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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씨앗 (엡 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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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씨앗 (엡 5:18~21)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가 여럿 있지만, 유독 감사절만 2번 있습니다. 상반기에 맥추감사주일, 그리고 하반기에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감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반면 사람들이 감사를 쉬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영혼에 병이 든 증거입니다. 영혼에 병이 들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결국 모든 게 막혀버립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신앙의 감기’입니다. 감기가 사소한 병이지만 방치하면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처럼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도 영적으로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감기도 조심해야 되겠지만, 영혼의 감기도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연유로 하나님께서 1년에 2번씩 영혼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라고 감사절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감사절은 신앙의 건강 정기검진일인 셈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각자의 신앙을 점검해 봄으로 신앙의 건강을 회복하고 감사 신앙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감사와 신앙 : 성령충만의 증거 ‘감사’

먼저 감사와 신앙의 관계를 살펴보시죠.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뭐라고 증거합니까? 18절,20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충만이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지.정.의 전 인격이 다스림을 받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지성.감정.의지가 성령님의 뜻대로 작동됩니다. 그래서 찬송이 저절로 나오고,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성령충만의 증거 중 하나입니다. 또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감사는 정비례한다.”

그렇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환경이나 조건이 좋아도 얼마든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인간은 비교의식 때문에 자기보다 조금 나아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금세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른바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어느 평범한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셋이 있는데, 가정 형편이 운동화를 제때에 사 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운동화를 사 주면 아이들이 장난이 심해서 쉽게 닳아버린다며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세탁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돈도 없고 해서 광고를 뒤져 중고품 판매점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는 중고품이지만 최고급 가구와 주방 시설 등 좋은 제품들이 그득했습니다. 세탁기는 그 중에 가장 싼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물건들을 보면서 자신이 더 초라해 보이고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물건을 고르면서 그 집 주인에게 아이들이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신발이 금세 닳아서 당해내기 어려워서 정약을 할 요량으로 중고품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안주인이 슬며시 내실로 들어가 버립니다.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당황하고 있는데, 그 남편이 사연을 말해 줍니다. “우리 집에 딸이 하나 있는데, 태어나서 12년 동안 한 걸음도 걸어 보지 못한 장애아입니다. 손님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이 아파서 저러겠죠.”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성도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황급히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의 낡은 운동화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배부른 타령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밥 세끼 챙겨 먹을 형편은 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도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했던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부끄러운지 회개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잘못 되어서 우리가 불평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이 있으면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감사하게 됩니다. 환경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생각이 잘못되면 항상 원망 불평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감사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살전5:16~18 말씀이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과 전혀 반대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이 없거나 신앙이 식어지면 그렇게 됩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그 대신 불평과 원망이 가득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 구절을 이렇게 패러디 했습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여러분! 우리 각자의 영적 상태는 어느 쪽입니까? 범사 감사입니까? 범사 불평입니까? 그것은 환경과 조건 때문에 아니라, 신앙 때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 하시고, 감사 신앙으로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감사와 행복 : 행복은 ‘감사’의 꽃 

다음으로, 감사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관해 살펴봅니다. 비유하면 감사는 씨앗과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거기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겁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행복의 꽃이 피어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행복이 재산順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지위順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성적順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順입니다! 

① 행복은 감사順 :

우리는 결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은 결코 소유의 크기나 조건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크게 감사할수록 행복도 커집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신앙이 좋아야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해집니다. 똑같은 환경 조건 가운데서도 신앙의 유무, 신앙의 성숙과 미성숙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됩니다. 

독사와 젖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못이 있는데, 독사도 젖소도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물을 마신 후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속이 문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환경 조건이 문제가 아리나 내 마음의 상태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아멘!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항상 행복해질 줄로 믿습니다!

② 항상 감사, 항상 행복 :

본문 20절을 다시 보십시오. “범사에(for everything)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always)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항상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어렵죠.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가능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의무인 동시에 특권입니다. 그리고 행복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행복하고 이 법칙대로 살지 않으면 불행하고 그런 겁니다. 우리가 이 법칙대로 살기 위해서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의 시각이나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신앙입니다. 구체적으로 항상 감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일까요?

i) 일상 감사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겁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날을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이런 말이 있죠. 소설가 조창인의 「가시고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의 일상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별 게 아니고, 남보다 못한 것 같아도, 때로는 짜증이 나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사는 것 자체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지난 7월 제가 인도네시아에 단기선교 갔을 때 일입니다.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서 그곳에 사업 차 가 있는 우리교회 권사님 아드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사소한 것 같지만 흥미롭고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아파트를 얻었는데 집세도 싸고 좋았답니다. 그런데 퇴근 후 들어오면 바퀴벌레들이 거실에 돌아다녀서 아주 불쾌했다고 합니다. 약을 뿌려도 없어지지 않아 짜증도 나고 ... 

