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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 (롬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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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환율 급등, 주가하락... 사람들은 10년 전 IMF, 1929년 미국의 대공항을 떠올리며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 톱스타의 자살은 불 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 교회의 성도였던 그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을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도대체 왜?...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그때,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목숨을 던지는 자들이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외없이 그 무언가를 위하여 날마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세 가지를 위해 목숨을 던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2)" 여기에 '사랑'으로 번역된 단어 '필라우토스'는 '이기적인, 탐욕적인'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던집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일전 캐나다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한 형제는 자녀들을 캐나다로 보내놓고 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참새아빠'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게 되었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가서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지만 결국 낯선 이국에서 대형트럭을 운전하며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던집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자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엔조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술, 담배를 즐깁니다. 그러면서 목숨은 마치 모래시계에 모래가 빠져나가듯 점점 빠져나갑니다.

둘째는 '돈'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던집니다.(딤전6:9~10) 가족? 신앙? 돈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사탄은 중립적인 돈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한 청년에게 다가가서 열개의 병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열 병중에 단 한 개의 병에만 독약이 들어있다. 이중 병 하나를 골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 청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돈이 탐나 한 병을 골라 조심스레 마셨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자 환호를 지르며 돈을 받아가지고 사라졌습니다. 사탄이 사라져가는 청년에게 속삭입니다. "언제라도 와서 아홉 병중에 하나를 골라 마시면 돈을 배로 주겠다." 이 청년은 가서 방탕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사탄을 찾아와 독이 들어있지 않은 병을 골랐습니다. 아홉 개, 여덟 개...

어느덧 청년은 늙은 노인이 되었고 그 앞에는 이제 두 병만이 남았습니다. 청년은 두 병 중 하나를 골라서 마셨고, 독약이 든 병을 피하고 끝까지 살아남자 청년은 환호하며 사탄에게 소리칩니다. "내가 이겼다. 돈 내놔라, 이제 다시는 너를 찾아오지 않겠다." 그 순간 사탄이 남은 한 병을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극약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극약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다. 나는 너의 젊음, 비전을 이 돈으로 다 망가트렸다. 나는 너를 돈밖에 모르는 바보로 만들었다" 하고 사려져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쾌락'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던집니다. 불란서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 나나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풍만한 육체와 눈부신 미모를 가진 여배우였지만 가난이 두려웠고, 내일을 믿지 않았기에 쾌락도 즐기고 돈도 모을 수 있는 매춘부가 됩니다. 창녀가 된 나나의 주위에 수많은 남자들이 몰려들어 자기의 재산을 모두 바쳐가며 나나의 사랑을 얻으려고 발버둥칩니다. 결국 이들 모두는 탕진, 파산, 몰락, 자살이라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나 자신도 왕궁처럼 화려한 거실에서 결국 천연두에 걸려 죽어갑니다.

소설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비너스는 썩고 있었습니다. 시궁창이나 길거리에 내버려진 상한 고깃덩이처럼 썩고 있었습니다.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숱한 사람을 해친 독소가 마침내 스스로의 얼굴을 천연두로 썩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쾌락은 인간을 가장 완전하게 파멸시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전혀 다른 것을 위하여 자기의 목까지도 내놓는 사람,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행18:2, 18, 26; 롬16:3; 고전16:19; 딤후4:19). 이들의 별명은 '목까지도 내놓는(롬16:3)'이었습니다. 그런데 '목', '트라켈로스라'는 이 단어는 '목구멍'이란 뜻으로 불량배들이나 사용하는 저속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지성인 바울이 이 단어를 딱 한 번, 이 부부에게 사용합니다.

바울의 이런 자극적인 표현은 여러 면에서 모범적인 교회였지만(롬1:8), 복음의 열매, 구원의 열매가 없었던(롬1:13) 로마교회를 향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하여 '목 베임', 아니 그이상의 어떤 순교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노라는 각오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바울을 위하여 자기의 목까지도 내놓았다는 것은 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았다는 뜻입니다.(행20:24) 저들 부부의 인생관은 한마디로 '목숨 던짐'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저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당시 로마교회를 '자극'하기 위해서, 평소에 쓰지않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까지도 내 놓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롬16: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두 다 예외없이 그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까? 자신입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쾌락입니까? 그 목숨 던짐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기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한 것만이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이셨던 것처럼(빌2:9~11),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행20:24), 오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가장 가치있는 일, 사람의 목숨을 건지는 일을 위하여 내 목숨을 던져야 합니다.(마6:33; 롬14:7~8)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기쁘게 받으시고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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