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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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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요 14:6)


아프리카 선교사 한 분이 
선교지를 답사하는 도중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토인 한 사람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상한대로 헤매며 끌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당신 도대체 길을 아는 거요 모르는 거요?” 하고 물으니 
“정글에는 길이 없습니다. 내가 곧 길입니다. 나만 따라 오시오”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바로 정글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굉장히 잘 아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글 같은 세상 살아가면서 
      길 되신 예수님을 내 인생 가이드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1. 오늘 말씀의 배경을 말해 보세요(1-5절)

요13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저녁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면서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반과 수제자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상당히 두려워하며 당황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4:1절-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하시며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 할 때에
도마라는 제자가
[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들
정작 자신들과 함께 했던 눈앞에 계신 예수님이 누구 인줄 바로 몰랐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영적 무지가 예수님을 민망케 하였지만
하지만 제자들은 장차 예수의 증거자로 복음 사역을 담당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수행해야할 증인들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촉구하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각성시켜준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과 분리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길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오솔길 논길 골목길 차도 국도 고속도로 항로 해로 등 많은 길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 나라의 문명 척도는 그 나라의 길 형편과 정비례 한다고 합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 할 만큼 로마제국이 흥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로 통하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 
    현대 문명에서 개발이 늦은 이유를 바로 길 때문이라고 하는데.
    중국인들은 길 만드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을 쌓는 에너지를 길을 만드는데 활용했더라면 
     아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빨리 발전한 것은 
    거미줄처럼 얽힌 고속도로 철로 그리고 항로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빨리 발전한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일찍 고속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로 포장률이 98%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나 사통팔방으로 길이 뚫려 고속도로가 나고
      포장이 잘 되어 있어 교통이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길을 통해 이룩되어 집니다. 

그런데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인생의 길을 잃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은 사방으로 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에덴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
       낙원에 들어갈 길이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창3:24절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죄의 담이 천길 만길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쉼터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혔을 뿐만이 아니라
              먹고 사는 길마저도 막혀 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염려 하지도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장의 호구지책을 위해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한 인간 때문에 땅 마저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어 수확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쉼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파멸이 인간의 운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기 때문에 
인간사에는 예나 지금이나 생로병사의 슬픔이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유토피아니 극락이니 
           이상적 세계를 찾는 노력이 역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95%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제 정치 과학 의학 나아가 도덕을 통해
     이상적 세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져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7일 금요일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중소기업 창업자 A씨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231억여 원을 잃고
카지노의 불법 영업 때문에 돈을 잃었다고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는 기사입니다.
231억 가진 돈이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분명한 것은 땀 흘려 모은 210억의 돈이 그에게 쉼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돈이 인생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서간 많은 성인들이 이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공자도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을 방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 내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다
                 내가 곧 본래의 안식처로 돌아가는 길이다
                 내가 곧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길 되신 예수님께 눈이 뜨여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바른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형통의 길인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나는 진리요 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이 자신이 진리라고 할까요?


3. 왜 예수님이 자신이 진리라고 할까요?

요8:32절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즉 예수님에 대해 눈이 뜨여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면 네가 자유를 누린다고 합니다.
본래 진리 <알레데이아>란 말은 껍질을 벗긴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참모습을 모르고 일생을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죽을 때는 모든 껍질을 다 벗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느냐?
       바로 진리되신 예수님 앞에 설 때인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진정한 자유의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란 어떠한 자유일까요?

1) 죄의 속박에서부터 자유입니다.

요8:31절 이하 -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을 때 
유대인들이 하는 말이
[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 하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고 합니다.

철학자 부르너는 <정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자유에 대해 말하기를
[ 인간이 원하는 모든 자유의 성취는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한 쉼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속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은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하여 불신앙의 죄 우상숭배의 죄 그 밖에 수많은 양심의 죄들
이러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한 이상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한 삶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 예수님을 내 마음의 구주로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2) 현재의 삶에서 얻는 자유가 있습니다.

마11: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쉼 즉 참 자유를 주십니다.
특히 남이 내게 지어진 마음의 응어리 때문에 
      분노의 마음은 나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미움과 배신,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루터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가장 위대한 자유인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원수까지 용서하며 모든 것을 화평으로 돌려놓기 때문입니다.

