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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전 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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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전 7:8~14)

 
당신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이 최고의 시기입니까?

 누군가 우리를 향해서 당신의 생애 중에 최고의 시간, 절정의 시간이 언제였는지 물으면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대답합니다. 과거를 자랑하거나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왕년에’, ‘예전에’라는 말을 하며 과거를 자랑하는 것은 멋진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인생을 아주 열심히 살았다는 표본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축복받은 오늘의 시간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와서 설교를 몇 번 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일과 주일예배 설교, 제직회, 권사회 설교 등을 다 합해보니 2000번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설교할 때마다 사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제 증거한 말씀보다 하나님께서 오늘 더 동행해 주시고 능력 주셔서 말씀 충만, 예수 충만, 성령 충만의 역사를 이루어주옵소서. 오직 성령님께만 의지하고 오늘 이 설교가 마지막 설교처럼 종말론적인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생애는 어느 순간이 최고의 생애입니까? 지금 이 시간을 가장 소중한 축복의 시간으로 받고 있습니까? 예배드리는 순간 온전히 내 마음과 생각을 예배에 집중하는 것은 축복받은 사람의 태도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집안 걱정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교회 가서 열심히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면 이것은 실패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순간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자신의 삶을 충성스럽게 산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에 자신의 전 존재를 집어넣는 용기와 집중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짧은 글을 하나 썼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기억해두시오. 가장 적당한 시기란 오로지 ‘지금 이 순간’뿐 이라는 것을. 그것은 지금이라는 시간만이 우리 인간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란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오. 오직 그것만이 인간이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이기 때문이지요.” 
  
톨스토이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바로 이 시간,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 그 사람, 가장 소중한 일은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고 삶의 고백을 합니다. 
  
오늘이 왜 중요할까요? 오늘만이 내가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음이란 모든 것을 어제의 사건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오늘이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순간 더 이상의 현재와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죽음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오늘이 축복받은 날입니다. 내가 오늘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감격스럽게 가슴을 펴고 오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문호였던 프리드리히 쉴러가 시간에 대한 이런 말을 합니다. “시간의 걸음걸이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머뭇머뭇 거리면서 내게 다가온다.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 
  
과거는 정지해있고 변하지 않으며 바꿀 수가 없습니다. 현재만이 움직입니다. 오늘만이 움직입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오늘을 살 때 느끼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오늘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인생을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오늘을 살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전도서 기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전도서 7:10)

 ‘옛날이 좋았었는데’, ‘왕년에 참 멋있었는데’, ‘그때 내가 참 괜찮았는데.’라고 옛날을 그리워하며 오늘보다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자의 사고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과거의 모든 것이 우리 삶의 생각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것, 내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옛날을 끊임없이 회상하면서 거기에 연연하고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늘을 사는 지혜가 아닙니다. 오늘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데일 위더링톤(Dale Witherington) 이라는 사람이 쓴 ‘인생을 설계하는 사람의 신조’라고 하는 시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성공과 승리, 노력과 패배로 가득 찬 어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미 지나갔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라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과거로 돌아가서 바꿀 수도 없는 법. 
그러나 나는 과거로부터 배워서 오늘을 개선하고 있지. 
오늘 바로 이 순간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바로 오늘. 
이것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이니 최선을 다하리.
 
오늘을 지혜롭게 살려면 너무 빨리 분노하고 화를 내지 마십시오. 

오늘을 기뻐하며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인생의 지혜를 가지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기본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하나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과거 지향적이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도서 7:9)
 
분노하며 화를 쉽게 내지 말씀합니다. 분노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과거에 집착해 있습니다. ‘내가 어제 어떤 존재였는데, 내가 어떤 영광을 가졌는데 나를 무시하고 조롱해!’하며 이상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풀려지지 않는 화를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를 못살게 굽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을 차단시키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제가 소중하여 과거에 연연하기 때문에 오늘의 축복을 상실합니다. 어제를 너무 과대 포장하여 어제에 의존합니다. 과거의 성공을 너무 미화하여 ‘왕년에’라는 말을 남발합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대한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이 더 좋았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옛날이 좋았는데, 옛날이 그리워’라고 말한다면 깜짝 놀라셔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것이 젊음의 마음이고 인생을 멋지게 사는 비결입니다. 백발이 되어도 그렇게 사는 것이 멋지게 나이 드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 안에 있는 투덜이와 결별선언을 하십시오. 

