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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속한 복 (엡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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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복 (엡 1:8~14)


I. 하늘에 속한 복 - 그 가치를 모를 때 

에베소서 1:3-14은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긴 헬라어 문장입니다. 이 한 문장을 공부하는데 세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늘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늘에 속한 복"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두 시간동안 에베소서가 말하고 있는 "하늘에 속한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복입니다. 
둘째, 예수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받은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될만한 자격이 있어서 된게 아닙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복인지를 모릅니다. 부잣집에 입양된 모자라는 아이 - 그 양자됨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혈연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입양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구 기독교 선진국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이, 다른나라 사람들의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입양을 하더라도 가능하면 예쁘고 똑똑한 아이를 찾습니다. 그런데 서구 사람들은 뇌성마비아이, 지체 부자유아, 자폐아 등 모자라는 아이를 오히려 찾는다고 합니다. 기독교 문화와 가치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박약아같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모든 것을 다 갖춘 부잣집에 입양된 정신박약아 아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모릅니다. 

크루즈 여행을 하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먹고 즐길 수 있는 모든 비용이 이미 지불된 줄을 모르고 식당 한번 이용할 줄 모르고 배를 곯고 여행을 했더랍니다. 배 멀리만 하다가 돌아왔지 뭐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안에 모든 특권이 들어 있습니다. 이 특권을 알지 못해 신앙생활 멀미만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늘에 속한 복의 가치를 깨달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죄를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이 신령한 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본문 8절 "지혜와 총명"입니다.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여기서 지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깨달는 능력입니다. 
총명은 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능력을 말합니다. understanding입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복을 내게 주셨는데 그것이 내 복이란 걸 모르면 소용이 없는 거죠. 

태평양 전쟁시 전쟁중에 일본군 요꼬이라는 사람이 하와이 동굴속에 숨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전쟁 끝난 줄을 몰라 무려 27년간을 동굴에 숨어살았답니다. 전쟁 끝난 줄 모르면 전쟁 끝난 평화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27년간이 요꼬이에겐 전쟁중이었던 게지요. 하늘에 속한 그 엄청난 복도 지혜와 총명이 없어 알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삶이 때로 행복하지가 않습니까? 왜 우리 믿음이 때로 흔들립니까? 왜 그 시시한 일에 낙심하고 넘어집니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늘에 속한 복의 가치, 자녀된 권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핍박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습니다. 동족 중에서도 이방인 중에서도 바울을 죽이려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복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날마다 주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인들의 문제가 있다면 하늘에 속한 이 복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가치, 예수님을 알게 된 이 보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된 이름, 신앙의 기준을 너무 쉽게 세상에 팔고 사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 갔더니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공기놀이, 돌따먹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코렛을 주었더니 다이아몬드를 한 바가지씩 가지고 왔습니다. 초코렛을 얻어먹기 위해 온 산을 뒤져 다이아몬드를 캐왔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이 가진 값어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신 그 가치. 
하나님이 나를 자녀삼아 주신 그 가치. 
그 피를 내 죄를 속량하시고 구원해 주신 그 가치.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누리고 즐기고 나눌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입니다. 


II. 구원의 비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복을 아는 이런 지혜와 총명이 넘치고 있는 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9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 뜻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죄사함을 받고 지혜와 총명을 얻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비밀이 보이는 겁니다. 

하늘에 속한 비밀을 안다는 것은 신앙의 등급이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비밀을 나누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친밀함이 생긴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등급이 높아진 것이지요. 하늘의 신비가 보이고 하늘의 비밀스런 음성이 들립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내 귀가 하나님께로 열려 하나님의 비밀이 들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인 사람은 늘 진보적인 얘기를 합니다. 그 성향이 보수적인 사람은 언제나 보수적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야당 기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야당의 소리만 듣습니다. 귀가 그쪽으로 열려 그쪽 소리만 들리는 것입니다. 

