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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 가데스 (민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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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민14:1-10

제목: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 가데스에서

금년 초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운데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생순’이라는 준말로도 불리기도 했던 이 영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했던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올림픽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둬 오면서도 정작 비인기 종목으로 꼽히는 대한민국 핸드볼의 열악한 환경과, 올림픽 결승전에서 덴마크 선수들과 맞붙은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아테네 올림픽에서 덴마크 팀과 경기를 벌인 한국 팀은 전반전과 후반전 동점, 연장전 동점 끝에 승부던지기에서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 경기는 운동선수로서는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카니’라는 사람은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 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항해 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미래는 지금 이 순간 선택의 결과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영성과 지적 능력을 늘려가고
 재무적인 준비를 해야 아직 오지 않은 최고의 날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은 출애굽이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도 아니고, 시내산에 머물거나 광야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생애 가장 최고의 순간, 최고의 꿈은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탈출한 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애 최고의 날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엘림을 지나고, 시내산을 통과하여 바란 광야 한복판에 있는 가데스까지 왔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과연 가데스는 어떤 곳일까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가데스는 그들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일까요?

첫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후 이스라엘은 여러 곳을 지나 여기 가데스까지 달려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각 종족의 대표를 세워 가나안땅을 탐지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모세는 명령에 따라 각 지파의 대표를 선발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다지파의 대표로 갈렙이 있었고, 에브라임지파의 대표로 여호수아가 선발되어 다른 지파의 대표와 함께 가나안땅을 40일간 탐지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민수기 13장과 14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 가데스에서 약속의 땅을 탐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그곳을 실제로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곳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단순히 생각이나 바라만 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그곳에 들어간다는 꿈을 심어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에게 궁극적인 목적지는 광야가 아니라 바로 가나안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마음에 생각하고, 그곳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방향을 잡고, 그곳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나안에 대한 꿈을 갖게 하셨고, 그들 삶에 비전과 방향과 목표를 삼게하신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서 가데스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은 가데스에서 꿈과 비전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데스는 그들이 바라본 곳이요, 꿈을 꾸면서 탐지하려고 보낸 곳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믿는 자에게 심어주려는 중요한 의도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믿는 자를 향해 꿈과 비전, 방향과 목표를 알려줍니다.  그곳을 늘 바라보게 하고, 그곳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가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나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꿈과 비전을 갖고 그 길을 향해 갑니다.  멀게는 저 천국을 향하여 가는 것이고, 가깝게는 이제 성전입당의 순간을 향해 갑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이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그 길이 갈 길이 아니면, 바른 길이 아니면, 목적지에 도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방향이 참 중요합니다.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져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르면 사실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바라보는 자에게 가질 마음은 기대감이요, 설렘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방향을 잡고 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하고, 설렘과 흥분이 넘쳐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여, 바라보고 꿈을 꾸면서 기대감과 설렘으로 한걸음씩 주님이 주신 땅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믿음을 시험한 곳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보고가 나옵니다.  그들의 보고는 정확하게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보고요,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보고입니다.  열 지파는 부정적이요, 두 지파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보고에 대해 13장 26절부터 33절까지에 나오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한마디로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보고에 대해 결국 두 가지의 명확한 반응이 나옵니다.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한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마치 사람이 죽은 것처럼 곡을 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인데 그들은 옷을 찢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한마디로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렵지만 하나님이 도우시면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요,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의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데스는 바로 이런 곳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난장판처럼 보였지만 명확하게 선이 그어진 곳입니다.  부정적인 보고, 긍정적인 보고, 부정적인 반응,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그것을 규정하는 잣대는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환경 힘들더라도 믿음이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물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불합격한 사람은 못 갔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신앙이 빠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믿음이 빠지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입니다.  세상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환경이나 현실이 아니라 오직 주님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면 당연히 사람은 작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크면 다른 것은 작게 보입니다.  믿음이 작으면 다른 것이 너무 크게 보여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마음,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반응, 부정적인 행동이 나옵니다.  당시 이런 백성을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긍정적인 보고와 말과 반응을 보인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도우신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후 가데스에 오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홍해에서는 놀라운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충만하다, 우리는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이들은 하나님이 치르신 시험에서 통과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믿음이 승리하여 다음세대의 주역으로 우뚝 서서 그들 인생에 최고의 순간을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늘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크게 보면서 여러분의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 곳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한 큰 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한 당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가데스는 출애굽여정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갖고 약속의 땅으로 가던 그들에게 지금까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홍해를 지난 뒤 시내산의 여정에 밑으로 내려간 길이지만 시내산은 하나님의 성결과 계명과 성막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중요한 곳에서 적어도 1년 이상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옮긴 곳이 바란광야, 가데스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부터 그들은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가나안땅을 지척에 두고 그들은 한걸음도 앞으로는 가지 못했습니다.  광야를 맴돌았습니다.  때론 뒤로 물러가기도 했습니다.  한곳에서 지겹도록 오랜 세월을 지냅니다.  그렇게 38년 이상을 뱅뱅 돌았습니다.  이십세 이상 광야세대의 사람들이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들이 모두 죽은 뒤에 광야 2세대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으로 요단강가에 서게 된 것입니다.  

분명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은 앞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안 되고,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주위만 맴도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데스에서 한걸음도 앞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가데스는 바로 그런 곳이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길은 앞으로 가는 길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안 되고, 옆으로 빠져서도 안 됩니다.  제자리에 정착하거나 자리를 잡아서도 안 되고, 주위만 맴돌면 더욱 안 되는 길입니다.  물은 흘러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합니다.  길은 가야 하고, 씨앗은 썩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고, 발전이 있고, 부흥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길은 끊임없이 앞으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과연 앞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혹이라도 내 신앙은 오래 동안 머물러 정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맴돌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신앙, 나의 삶, 나의 섬김과 봉사,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지난주 저는 한편의 시를 접했습니다.  오세영이란 시인이 만든 ‘딸에게’입니다.  시집을 보내는 딸을 향한 부모의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가을바람 불어/ 허공의 빈 나뭇가지처럼 아빠는 울고 있다만 딸아/ 너는 무심히 예복을 고르고만 있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 강변의 갈대는 흐르는 물을/ 언덕의 풀잎은/ 스치는 바람을 붙들지 못해 우는 것/ 그러나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 붙들려 매어 있는 것치고/ 썩지 않는 것이란 없단다/ 안간힘 써 뽑히지 않는 나무는/ 제자리에서 썩지만/ 스스로 뿌리치고 땅에 떨어지는 열매는/ 언 땅에서도 새싹을 틔우지 않더나/ 막막한 지상으로 홀로 너를 보내는 날/ 아빠는 문득 뒤 곁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여러분,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제 과감히 떠나보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 평생 맴돌거나 머물게 합니다.  이제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데스는 바라보는 곳이고, 믿음을 시험한 곳이며, 그리고 앞으로 가지 못하게 된 곳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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