그러던 어느 날 작년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아파트도 흔들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퇴근 하면서 보니까 복도의 벽에 크랙이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그 날은 바퀴벌레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반가운 게 아니라,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가 생기면 짐승이나 벌레 등이 사람들보다 먼저 알고 피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지진의 조짐이 있어서 바퀴벌레가 미리 피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는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바퀴벌레들이 있는 겁니다. 그 날은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너무 반가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거 ‘바퀴 벌레 감사’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때로는 힘들고 짜증이 나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꿔도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ii) 형통 감사 - 일상 속에서 감사하는 것을 물론이고, 형통할 때는 더욱 감사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형통할 때 오히려 교만해지고 감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참 요상합니다. 잘못 되면 조상 탓, 하나님 탓을 합니다. 그러다 잘 되면 자기가 잘 나서 된 줄 압니다. 그래서 쉽사리 교만해지고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형통이 중지됩니다. 형통할 때 절대 감사를 잊지 마십시오!

iii) 고난 감사 - 일상 속에서 감사, 형통 중 감사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고난 중에도 얼마든지 감사의 제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함께 하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지속되고, 고난의 때 감사하면 고난이 중지된다.” 이런 원리를 기억하시고 ‘범사 감사’ ‘항상 감사’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와 기적 : 기적은 ‘감사’의 열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감사와 기적의 상관관계입니다. 기적은 우리가 감사할 때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납니다. 감사는 씨앗이라고 했는데,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행복의 꽃이 피어나고, 그 후에는 기적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꼭 기억하셔서 늘 행복하시고, 때때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감사의 3단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1단계는 ‘만일(if) 감사’입니다. 이런 저건 조건이 갖춰지면 감사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불신앙적 태도입니다. 2단계는 ‘때문에(because) 감사’입니다. 이것은 조건이 갖춰져서 이제 감사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아직 초보적 신앙의 태도입니다. 3단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감사’입니다. 환경 조건이 나빠도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주 성숙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바로 이럴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세워놓고 그 앞에 절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들은 결코 복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복합니다. 그러자 소환되었고, 폭군 느부갓네살이 호통을 칩니다. 마지막 한 번 기회를 줄 테니까 절하라고 ...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럴 수 없노라고 담대히 밝힙니다. 결국 뜨거운 풀부물에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들을 보호함으로 털끝 하나 그슬리지 않고 나오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뿐이 아니었죠. 놀란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더욱 높여줍니다. 승진한 겁니다. 고난 중에 감사한 자들에게 나타난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의 이야기입니가. 그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사업으로 대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골 출신으로 청년 시절에는 고생 참 많았습니다. 작은 사업도 망하고 실직한 후 출판사와 신문사 이것저곳을 기웃거리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낙심한 그는 주일 날 교회에 갔습니다. 하지만 예배에 집중할 수 없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이 조용히 불렀습니다. 형편을 다 듣고 교회 창고에서 작업하도록 허락하고, 교회 행사 전단지 디자인을 맡겨줍니다. 비록 허름한 창고였지만, 심지어 쥐가 들락거리는 곳이었지만 감사했습니다. 처음에는 징그러웠던 쥐가 점차 적응이 되면서 귀여워집니다. 빵 조각을 주면서 함께 지내는데, 어느 날 아이디어가 번득 떠오릅니다. 쥐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미키마우스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예비한 길이 보입니다!   

여러분, 요즘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이런 형편 가운데 감사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원히 죽을 인생을 십자가 보배 피로 구속해 주시고 천국의 확신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성도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요, 죽어도 천국이기에 죽는 것조차 감사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 봅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란 말이 있죠. 중국의 고대 철학자 증자(曾子)의 말입니다.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 바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일일삼사!(一日三謝) 하루에 세 번 감사하자는 겁니다. 여러분, 감사의 노트를 만들어 보세요! 감사 일기장을 만들어 보세요! 아니면 잠자리에 들 때 감사의 기도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져 보세요! 이렇게 감사의 지목을 찾는 습관을 들리면 분명히 행복한 인생이 도리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계속 되면 때때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부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의 씨앗을 심으심으로 행복의 꽃을 피우고, 더 나아가 기적의 열매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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