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 16:19~34)

  • 잡초 잡초
  • 227
  • 0

첨부 1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 16:19~34)


성경에는 참 귀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세 가지를 꼽습니다. 하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꼽는 말씀은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예수 이름이외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기독교의 복음화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외 사람들 또 기독교내에서도 아직 믿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해서 다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독교는 이 말씀은 양보하지 못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조화하고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타협도 하고 공존도 하지만 우리가 지킬 것은 지키고 가질 것은 가질 때 올바른 조화, 올바른 균형, 올바른 화합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기독교에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나머지 하나가 오늘 본문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와 내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하나 아실 것은 내가 믿었다고 내 집이 당연하게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믿음을 보고,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가족들과 자녀들이 감동을 받아 나처럼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를 하던 중에 체포를 당해서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밤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문이 열리고 죄수를 묶어두었던 쇠사슬들이 다 풀렸습니다. 간수가 자다 깨어보니 큰일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깜깜한데서 그것을 보고 있던 바울이 우리는 도망가지 않았으니 자결하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밝은 곳에서 이 소리를 들은 간수가 바울과 그 일행이 있는 어두운 곳으로 가서 그들을 직접 보고 그 앞에 퍽 엎드렸습니다. 

아마 엎드린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많이 맞고 당했기 때문에 기회가 되었을 때 얼른 도망갔어야 하는데 도망가지 않은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바로 잡아넣어서는 안 될 바울과 실라 라는 하나님의 종을 잡아넣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두려워서 엎드렸을 수 있습니다. 간수가 “선생님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답이 오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 일행이 감옥에 갇혀서 이 기적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놀라운 기적을 주실까요?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바울과 실라가 그렇게 많이 맞고 감옥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아주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자칫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또 이런 저런 무엇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을 주시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으로 이용할 수 있고, 이용당할 수도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고 이런 복을 받는다고 잘못 오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봉사를 하고 찬송을 하고 헌금을 한다고 정말 이런 기적을 주시겠습니까? 성경은 어느 곳에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는 미신, 샤머니즘을 넘어가지 못하고 초라한 종교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저부터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울일행에게 그 놀라운 기적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유럽 쪽입니다. 오른쪽은 아시아이고 왼쪽은 유럽인데 유럽 첫 부분인 빌립보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유럽에서 전도하기 시작한 첫 번째 도시가 빌립보인데 그 전에 사도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다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은 바울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시아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잘 보겠습니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일이 잘 풀려나갔는데 갑자기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몸까지 아팠습니다. 도대체 풀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상 중에 유럽사람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도와달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길이 열리지 않고 자기 몸이 그렇게 아픈 까닭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직 복음을 많이 전해야할 것 같지만 이제는 아시아에서의 모든 일들을 접고 유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기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넘어와서 온 첫도시가 빌립보였습니다. 여기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거기에도 까닭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던 중 점치는 여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안타깝게 여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점쟁이는 점을 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쟁이가 점을 보는 것으로 인해 돈을 버는 사람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장사가 안 되니 점보는 집 주인이 바울 일행을 고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잡혀가서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 일행을 중죄인을 감금하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 누구든지 이런 큰 고통을 당하는 까닭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맞을 때 옷을 벗기고 맞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바울은 얼마나 큰 수모를 당했습니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더 힘든 것은 마음의 갈등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그 길로 나갔는데 과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린데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하나도 도와주시지 않았습니다. 귀한 일을 하고 예수를 잘 믿으려고 작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도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얼마나 갈등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충분히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살아가는 동안 돈을 좀 잘 벌고 이런 저런 문제가 없어야지 전도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텐데 왜 이렇게 안 풀어주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이런 아픔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만도 갈등도 회의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때로는 배신을 당하고 오해를 받고 먹지 않아야 할 욕을 먹는 일들, 감옥에 갇히고 터지고 깨지고 찢기고 수모를 당하는 이런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유럽으로 이끄시는 것처럼 이것도 무언지 몰라도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개연성,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 이 마음이 찬송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입만으로 하는 노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온 몸으로, 온 삶으로, 영혼을 통해서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이 믿음이 찬송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내가 터지는 이것도 하나님께서 큰일을 하시는데 한 부분이라면 당연히 그런 일을 빨리 당해야지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찬송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통, 어려움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기쁘게 감사함으로 ‘하나님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귀한 일에 쓰여 주셨습니까? 저에게 어떻게 이렇게 귀한 일을 맡겨주셨습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자기가 감옥에 가지 아니하고, 오해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노래를 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냥 찬송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러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 아주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종 하박국 선지자가 조국을 보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물론 조국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지만 더 나쁜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기다렸습니다. 그것을 하박국 2장에서는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2:1)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자는 것입니다. 

