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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하는 삶 (롬 1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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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4)

본문 : 로마서 12:17-21


지난주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끝이 났습니다.
인천을 연고로 한 SK 와이번스가 두산 베어즈를 상대로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2년 연속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인천이 고향인 저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이 한국시리즈를 재패에 한 것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한 기자가 SK 와이번스가 어제 한국 시리즈의 우승을 거머쥐고 난 뒤에 팀 감독인 김성근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우승 비결을 물었습니다.
특별히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신과도 같다는 별칭으로 야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명감독인데 어제 우승 소감은 또 한 번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우승소감의 비결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전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는 정말로 감동적인 소감을 이렇게 토해냈습니다.
“야구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승소감을 말하는 김성근 감독의 소감을 들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멘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을 컴퓨터 감독이라고도 지칭합니다.
그 이유는 김감독은 모든 상황을 철저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며 혹독한 훈련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한 예리한 준비를 선수들에게 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야구철학을 철저히 지키며 경기에 임하여 이번 2008년도 페넌트 레이스에서 프로야구에서는 가히 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인 6할 5푼까지 승률을 올리는 기적적인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습니다. 

야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준비를 철저히 하면 놀라운 성적을 거둔다는 김성근감독의 일침이 오늘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감동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어떤 감동인지 아십니까?
자기가 처해 있는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에 찬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은 정말로 중요함을 전제하면서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 행하여야 하는 최선의 7가지의 요소를 지난 3주 동안의 설교를 통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12장 본문 강해의 마지막 시리즈 설교의 내용으로 8번째의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① 거짓 없는 사랑을 행하라.
② 형제 사랑을 먼저 하라.
③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라.
④ 도무지 절망하지 말라.
⑤ 이기적인 삶을 이타적인 삶으로 바꾸라.
⑥ 저주하는 인생이 아니라 축복하는 삶을 살아라.
⑦ 이웃과의 겸손함의 공감대를 형성하라.

오늘은 8번째의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8) 사람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21절을 다시 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천명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람의 논리와 하나님의 논리가 상대적으로 비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악을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악에게 지지 말고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화목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시도록 맡기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을 통하여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를 걸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까?

일찍이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한 말씀이 그 답을 줍니다.
이사야 55:8-9절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논리가 사람들의 논리보다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의 생각과 승부수가 하나님의 생각과 승부수보다 뛰어나다고 하면 우리는 내 생각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아람이 이스라엘을 도모하기 위해서 매복 작전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빈번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져서 수포로 돌아갑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들의 작전이 적인 이스라엘에게 알려져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는가에 대하여 분노하던 아람왕은 그 이유가 엘리사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람왕은 즉각적으로 명령하여 도단에 거주하고 있던 엘리사를 살해하기 위하여 군사를 파병합니다.

도단에서 엘리사를 모시고 있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보니 수많은 말과 병거를 동원하여 엘리사를 치러 온 아람군대를 보고 두려워할 때 엘리사는 그를 진정시키며 아람의 군대보다도 엘리사를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늘의 군대가 훨씬 더 많음을 사환의 영안을 열어 알게 해 주었습니다.

왕하 6:17절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이러한 영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 아람의 군사들은 이제 엘리사를 살해하기 위해 진격해 옵니다.
이에 맞서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엘리사의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갈 길을 잡지 못하고 적군의 한 복판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한 가운데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군대는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마음껏 유린하여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묻습니다.
‘내가 이들을 쳐도 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막힌 찬스였습니다.
당연히 이들을 유린하라고 명령할 줄 알았던 엘리사가 아주 뜻밖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하 6:22절입니다.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하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적군들을 선대하여 떡과 물을 주고 그들을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 말이 되는 명령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이어지는 열왕기하 6장 23절 말씀에서 엘리사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는 드라마와 같은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사람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논리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예인 이 말씀에서 가장 진하게 가슴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시는’입니다.
‘다시는’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d/[’(오드)라는 부사의 원 뜻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어원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 단어에 무게를 둡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논리로 자기를 죽이려고 온 원수인 아람의 군사들을 사마리아 성내에서 도륙하였다면 대승을 거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아람은 또 다시 이스라엘을 원수 삼아 지속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로 아람의 원수들에게 선을 베풀고 그들을 선대하자 그 이후부터 단 한 번도 다시는 이스라엘을 넘보지 않게 되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교훈을 전제로 이상의 열왕기하 6장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오늘 로마서의 본문의 말씀이 겹쳐집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완벽한 승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접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논리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인터넷 설교를 통하여 이런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꿈꾸어야 할 교회는 더도 덜도 아닌 우리의 딸과 아들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이어야 한다. 그런 교회란 내가 결혼을 할 때 사랑하는 나의 목사님께서 주례를 해 주고 성도들이 함께 축가를 불러줄 수 있는 교회, 첫 아이를 낳은 그 아침 목사님의 축복과 함께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교회, 그리고 내가 잠시 눈을 감고 천국이 임하는 것을 보는 순간 평생을 같이 해왔던 목사님이 모든 성도들의 찬양과 함께 내 눈을 감겨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설교가 눈물겹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이런 교회를 꿈꾸며 신학대학교의 교정을 나왔습니다.
저 역시 이런 목회를 꿈꾸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이런 꿈이 실현됨에 더욱 감격해야 하고 기뻐해야 하는데 현실은 목양지가 그렇지가 않아 안타깝습니다.

요즈음에 하나님과 씨름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얍복강가에서 처절하게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벌이던 야곱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 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어떤 목회를 원하고 계시는가의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조명하심이 빠른 시간 내에 종에게 이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조명하심에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교우들의 중보를 부탁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논리로 승부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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