"비밀" "뮈스테리온"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27번 등장하는데 21번이 바울서신에 나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6번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뮈스테리온"에서 영어의 "미스테리-비밀"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여기 비밀이란 하나님의 마음에 숨겨진 구원의 비밀을 말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보입니까? 천국의 신비가 보입니까? 구원의 가치, 천국의 가치, 하나님의 자녀된 그 가치가 보입니까? 주의 은혜로 이 비밀이 보여지시길 바랍니다. 

그 비밀의 여로시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열쇠입니다. 10절입니다. 그 구원의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절)고 말합니다. 이 구원의 신비는 예수로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 예수가 해답입니다. 예수가 열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진리가 통일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속죄함을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병든 세상은 어떻게 치료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우리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온 우주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통일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9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 - 하나님의 구원 설계도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설계도를 그렇게 그렸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것이 신령한 복입니다. 이 비밀이 안 보이면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구원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구원 문제만큼 본질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이간구원 문제만큼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나머지 문제는 모두 그림자요 보조입니다. 그림자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실망했습니다. 

이 구원 문제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시켜서 이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수님이 속량하시고 성령님이 인을 쳐 내 구원을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 - 청사진 - 설계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기업이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기업을 얻었다. 천국을 얻었다고 번역할 수도 있고 우리말 번역처럼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지요. 

아무튼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등기 이전이 끝난 사람들입니다. 


III. 성령의 인치심

자, 보십시다. 구원의 마지막 비밀이 풀려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등기를 이전시키셨다는 마지막 확인 작업이 13절에 나오는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13절에 보면 성령으로 인치시는 3단계 작업이 나옵니다. 
첫째, 구원의 복음을 듣는 것이요 둘째, 복음이 믿어지는 것이요 셋째가 성령으로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내 귀에 복음의 말씀이 들려진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악령의 전략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게 합니다. 
세상일이 너무 재미있어도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졸게 만듭니다. 
설교자가 미워지면 복음의 말씀이 안 들립니다. 
설교 내용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마귀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 
안내위원, 찬양대에 미운 사람이 서 있어도 때로 예배에 방해를 받습니다.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예배참석하면 때로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때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보고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일은 보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영적인 세계는 들음으로서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하고 믿어지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이 자꾸 의심가고 내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사도행전 2:37에 보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찔려 어찌할꼬 회개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7:54에 보면 말씀을 들을 때 똑같이 마음이 찔렸는데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이를 갈며 설교자에게 돌을 던집니다. 이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복음이 믿어졌습니다. 그때 따르는 마지막 확인 작업이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인치심에서 나타나는 성령님은 "약속의 성령"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보내주시마 약속하신 바로 그 성령님이 오셔서 인을 치십니다. 그 성령님은 약속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에 약속의 성령입니다. 기차가 레일위를 달리듯이 성령님은 말씀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의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한번하신 약속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의 성령입니다. 

그 약속의 성령님이 구원의 말씀을 듣고 믿는 우리를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이라고 인을 치십니다. 성령으로 인치신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요? 이 말은 계시록과 요한복음에 많이 등장합니다. 인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다는 말이지요. 그 도장은 참됨을 의미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진짜라는 것이지요. 

첫째 도장을 찍는 것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고대왕들은 인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물건, 보물에 도장을 찍어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했습니다. 말이나 소 그리고 양의 엉덩이에 불도장을 찍어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셨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사탄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지옥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둘째 도장을 찍는 것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계약서를 쓸 때나 서류를 결재할 때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합니다. 거기엔 권위가 따릅니다. 특별히 고대 임금의 도장은 확실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원수가 도장을 찍으면 국가적 권위가 생깁니다. 성령으로 내게 인을 치셨다면 거기 하늘의 권위와 약속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셋째 그 도장은 "안전보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로마가 인봉을 했습니다. 총독의 도장을 찍어 총독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도 열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도장은 안전보장을 의미합니다. 우편물에도 도장을 찍습니다. 안전하게 배달하겠다는 것이지요. 

