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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하러 갈 때 (마 10:7~15) : 선교사파송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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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러 갈 때 (마 10:7~15)


가을이 깊어 가는 11월 중순입니다. 우리교회는, 한 달 앞서 지난 시월에 추수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만 대다수의 교회들은 오늘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추수감사의 계절에 우리교회가, 복음을 위해서 인도차이나반도(라오스,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국가 중, 캄보디아에 이 선교사님 부부를 파송하게 된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추수감사의 예물이라 믿습니다. 

우리 교회를 만나서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 받으시는 이 목사님 내외분은, 많은 선교사님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님이 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받는 것,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두 분을 선교사로 보내는 우리교회 역시,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캄보디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1년 이상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이미, 저와 선교담당 목사님, 선교위원장 장로님이 캄보디아에 다녀온 바 있습니다. 2년에 걸쳐서 두 차례 캄보디아 단기선교봉사활동도 다녀왔습니다. 이 선교사님을 파송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두 가지 부르심 때문입니다. (1) 선교현지의 요청입니다. (2) 인도차이나 반도 선교를 하는 NGO인 ‘한아봉사회’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교회는 선뜻 이 목사님을 선교사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 목사님은 결혼도 하지 못한 노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선교열정이나 선교사로서의 헌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돕는 배필을 만나지도 못한 이 목사님에게 저는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돕는 배필도 만나지 못한 선교사님의 장기사역은 불가능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캄보디아 선교의 비전을 가진 李 목사님께, 가장 적절한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두 분 선교사님을 캄보디아로 파송하면서, 하나님께서 선교사님과 우리교회에 주시는 3가지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시고, 복 주셨던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인류 최초의 선교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입니다. 최초의 선교사를 부르시고 보내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셨던 가는, 그들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미). 본래 이름은 아브람(고귀한 아버지)이었고, 사래(나의 공주, 아리따운 여인, 귀 공주 같은 사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 거주하던, 말 그대로 凡夫였습니다. 그 땅의 사람, 지엽적인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자기 한 몸 그저 공주 같이 가꾸면서 살던 女人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들 부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나이 75세에, 인생 늘그막에, 하란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격적으로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창 12, 1-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시면서 동시에, 3가지 言約도 주셨습니다(언약이라는 말은, 반드시 성취되는 약속). 

(1) 내가 너로 큰 民族을 이루겠다. 새로운 민족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 백성 된 민족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자손을 말하지 않습니다. (2)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이름이 창대해지는 복은, 존재가치가 있는 人生,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거지요. 
(3)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성취되는 언약이 있습니다. 오늘 파송 받는 이 선교사님 부부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아갔던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 부부가 평안하게 살만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땅이었지만, 그 땅의 실상은 危機의 땅이었습니다. 언약의 땅에 간 아브라함에게 시련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 10을 보면 그 땅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고대 근동지방에 기근이 들면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양식을 찾아서 이주해야). 아브람은 양식이 풍족한 애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너무 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 내외가 파송받는 캄보디아 땅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기회의 땅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위기의 땅입니다. 

OECD 나라 중에서도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빈곤의 땅입니다. 빈부격차가 크다지만, 제가 경험했던 우리나라 ’60년대의 가난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그 생활상은 가슴 아플 정도로 가난합니다. 제법 잘 사는 농촌가구의 부엌에 부엌살림도구라곤 새까만 솥, 그릇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재도구, 옷장 없습니다(옷이 별로 없는 데···). 

톤레샵 호수와 메콩강물이 풍부하다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습니다. 우기는 그나마 괜찮지만 그것도, 집 주변의 가둬놓은 웅덩이 황톳물로 빨래하고, 밥 짓고, 머리감고, 목욕하고 생활합니다. 11월부터 5월까지는 건기인데,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큰 항아리에 받아놓은 물을 씁니다(항아리의 수가 부의 척도). 마실 물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세수나 목욕은 엄두도 못 냅니다. 손발이 거북등짝 같습니다. 

오랜 내전과 사회불안으로 1970년도부터 공교육이 무너져 있습니다. 1975년에 수도 프놈펜이 Pol pot가 이끄는 공산정권에 함락되면서, 모든 학교와 도서관을 폐쇄되었습니다. Pol pot는 국민들이 글을 읽을 줄 아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쌀과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책 때문에, 그는 모든 지식인들, 도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습니다(200 만명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민의 1/3이 죽임당했습니다, 세계인들이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라···). 

그 결과는 캄보디아 땅을 무지=빈곤, 무지=질병이라는 병든 사회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교육을 받지 못했는가 하면, 6세 이상의 전여성의 85%가, 6세 이상의 전남성의 72%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가 국민의 2.4%, 여성은 0.9%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들은 온 국민이 정령숭배와 귀신들을 숭배합니다. 운명론이 팽배합니다. 그래서 내일이나 미래에 대한 希望을 모릅니다. 