제게 가슴에 묻고 있는 몇 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빠삐용이란 실화소설입니다. 영화로 나왔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실제 인물은 
       프랑스의 <앙리 샤리에르> 라는 사람입니다.
실적에 눈먼 검사에 의해 살인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악마의 섬이라 불리는 감옥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 탈출에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2가지가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데

1) 생을 허비한 죄를 네가 알렸다.
2) 속편 <빵고>에서 탈출 이유를 밝히는데
   14년 만에 탈출에 성공했을 때 친구가 말합니다.
   “네가 아무리 탈출에 성공했어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전히 너는 감옥에 있는 거야.”
그는 탈출하여 남미로 가서 온갖 고생을 하며
         오직 복수를 하기 위해 돈을 법니다.
그 뒤 30년 범죄 시효가 만료된 후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갑니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다녔던 거리, 고향집, 어릴 때 꿈꾸던 미래
       이런 것들이 굳은 마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그리고 체포되었던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속삭였다 너는 이겼다 너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참자유가 어떠한 것임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현재의 마음의 속박의 굴레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이야기 하나 더 할께요.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트램방> 마을에 네이팜탄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그 불길 속에서 겁에 질린 한 소녀가 알몸으로 도망쳐 뛰쳐나왔습니다.
그 소녀는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A.P통신의 <닉 우트>기자는 ‘네이팜 소녀’의 비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사진으로 <닉 우트>기자는 풀리쳐상을 받았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킴 푹>입니다. 
그녀는 현재 세계평화를 호소하는 유엔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킴 푹>은 말하기를 
“나를 전쟁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 주세요.
 한 때는 열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그때부터 행복과 사랑이 보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인 줄 믿습니다. 

3) 미래에 얻게 될 자유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있습니다.
미래에 얻게 될 자유는 바로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에서 얻게 될 자유입니다.
그기에는 생로병사가 없는 영원한 생명만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참자유를 주시고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 
         미래의 자유까지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 믿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배워야 합니다.

마11:29절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 

어느날  제자들이 랍비에게 찾아와 묻습니다.
“ 선생님 어떻게 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진리는 길에 널려잇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야.”
“선생님,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그거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합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낮추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생명 되신 분이십니다.  


4. 생명 되신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요10:10절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라면 어떤 생명입니까?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3:16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영생,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11:24-25절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겟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즉 사람의 생명에는 크게 두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육신적 생명과 영혼의 생명, 영혼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영생이라고 해서 죽어서 천국 가서 누리는 생명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까지입니다.
그러니 영생 속에는 이 땅에서 누리는 영생이 있습니다.
즉 더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개척교회 시절 한번은 외출에서 돌아오니
같이 사는 사람이 얼굴이 어두워요.
어차, 집에 양식이 떨어졌나 싶어서
“와, 쌀 떨어졌나?” 하니 
“사람이 밥만 먹고 살아요?” 
나는 사람이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았는데 
     밥만 먹는 다고 사는 게 아니랍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이요 할 때 영어성경에 
“I am life” 라고 합니다. life 란 삶이란 말입니다. 
삶이란 의미가 있어야 삶이 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란 말 Belive 는
      Be +life 삶이 있다 즉 삶의 의미가 있다
      Be + lief 기쁨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 속에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착점은 같은데 가는 길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고 예수님은 다른 성인들과 다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성인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구원받는 일이 앞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 같으면
안지랭이에서 올라가도 되고, 고산골에서 올라가도 되고
   심지어 뒤로 상인동 달비골에서 올라가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뭘 몰라서 그렇습니다.
본래 진실를 알고 나면 고집이 나옵니다.

다른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모든 성인들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도를 닦고 노력을 했지
     내가 곧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라고 한 성인은 없습니다.

행4:12절에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어느 나라 왕이 왕위를 물려줄 왕자를 선택하기 위하여 
     세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라 했습니다.
맏아들은 부채를 가져와 
         이 부채를 부치니까 권력과 군사가 한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즉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멧돌을 가져왔습니다. 
     멧돌을 열심히 돌리니까 금화가 막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로써 온 나라를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은 책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가르쳐 주는 책이었습니다. 
왕은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바른 길을 찾아 살게 되면
         나라의 안보도 경제도 견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은 바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온전케 살도록 인도할 뿐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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