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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라 (삼상 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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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라 (삼상 23:1~11)
  

어린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고 또 읽어 달라고 한다. 엄마는 신이 나서 책을 읽어 주고 아이는 다시 읽어줄 것을 요구한다. 사실 어린 아이들은 이야기의 내용과 그 이야기의 뜻은 알지 못한다. 그러면 왜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는가? 그는 엄마와 놀고 있는 것이다. 즉, 엄마와 논다라는 것은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다.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고 엄마의 음성을 듣고 엄마와 이어지는 사귐 속에서 무한 즐거운 것이다. 엄마와의 친밀함 속에 머무는 아이는 그 교제가 너무도 만족하기에 계속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노는 것, 관계 맺기가 제일 중요하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친밀한 교제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없다. 성공의 날에도, 실패의 날에도, 박수 갈채를 받는 날에도, 멸시 천대를 받는 날에도 제일 우선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이스라엘의 왕들 중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에 탁월하였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아예 생활화된 신앙인이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여호와께 묻고”라는 말이다. 다윗은 매사를 자기 생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매사를 묻고 시작하였다. 무엇을 하나님께 물어보았는가?

1. 다윗은 그일라를 구원하는 일을 물었다. (삼상23:2)

다윗은 사울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다윗이 도망을 다니다가 가드로 가고 또 모압으로까지 도망을 다니는데(사무엘상 22장) 선지가 갓의 조언을 듣고 유다 땅으로 돌아와 헤렛 수풀에 거한다. 그때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 마당을 탈취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때 다윗은 자기 동족 그일라를 어려움의 위기 속에서 구원해야 하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환난을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400명 가량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을 위하여 하나님께 묻는다. 

삼상23:2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가라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나님께 묻는 다윗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원수를 물리치는 일을 위해서, 내 동족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묻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2. 다윗은 자기의 측근들의 반대 의견 앞에서 물었다. (삼상23:4)

다윗은 측근들은 400명이다. 나중에 늘어나서 600명이 되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전쟁에 출전하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대 의견을 개진하였다.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삼상23:3을 보면 도망 다니는 망명자의 생각은 사울을 두려워 하였다. 밤이나 낮이나 칼을 겨누고 쫓아다니는 사울의 추격을 피하는 일들로 삶은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도 견디기 힘든 것인데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냐고 반문하며 나온 것이다. 

블레셋은 본래가 강한 족속이다. 인간적으로 블레셋은 철기를 다룰 줄 알아서 전쟁 무기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족속이다. 그들과 전쟁을 시도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도망 다니는 일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망명자가 무슨 그일라 구원하는 전쟁에 뛰어든단 말인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의견이었다. 다윗은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할 때 하나님께 물었다. 삼상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다시 하나님께 묻는 다윗은 진지하고 세밀하다. 하나님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일라로 내려가라. 블레셋을 네 손에 붙이리라.”

신앙 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때때로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 때문에 확신이 흔들릴 때도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묻는 것은 안전한 것이다. 하나님께 묻는다고 하여 하나님이 싫어하실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 자꾸 물어보는 우리들이 연약한 아기 같을찌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마치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듣는 엄마처럼 즐거워하면서 대답해 주신다. 

아브라함을 보라. 의인 없어서 심판 받는 소돔성을 위해 한 번만 물었는가? 아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의인 50명이 있다면?”하고 묻는 기도가 45명, 40명, 30, 20, 10명, 결국 되풀이 되풀이하여 물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주님은 대답해 주셨다. “의인이 40명 있다면, 정말 10명이라도 있다면 벌하지 아니하리라.” 한 마디 한 마디 물음에 답하셨다. 그러므로 묻는 것, 그것이 생활화된 신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뜻하는 것이다.

  
3. 다윗은 안전한 장소를 구하기 위해서 물었다. (삼상23:12)

삼상23:12을 보라. 사울이 그일라로 내려와 다윗을 해하려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삼상23:12을 보면 그일라가 안전한 장소인지 아니면 사울이 내려와 다윗을 처치하는 장소가 될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일라가 안전한 장소가 아니고 그일라 사람들은 사울에게 충성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야 함을 알게 되었다.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 가량이 모두 일어나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떠나간다. 그리하여 다윗은 황무지 요새에 그리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 유하여 사울의 추격을 피하게 된다.

삶의 안전한 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이 땅보다 주님의 품이다. 주님의 품을 피난처로 삼고 주님에게 나아가 물으면 주님이 안전한 피난처를 안내해 주신다. 그러므로 장소를 물색하기 전, “황무지냐? 산골이냐?”를 결정하기 전 주님을 찾아서 물어라. 주님만이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며 지정한 신성과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암5:4을 보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다. 장소보다 하나님을 찾으면 산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시련의 때에만 묻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이 죽고 난 후 유다의 헤브론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도 여호와께 묻고 있다. 사무엘하 2장을 보면 “어디를 가리이까?” 사무엘하 5장을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의 7년을 마감한 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다. 삼하5:17에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됨을 듣고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올 때 다윗은 여호와께 또 묻는다.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 올라가리이까?” 삼하5:22 블레셋 사람이 르비딤 골짜기에 편만할 때 다윗은 여호와께 묻는다. “저의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라.” 그 명을 듣고 다윗은 블레셋을 쳐부순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도 고난의 시대 때와 똑같이 묻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신앙인이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을 자문자로 삼는 신앙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떻게 이런 신앙이 가능한가? 그것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상16:13)

이새의 아들인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는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 위해 붓는 기름부음을 통해 다윗은 새로워진다. 삼상16:13을 보면 기름부음을 받는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신, 즉 성령님에게 크게 감동받은 다윗은 하나님 의식을 느끼며 대왕의 그릇으로 자라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고 난 이후의 다윗의 삶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① 삼상16:18 -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신다는 말을 듣는다.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에 주변의 사람, 사울의 신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다윗으로 인정된다. 그리하여 사울에게 역사하는 악신을 쫓아낼 때 다윗이 수금 연주로 치료를 행한다. 다윗은 성령으로 감동되어 악신을 쫓는 사람이었으니 어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매순간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② 삼상17:26 -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위협할 때 다윗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고 말한다. 다윗은 용기 백배하였다. 만인이 두려움 속에 있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나아갔다. 그것은 사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이 고백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③ 삼상17:37 -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다윗은 삼상17:37에서 지난 날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지셨는데 앞으로도 건져내실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한다. 이 모든 확신의 고백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서 왔다. 다시 말해 다윗의 재능, 리더쉽, 도전하는 용기, 포용성, 시적 감수성, 전쟁의 승리 등 이 모든 것이 성령의 큰 감동에서 온 것이다.  

기름부음! 그것이 다윗에게 하나님 의식으로 살게 하고 기름부음! 그것이 정치가로, 군인으로, 시인으로, 음악가로 탁월하게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매사를 묻는 신앙의 생활화는 기름부음으로 인해 주어진 결과다. 기름부음 받음이 중요하다. 두려움의 날에도 하나님, 전쟁의 날에도 하나님, 피난의 날에도 하나님,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 매시 매초 매순간 하나님께 묻고 움직이는 삶, 그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묻는 자는 안전하다. 묻는 자는 성장한다. 묻는 자는 하나님이 구원의 산성이 되어주신다.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실패한다. 하나님 없이 행동하면 위험하다. 

기브온 족속들의 위장술 앞에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속은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으라.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가라. 그 묻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더욱 사모하라.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께 묻는 생활은 순간 순간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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