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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신도의 사역 (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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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사역 공동체 (마 28:18~20)


우리 교회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교회가 되어서, 이 전에 나오는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역사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이 소생하고, 병든 심령이 고침을 받기를 바랍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강력한 신유 공동체, 놀라운 치유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1. 평신도는 누구인가?

평신도라고 하면 그 본래의 의미가 주님을 모신 선택받은 자, 혹은 성도, 혹은 제자, 혹은 믿는 자의 공동체인 전 교회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평신도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교역자를 제외한 모든 성도들을 평신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는 그 평신도들의 대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99% 이상의 평신도가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는 교회의 객체가 아닌 주체인 것입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예배석에 나와 경건한 의식에 잠깐 감명을 받고 돌아가는 관람객이나, 교회 운영에 보탬을 주는 단골손님이 아니고, 더욱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움직이는 하인의 신분도 아닌, 명실 공히 교회의 주체입니다. 평신도는 교역자와 평등하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한 지체들인 것입니다. 

2. 사역의 의미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가 ‘평신도 사역 공동체’가 되자는 것인데, 그렇다면 사역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역’이란 한문의 뜻은 시킬 ‘使’ 부릴 ‘役’으로, ‘사람을 부리어 일을 시킴, 또는 시킴을 받아 어떤 작업을 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사역이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다’라는 말을 사역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목사, 전도사와 같은 전문 사역자 등을 연상하지만, 실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역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에서는 ‘섬김’과 ‘사역’, 그리고 ‘종’과 ‘사역자’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사역자요,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있다면 우리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는 섬김을 위한 부르심이 포함됩니다. 직업과 직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의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사역과 사명을 구분한다면,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섬김이고, 사명은 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섬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을 향한 가장 중요한 섬김의 사역이 무엇일까요?

3. 양육 훈련 또는 제자 훈련

구약 성경에는 ‘제자’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사 8:16에 단 한 번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를 제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일반 신도들도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제자훈련 운동’을 하고 있는 ‘캐리 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제자란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전도의 열매를 맺으며, 초신자들을 잘 양육하는 성도”라고 했습니다. 왜 교회에서 반드시 양육 훈련 또는 제자 훈련을 해야만 합니까? 

1) 제자 훈련의 동기

(1)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라는 말을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보다 정확한 제자의 개념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그분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과 명령을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님은 물론 제자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과 명령에 순종하여 교육받고 훈련함은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또한 교육하고 훈련하라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곧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뜻을 일심으로 행하기를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믿고 자신 대신에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들’로 양육할 의무를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2) 복음 전파의 사명 때문에

제자훈련의 목적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하여 보이고 전하여, 그에게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훈련과 가르침의 동기를, 그리스도께서 뜻하시는 복음 전파에 두고, 오직 그 일만을 위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그 훈련에 참여하는 제자들이 많은 교회는 날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제자훈련의 방법 

(1) 하나님의 말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할까요? 먼저는 우리가 말씀에 충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제자로 변화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비한 체험을 하면 한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곧 좌절합니다. 그것은 말씀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의 유언적인 고백입니다. 사도들은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훈련시켰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는 것이 사도들의 제자훈련 신조였습니다. 성도들의 인격과 삶에 그리스도의 성품과 열매가 맺히게 하는 일은, 결국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만 합니다.


(2) 모범을 통하여

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주님께서는 언제나 모범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킨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직접 물을 떠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자신이 행한 대로 서로 섬기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제자훈련은 모범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특정한 제자훈련 과정만 마치면 제자훈련이 끝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자훈련은 하나님의 말씀과 리더의 모범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셨을 때,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며 모범적으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② 바울의 모범

사도 바울도 모범적으로 제자훈련을 시킨 분이었습니다. 행 20:18에 보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아는 바니”라고 했고, 행 20:35에는 “범사에 내가 모본을 보였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제자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너는 잘해라 하는 식의 제자훈련은, 옆으로밖에 걷지 못하는 게가 자식들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자훈련 반드시 모범으로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고,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어 주님을 닮아 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실한 스승이 진실한 제자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어떤 모범이 필요한가?

