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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에서의 성공자 (레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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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의 성공자 (레 23:3)


예배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홀대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오고 싶어도 핍박이 심해서 못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회가면 집에서 쫓겨나고, 동네에서 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면 죽이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핍박은 약해졌습니다. 그대신 마귀는 유혹을 사용합니다. 세상 재미에 빠져서 혹은 세상일에 바빠서 못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예배에 달렸습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인생의 실패의 원인을 예배의 실패에서 찾았습니다. 인생의 성공을 원하시면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오늘은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주제 설교 여섯 번째로 “우리는 함께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1. 주일에 모여서 함께 예배합시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지켰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의 강조점은 창조와 출애굽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시므로 창조와 안식을 연결시키셨습니다. 출애굽기부터는 애굽에서의 구원을 강조하십니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며 주일을 구별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일 성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만일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 있다면 십계명 중 하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입니다. 막2:27에 보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에 할 일은 예배와 휴식입니다. 예배와 휴식 중에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휴식을 위하여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해야 합니다. 주일에 일하는 것은 예배와 휴식 모두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시간 날 때만 드리는 예배나 혼자 드리는 예배는 바람직한 예배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마 18:20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은 모이고 흩어져야 합니다. 잘 모이고 잘 흩어져야 건강한 신앙을 갖고 교회도 건강합니다. 교회로 모이고 세상으로 흩어져야 건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의 심장과 피의 관계 같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동맥과 정맥 그리고 모세혈관들을 모두 떼어내어 연결한다면 지구를 2바퀴 반에서 많게는 4바퀴 정도를 돌 수 있는 96,000Km 내지는 16만Km가 된다고 합니다. 심장은 이 혈관에 피를 돌려주는 펌프입니다. 1분에 72번, 하루에 10만 번, 1년에 3천 5백만 번, 70세까지 산다면 대략 25억 번을 뜁니다. 

우리 몸의 피는 1초에 150cm정도 통과하는데 심장에서 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는 18초, 머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8초가 걸립니다. 피는 심장에 모이고 모인 피가 다시 온몸 구석구석 지체에 흩어져야 건강한 사람입니다. 모이지 못하고 막히면 죽습니다. 다시 또 모인 피가 흩어지지 아니하면 그 지체는 병든 지체입니다. 어떻게든지 이 기운들이 분산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말에 “기분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기가 분산될 때 ‘좋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가 분산되지 못하고 막히면 어떻게 됩니까? ‘기막혀’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하고 맥을 못 출 때가 있습니다. 운동부족으로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기절’ 이라는 말은 ‘기가 절단 난다’는 말입니다. ‘기를 모은다’는 ‘기합’입니다. 기가 모아질 때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태권도에서 겨루기를 하거나 격파를 할 때 기합을 넣습니다. 기합을 넣는 것은 소리를 질러서 상대의 기를 죽이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힘을 하나로 모아서 파괴력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합을 잘 넣고 내리치면 벽돌도 박살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에 함께 모이는 것은 심장으로 피가 모이는 것과 같습니다. 기를 모으는 것입니다. 인생을 건강하고 힘 있게 살려면 우리의 인생의 심장과 같은 교회에 잘 모여야 합니다. 기합을 넣어서 기를 모으는 것처럼 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삶의 리듬입니다. 리듬이 깨지면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반드시 휴식해야만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쉬셨는데 사람이 일하면 되겠습니까? 하루 중에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한 주 중에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런 주기가 인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데 필요하고 능률적임을 판단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18세기 말경 프랑스 혁명 후 무신론자들의 충동에 의하여 10일 휴일제가 불란서에서 실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제도가 국가 산업발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도입 되었으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산업재해가 급증하고 생산량도 40% 감소되어 다시 7일 휴일제로 환원하고 말았습니다. 

