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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 대처법 (행 2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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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대처법 (행 27:9~26)

전 세계의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인 미국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니까 그 여파로 세계경제가 엄청난 여파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경제위기를 만났고 그 여파는 엄청납니다. 바다로 비유하면 풍랑이 조금 센 것이 아니라 아주 거대한 태풍과도 같고 허리케인과도 같고 토네이도 중에서도 특급인 것 같습니다. 

경제적 풍랑은 경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에 영향을 줍니다. 정치, 문화,  교육, 사회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풍랑을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세계 선진국들의 경제가 요동치는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바다로 비유하면 태풍경보를 내린 상태입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은 상승하여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는데 가정 경제는 괜찮겠습니까? 이런 과정에서 괜찮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거세게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지면 항해하는 인생들의 배는 요동을 치며 배가 전복될 위험도 생깁니다.

감리교를 창설하고 성결교단의 신학의 근거가 되는 요한 웨슬리 목사의 어머니 수산나는 가정에서 「경건함과 지혜, 사랑의 교육」을 끊임없이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아이의 작은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열심을 다한 다음 남편으로부터 『당신의 인내심은 정말 놀랄만하군요. 그 애에게 똑같은 것을 지치지 않고 스무 번 씩이나 말하다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수산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답하기를. 『만일 내가 열아홉 번만 말했다면 나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거예요』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데 그 인내는 수산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인내로 인도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교육자이며 사회사업가이며, 목사인 J.F.오벨랑(1740∼1826)에게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호소하자 그는 이렇게 위로했다고 합니다.

『부인! 제 앞에 두 개의 보석이 놓여 있습니다. 이 둘은 색깔이나 투명도, 순수함에 있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는 눈부신 광채가 있고 다른 것은 흐릿합니다. 찬란히 빛나는 것은 80번이나 깎였지만 흐릿한 것은 8번 밖에 깎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그런 것입니다. 고통으로 깎인 영혼 은 광채가 있답니다』라고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런 풍랑으로 위기를 만나 바울의 경우를 통해 위기를 대처하는 귀한 지혜(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를 배우시기를 소원합니다.


1. 우리에게 찾아오는 위기의 풍랑은 여러 경로로 찾아옵니다.

1) 우리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고난과 시련의 풍랑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 때문에 생겨나는 폭풍의 경우 예를 들면 요나가 만난 풍랑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절하고 불순종하여 다른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징계로 찾아오는 풍랑이 있습니다. 이러 경우 회개하고 돌이키면 풍랑은 잔잔해 집니다.

2) 하나님께서 성도를 훈련하시려고 직접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시련을 통한 훈련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욥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풍랑이 찾아온 경우입니다. 요셉의 경우, 더욱 크게 사용하시려고 허락한 시련이었습니다. 동기는 애굽으로 형님들에게 팔려간 것은 요셉의 실수도 아니고 마귀의 장난이 아니라 형들의 시기와 미움에서 시작된 경우이지만 이것마저 하나님께서는 전화위복이 되도록 믿음으로 사는 요셉을 훈련하셔서 7년간 흉년기간에 구원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후손이 창대해 지는 복을 이루시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에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사건은 인류구원을 위한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하에 이루어진 풍랑입니다. 

3) 주변의 영향과 원인으로 여파가 생겨 위기의 풍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본문 14절에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라고 하였는데 한 배에 탄 바울도 어려움을 함께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아 고쳐 주었는데 그 주인이 이 여인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는데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거짓된 이유로 고소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일과 같은 경우입니다.

여러분들의 경우 여러분이 직접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 어려운 위기를 만났다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바울처럼 한 배를 타고 있는 상태였기에 여파로 인하여 찾아온 풍랑일 경우도 있고 두 번째 이미 소개한 사례처럼 하나님께서 더욱 귀하게 사용하시려고 훈련하는 경우의 풍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잘못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찾아오는 풍랑이라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한국의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개인의 경제위기가지 이어진다면 아마 억울하고 힘이 더욱 들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바울을 통해 대처하는 지혜를 배우시고 믿음으로 역경과 어려움을 돌파하고 이겨 내시어 아름다운 간증을 만들어 내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2. 위기를 잘못 대처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 혼란 속으로 빠지는 일반적인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이것은 2천 년 전 사도행전에 있었던 사건이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잘못된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하여 발생합니다. 