예전이 더 좋았던 것을 마음속에 자꾸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선언해야 합니다. “어제는 어제로 끝났다.” 어제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추억 속에 있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노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봐야합니다. ‘내가 어제의 문제, 어제의 추억 때문에 너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노하는 속도를 늦춰 천천히 분노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분노하면 분노의 불이 자신을 불태웁니다. 때로 의로운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새겨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의로운 분노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노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분노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을 살리는 참된 분노인가?’ 우리가 이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그것조차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분노로 끝나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잠언서의 지혜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잠언 22:24)

화와 분노는 나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같이 분노하자고 말하며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서로를 파괴시킵니다. 이것이 분노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의 고정된 생각이 있습니다. “내 불행, 내 어려움은 네 책임이야”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 투덜이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불평분자가 들어 있습니다. 끊임없이 과거를 집착하고 오늘을 불만과 불평으로 살라고 꼬드깁니다. 아주 고집이 세어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고 할 때 과거의 실패를 들먹거리면서 우리를 죄의식으로 불러일으킵니다. 자기를 향해 비난하고 조소하게 합니다. “너는 못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것을 끊임없이 터트리면서 공격합니다. 그때 불평분자인 내 속의 투덜이를 향해서 소리쳐야 합니다. “야, 이제 그만해. 난 너하고 결별할거야. 난 너 같은 불평분자가 필요 없어. 너는 내가 가는 앞길을 방해할 수 없어.”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가장 못살게 구는 존재, 나를 비굴하게 하는 존재가 도대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런 내마음속에 있는 나를 향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내안의 축복들을 빼앗아 가려는 것을 향해서 결별을 선언해야 참다운 지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낫다는 확신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 부으십시오. 

그렇다면 우리가 분노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은 우리 마음속에 이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이 내게 주신 가장 좋은 날이다.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다. 어제 아무리 찬란한 과거와 영광이 있었어도 오늘만 못하다. 오늘 내게 주어진 축복의 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으리.”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 인생이 새롭게 열려질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내 생각과 열정과 소중한 것을 쏟아 부을 때 오늘이 어제의 모든 좌절과 슬픔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축복받은 날로 변화됩니다. 이것은 인생의 굴곡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우리는 미래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다 안다면 얼마나 혼란이 생기겠습니까? 내가 죽는 날을 안다면 불행합니다. 그냥 열심히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살다가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그냥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의 날을 비밀로 하셨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움의 역사를 어떻게 알고 하나님께 의지할 것인지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다가도 걱정할까요? 인간이 축복받을 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다가도 금방 풍요로워지면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곤고함을 안 주려다가도 곤고함 속에 우리를 내버려두어 우리를 새롭게 하려고 하는데 인간이 곤고할 때는 원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풍요로울 때는 하나님을 잊고 곤고할 때 하나님 원망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풍요로울 때 감사하고 기뻐하고 곤고할 때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 기대해야 합니다. 

인생은 승리하는 날도 있고 실패하는 날도 있습니다. 

인생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겨나가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유익합니다. 가장 고통과 고난을 많이 당한 욥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

내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는 단련이요, 훈련임을 알고 그것이 끝난 다음에 정금같이 빛이 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지혜로는 사람은 인생에 햇빛이 비추는 날도 있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도 있음을 압니다. 승리하고 기뻐하는 날도 있고 실패하고 낙담하며 신음하는 날도 있음을 압니다.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정상에 날도 있고 깊은 골짜기에서 고통으로 탄식하는 날도 있음을 압니다. 그렇게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습니다. 
  
여러분, 하루 중에 어떤 때가 가장 어둡습니까? 동쪽에 여명이 동터오는 직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어둡다는 것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가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돼지  그릇에 있는 쥐엄열매에 입을 대는 돼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가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돌아오는 접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해결하기 어려운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까?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교회와 사회 속에서 정치 경제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까? 고통의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의 생각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전력해서 기뻐하고 사랑하면서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건강을 갖고 일 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지금 다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살아있는 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늦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삶에 전력을 다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새로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역사를 이 땅위에서 펼쳐 주실 것입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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