소련 공산혁명을 일으킨 무신론자 레닌은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하루 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고 표어를 내걸고 8일 휴일제를 채택했으나 생산성이 30%나 감소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레닌은 “우리는 기독교 보다 노동자를 더 생각하므로 6일 휴일제를 도입하겠다.”고 떠들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다시 7일 휴일제로 환원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잘 아시고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쉬라고 했겠습니까?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내리신 제도인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인생을 효과적으로 살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주일성수는 의지를 가지고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목사님 아들인데 군에 갔는데 헌병대에 갔습니다. 군에 가서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일반 부대에 배치를 받아서 갔는데 주일날 소대장에게 “소대장님 나 교회에 가야합니다”라고 하니까 소대장이 ‘이것 본때를 보여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전 소대원들을 집합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너 맞아 죽을래? 교회에 갈래?” 그랬더니 “맞아 죽겠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소대장이 엎드려놓고 때리는데 길수도 없도록 때리더라니다. 매를 맞고 딱 퍼졌는데 물을 뿌리면서 다시 “너 교회에 가겠냐?”고 묻더랍니다. 그렇게 막고도 “‘예,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소대장이 “너는 제대하는 날까지 교회를 다녀라”고 하고서는 도장을 찍어 주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갔답니다. 주일은 절대로 주님이 지켜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와야 합니다. 내가 지켜야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겁니다. 

사단은 우리가 주일을 범해야 할 일들을 자꾸만 일으킵니다. 그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주일을 지켜야합니다. 인정 때문에, 물질적인 유익 때문에 끌리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부지런해지고 조금만 지혜로우면 얼마든지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감동을 잘 받고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에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만나주실까요? 성령의 역사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4:24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역사가 성령의 감동하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감동하셔서 기록하게 하신 책이 성경입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의 감동이 있다면 그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찬송을 하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핑 돈다면 그 시간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있다고 믿어진다면 그 때 역시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선포된 말씀이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린다면 역시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내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알아지고 그 알아진 것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진다면 그것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성령의 감동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감동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은 그 감동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동을 마음에 묻어둡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감동은 약해지고 결국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으면 감동을 받으시고 그 감동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순종이 제사 보다 낫습니다. 

둘째,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면 우리는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대통령을 만난다면 어떻게 준비하시겠습니까? 목욕하고 이발하고 새 옷 까지 준비할 겁니다. 대통령과 대화할 주제가 있다면 그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므로 만남을 준비할 겁니다. 대통령과 약속 시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스케줄을 조정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대화중에 피곤해서 졸지는 않더라도 하품이라도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충분한 잠을 자둘 것입니다. 대통령께 드릴 선물이 있다면 미리 사서 예쁜 포장지에 잘 포장해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전능하시며 전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거기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도 준비하시고 물질도 준비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죄악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원수진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푸십시오.


3. 예배시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어느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한 부부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김 집사 댁 자동차가 3000cc 로 바뀐 것 보았어요?”라고 묻자, 남편은 “못 보았는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아내가 “그러면 박 장로님 부인이 밍크코트 입은 것 보았어요?”라고 묻자, 남편은 “몰랐어”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아내가 “그러면 오늘 설교할 때 목사님 넥타이가 조금 삐뚤어 진 것 보았어요?”라고 질문하자, 남편은 “설교 듣느라고 정신없었어”라고 대답합니다. 

아내가 열을 받아 남편에게 “그러면 오늘 특별 찬양한 이 집사 입술이 너무 너무 진하게 칠하여 진 것 보았어요?”라고 물어보자, 남편은 역시 “그것도 못 보았는데....”라고 대답합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아내는 “아니, 당신은 예배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을 하나도 못 보았어요? 예배 시간에 잠만 잤어요?”라고 따져 묻자, 남편은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 십자가가 눈을 가리워서 눈물만 났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예배를 어떻게 했습니까?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보는 것입니까?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까?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첫째, 몸과 마음을 드립니다.

