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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일에 형통하는 복 있는 사람은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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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형통하는 복 있는 사람은 (시 1:1~3)


오늘은 시편1편의 말씀을 가지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사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시편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 모릅니다.  지은이도 모르고, 지은 연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시를 자세히 읽어보아도 저자나 저작 연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시편에 수록된 150편의 시가 담고 있는 큰 주제, 시편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을 밝히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시입니다. 이 시편은 구약의 신앙을 한 두 마디로 표현해주는 압축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학자들이 시편1편은 시편 전체를 농축하여 얻은 고농축된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행복’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멸망한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가장 열망하는 “행복”이라는 말과, 가장 싫어하는 “멸망”이라는 시작과 끝에 나온다고 하는 것은 이 시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하나님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노래하고 있으며, 행복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불행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에게 두 가지의 길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길, 멸망이라는 길, 복된 길과 저주스러운 길이 놓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행복이라는 길을 추구하고, 갈망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행복의 산봉우리를 향해 달려갔지만, 순간 인생을 돌아보니 불행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동양 사람들은 오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장수하는 것이고(壽, 수), 둘째는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이고(富, 부), 셋째는 건강한 것이고 (康寧, 강녕), 넷째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이고(攸好德, 유호덕), 다섯째는 죽을 때 객사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숨지는 것(考終命, 고종명)이라고 합니다.   장수하는 비결 중에 치아가 건강해야 잘 먹을 수 있기에 건치(健齒)를 오복의 하나라고 하는데, 사실은 오복에 들어가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장수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고 봅니다. 

2005년 4월3일 로마 천주교의 교황이셨던 ‘요한바오로2세’가 선종하면서 남기신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폴란드 사람으로 제264대 교황에 추대되어, ‘신의 마라토너’, ‘행동하는 교황’이라는 이름을 남긴 천주교회 역사에 길이 빛나는 교황입니다.  1920년에 나서 2005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85세의 수를 누리신 분입니다.  재위 26년 동안 129개국을 순방하면서 평화의 사도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신 분입니다.  그 분 한 분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온화하신 모습이 전 세계 지성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신 말이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요즈음 성령 안에서 정말 행복합니다.  여러 성도들도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행복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행복이란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알려면 행복의 반대 개념을 생각해보아야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불만족스럽다, 슬픔을 느낀다, 원망스럽고 매사 짜증이 난다면 그것은 불행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불평과 불만에 차 있으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은 이 다섯 가지가 있으면 행복할 줄 알라고 합니다.  고대 철학자의 겸양의 미덕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란 완벽하고 만족할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남보다는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하고, 지금 살아가는데 충분한 것만이 아니라, 장래에도 걱정 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재산이든 외모나 명예에 있어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때부터 근심과 불안이 시작됩니다.  집이 한 채 있으면, 행복할 것입니까?  “두어 채 더 사서,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개를 보니, 집이 몇 채가 되고, 콘도 회원권이 있어, 여기 저기 쉬러 다니는 것 같다,  며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해외여행도 심심찮게 다니는 것 같구나.    아무개는 배운 것도 나보다 못한데, 입은 옷마다 명품이고, 부티가 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적당히 생각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진정 행복한 사람을 살 수 있습니다.  높은 데 쳐다보다가는 한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백 퍼센트 만족이란 없습니다.   조금은 모자라는 가운데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에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할 때에 강함 주시고,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버드대학에서 한 교수님이 ‘행복학’을 강의하였는데, 수강신청이 쇄도하여,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그때 강의한 것을 가지고 “해피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었습니다.  저자 “탈 벤-샤하르” 교수는 유대인 교수인데, 내일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과 내일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행복이란 훈련하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최고 일류대학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열광하면서 공부한 내용은 결코 행복은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의 6계명을 적어보았습니다.  

1)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라.  
2)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3)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통장잔고가 아닌,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 
4) 단순하게 살라  
5)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6)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라.

여러분, 행복이란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감정에 속합니다. 