에베소서 4:30에 보면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구원의 날까지 보장을 받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나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피흘려 구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 복음이 믿어지게 하셨고 믿는 모든 자를 인치셔서 주님오시는 최후의 날까지 나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예수님이 구속하셨고 
성령님이 인치셨으니 삼위일체 하나님 찬양 !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도 물론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성령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에게 주시는 구원의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구원의 안전보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인치심의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공부하다가, 어떤 사람은 부흥회에 참석하는 중, 어떤 사람은 기도 중, 어떤 사람은 영적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중 인치심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기적 체험이 없어도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오늘 지구에 종말이 와도 나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천지가 무너지고 천사가 와서 부인해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 욥처럼 재산을 다 잃고 당신과 관계된 경제지표가 바닥을 치고 직장과 사업을 다 잃어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V. 성령의 보증

성령의 인치심으로 나타나는 법적, 실제적 보장장치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마지막 14절입니다. "이는 - 성령님은 -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내가 천국 백성이라는 보증을 성령님이 서 주십니다. 내가 천국문에 섰을 때 그 문에 들어서도록 성령님이 보증이 되어 주십니다. 때로 내가 이 땅에서 실수하고 죄를 짓고 마귀의 조롱을 받아도 내가 지옥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성령이 보증해 주십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보증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천국에 들어가 온전한 자녀로 사는 그날까지 아직 우리에겐 연약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엔 아직 악령의 끊임없는 유혹과 공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보증해 주지 않으면 내 힘으론 구원을 온전히 지켜갈 수가 없습니다. 변덕스런 인간에겐 변함없는 성령님의 보호와 보증이 있어야 그 구원이 온전해 집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 그 나라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여기 "보증"이란 말이 헬라어로 "알라본"인데 이 말은 히브리어 "아라본"을 그대로 음역한 말입니다. 창세기 38:17에 찢겨 죽을 수밖에 없는 짓을 하고 시아버지 유다에게 요구한 도장, 끈, 지팡이 - 즉 담보물이 "아라본"입니다. 이 아라본 때문에 다말이 메시아 가문에 들어옵니다. 첫째 담보물, 보증금, 선수금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둘째는 미리 맛본다, 미리 가져온다. 가불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보증금, 선수금을 주고 나머지는 월부로 갚기로 하고 차를 가져옵니다. 아직 갚아야 할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차는 내 차가 되었습니다. 이때 낸 선수금, 인도금이 알라본입니다. 성령님이 내 구원의 인도금, 선수금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미리 맛보는 것이 알라본입니다. 
양식당에서 포도주를 주문하면 시음을 하게 합니다. 이미 포도주는 우리의 것이 되어서 맘껏 즐길 수가 있습니다. 천국을 미리 맛보여 주는 잠깐의 시음이 바로 알라본입니다. 직장에서 가불을 할때가 있습니다. 천국가불은 갚지 않아도 되는 가불입니다. 이게 알라본입니다. 천국의 기쁨과 권세를 미리 맛보여 주시므로 이 땅의 시험과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바로 이 보증사역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가불 해다가 맛보고 사는 것 그것이 알라본 - 성령의 보증입니다. 
여기까지가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한 문장안에 엄청난 복이 담겨 있지요.

나도 아프고 너도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도 올바로 서 있기 힘든 유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자들도 걸려넘어지고 사단의 공격을 받는 힘겨운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내 곁에 돈이 떠나가고 직장을 빼앗아 가고 어려워하는 신음 소리들만 내 곁에 들려옵니다. 이때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지구는 흔들릴 수 있고 우주는 흔들릴 수 있고 우주는 깨질 수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빼앗길 수없고 깨질 수 없는 구원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100번 잿더미가 된다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사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사실, 오늘 지구의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산다는 이 확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깨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요? 성령이 인을 쳐 보증을 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었던 죄를 성령이 다 기억한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너희 모든 죄가 다 없어졌음을 성령이 보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 주변에 모든 것이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내 손 붙들어 천국에 인도해 가시니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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