미국 이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주일에 예배당은 안 오고 골프장에만 갑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왜 주일에 집사님이 예배당 안 오고 골프장에 가시냐?”고 했더니 이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요.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 골프장이 머릿속에서 왔다갔다합니다. 볼을 치는 것, 퍼팅하는 것이 머리속에서 왔다갔다해서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몸은 예배당에 와있지만은 마음은 골프장에 가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골프장에 가니까 몸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지만은 이 마음은 계속 예배당에 예배드리는 모습이 자꾸 상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나는 골프장 가기로 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안됩니다. 예배는 몸도 드리고 마음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12:1에서는 몸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드리는 예배가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둘째, 헌금을 드립니다.

헌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나 지옥보다 돈이나 재물에 대해 더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드린다”는 단어는 성경에서 1,500번 이상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도”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입니다. 

헌금은 과거에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감사와 드림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후 9:12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는 것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까?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크게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날은 한 주간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1년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헌금은 현재 나의 우선순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헌금 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헌금은 미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드릴 때 갈등한다면 아직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말 3:10). 그래서 교회에서 중직자를 세울 때 그 사람의 헌금생활과 예배 생활을 보는 것입니다. 


셋째, 찬송을 드립니다.

여기서 찬송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찬양은 우리를 선택하신 중요한 목적입니다. 사 43:21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찬양의 자리는 항상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했다고 말합니다(삼하 6:5). 이런 분위기는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너무나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품위를 지키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미갈처럼 품위를 지키느라고 하나님 앞에 힘써 즐겁게 찬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찬양할 때는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경직된 찬양에서 벗어나서 자유함이 있는 찬양을 드리십시오.


4. 예배시간은 하나님께 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쌍방적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듯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 드려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받는 것도 잘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받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에만 관심을 가져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힘을 써서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유는 가을에 수확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가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월급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가을 추수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농사를 포기할 것입니다. 월급을 기대하지 않는 직장인은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 때 그는 하나님이 불로서 응답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큰 기대를 가지고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도 기대하고, 은혜도 기대하고, 축복도 기대하고, 치료도 기대하십시오.

미국의 시애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사람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가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지 못해 고졸 졸업장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날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최고의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이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중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재산이 많은지 오늘 인류역사에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재산이 1천억 불, 환화로 계산하면 130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몇 년 만 지나가면 그의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져서 전 영국국민의 재산을 다 모아야 빌게이츠 한사람의 재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보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항공기를 만드는 보잉 항공사를 세워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생산 회사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크게 두 종류로, 엔진이 뒤꽁무니에 달린 비행기와 엔진이 날개에 달려 있는 비행기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서 많이 쓰고 있는 보잉 747 항공기는 다 엔진이 날개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형 항공기 시장을 보잉사가 거의 지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맥 콜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핸드폰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은 맥 콜드가 발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애틀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된 이 세 사람을 조사해보니, ‘라이크 우드’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성경말씀을 배우고 훈련받았다고 합니다. 그 주일학교 선생님은 세상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을 사는 비결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주일학교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 응답과 치유를 받는 시간입니다. 

록펠러(Rockefeller)아시죠. 그는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했고 미경제의 1.53%를 차지했던 세계최고의 부자입니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지금의 자산 가치로 따지면 빌 게이츠의 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세계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 때 미국의 최대갑부가 되었고 53세 때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55세에 불치병에 걸렸으나 나눔의 행복으로 병을 이기고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을 행했습니다. 지금도 뉴욕 시민들의 수도요금을 록펠러 재단에서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록펠러의 축복은 어머니의 신앙유산을 잘 물려받아서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이 좋은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들 록펠러에게 ‘십일조를 꼭 드려라’, ‘목사님 말씀에 항상 순종하라’, 등의 10가지 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10가지 중에서 가장 첫 번째는 예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록펠러에게 “너는 예배 30분전에 도착하여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가장 정성껏 예배를 드려라”는 유언을 했습니다. 록펠러는 평생 동안 그 유언을 지켰다고 합니다. 항상 예배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예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예배시간마다 기쁨으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기대감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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