말씀드린대로, 캄보디아는 1975년부터 공산주의사상에 심취했던 Khmer Rouge를 이끌던 Pol pot이 지배하면서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을 대학살했습니다. 선교사님이 가서 사역하실 선교센터가 있는 바로 옆이, 대학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뚤스렝 대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 본래는 Toul Svay Prey고등학교)이 있습니다. Pol pot는 지식인들, 도시민들을 인종청소하듯이 학살했습니다. 구소련 스탈린 정권의 인종청소나, 중국 모택동의 문화혁명 같은 대학살을 本딴 것이지요. 얼마나 잔악한 지, 자신들의 잔악한 학살만행을 사진으로 찍어서 모두 보존해 놓았습니다(아마, 훗날 천지개벽 역사의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아픔이 불과 한 세대 전에 일어난 땅입니다. 아직도, 그 아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땅입니다. 

우리가 선교하고자 하는 땅이, 이런 땅입니다. 그 땅을 축복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 땅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선교하러 갈 때, 다 내려놓고 가라 명령 

같은 목사이지만, 저는 선교지로 가시는 선교사님들을 대할 때마다, 참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일이 선교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주 주라. 너희 纏帶(돈주머니)에 金이나 銀이나 銅을 가지지 말고, (전도)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 표현하면, 선교사는 복음 전하러 갈 때 『다 내려놓고 가라, 내려놓음』입니다. 

마가복음 10, 29이하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福音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유의해서 보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내려놓은 자에게,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이렇게 버린 자”에게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복이, 파송 받으시는 선교사님과 선교사님을 파송하는 우리교회에도 주시는 복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선교지로 나가시는 선교사님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다 내려놓고 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 선교사님에게 내려놓음의 결단과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복음을 위해서 나가는 자는,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하나님 주시는 것으로 일하라).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단순생활/ 자발적인 가난요구).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 이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무장해제 명령입니다(白旗命令). 신을 신지 않은 사람은 위급할 때 빨리 도망치지 못합니다. 지팡이는, 강도나 맹수를 대적하는 가난한 자들이 가진 최소한의 무기입니다.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할 때 절대로 대적하여 싸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비폭력명령입니다. 절대적인 평화 요구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전도자들을 보내실 때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노라 하시면서도 또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화를 빌라.”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2, 24이하에서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함이라” 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과 우리교회의 선교가, 『내려놓음의 선교』가 되어야 하고, 『절대 평화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3. 선교사 파송으로, 우리교회도 세계선교의 사명 불 붙여야 

부목사로 사역할 때, 30대 젊은 남선교회를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선교회 멤버들이 쟁쟁한 사람들이었습니다(소위 성공한 사람들, 좋은 직장, 가정들). 그 때, 그 분들에게 간곡하게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집사님들 그룹에서, 평생 선교사 한 사람 파송해 주십시오.” 한 달에, 선교비 10만원 내는 분 10분에서 12분이면, 선교사 한 사람 책임지고 파송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집사님들이 먼저 한 번 시작해 보십시오(’90년대 초; 교회가 선교비전 全無했을 때···).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형편, 삶에는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습니다. 정말 어려우신 분도 계시고, 그렇잖은 분도 계십니다. 형편을 고려한다 하지만, 저는 우리교회 선교헌금이 매월 600여만 원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일반회계에서 이채해서 선교비). 한 가지 理由가 있다면, 대다수의 성도님들이 선교열정이 없으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2년 전 쯤, 선교헌금 100%, 200%, 300% 더 하자고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000%까지도 괜찮습니다). 

이만하면 우리도 이제 선교하면서 살아야 할 때입니다. 선교는, 말이 아닙니다. 입술의 기도만도 아닙니다. 헌신입니다. 모라비안 선교를 배워야 합니다. 모라비안들은 그들의 삶과 직장 일을 곧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선교역사를 볼 때, 세계 선교의 불을 댕긴 최초의 헌신자들이 18세기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독일의 모라비안 교회들입니다. 

모라비안 교회 선교지도자였던 Nicolaus Ludwig von Zinzendorf는, 독일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경건훈련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선교의 열정을 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누릴 수 있는 세상적인 명예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19세 때 여행 중,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이 사람을 보라』는 한 작품을 보았는데,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그림 하단에 적힌 『나는 너를 위하여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는 글을 보고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라비안들의 선교로 5대양 6대주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라비안들이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성도와 선교사의 비율원칙이 12:1이었습니다(12사람이 한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 말 그대로 선교공동체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교회들은 5000:1로 선교사를 파송하던 때입니다. 

우리교회에도 협력선교사님들이 계시지만, 세례교인 3400명에 한 분 선교사님 파송합니다.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할 복음의 빚이 우리교회에 있습니다. 작년에, 65주년기념개척교회 15억 가까운 선교비를 썼습니다. 북방선교를 위해서 큰 돈을 썼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복된 교회입니다. 오늘 캄보디아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우리교회가 다시 한 번 선교공동체로 거듭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기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첫 선교사로 세우신 하나님, 그들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 우리교회가 오늘 캄보디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다 내려놓고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님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절대평화선교로 그 땅을 축복하는 선교사 되게 하옵소서. 우리교회도 복음의 빚진 자의 사명 더욱더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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