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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로 드리는 제사 (신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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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드리는 제사 (신 16:13~17)


한국 기독교는 추수감사절을 매년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교와 신앙적인 갈등을 겪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라는 작은 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했습니다. 102명의 사람들이 65일간 험한 파도와 싸우며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시기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식량난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 죽었습니다. 남은 사람들도 대부분이 질병으로 시달렸습니다. 봄이 되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기후와 토지에 무엇을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은 마음 착한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옥수수 종자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고 가을에 추수를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을 초대했습니다. 칠면조를 잡고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누며 서로에게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11월 셋째주 목요일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1914년에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 미국 선교사가 처음으로 한국에 온 날을 기념하여 11월 세 번째 토요일이 지난 수요일을 추수감사일로 정했습니다. 그 뒤에는 11월 세 번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습니다.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초기에는 추수감사절 헌금을 모두 선교에 사용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 받아 추수감사 헌금 전액을 선교헌금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미국의 청교도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 중에 중요한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6장은 이 3대 절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3대 절기는 430년간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광야 40년을 지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교절, 다른 말로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 또는 장막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40년간 험하고 거친 광야 생활을 합니다. 그 광야 생활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 칠칠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추수한 첫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애굽에서의 해방됨을 기억하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장막절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성함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오순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3대 절기의 시기를 보면 추수 시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에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을 풍성하게 거둡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년에 3번 추수가 있는데 하나님은 여기에 맞춰 3대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3번의 절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의 영성’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감사가 체질화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매우 귀중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내 힘으로 세웠다는 교만함으로 인해 3대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절기를 소홀히 하며 감사의 영성을 잊어 버렸을 때 그들에게 어김없이 고통과 시험이 닥쳐 왔습니다. 3대 절기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이 여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돌아보며 나의 감사의 영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사는 우리들의 미래의 축복의 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감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을 삽니다. 

상식적으로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몸의 내장을 통제하는 자율신경계 안에 부교감 신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계에 계신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계속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부교감 신경계를 자극해서 건강을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자연히 감사하는 사람은 건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영과 육에 유익을 가져다 주는 만병통치약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감사에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소방방재본부에 소속된 119구급대가 일년에 292,000번 이상 출동해서 212,000명 이상을 병원으로 옮겨 주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119구급대의 헌신적인 봉사로 위기에서 벗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가운데 어떤 모양으로든지 감사를 표한 사람은 100중에 3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감사함에 인색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조그만 도움에도 감사합니다. 그것이 그렇게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도 잘살게 되고 많은 것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자신감은 더 강해지는 반면에 감사는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이 자랑되기 시작하고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감사는 줄어 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들의 은혜가 고백되면 그곳에는 감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감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곳에는 평화가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줄어드는 곳에 새롭게 고개를 들면서 자리를 잡는 것이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생활 가운데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은 어김없이 그 곳을, 그 사람을 떠납니다. 감사가 풍성해지고 더 커지는 곳에는 화목과 평화가 있습니다. 감사가 더해지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은 더 크게 임하십니다.   

신앙은 은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성숙한 모습이 되려면 많은 배움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도를 바로 잘 할 수 있고, 말씀을 잘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와 말씀은 은혜를 받은 후에 끊임없는 배움과 훈련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시작한 신앙생활은 배움과 훈련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감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감사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할 때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남들이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신앙 안에서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감사를 배우고 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16절에서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여호와께 나아오되 공수로 나오지 말고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힘대로’라는 말씀은 정성을 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물질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내 마음이 자꾸 그곳으로 갑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많이 주시면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막상 물질을 주시면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물질이 없을 때는 물질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와서 예배하며 봉사합니다. 

그런데 물질을 주시면 그 물질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하나님 보다도 물질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 감사함으로 인해 더 큰 복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질과 사람의 관계를 아주 예리하게 지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물질에 가까이 가 있다는 말입니다. 추수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공수로 나오지 말고 ‘그 힘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라’ 는 말씀은 물질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고백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예물을 들고 나왔을 것입니다. 한번 조용히 여러분의 마음에 이 예물을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오늘날까지 받은 구원의 은혜,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은혜, 가정에 공급해주신 갖가지 은혜, 그리고 어려울 때 눈물 흘려 기도하면 어김없이 응답해 주신 은혜 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특별히 이런 은혜를 감사하며 드린다고 할 때 그 예물이 너무 적거나 초라하거나 형식적이라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마른 신앙입니다.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싶을 만큼 정성과 힘을 다한 예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왕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어느 시골 벽지 여교사로부터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도록 1천 달러를 기증해 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포드는 의례적인 요청으로 생각하고 10달러를 보냈습니다. 여교사는 그 돈으로 땅콩 종자를 사서 학생들과 땅콩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한 해가 지나 땅콩을 수확한 교사는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땅콩을 포드에게 보냈습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포드는 1만 달러는 벽지의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감사는 감동을 만듭니다. 그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만큼 감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힘대로 감사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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