① 성품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훈련을 받았지만, 우리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결점이 많은 내가 다른 이를 제자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설혹 완전하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들의 성품이 분명히 다른 피훈련자들보다는 뛰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겸손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 합리화하다면, 제대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과 눈물과 인내심으로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범적으로 제자훈련을 시켜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더욱 주님을 성품적으로 닮아 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가 훈련시킨 사람들을 통해서는 한 사람의 주님의 제자도 양육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신앙적으로 조금만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우리를 닮아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② 신앙

우리는 신앙적인 면에서도 본을 보여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참고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모든 문제를 신앙으로 이겨나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자신들의 신앙으로 모범을 보일 때, 우리가 가르치는 다른 성도들도 신앙적인 면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3) 사역

바울은 사역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각 집에서 혹은 공중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만을 전한다는 것이, 헬라 문화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묵묵히 해 나갔던 것입니다. 


(4) 제자훈련의 수준

① 주님을 본받아야 함

우리는 주님을 본받고 주님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주님처럼 세상을 보고 주님처럼 판단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가치관이 전적으로 주님처럼 되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주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정도까지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며, 다른 이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일이 절대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날마다 주님을 닮은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주님을 닮아야 함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우리 모두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며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인격을 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옛 성품이 우리들의 새 인격을 주장합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제자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잘못되고 비뚤어진 자신들의 성품을 하나씩 고쳐서, 주님처럼 되어가는 것이 곧 제자가 되는 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각도, 성품도, 가치관도, 주님처럼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제자훈련의 목적

(1) 성숙한 그리스도인

제자훈련의 목적은 한마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이고, 수준 높은 교육을 시켜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설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하도록 제자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제자훈련의 첫째 목적인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도 쓰임 받는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문제아가 부모를 괴롭히는 것처럼, 하나님께 걱정만 끼치는 것입니다.

(2) 재생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도일 것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전도만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생산을 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을 만들라”고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3) 선교의 일꾼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제자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 가운데 다섯 번째는 ‘평신도 사역 공동체’입니다. 교역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신도이고, 따라서 평신도 사역 공동체가 되자고 하는 것은, 전 성도들이 다 사역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는 섬김 곧 사역을 위한 부르심이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사역과 사명을 구분한다면,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섬김이고, 사명은 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섬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을 향한 가장 중요한 섬김의 사역이, 양육 훈련 혹은 제자 훈련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왜 주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보고 다시 제자 생산을 명령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 겸손하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리는 사람 만드는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동안 일기장 하나 남겨 놓지 아니하셨고, 자기를 기념할 돌비 하나 세워 놓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가 남겨 놓은 유일한 유산은, 자기를 배운 저 무식하고 평범한 제자들 몇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소수의 제자를 만드는 작업이 자기의 전 생애를 걸고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자화 전략은 평신도를 정예화하자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즈라 바운즈의 말과 같이 세상은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나 많은 이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 전략은, 소수를 먼저 핵심요원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수의 대중보다 그 대중을 이끌어 가면서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 쏟습니다. 교회가 제자 만드는 일을 등한히 하자, 그 방법을 마귀가 도용하여 그것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를 개발한 셈입니다. 

우리 교회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D-3 제자 훈련을 도입하여 이미 80여명이 양육 훈련을 받았고, 그들 중 일부는 지금 또 다른 신자들을 양육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양육 사역을 하지 않고 있는 분들은, 금번 총동원 주일에 반드시 전도하여 그들을 자신이 직접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앞으로 계속 실시될 D-3 양육 훈련에 꼭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양육 사역이 교회 사역의 전부는 아닙니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성가대원, 방송 요원, 전도 대원, 강단 꽃꽂이, 식당 봉사, 예배당 청소,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일, 운전봉사, 주차를 관리하는 일 등.....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고, 다른 지체들을 섬길 수 있는 사역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한 우리의 섬김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절대로 낭비가 아님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빈둥거리며 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는, 평신도 사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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