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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능력 (약 5: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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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능력 (약 5:13~18) 

우리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와 병에 걸렸을 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만일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기도할 마음이 생기고, 즐거울 때에 찬송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어려우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만 실패한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내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하며,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든든히 설 수 있겠습니까? 


1. 찬송하는 믿음 

(약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우리가 어려울 때에는 기도할 수 있고, 좋은 일을 당하였을 때에 찬송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기도하고 찬송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첫째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써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50:15). 둘째로, 즐거움에 처한 성도들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성도로서의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통 세상 사람들은 기쁠 때 즐거워하고 슬플 때 불평·불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고난 중에도 잘 침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통하여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으며, 찬송을 통하여 즐거움을 지속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도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기독교를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찬송하는 종교’라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찬송은 초대교회의 특징인데, 고린도 교회의 집회 때에 찬송이 늘 상존 했습니다(고전 14:15, 26). 바울은 전도하러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기쁨에 충만하여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찬송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믿음 생활에 있어서 흥미나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굳게 서는 안정된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늘 기쁨이 넘쳐서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와 찬송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우리에게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될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앙생활이라면 이 신앙이야말로 능력을 일으키는 신앙일 것이다. 

(빌 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병을 고치는 믿음 

본문은 병자를 심방(尋訪)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특별한 교훈입니다.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여기서 장로(행 11:30, 14:23, 벧전 5:1)를 청하라는 것은 교회 교역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바르고 위하여 기도할 것을 교훈 합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기름이나 의식 자체에도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보다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는 교회 교역자들을 청하여 기도를 받을 것이며, 심방자들은 병든 자를 위로, 격려하며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름은 당시 의약품으로 사용되어진 듯하다(눅 10:34). 그러나 그 기름이 정확하게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올리브기름을 환부에 바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는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위로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치료의 기사가 나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에 “치료하는 여호와임(여호와 라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 외에도 출애굽기 4장 6-7절에 문둥병의 치유, 민수기 16장 47절에 염병, 사무엘상 1장 6절에 불임, 열왕기상 17장 27절에 불치병, 왕하 6장 18절에 소경, 역대상 21장 13-15절에 온역, 욥기 2장 7절에 악창, 다니엘 4장 정신병 등등 각종 질병에 대한 치유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대표적으로 열왕기하 20장 1-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죽을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히스기야 왕은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아 선정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 특히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치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만도 41회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의 분명한 예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요 20:21).

존 윔버(John Wimber)는 복음서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연구하였는데, 복음서에는 거의 1/5이 예수님의 치유사역과 그로 인하여 야기된 일들에 관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4복음서에 나오는 3,779구절들 중에서 727구절이 육체적 정신적 질환의 치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남에 연관하여 쓰이고 있습니다. 

한편 유대인이 병을 얻게 되면 먼저 의사에게 가지 않고 랍비에게 갔습니다. 그러면 랍비는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약 중의 약이요, 병자에게는 최대의 위로였습니다. 또 초대 교회의 커다란 특징 중에 하나는 병자에 대하여 헌신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2세기 말 혹은 3세게 초에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장로로 임명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힙폴리테스의 법전).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병자를 치유해 주시지만 약을 통해서도 병자를 치유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통치자로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총으로 치유해 주시지만 일반 은총으로 베풀어 주신의 약품을 통하여 사람이 치유되시는 것도 원하십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가짜 약에 의해 치료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이지만, 어떤 약에 유효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해 환자에게 투여하면 실제로 그 효과를 거둔다는 이른바 소위 ‘위약(僞藥)효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소화제를 수면제로, 혹은 증류수를 해열제로 위장해 투여해도 잠을 잘 자고 열도 내린다는 얘기입니다. 실험에 의하면 환자의 약 35%에 이러한 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속임수 같은 말에 현혹되고 쉽게 넘어가는 경우를 봅니다. 자기가 다급하고 꼭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뭐든지 다 좋게 보이고 효과가 있는 것처럼 믿으려 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플라시보효과’ 정도로도 생각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별것 아닌 것처럼 불신을 하게 되면 우리 안에서 어떤 역사도 일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3. 믿음의 기도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병이 죄의 결과라는 사상은 성경에서 여러 번 나옵니다(신 28:22, 막 2:5, 요 9:2). 그러나 모든 병을 죄와 연관시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요 11:4). 단지 병이나 고난은 ‘근본적인 면’에서 볼 때 인류의 범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도들은 육체적인 시련이 닥쳤을 때 자신의 삶 전체를 점검하여 혹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허물되는 일이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고로 문제의 원인이 죄와 관련되었다고 본다면 우리는 기도하기를 늘 힘써야 할 것입니다. 

16절에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고 한 것은 심방하는 자와 병든 자를 포함하여 성도들이 함께 서로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서 기도하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죄의 고백은 강제성이 없이 스스로 고백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서로 고한다는 의미는 허물이 있는 자가 회개하는 심령으로 자신의 허물과 결점을 조금도 숨김없이 자발적으로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각종 기도회는 큰 능력을 일으키는 좋은 은혜 받을 만한 기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간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인’은 주 예수를 영접하여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의인의 간구’는 바로 이러한 자들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드려진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러한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선지자 엘리야 꼽고 있습니다. 그는 아합 왕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자로 비를 내리게도 하고 3년 6개월 동안 비를 그치게도 하는 기적을 나타내었습니다. 여기에서 야고보가 본 절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기도의 힘을 밝히려 했습니다. 

엘리야는 그의 신체와 본성적인 기질이 다른 사람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기적과 같은 일들이 기도를 통해서 능히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영국인은 걸으며 생각하고, 프랑스인은 생각하고 뛴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 사람은 뛴 다음의 계획까지도 미리 생각한다고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리 바쁘게 사십니까?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결 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낙망하며 특히 질병 앞에서 나약한 인간임을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의 힘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야 함을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의 삶을 살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능력 안에서 모든 근심과 좌절, 낙망 그리고 실패와 질병을 딛고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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