본문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하였습니다. 죄수를 책임지고 호송하는 '율리오'라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는 대신 선주와 선장의 충고를 따랐습니다.> 우리가 혼란 속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가 잘못된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뉴스 평론에서 최근에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잘못된 보도나 전문가들의 경제 낙관론이나 비관론으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는데 일조를 하였다'는 지적을 하곤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잘못된 주장과 희한한 미친 사상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매주 새로운 요법이나 또는 새로운 이단 종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문제 해결은 '기도만 하면 된다'고 하여 기도원으로 안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닙니다. 삶의 문제 해결은 예언자를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삶의 문제 해결은 석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강사가 하는 전문 세미나에 참석하면 문제해결의 방법이 보인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문제의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문을 받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전문가를 찾더라도 잘못된 전문가를 찾으면 안 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잘못된 전문가의 말을 듣다보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다가 오히려 어떤 사람은 건강을 더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 어려운 시기에 돈까지 떼이거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어떤 경우라도 안전하게 죄수를 로마로 전원 호송해야 합니다. 한 명이라도 놓치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폭풍을 만나 실종되면 백부장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항해의 경험 없는 백부장으로서는 전문가인 선주와 선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누구인가를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바울의 죄목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 때문에 죄인이 되었지 다른 사회적인 죄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까지 행한 행적을 알고 있던 사람이기에 바울의 말을 신용했어야 했습니다.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폭풍을 만나지 않으려면 세상 상식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 때는 항상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참고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항상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흔히 ‘목사님은 설교만 하시지 이런 사회적인 일들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가는 한 이미 여러분들은 잘못된 전문가에게로 달려가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과학, 건강, 직업 등 모든 부분에 전문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먼저 물으십시오. 하나님의 자문을 받으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신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위기와 문제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두 번째 이유는 


2) 잘못된 선택의 투표를 신뢰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12절에 말씀을 보면  “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고 하였습니다.

선원들과 배에 탄 사람들은 정박하고 있는 항구가 겨울을 지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뵈닉스로 가서 그레데에서 정박하기를 희망하여 다수결 원칙에 의해 항해를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문제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독단과 독선의 병패를 막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수결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일들은 정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고 누구의 주장이 정확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다수결의 방법, 투표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항상 위로부터 주어지는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환경만을 보고 선택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본문 12절 전반절에 보면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겨울을 지내기가 불편하여 뵈닉스를 선택했다는 것은 환경을 주요시 여겼고, <환경을 보면 미항 보다는 뵈닉스 항구가 훨씬 좋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13절에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어왔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자기들의 생각이 맞았다고 인정하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닻을 감아 올리고 그레데 해변을 가까지 하며 항해했습니다만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문제 속에 빠지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환경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배가 항해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 여기에서 남풍이 순하게 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배를 타는 선원들은 지중해의 순하고 잔잔한 바다로 항해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원들은 바다의 조건과 환경이 좋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원하는 대로 항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말씀과 반대되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환경이 좋으면 모든 것이 잘 될 줄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자기와 조차 롯의 가축이 점점 불어나서 도저히 같이 지내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짐승을 먹이기 위한 풀밭 때문에 종종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3장 8절 이하에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삼촌 아브라함으로부터 이 제안을 받은 롯은 자기가 선택할 장소를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조카 롯은 환경이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소알 땅을 바라보면서 물이 넉넉하고 푸른 초장이 펼쳐져 있어 마치 하나님의 동산 같은 낙원이었습니다. 마치 애굽의 나일강 주위의 고센땅과 같이 비옥한 땅이 눈에 확 들어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땅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었습니다. 살기가 좋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도시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이 많고 삶이 넉넉하니 결국 죄가 넘쳤던 곳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렇게 좋은 장소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롯이 선택한 그 장소 안의 모습을 1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성도 여러분! 환경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인간 환경이 좋지 않으면 결국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안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롯이 물이 풍부하고 초장이 풍성하고 살기가 좋은 곳으로 여기고 갔지만 결국 그 안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죄악가운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좋게 보이지만 여러분은 폭풍 속으로 항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이 탄 배가 남풍이 불어 아주 좋은 일기가 시작됨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을 생각하면서 출발했으나 결국은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현실보다 미래와 영원한 세계에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전진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것처럼 


