주고, 교회 가는데 방해가 안 되니 그것도 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히죽 히죽 웃으면서 감사하고 있는데 남편이 자다가 깨었습니다. 목이 말라서 물 좀 달라고 하는데 보니까 부인이 웃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부인이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그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나도 그럴 줄 알았으면 일찍 좀 술도 끊고 예수 믿어야 하는데, 나도 이제 앞으로 당신이 그렇게 원하면 술도 끊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이렇게 해서 이 아내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는 어려웠는데 오히려 감사하니까 너무 쉽게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능력인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출발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면 우리 삶에 변화를 겪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늘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감사하면 물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 영혼에 기쁨이 있고, 우리 가정이 행복이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지수는 곧 행복지수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감사하느냐? 그것과 행복의 척도도 그와 비례하는 것입니다. 한번 저를 따라해 볼까요?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불평하면 불행해진다.”

행복해지는 비결은 자꾸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들을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것이라도 감사할 때 점점 감사할 조건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촛불을 놓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전깃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깃불을 놓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천국의 영광스러운 빛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점점 더 수준이 커집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정말 감사가 가능할까? 늘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하박국의 감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박국의 감사는 절대적인 감사요, 초월적인 감사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감사는 조건부입니다. “~~때문에 감사합니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해서 감사한 것입니다. 집을 잘 사서 감사한 것입니다. 사업이 잘 돼서 돈을 벌어서 감사한 것입니다. 건강해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신앙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감사. 이것이 바로 하박국의 감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런 것을 느낍니다. 인천공항을 향해 가다보면 비도 부슬부슬 오고 안개도 끼고 구름도 껴있습니다. ‘이래가지고 오늘 비행기 타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공항에 가보면 비행기가 뜹니다. 비가 내리는데 비행기가 뜹니다. 비행기가 조금만 이륙해서 고도를 높이면 구름 위로 비행기가 올라갑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비행기 창문 밑으로 구름이 깔려있습니다. 그 아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름 위는 어떻습니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그 높은 아무 저항 없이 비행기는 고요하게 날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보면 초월적인 감사, 절대적인 감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는 세상 삶에 늘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습니다. 좋은 일 당하면 감사합니다. 합격하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하거나 질병이 찾아오면 감사하기 어렵고 감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건부의 감사입니다. ~~ 때문에 감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의 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을 가리켜서 감사의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이 살 때는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이 신흥강국으로 일어나서 애굽을 제압하고 온 세상을 평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이 그 강한 군사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들어오기 시작해 들어오는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그 침공의 소문을 듣고 유다 백성들은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시대, 바로 그 고통의 시대, 그 절망의 시대에 오히려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시대에는 흉작이 들어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마저도 바벨론군사들이 쳐들어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포도나무 열매하나, 무화과나무 열매하나, 우리의 소 한 마리, 남는 것 없이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박국 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나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16절, 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 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어찌 보면 없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섯 가지가 열거가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소출이 없으며,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도 없고 양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없습니다. 참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박국은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는 이제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성경 본문 18절, 19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환경을 보거나 주위 여건을 보면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어려운 위기 가운데서도 오늘도 이 백성을 지켜주실 그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때문에 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그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그 힘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의 기자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그를 은혜의 경지로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높은 곳이라는 것은 은혜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재로 인해서 그는 이제 이 모든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은혜의 경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나는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신앙은 초월적인 신앙입니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상황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욥의 신앙과 감사가 하박국과 비슷한 것입니다. 욥도 동방의 의인이었고, 부자였지만 그는 사단의 시험 때문에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열 자녀를 잃어버리고 수많은 재산과 양 떼들을 다 잃어버리고 건강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몸을 기왓장으로 긁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욥의 아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욥을 가리키며 “그런 하나님을 왜 믿느냐?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재난도 주시는데 내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원망할 수 있냐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 찬양과 감사를 변함없이 올립니다.

그것이 욥의 초월적인 감사였습니다. 물론 그 사단의 시험이 끝났을 때 욥은 그가 처음에 받았던 것보다 꼭 두 배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 또한 감사의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늘 도망 다니는 그런 신세였습니다. 그는 때로 광야에서 전전하고 동굴 속을 헤매고, 굶주리고, 핍박을 받고, 참 제대로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들은 늘 감사의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136편을 보니까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감사는 전천후 감사입니다. 절대적인 감사였습니다.

