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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7:1~2,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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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7:1~2, 골 3:15~17)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약간 통통한 것이 미의 상징이었는데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생긴 다음부터 마른 체격이 아름다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의류업을 하는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성 의류 44사이즈는 작은 편이고 55사이즈는 그보다 약간 큰 사이즈인데 55사이즈에다 44사이즈를 붙여 놓아야 옷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아무리 44사이즈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55사이즈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어떤 여성이 자신의 몸매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이어트를 아무리 해도 효력이 없었습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날씬해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힘들겠다. 옷이 그렇게 끼어 얼마나 불편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인사 때문에 마음을 바꾸어 헐렁한 옷을 입고 먹을 것을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친구들의 인사가 바뀌었습니다. “너 살 빠진 것 같아. 옷이 헐렁하네.” 좋은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감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평안하고, 평안하면 감사가 넘칩니다. 성경이 말하는 욥의 감사는 재산을 다 잃고, 자녀가 다 죽고, 몸에 병도 들었지만 마음을 잃지 않고 평안하였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재산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 매튜 헨리는 “하나님, 강도를 만났지만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또 제가 예수 안 믿었더라면 나를 때린 강도같이 되었을 텐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아닌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설령 제가 죽었더라도 또 세상을 다 잃어 버려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이해가 되면 그 때부터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초점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원망 투성이가 됩니다. 
-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남의 것에 초점을 맞추면 시기가 생기고, 내가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불평이 생깁니다. 
- 장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현재만 보면 암울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래를 보면 푸른 하늘도 보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고 숨 쉬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평범한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을 느낄 때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성경은 다른 경전과는 달리 ‘감사’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기독교가 감사의 종교라는 의미입니다.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에게 고마움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과 행동 그리고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입술뿐만 아니라 다양합니다. 온갖 것으로 감사를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부처님께 감사하라는 말이 있습니까? 이슬람교에서 알라에게 감사하라는 말이 있습니까? 아마 경전에는 사람에게, 자연에게 감사하라는 말은 있겠지만 우리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것을 감사합시다. 골로새서 3:15에는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성가 토마스 머턴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감사에 의해 완전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므로 완전하게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왔으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 말씀은 감사의 대상을 분명히 명령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분명해야 감사가 가능합니다. 대상이 분명하지 못한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말은 예레미야 33:11의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씀에서 보면 포로 귀환자들의 입을 통해 나온 예식 때에 낭송하던 송영구의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이 그들의 구원이 너무 좋아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명령어가 36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번을 제외한 모든 명령의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딱 한번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인데 이 말도 주어는 생략되어 있지만 그 대상이 하나님이신 것은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른 것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의 대상은 주신 하나님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결혼식 주례를 많이 합니다. 거의 500쌍은 한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주례사를 하던 기도를 하던 정말 간절하게 축복을 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례사가 아무리 좋아도 박수를 안 해요. 그런데 때로는 축가가 좀 신통치 않아도 박수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정말 감사하고, 정말 칭찬하고, 정말 박수 쳐야 할 때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올해는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올해는 벼농사, 과일농사, 밭농사 모두가 잘 되어 풍년입니다. 모든 농사가 풍작입니다. 어제 신문에도 보니 배추를 많이 사 달라고 합디다. 저의 기억에는 9월과 10월에 태풍이 없고 홍수가 나지 않은 해가 없었는데 올해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운데 농사까지 망쳐보세요.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풍년이 든 것이 농부에게 감사할 일입니까? 그들의 수고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감사의 대상은 아닙니다. 감사의 참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3:5에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만족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감사의 대상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삽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추수하기 전에 태풍이 한번 휩쓸고 홍수가 덮치면 농사는 망칩니다.
 
한 해 동안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얻은 것, 우리가 숨 쉬는 것,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여호와께로부터 왔습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가운데 여호와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멈추시면 우리는 끝납니다. 하나님은 제일 원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운행하십니다. 제일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삶의 원인이십니다. 근본이십니다. 이유이십니다.
  
요나 2:9에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우리 감사의 제일 원인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할 때마다 제일 먼저 구원을 얘기했습니다.
  
골로새서 3:15에는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유카리스테오’라는 말인데 평강을 뜻하고 좋은 것을 뜻합니다. 평강이 곧 감사입니다. 

