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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창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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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창 4:1~15)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 뛰어난 것이 있다면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바꿀 수 있고, 잘된 것은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잠언에 보면 "깨달음이 없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좀 더 깊이 생각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이래저래 겪는 일들이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해야 할 것은 사건은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사건에 대한 자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가 어떤 일을 당했느냐를 가지고 큰 관심거리로 생각하고 회제거리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전부인양 떠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누가 무슨 일을 당했느냐는 그 일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 가지고 두고두고 화두로 삼을 일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한 그 일을 그가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훨씬 더 궁금해 하고 중심된 주제여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건보다는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더 중요시 여기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그가 도둑질한 것이 중요합니까? 지금 개과천선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살며 도둑질한 것 이상으로 남에게 베풀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까?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실수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을 했지만 그 실수를 실패로 이어가지 않고 지금은 성공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옛날의 실수보다는 지금의 성공을 더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실수와 실패는 다른 것입니다. 실수란 하나의 과정이요, 실패는 바로 결과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끝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실수란 수없이 반복 되면서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과정으로써의 실수는 있지만 결론적인 실패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지고 일어 설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실수이지 결코 실패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실패했다고 함부로 진단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망도 하지 마십시오. 실수라 여기고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지면 됩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실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패냐 실수냐 하는 것은 그 사건에 임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끔 우리들이 많이 사용 하는 이 있는데 "하기 나름이다."는 말입니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네가 하기 나름이다."는 말처럼 세상에는 자동적으로 우연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이 사건이 있게 된 원인을 깨달을 수 있고 그로부터 깨끗이 돌이키면 길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실수했다고 곧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다가 실패라는 사건은 있을 수 있으나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실패라고 하는 사건들을 통하여 더 건전하고 더 건강하고 더 바르게 더 생동력 넘치는 인격으로 바뀌어야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가인]이라는 한 인간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에게는 동생 [아벨]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각각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사건이고 이 사건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이제 가인이 이 사건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가 어떤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따라서 그 운명이 좌우되고 이 순간 그가 무엇을 생각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과정에 대해서는 히 11장 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이 논리에 의하면 가인은 믿음 없이 드렸다는 얘기입니다. 

자, 이 사건을 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보는 대로 심히 분노합니다. 또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가인의 잘못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가인이 지금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분을 내고 안색이 변해야 합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알지 않습니까? 

설사 내가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닌 거 아닙니까? 쓸데없이 원인을 생각합니다. "동생 때문이다. 저 녀석이 잘 난척하는 바람에 하나님께 나만 욕먹는다. "아니면" 하나님, 하나님 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신경 좀 썼습니다. 조금은 알아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 안 드리는 놈도 있는데 그마나 드렸으니 괜찮은 것 아닙니까? 뭘 그러십니까?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여러분, 남들이야 뭐라고 하던 내 자신은 내가 압니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나보다 더 온전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십니다.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겁니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인이 안색이 변하고, 분하고, 속에서 들끓습니다. 갈등과 고민 번뇌가 일어납니다. 나아가 문제는 이 결과가 다른 방향으로 분출됩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재물을 다 받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가인이 안색은 안 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의 것은 받고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니까 화가 난 것입니다. 이건 질투로부터 시작된 분노입니다. 말하자면 내 제사를 받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동생의 제사를 받았기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이 사건을 하나님과 자기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벨과 자기의 문제로 보고 아벨을 들로 유인해서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사람에게서 해결하려고 했던 가인의 잘못된 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남을 탓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것을 <이웃 지향 적 속성> 혹은 <타인 지향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누구 때문에"라고 하는 이런 속성은 정말 문제입니다. 

여러분 생각하십시다. 내 문제는 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지 그 누구와의 관계도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이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가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받으셨으면 다시 하나님께 나와야지 왜 아벨은 생각합니까? 아벨의 제사를 받은 것에 대해 기분 나빠 할 것이 아니라 받지 않은 자신의 제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발전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의 문제 앞에서 타인지향 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을 혹시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할지 모릅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당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집니다. 그 사람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세상을 탓해 보기도 하는 가운데 나는 안전지대에 들어가 있습니다. 원인 제공의 용의선상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편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합니다. 남의 얘기 할 거 없습니다. 내가 어려워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나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성실했습니다. 진실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겪는 어려움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깨달으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욕합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이 일은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라고 나서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가끔 보면 무슨 사건이 하나 터졌을 때 총체적 위기라고 떠들썩합니다. 사회적인 문제요, 국가의 문제라고 떠듭니다. 요즈음 인터넷이 발달해서 무슨 이슈만 생기면 바로 댓글로 도배가 됩니다. 책임을 추궁하고 남을 비방하는 글로 빽빽합니다. 보면 맞는 말들입니다. 공감이 가는 댓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올리는 는 사람의 그 속에는 비밀한 생각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적어도 내 책임은 아니다." 라는 말로 들려질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해결이 없습니다. 차라리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은 조용하게 반성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모든 책임의 근본은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건의 원인은 오늘 제사 드린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겁니다. 가인이라는 이 사람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행위 속에 오늘 와서 제사만 드린 겁니다. 그러니 그 제사를 하나님이 안 받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제사를 안 받으셨다고 하는 이 사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이 사건으로 나타났지만 벌써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에 대한 결과가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당한 현실을 놓고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오늘 갑자기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잘못된 채로 살아왔던 겁니다. 그것이 오늘의 이 결과를 낳은 것이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벌써부터 누적되었던 것이 오늘 와서 분출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만 십일조 생활 정직하게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당장 망하지 않고 괜찮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적 되어서 이제 와서 터집니다.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했어도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원인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합니다. 

봉사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갔더니 그렇게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몸이 삐끗하더니 이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에 거리끼면서도 괜찮다 싶었던 것들이 누적되어서 터졌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 는 성경말씀처럼 새로운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사건이 나타난 것뿐입니다. 이미 진행된 지 오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뭔가 잘못된 것처럼 난리칠 것이 아닙니다. 벌써 고질적으로 수 년 전부터 쌓이고 쌓여서 있을 일이 있은 것뿐이요. 고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됩니다. 

누구 책임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살피는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 마음속에 벌써 오래 전부터 있었던 타성 화 된 그것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야 됩니다. 오늘 잘못된 내 믿음에 내일에 누적 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의 불신앙이 십년 이십 년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만약에 가인이 이런 생각을 했었다면 어땠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신 아벨의 제사는 도대체 어떤 제사일까?" 하고 좋은 모델을 삼았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인 콤플렉스>는 혼자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해결 됩니다. 예수님은 많은 모순과 부조리한 사건 앞에서 기도하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아주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임을 알고 조용히 그 어려운 십자가를 집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맙시다. 누구를 비판하고 저주하지도 맙시다. 누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도 맙시다. 다 있어야 됩니다. 다 함께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문제입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살아가실 때 여러분의 가정과 내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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