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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마리아 여인의 참된 신앙 (요 4: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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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의 참된 신앙 (요 4:25~30)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전도를 가시다가 사마리아를 통과 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곤하여 수가라 하는 동네 우물곁에서 쉬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한 여자가 이 우물곁으로 물 길러 오게 되었다. 이 여인은 여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영생의 물에 관하여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게 됩니다. 그 녀는 여기서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고백하게 참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게 됩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도 참된 신앙고백의 삶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1. 사마리아에 오신 예수님 

(요 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앗수르왕 사르곤 2세(Sargon 2)는 주전 721년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각지에서 이민족을 이주시켰습니다. 그 때에 잔존하고 있던 이스라엘백성과 이주해온 이방인들 사이에서 혼혈아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왕하 17:24-40).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스라엘적 요소가 우세하여 그들의 혼혈과 종교적 혼합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예배의 특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는 종교적 이질성과 이교적 영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포로 귀환 후 신앙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수호하려는 예루살렘중심의 유대인과 세차게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이 교화된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예루살렘성전에 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마리아인은 대항적으로 그리삼 산에 성전을 세우고사마리아역성서(五書)를 편집했습니다. 이 반목은 후대까지 계속되어 유대인은 유다와 갈릴리와의 왕복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마저도 피하여, 일부러 요단강으로 우회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예수님은 바로 이곳을 통과 하시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인 예수님께서 이 마을을 지나가시게 된 것에 대하여 여인은 놀랐고, 더구나 사마리아인인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물 달라고 하는 말에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이 이제 신앙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자기가 메시야인신 것을 스스로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성경(신 18:15-18)에 보면, 사마리아인들도 메시야를 대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가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2.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

때로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귀 중한 것의 값을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보거나 생각하고 깨닫는 것이 최고임을 생각하며, 현재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불신앙의 태도를 가지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만 열면 성전에서 바로 지금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잠 17: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비록 심한 적대 관계에 있지만 그 여자는 메시야와 그의 나라가 오심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법전들을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들과 유대 나라의 소망에 대해서는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나쁜 선입관이 메시아를 발견하려는 열망에 방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일반적이었고 논쟁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메시야가 오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오실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하나님에 대해, 예배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해 줄 것이며, 우리의 결점들을 충족시켜 주고, 우리의 잘못들을 확인시켜 주어서, 우리의 논쟁들을 모두 끝나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말해 주어서 어떠한 것도 밝혀 줄 것입니다.” 그녀는 메시아를 통하여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의 청결이란 당시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서 주로 사용된 용어로서 도덕적, 종교 의식적인 정결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청결이란 인간의 마음의 탐욕을 버리고 근본적인 내적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내 마음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신실한 마음으로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큰 체험을 주실 것입니다. 

(요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 자신을 여자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네가 말하는 내가 그 사람이다.” 예수님은 평소에 자신을 분명히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여인에게는 그 당시에 그리스도의 기적을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께 가까이 오려는 자에게는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롬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하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재를 탄식하며 그의 출현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말씀하시는 중인데도 그러한 그의 출현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이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의 옷을 입으시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어 주시지 않는 한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없습니다. 

  
3. 제자들의 신앙자세 

(요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께서 여인과 말씀하시는 동안에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여인과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유대 랍비들의 예법대로는 유대 남자가 거리에서 여자로 더불어 말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 아내와도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심이 이상스럽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질문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에 그것을 허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필경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십니까? 혹은 왜 여인과 이야기 합니까? 하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언행에 대하여 때로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결국은 다 좋아했고, 예수님의 행동에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강한 믿음으로 그를 신뢰하였습니다. 바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자를 신뢰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 사마리아 여자의 전도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그때의 물동이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그것을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는 그처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열중하였습니다. 그는 급히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평생에 소원하던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우물에 온 이유를 잊어버리고, 물동이마저 버려두고 갔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친절을 베푸는 뜻에서, 그리스도께 식사 때에 물을 들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혹은 마을을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또 물동이를 신경 안 쓴다는 듯 내버리고 간 것은 더 중대한 일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을로 들어 사람들에게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친구들과 이웃들이 그리스도를 알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자기와 함께 기뻐하고, 같은 신앙 고백에 동참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여인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내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요 4:29, 30)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여자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마음 상태 까지를 알고 계신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알게 되었고, 이제 그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와서 구경하라는 정도가 아니었다. 와서 그와 이야기하고 그의 지혜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어떤 언변이나 설명으로 남들을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려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호소하기를,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녀는 남들에게 자기의 믿음을 강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시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정당하고 설득력 있는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녀는 이 초청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왔습니다. 설득의 가장 좋은 원리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며, 마음속에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진심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결 론 

예수님께서 수가 성을 지나가시게 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물을 달라는 말에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열려 있는 마음은 신앙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것 같이 우리도 주님에 대한 기대와 큰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께 가까이 오려는 자에게는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네가 말하는 내가 그 사람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볼 기회가 없었지만 바른 신앙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여인과 제자들처럼 믿음의 바른 자세를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 신앙을 체험한 사람은 스스로 기뻐하며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설득력 있는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예수께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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