3:16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합니다. 진정한 찬양은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라는 말은 ‘엔 카리티’라는 말인데 ‘감사 안에서’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3:17에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감사하라’는 말은 ‘유카리스툰테스’로 현재 분사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감사는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응답으로서의 감사함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세계만이 감사가 없다”고 마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는 감사의 대상이 없습니다. 대상이 없으므로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의 대상에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둘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사회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를 읽으면 회중은 ‘왜냐하면’ 이하를 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본성이 좋으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떡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주시지 습니다. 생선을 달라고 할 때 뱀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을 달라고 할 때에 떡을 주십니다. 뱀을 달라고 할 때 생선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선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란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계약을 지키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배제하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리고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하나도 나쁜 것이 없습니다. 나쁜 것을 절대로 주시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아비가 버려도 하나님은 안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버림 받아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사 찬송’의 2절을 보세요.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께 대한 예의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쁜 것을 주시기 않습니다.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소유는 행복의 척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소유는 감사의 기준도 아닙니다. 행복지수라는 게 있습니다. 나라별 행복지수의 순위를 영국 신경제학재단에서 발표했습니다. 삶의 만족도, 평균수명, 생존에 필요한 면적과 에너지 소비량 등을 바탕으로 계산하여 행복지수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결과 행복지수 1위가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 비누아투였습니다. 2위는 콜롬비아이고, 3위는 코스타리카, 4위는 도미니카, 5위는 파나마, 6위는 쿠바, 7위는 온두라스, 8위는 과테말라, 9위는 엘살바도르, 10위는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입니다. 

이 나라들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소유는 행복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없는 것에 감사한다는 말은 없어도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있어야 감사한다면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없는 것에 어떻게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가능합니다.
  
금융위기를 맞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시작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BMW를 타고 왔다는 말도 합니다. BMW는 버스타고, 메트로(지하철)타고, 걸어서 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BMW를 타면 연 217만원의 건강효과가 있답니다. 어려울 때도 눈을 크게 뜨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어차피 어려움을 당해야 한다면 기쁘게 당하세요. 그러면 감사할 일도 많아집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감사했습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빼앗으신 자도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죽도록 매를 맞고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무슨 찬송을 했겠습니까? 원망찬송이라는 것 보셨습니까? 불평찬송이라는 게 있습니까? 감사 찬송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영광 받으실 일이고 좋은 일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침 식사 때 과일 몇 개를 갈아서 마십니다. 믹서에 사과 한 개, 배 한 개, 감 한 개를 넣고 갈았습니다. 1분 이상 갈면 거의 형체가 없이 주스가 됩니다. 그런데 일전에는 오랫동안 갈아서 마시는데 그 속에 엄지손가락 반쯤 되는 사과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게 갈아도 갈리지 않고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를 보세요. 세상이 엄청난 고통과 위협으로 없이하려고 하지만 남은 자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불풀무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잡혀서 사자에게 찢기고, 불에 타고, 기름 가마에 던져지고, 손톱이 뽑혔지만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어느 성도님은 대기업의 사장으로 오래 동안 일하셨고, 경제에 아주 밝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분의 사업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오히려 당당하고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손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손해가 아닐 겁니다. 감사하지요. 지금까지 얼마나 잘 살았습니까?” 없어져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알던 어떤 분은 정말 싸움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대구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는데 태권도, 합기도, 유도 전부 유단자이고 몸도 날쌔고 싸움에 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가 딱 한번 싸움하다 도망했다고 합디다. 싸움판에서 레슬링 선수를 만났는데 싸움 기술보다 얼마나 끈질긴지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서 도망갔다고 합디다. 세상에서 어떤 위협이 와도 굴하지 않는 사람, 아무리 맞아도 끈질기게 도전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좌절하고, 항복하고, 원망하고, 불평해야 할 때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초대 교부이며 설교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의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7에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좋은 은사입니다. 선물입니다. 온갖 좋은 것들, 인자한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영원하지 않는 선하심은 선이 아닙니다. 영원하지 않는 인자는 인자가 아닙니다.


결론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 따위로 저주하시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입니다. 감사해야 믿음이 살아납니다. 감사해야 성경이 은혜가 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됩니다.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하심, 영원한 인자하심을 인정하고 풍성한 감사 가운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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