3. 이미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오늘 사도행전 말씀에서 죄 없는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억울할 때 가이사 로마 황제에게 탄원하여 재판을 받을 수 있는데 죄수의 신분을 자처했고, 바울이 탄  배가 항해를 하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1) 사람의 주의 주장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9절 후반절과 10절에 "9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안다면 우리가 아무리 전문가의 진단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다수가 주장한다 할지라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모세가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들이 돌아와 보고한 내용을 가지고 가나안을 향하여 바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를 놓고 결정할 때 였는데 다수결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12명 중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나 '10명은 지금 정복할 수 없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지금 올라가서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요. 능히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백성들은 현실과 사실에 근거하여 통곡하며 모세를 원망까지 하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40년의 세월을 허송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수결의 방법으로 선택하여 살다가 보다 일찍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세상적인 전문적인 지식과 계산으로 하면 오히려 우리가 종종 폭풍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곳이 없어집니다. 항상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와 결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남에 지방고등학교로서는 유명한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열린 교육으로 인간교육으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10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남이 가지 않는 곳을 택하라’는 것과 ‘그 길로 가면 망한다고 하는 곳을 택하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교훈입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가지고 판단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되었는데 마지막에 가서 잘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된다고 했는데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었으나 순종하지 않고, 그들은 선장과 선주의 견해 즉, 사람의 경험과 주장에 근거하여 배를 출항하다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처름에는 남풍이 불고 순풍의 돛을 달았는데 결국은 북풍이 불었고, 폭풍이 불었습니다. 안전한 항구로 가야 할 배가 결국은 폭풍 속에 들어가 파선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경험을 가졌거나 지금 이런 경우에 직면한 분은 없습니까?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이런 위기에 빠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듯보다 하나님의 뜻을 쫓아 나아가시기를 부탁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항해하는 배에 폭풍과 풍랑이 찾아오듯이 인생사에도 고난과 위기는 예고가 없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장기간에 걸쳐서 항해하는데 풍랑을 만나지 않고 항해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항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같이 기상예보가 발달하고 정확한 예보를 해주어도 폭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는 사례들이 있는데, 당시에는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사에 찾아오는 시련이나 고난이나 위기를 잘 대처해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폭풍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자 본문을 살펴봅시다. 본래 바울이 탄 배가 가이사랴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도착한 곳은 그레데 섬의 ‘아름다운 항구’ 라는 이름을 가진 ‘미항’입니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선원들에게 항구를 떠나지 말도록 권고해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지중해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나게 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무시했습니다. 선원들이 항해를 한 이유는 현재 '미항'이라는 곳에서는 겨울을 지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해서 보다 더 안전한 항구, 즉 ‘뵈닉스’라는 항구로 옮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인내하여 참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도 <인내하지 못하고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여 스스로 폭풍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인내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도 참지 못하여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납니다. 

인내하지 못한 결혼생활, 인내하지 못한 이사, 인내하지 못하고 사표를 내거나, 인내하지 못하여 이혼을 하거나,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사업을 서둘러 시작하거나 폐업을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여 탈영하는 경우도 있고, 인내하지 못하여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인내하지 못한 나머지 사나운 폭풍 속으로 항해를 시작한 사례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바울은 본문 10절에 보면 선원들에게 분명하게 인내하여 기다리지 않으면 그 결과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그러나 그들은 선장의 말만 듣고 선주의 판단에 의해 그대로 항해를 시작한 결과 폭풍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태풍이 기다리는데도 항해를 하여 낭패를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이나 이성에 의존하여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여 더욱 커다란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바울처럼 어떤 경우에도 기도함으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통해 인내함으로 끝까지 순종함으로 풍랑과 상관없는 인생을 사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라고 바울은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했습니다.

인생 폭풍과 풍랑을 만나면 삶의 좌표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능력 밖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 어떤 힘으로도 폭풍을 가라앉힐 수도 없습니다. 이러다 보면 방치를 하게 됩니다. 포기를 하게 됩니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가다보면 길이 열리겠지’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심지어 15절에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라고 하였습니다. 풍랑이 워낙 거세게 부니까 선원들이 안간힘을 써보아도 해결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배를 오히려 풍랑에 맡겨버렸습니다. 방향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앞이 안보입니다. 어디가 섬인지, 육지인지, 어디가 망망대해인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성도 여러분 가운데나 혹은 가족가운데나 그렇지 않다면 이웃가운데 이런 폭풍을 만난 분은 안 계십니까?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함으로 말미암아 덩달아 우리나라의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거기에 여러분이 하는 

인생의 풍랑과 파도와 같은 시련과 위기와 위험과 고통을 만나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때 폭풍 속에서 위기를 극복한 선원들이 취한 행동을 살펴봅시다. 사업이나 가게나 다니는 직장이 큰 타격을 입어 풍랑을 겪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혹시 풍랑 속에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봅시다. 16-17절 말씀을 보면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방향을 잡으려고 항해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리 도움을 주는 배의 기구라도 태풍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될 만한 도구는 다 올리거나 내리거나 하여 최선을 다해 배가 전복되거나 좌초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18-19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풍랑을 극복하기 위해 선원들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은 배에 실었던 화물을 다 던졌습니다. 그리고 내려놓았던 배의 기구들을 다 바다에 던졌습니다. 어쩌면 날씨가 정상으로 돌아와도 항해하기 어려울정도로 기구까지 버렸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버린 것은 38절에 보면 먹을 양식인 밀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자신들이 배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생명을 얻기 위해 소중한 배에서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자 이 풍랑에서 <이들이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이 화물이었고, 다음이 배가 항해하는데 필요한 기구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심지어 양식까지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의 손실보다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포기가 가능했습니다. 