사도바울 또한 감사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습니다. 때로는 배를 타고 가는데 배가 풍랑을 만나서 뒤집어지기도 하고,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수도 없이 맞습니다. 그는 조롱을 당합니다. 굶주립니다. 그럼에도 바울서신을 보면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절반을 사도바울이 기록했는데 그 책들을 보면 다 감사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는 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그는 이제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나중에 이 가시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제 페르시아 제국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이 국무총리가 되니까 페르시아사람들이 이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였습니다. 그가 늘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왕에게 아부해서 "이제 왕 이외에 사람에게 기도하거나 절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자 굴에 던져 넣읍시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닥친 위험을 알면서도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감사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환경에 영향 받지 않습니다.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신앙, 이것이 진정한 초월적인 감사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감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다윗이니까 그렇지, 그건 하박국이니까 감사하지,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이나 소유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그런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내 안에 그런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윗도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늘 감사하는 신앙,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초월적인 감사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전남 여수에서 애양원이라는 나환자들을 위한 기관을 운영했던 목사님입니다. 너무 너무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는 6.25 때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분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인이와 동신이라는 두 아들이었습니다. 이 두 아들이 여수 반란 사건 때 공산당들에게 붙들려서 고문을 받다가 끝까지 예수를 믿겠다고 하다가 총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렸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이 손양원 목사님이 나오셔서 감사의 답사를 하시는데 뭐라고 답사를 하시냐면 감사를 이야기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로 허다한 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이런 보배로운 자녀들을 내게 맡기셨으니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세 번째는 6남매 자녀들이 있는데 그 중에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네 번째로 한 아들이 순교해도 감사한데 두 명씩이나 순교하게 하시니 그것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는 예수 믿다가 죽는 것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에 맞아 순교하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는 우리 두 아들이 미국에 유학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가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건 초월적인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두 자녀들을 잃은 그 순간에도 손 목사님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 죄가 용서받고 사탄의 결박에서 자유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하면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백성은 이미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미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어서 가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는 주님과 영원히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천국에 가면 황금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12가지의 수정과 보석으로 모든 집이 지어지고 모든 것이 만들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하면 이런 황금길, 보석으로 지은 집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천국이 아름답고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원리가 되고 법이 되고 양식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서로가 미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뜻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별하는 일이나 질병에 걸리는 일이나 죽음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천국 되는 것은 황금이나 보석 때문이 아닙니다. 거기에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많은 분들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주식이 반으로 폭락해서 많은 손실을 입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실물경재도 어려움이 와서 피부에 닿는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끼치고 있습니다. 소비가 위축되고 사업하는 분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언제 실직을 당할지, 언제 실직의 위험에 떨어질지, 부도의 염려도 우리에게 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기에 감사절을 보내려니까 '도대체 뭘 감사하나"' 이런 생각이 여러분 나지 않습니까?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황금과 12개의 보석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황금과 12개의 보석이 없어도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천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도 있으면 더 좋지만 없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황금 길이 아니어도 12개의 보석이 치장되어 있지 않아도 천국은 여전히 천국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곳이 바로 여전히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같이 한번 불러볼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황금이나 12개의 보석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융위기를 통해서 잃은 것은 황금과 보석입니다. 비록 그것도 잃으면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융위기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늘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용할 양식이 있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으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하루하루 생활하는데 하루는 아침에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아이들이 점점 커가니까 이제 좀 세탁기가 필요해요. 애들이 얼마나 옷을 빨리 버려오는지 이것 빨아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또 마르지도 않고." 세탁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뛰어다니고 운동을 했는지 신발도 닳아서 구멍이 났습니다. "아빠! 저 신발을 어떻게 신어요. 발가락이 나오는데, 신발 하나 사주세요."

그런데 어느 날 수입이 좀 생겼습니다. '세탁기를 사야 되나, 신발을 사 줘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 말을 먼저 들어줘야지 그래서 세탁기를 새것으로 못 사고 중고세탁기를 사려고 신문광고를 봤더니 누가 중고 세탁기를 판다고 광고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궁궐 같은 저택인데 주인집 사람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중고세탁기를 아주 싸게 샀습니다. 차도 한잔 대접해 주면서 먹고 가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하다가 그만 이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세탁기를 사서 좋은데 우리 아들놈들이 얼마나 신발을 빨리 닳게 하는지 신발이 발가락이 나온다고 성화인데 이것 참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차를 마시던 여주인이 훌쩍 훌쩍 울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이고 내가 말을 잘못 했나?' 걱정이 되어서 남자주인 에게 "아니! 제가 무슨 실수를 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이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내가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애가 하나 있는데 그 애가 낳은 지 몇 년 되었는데도 아직 걷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의 소원은 우리애가 신발 한 번 신어보고 그 신발 한 번 닳아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마세요. 우리 아내는 늘 그 이야기만 나오면 늘 저렇게 울곤 합니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 감사가 생겨났습니다. '비록 좋은 신발은 없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새롭게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걷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무리 신발이 많으면 뭐 합니까? 걸을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나 신발이 없어도 아이들이 맨발로라도 뛰어 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지구상에는 지금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1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루 세끼를 먹지 못합니다. 깨끗한 맑은 물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셔서 병에 걸리고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하루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또 두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 있는 것, 더더욱 구원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박국의 감사가 저와 여러분의 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소득이 줄고 물질을 잃어버려도 이 믿음만 있으면 세상은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여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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