탈 벤-샤하르 교수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물질적인 부유함과 연관을 짓는 것에 대하여 조심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었습니다. 정말 가지고 싶은 어떤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에, 원하는 것을 가졌다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란 길어야 며칠 밖에 가지 않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소유에서 행복을 얻지 말고, 사명감에서 행복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현재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그 일에서 오는 만족감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지난 2005년 2월에 발간된 타임지에서는 ‘행복학’에 관하여 강의하고 있는 전문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행복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뤼뜨 베인오우번(Ruut Veenhoven) 교수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천국에서도 불행할 수 있다.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좋아하는 것이다.”(You can be miserable in paradise... The secret of happiness is liking the life you have.)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모든 조건이 좋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도 결국 자기가 자신의 삶을 지금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생활, 교회생활, 직장생활에서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도 천국에서 가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1시간 드리는 오늘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도 좋을까!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어디에 있을까!”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람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지만, 한정된 시간이기에 본문에서 말씀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길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또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먼저 복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복 있는 사람”-“아쉬레 하이쉬”라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 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행복한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아니할 것은 안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시편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려면, 무엇을 해야 기뻐하고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편의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라고 하십니다.  사람이라면 하지 않아도 할 것은 하다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여기의 악인들이란 사악한 사람, 죄를 범하는 사람입니다. 악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여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경외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지혜가 아니라, 꾀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꾀는 지혜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은사로 주신 지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혜는 참 지혜가 아니라, 꾀만 나옵니다.  우리말에도 “꾀가 많다, 꾀쟁이다, 꾀를 부린다, 꾀가 난다”고 하는 말은 다 좋은 말이 아닙니다.  요령이나 피우고, 정도를 걸어가지 않고, 일을 쉽게 이루려고 하는 것으로 성실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요일2:15-17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해야 하는 것 중에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에서 빗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야할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길’이라고 하면 어떤 삶의 유형을 말합니다.   저 사람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합니다.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 아니라, 빗나간 길을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희생과 헌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지, 죄인들의 길에 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 쉽게 사는 길, 질러가는 길, 새치기하는 길이 아니라,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길을 가야 합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이란 말은 좀 설명해야 하는데, 히브리어로 “레찜”이라고 하였는데, 냉소적이고,경멸하고 불손하고, 비웃기를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3:15에 보면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오만한 사람입니다.   오만한 사람을 보면 좋은 말도 좋은 말로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회가 좋은 일을 해도 빈정거리고, 비방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교만한 정도를 넘어서 오만한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아니할 것은 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다 보면, 습관이 형성되어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마침내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스로 멸망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물리쳐야 합니다. 

조선왕조의 충신 중에 이덕무라는 대신이 있었습니다. 왕족의 서자 출신이었지만, 시를 많이 쓰고, 문장에 뛰어나 정조 때에 규장각을 운명하는 관리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 4가지를 자랑하였습니다.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하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이 네 가지 것은 비록 죽을 때까지 못하더라도 해될 것이 없다.  나로 하여금 자제들을 가르치게 한다면 마땅히 먼저 이 네 가지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을 인도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고, 아니할 것은 철저히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행복한 사람으로 살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토라”라고 하여 모세 오경을 말했지만, 구약 성경 전체를 율법과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싫증이 났습니까?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즐거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해야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감사 겸손, 인내가 좋습니다.

우리는 일생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아십니까?  어디 나가서 어깨나 재고, 알아주기를 바라고, 명예나 얻어 보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신앙을 아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불만에 가득 찬 사람을 보면 잘 해도 불만입니다.  “왜 당신은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거야?” 잘 되어도 불만입니다.  불만에 차 있는 사람은 봄이 되면, 노곤해서 싫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면, 더워서 싫습니다.  가을은 쓸쓸해서 싫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싫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작은 교회에 가면 부담이 되고, 작아서 틀렸다고 합니다.   큰 교회에 가면 대형교회는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건축하면 교회는 건축만 하느냐?  예수님이 목수여서 건축만 하느냐고 빈정거립니다.   뜨거운 교회는 소란하여 싫고, 경건한 교회는 초상집처럼 조용하여 싫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 중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천국체질이 되어야 재미가 있습니다.  설교 준비하는데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새 돈으로 바꾸어 정성스럽게 헌금하는 것도 좋습니다.  교회에 가면 언제나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영락교회를 이루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던 한경직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많은 목사님들이 찾아가셨는데, 그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말씀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잘 믿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하고, 옆에 두고 읽고 묵상해야 됩니다.  묵상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하가”라는 말인데, “비둘기가 구구거리는 것 같이 중얼거리다,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말입니다.  묵상이란 말과 명상이란 말은 동의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명상하는 것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고 다른 잡념은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억울한 마음도, 분한 마음도 슬픈 마음도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마음에 담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면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적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됩니다.  대화라는 것은 나와 말하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석을 주시고,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우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마르지 아니함 같이 형통하는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조한 지역입니다.   메마른 땅에 자란 나무는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떠다가 시냇가에 심어두면, 물을 공급받아 나무가 잘 자랍니다. 장소가 중요합니다.  나무는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같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자리에 심겨져야 합니다. 나무는 수분과 영양분만 공급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은 수분과 영양분만 공급해주면 인생에 있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는 나무는 이미 시냇가에 심겨졌습니다.  이 시냇가만 떠나지 않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형통한 삶을 사십니다.  의인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다만 말씀 중심으로 살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귀한 것으로 안겨주십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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