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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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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 4:6~7)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막아주고 해결해 주어야 할 나라에 문제가 생기니 세계가 당황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충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문제를 수습해 보려고 모든 나라가 최선을 다하고 우리나라 정부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얼마만큼 충격을 줄일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갈 수는 아마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이 위기에도 큰 어려움 없이 견딜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번 위기에 개인적으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시련을 격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 우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 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가 군대 입대하기 얼마 전 우리 교회 육사 출신 집사님 우리 아이에게 점심을 사주시며 정말 기가 막힌 명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훈련을 받을 때 죽을 만큼 힘들고 무서운 일들이 있지만 그때 잊지 말아야 할 있는데 그것은 그 훈련을 받다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훈련병들이 다 훈련을 받고 넘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정말 명언 중의 명언이었습니다. 
 
훈련소로 들어가는 둘째에게 저도 정면돌파를 주문하였습니다. 무섭고 두렵다고 숨지 말고 그럴수록 더 정면으로 도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훈련소로 보내놓고 하나님께 참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제 아이를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최전방 수색중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부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유격조교로 발탁되었습니다. 그해에 그 부대 대원 중 두 명이나 자살을 했으리만큼 힘든 부대였습니다.

그 부대에 배치된 후 몇 달 후 제 아이가 제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유격 재미있어요.’ 제 아이는 그 힘든 상황과 여건을 정면으로 돌파했고 결과적으로 볼 때 그와 상황은 제 아이를 모든 면에서 강한 사람으로 훈련하고 연단하는 좋은 도구와 기회가 되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 최하위 국가였는데 불과 50여년 만에 개발도상국가를 성공적으로 벗어나 세계를 놀라게 하는 국가가 된 중요한 저력 중에 하나가 우리 한국의 청년들이 군대라고 조직 속에서 몇 년 동안 훈련 받고 연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통하여 저들이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던 이야기를 들으면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히 장교로 갔었던 큰 아들이 훈련을 받던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정말 상상이 안 가도록, 기가 막히게 강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아멘.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기질을 포함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는 말씀 속에는 ‘내가 너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강한 존재로 만들었으니 혹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여도 염려하지 말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들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꼭 죽을 것만 같은 일들을 당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는 자신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 한 두 번 안 당하고 사는 사람 세상에 정말 단 한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죽고 망한다면 세상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 정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거의 다 그 일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또 다른 성공을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을 것만 같은 캄캄한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참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황당하신 분은 아니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에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앞이 캄캄하고 답답한 일을 만났다고해도 정말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큰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만에 하나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하시게 되거든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고난을 세상에 없습니다. 일부러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고난을 당하게 되면 당황하지 말고 고난의 뜻을 찾으시고 그 뜻을 찾아 고난을 오히려 삶의 기회로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기회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두려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엄마와 아빠에게 꼭 매달립니다. 우리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십니다. 편안할 때는 기도가 힘듭니다. 특히 간구는 더욱 더 힘듭니다. 기도가 힘들어지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경험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일부로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고난을 당하게 되면 그때를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은 끝이 나게 되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축복이 남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을 통하여 볼 때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한 사람은 욥입니다. 그것도 형통할 때 욥이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을 때 욥입니다. 시험으로 역경을 당했을 때 절망하여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사탄은 욥의 아내를 통하여 욥을 유혹했지만 욥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은 사탄 앞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냥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염려할 때 염려하지 않고 절망해야만 할 때 절망하지 않고,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해야 할 때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일부러 고난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 까지는 없어도 원하던지 원하지 않던지 고난을 당하게 된다면 고난만 당하지 말고 그 고난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한번 되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사탄이 겁이 나서 얼른 고난을 치워버리지 않을까요?