풍랑을 만나면 많은 손실을 입어야 하는데 경제적 손실이 먼저 찾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자본까지도 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찾아옵니다. 사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제일 먼저 버릴 수 있는 것이 재물입니다. 제일 먼저 곁을 떠나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일 먼저 버릴 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누구나 돈이 떨어지면 죽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가치관이 잘못된 것임을 교훈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탄 배에 276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절 봅시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했습니다.

항해기구도 다 버렸습니다. 먹을 양식까지 버렸습니다. 배에 실었던 화물 다 버렸습니다. 선원들이나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화물 주인이나 죄수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생입니다. 배에 짐을 없애고 기구까지도 버렸지만 폭풍은 여전히 불고 파도는 높게 일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살 여망이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고 더 이상 회생할 기미도 없고 살아보아도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드는 분들이 계십니까? 삶의 용기, 의욕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97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은행원인 아버지를 따라 이국땅에 온 소년은 학교 도서관에서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는 세계 곳곳의 바다와 사막, 계곡과 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연재만화를 기다리듯 매달 나오는 이 책을 고대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통해 자연을 탐구하던 소년은 미국 MIT대학에서 지구과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됐습니다. 1년에 평균 3개월을 바다에서 지내며 해저 지형을 연구했습니다.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목 아랫부분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습니다. 2006년 미국 데스밸리 지질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차량 전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했습니다. 기적 같은 재활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기사에는 ‘서울대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강단에 선 그는 슈퍼맨이었다’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이상묵 교수가 요즘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교수가 쓴 책의 제목 ‘0.1그램의 희망’에서 암시하듯, 이 교수가 재활에 성공한 것은 ‘긍정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사고로 장애를 입었지만 다시 재기해 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의 부분은 하늘이 가져가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주셨다”고 말한다. 희망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전문가의 잘못된 판단, 잘못된 투표로 다수결의 횡포, 지나치게 환경 중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험한 폭풍이 삶에 휘몰아칠 때, 우리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감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우리 삶을 엄습할 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야 합니다. 낙심과 절망의 그물이 던져져 있는 현실 상황이라도 희망으로 포기하지 다시 올리고 소망을 가지고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듯이 다시 던지시기를 부탁합니다. 


4)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상황에서 바울은 전능하신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난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응답을 받았고, 확신에찬 목소리로 본문 25절에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유명한 두 연애인, 안재환씨와 최진실씨, 그리고 지난 10일 뇌물 수령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김영철(61·차관급)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이 자살했습니다. 공통점은 돈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찾아온 풍랑으로 인해 재물의 손해를 입고 억울해 하거나 괴롭게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제는 먹을 것조차도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위기와 역경과 어려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특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방금 소개한 <이상묵교수>는 사고 직후 절망에 빠졌을 때도 운명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돌아봤다고 합니다. 

“나 때문에 피해와 손해를 보았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렸다. 가장 먼저 두 동생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장남인 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두 동생은 서러웠던 때가 많았을 것이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몸이 점점 가벼워지며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교수님은 입으로 빨아 작동하는 특수마우스를 통해 컴퓨터를 이용합니다. 손도 꼼짝할 수 없지만 IT기술의 도움으로 강연과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IT기술은 장애인에게 신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교수님의 대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낙심하고 좌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과 비교해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런 분들이 저렇게도 삶을 의욕적으로 살고 있는데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돈에 시달린다고 해서 살 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아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엄청나게 피해를 주고 떠나버린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생명이라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은 276명의 생명을 여전히 귀하게 보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 바울의 말을 비록 듣지 않았던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던 백부장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다른 많은 생명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23절에 하난님의 사자를 보내서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24절)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바울은 이제 살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듯한 사람들을 향하여 25절에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따라합시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기렇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확신과 응답과 불붙는 소원을 주시어 계속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도하시고 안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한 사람도 생명을 다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바울은 당당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을 통해서 276명에게 던져졌던 말씀이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에게도 응답과 확신을 주십니다.  이 귀한 약속이 여러분의 귀에, 아니 우리 모두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지기 바랍니다. 

“왜 나만 겪는 어려움이고 고통이고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뒤편에 도우시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기도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손잡고 계십니다.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들은 좌절하고 낙심하지 말고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어려움을 넉넉하게 이기게 하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물 가운데 건널 때에 침몰하지 않도록, 불 가운데 건널 때에 타지 않도록 지키시는 주님께서 손을 잡고 계십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나온 시간을 통해 우리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인자하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향해 있는 마음의 창을 닫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잠히 내 삶을 새롭게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시고 기도함으로 역경을 돞파하고 위기를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기도할 때 신령한 주님의 음성을 확신으로 평안함으로 성령의 내적 증거로 역사하시는 환경으로 듣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으라. 내니 안심하라” 우리는 오직 주님을 바라봅시다. 나를 고난과 역경과 실패와 위기와 좌절과 고통을 구원해 주실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바울처럼 기도하면서 소망 중에 걸어가는 복 된 삶을 사시고 승리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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