기다려서 들은 하나님의 대답에 하박국 선지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기대했던 것과 정 반대였습니다. 위로라도 해주시고 앞으로는 괜찮을 같다고 말씀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지금까지 당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3:16) 라고 자기 심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너무 너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하지 아니하고 더 어려울 것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뻔히 보고 계시면서 그런 일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의 기대와 정반대의 대답에 하나님께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유명한 찬송입니다.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냥 두실 리가 없다는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위대합니까? 위대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러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그 놀라운 기적들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박국이 어떻게 그런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당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9)..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어코는 이렇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는 것입니다. 조금 더 당해도 괜찮고 조금 더 어려움이 있고, 조금 더 힘들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바울의 찬송이 바로 이 찬송입니다. 하나님은 입만으로 노래하는 그것을 보시고 큰 기적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찬송을 통해서 나오는 그 마음, 그 신뢰, 그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무서운 폭풍이 아주 자주 요즘 우리들에게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쓰나미가 휩쓸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언론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저 남의 일처럼 스쳐가는 것은 좀 많이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많이 생각해야합니다. 지진, 그리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정부도 꼼짝하지 못하는 허리케인들, 최근의 불고 있는 경제폭풍들 이런 폭풍들은 언제라도 불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 불어 닥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힘든 것은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런 폭풍이 얼마든지 불어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만 그친다면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 사랑하는 아들딸들에게 닥친다면 저 아이들은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버티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때 생각해볼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시편 46편 말씀인데 오래 전에 한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시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리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1-3) 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냥 큰소리친 것이 아니라 근거가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46:5-11) 라고 노래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노래입니까? 

그 시인처럼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이 하나님을 아시기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바울은 자기를 구속하여 구원해주시고, 지명하여 다마스크스 도상에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43:2-4) 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 감옥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데 감옥의 기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첫 교회가 빌립보 교회인데 이 교회가 감옥에서 자결할 뻔했던 간수의 집안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34절).. 이 사람들이 유럽의 첫 번 교회의 첫 교인이 되었습니다. 또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에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5-36절).. 사람을 보내어 나라가고 하니 바울은 대장이 와서 인사를 해야만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을 가려고 비자신청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미국 비자를 받으려면 대사관에서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저도 그렇게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서 비자도 주고, 비행기표, 초청장을 줘야만 가지 그냥은 절대로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꼭 집회를 해달라고 초청했습니다. 웬만하면 잘 가지 않는데 꼭 도와달라고 하니 가야할 것 같았습니다. 대사관에 가서 줄을 서야하는데 한 말도 있거니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아서 서류를 꾸며 등기로 미국대사관에 보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해주실지 모르니까 서류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가 와서 열어보니 10년 비자가 왔습니다. 결국 준비된 비행기표, 초청장, 비자로 미국에 가서 집회를 잘 마쳤습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대장들이 와서 인사를 해야 간다고 하니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38-39절)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도 세우고 인사를 받고 다음 행선지로 갔습니다. 가서 그냥 고생만 하고 환란만 당하고 매만 맞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어떤 상황,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철저하게 믿으십시오. 사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사도바울에게 주셨던 그 놀라운 기적을 여러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