고난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인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순식간에 무너지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충격이 되고 고난이 되고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처럼 불안정한 것이 없습니다.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고난은 세상이 무너지지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세상 무너질 줄 모르고 세상만 바라고 믿고 의지하고 사는 어리석음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본래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아무것도 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잘 쓰고 이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돈 줍는 꿈을 자주 꾸었었습니다. 집이 넉넉하지 못하여 용돈이 늘 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꿈에 돈을 한번만 줍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었습니다. 조금 가다보면 돈이 있고 또 조금 가다보면 돈이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신이나서 돈을 줍습니다. 그러다가 깹니다. 돈 줍는 꿈꾸다가 잠이 깨는 것 보다 더 찝찝한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저는 정말 정기적으로 꾸었습니다. 그때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다음 번 또 돈을 줍는 꿈을 꾸면 그때는 어느 정도만 줍고 빨리 꿈이 깨기 전에 가게에 가서 사먹다가 깨어야지.’ 놀라운 일은 제가 정말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꿈 깬 것 같을 겁니다. 열심히 돈을 버느라고, 세상에 보물을 쌓느라고 정신을 팔다가, 어느 정도 모으고 성공을 하였다고 좋아하다가 죽으면 그 모든 것이 꿈과 같아질 겁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 날아갈 겁니다.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의 재산이 날아났습니다. 여러분 돈과 세상은 꿈과 같은 것입니다. 날아나는 것입니다. 날아가기 전에 잘 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잘못하면 오해하기 쉬운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진의는 꿈 깨어 모든 재물이 날아가기 전에 그 날아가 쌓을 수 없는 재물을 욕심 부리지 말고 잘 써서 하늘에 보물로 쌓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의 때에 우리가 꼭 하여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심각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찾아 살피는 일입니다. 어제 저녁 잠시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느 방송국에서 고물상을 삼일 동안 다큐로 찍어 그것을 방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의 끝날 때 잠간 보았는데 이가 다 빠지고 허리가 굽은 어떤 할머니가 폐지를 힘겹게 주어와 2천 몇 백원을 받아가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제 저녁도 굶으시고 설탕물 한 그릇으로 때우셨다며 누가 건네 준 작은 야구르트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마시는 모습이 참 마음 아팠습니다. 그 장면을 촬영하는 젊은 여자 기사가 울면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다른 카메라 기사가 잡았습니다.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폭등하여 손해를 보는 것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고물상에 그런 할머니들은 주식과 아무 상관없는 분들입니다. 환율과 아무 상관없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정말 위기는 그와 같은 분들에게 옵니다.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폭등하여 어려움을 격는 분들이, 보통 어려움이 아니라 심각한 어려움을 격는 분들이 혹 주위에 계시면 찾아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고난을 당할 때 우리들이 하여야 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일은 경기가 나빠져서 고생할 극빈민층의 이웃들을 보다 더 열심히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재산에 손해가 나면, 우리는 모든 일에 긴축을 하게 되고 긴장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해야 합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재산에 손해가 나면 반대로 눈을 크게 뜨고 굶는 사람이 없는가 죽는 사람이 없는가를 살펴야만 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전보다 더 열심히 전대를 풀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삭줍기라는 헌금이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네 밭이라고 다 거두지 말고 네 귀퉁이 남겨두고 들고 가다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그냥 버려두어 가난한 이웃들이 주워 갈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만든 헌금입니다. 오랫동안 강조하지 않고 버려두었더니 많은 분들이 손을 떼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시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그런 기회들이 오히려 널려 있습니다. 고난만 당하고 그런 기회는 놓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때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곧 하나님에게 한 것으로 결단코 상을 잊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며 이와 같은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뉴스를 볼 때 저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열매나눔재단이 탈북자들을 위하여 경영하고 있는 박스공장 때문입니다. ‘우리 공장도 경기를 타서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나?’ ‘공장이 잘 되어서 제 2공장까지 계약을 해 놓았는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이 어려울 때 세상을 살피셔야 합니다. 자신 재산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더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희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없어서 예배 처소를 얻느라고 이리 저리 좇아다니며 마지막까지 애를 태우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만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과 탈북자 가족을 생각하여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식이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높은뜻 숭의교회 교인들 치고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비약일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번에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가 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세상과 재물을 선한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을 위하여 잘 쓰고 관리하지 못해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절대로 비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비약이 아니라면 이번 어려움은, 아니 이번 뿐만 아니라 모든 어려움은 어려움을 당할 때 자기만 생각하기도 바쁜 때에 자기보다 더 어려움을 격을 사람을 생각하여 저들을 도우려고 나섬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과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다시 정리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고난은 힘들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서 이와 같은 고난을 다 통과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난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회, 하나님은 믿는 믿음으로 고난 중에도 평안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을 나보다 더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기회로 삼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세상이 무너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 어리석음 때문에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도 이번에 감당 못 할 것과 같은 어려움을 격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요? 많은 손해를 보신 분들이 계시지요? 당황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침착하세요. 그리고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불안해하지 마세요. 저들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꼭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식대로 행동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평안할 때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의 기회를 얻게 되실 줄 믿습니다. 이 말씀으로,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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