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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영원한 거처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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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영원한 거처 (요 14:1~6)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동네 한 구석진 마당이나 아니면 동네 학교 마당에 한 구획을 정하고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려 해가 저물 때까지 공놀이, 자치기, 줄넘기, 땅 뺏기, 숨박꼭질 게임을 하고 놀던 추억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놀이는 보통 우리 친구들 중 한 부모님의 출현으로 그 막을 내리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해가 졌다. 그만들 놀고 집으로 가거라” 저는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에이 씨” 하고 놀이의 중단을 항의하고 늘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한 친구의 모습이 추억의 영상에 떠오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친구는 사회 복지 시설(고아원)이 집이었던 친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를 따뜻하게 마중할 아빠나 엄마가 없는 그 친구의 귀가는 별로 신바람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 믿고 성경을 읽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 저에게는 또 하나의 상상의 영상이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인생의 놀이터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게임에 분주한 우리에게 저 하늘에 계신 분이 “그만 놀고 집으로 오너라‘고 부르실 순간이 온다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돌아갈 영원한 집이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한 주간도 분주하게 세상살이를 하다가 이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 모두 분주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신일이 있는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것은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더 빨리 더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경쟁이 한창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루는 그가 제자들을 떠나 어디론가 가셔야 한다고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스승 예수님에게 물은 유명한 질문이 성경 요13:36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대답이 바로 본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제자들이 이 세상을 떠나 거하게 될 영원한 거처 곧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고자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마침내 도착할 영원한 거처(집, 처소)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을 교훈하고 있을까요?

1. 이 영원한 거처는 예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장소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천국의 교훈을 살펴보면 천국은 하나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소입니다.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의 통치에 있습니다. 성경은 천국은 의의 나라요 화평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의롭고 평화로운 기쁨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우리 인생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의로움과 화평과 기쁨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맛보는 천국 경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천국은 하나의 완벽한 장소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 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본문 2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오늘 우리는 발달된 현대 과학의 눈부신 진보를 목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은 창조주가 엿새 동안 창조한 만물의 신비한 경이로움의 지극히 적은 한 부분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요한복음서의 본문인데 요1장의 서문인 요1:3에 보면 “만물이 그(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자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즉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창조주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자이신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러 간다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이 세상을 떠나가신 이후 지금까지 준비하시는 천국은 얼마나 경이로운 장소이겠습니까. 

유명한 설교가 스펄존 목사는 성경에 생각보다 천국에 대한 설명을 많이 제공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천국은 ''surprise kingdom''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양에서 살다 보면 소위 ‘surprise party’라는 것이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 파티의 특성은 파티의 주인공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그들이 이 파티를 놀라움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친히 준비하신 ‘서프라이스 파티’인 것입니다. 이런 경이의 나라, 영원한 거처를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위한 선물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여러분이 이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신다면 여러분이 바로 이 영원한 거처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이 영원한 거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본문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천국에서 일어날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우리가 예수님과 다시 만난다는 것이고 예수님이 거기서 그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파티를 준비하면 파티의 주인공보다도 파티를 준비한 이들이 더 흥분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성경은 계속적으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함보다 하나님이 인생을 만나기를 더 소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결국 인생들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원하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년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요 문화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 선생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그의 인문학적 지성으로 때로는 반 기독교적 언어를 주저 않고 토로하며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해석하던 그의 회심이어서 그의 세례는 사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딸의 투병과정에서 목격한 기적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자신은 그가 인생의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경험한 지성의 한계가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기 전, 그러니까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발표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어 보면 그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가를 우리는 헤아려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꽃 한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절 기억하시지 못하실 겁니다.그러나 하나님/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그리고 너무 적적 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헤엄치게 하셨을 때/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새들이 일제히 날아 오를 때/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 자락을/이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무신론자의 시요 무신론자의 기도란 말입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구도자의 기도요, 구도자의 시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이어령 선생을 만나러 오신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새겨주신 시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동일한 하나님이,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아십니까? 왜냐구요? 그가 준비하신 저 영원한 거처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3. 이 영원한 거처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수 있는 장소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그런 영원한 거처를 예비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곳으로 갈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의심많은 제자 도마는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우리가 어떻게 알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유명한 본문 6절의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그리고 그의 나라인 영원한 거처로 인도하는 길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작 1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던 한 선교사님이 정글속 오지 마을로 가기 위해 그곳 지리에 익숙한 한 원주민 그리스도인 청년을 길 인도자로 고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마을은 보이지 않고 청년은 계속 정글속 길 같지 않은 곳을 헤쳐 가며 나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정색을 하고 다시 청년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나의 형제여, 형제는 확실히 길을 아시나요?”
이 때 청년은 이런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 여기서는 제가 곧 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모든 믿음의 구도자들, 길을 찾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우리가 그 분의 안내를 받아 드리기로 결심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 보다 길을 앞서가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거처의 입구에서 또한 먼저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손짓하고 우리의 손을 잡아 저 영원한 거처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령 씨는 “무신론자의 기도 2”편을 또한 써 냈습니다. 이 시에서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의 손을 잡고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들어 보시지요.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어둠의 벼랑 앞에서/내 당신을 부르면/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네가 거기 있었느냐/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못 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그 상처를 조금만 만져 볼수 있게 하소서./그리고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 지라도/용서하소서.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라고 선언하시기 위해서 그분은 이미 하나님께 나아오기 부족하고 더럽혀진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고 우리 대신 거룩한 피를 흘릴 각오를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그 분을 우리의 인생길의 유일한 안내자, 완벽한 안내자, 우리 인생의 구주와 주님으로 의탁하고 믿는 것입니다. 

미국에 조니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전도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갖게 된 그는 주일은 물론이고 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교회를 들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냥 교회 제일 뒷 좌석에 앉아 “하나님, 저에요 조니.”이 한마디 하고 그는 교회당을 나오곤 했습니다. 그는 힘든 일이 생기거나 아플 때도 역시 교회에 잠시 들려 이 짧은 인사말을 하고 교회당에서 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조니는 고교 3학년 때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 입원하여 생사를 헤맬 때 갑자기 그가 미소를 지어서 부모가 물었다고 합니다. “조니야 무슨 일이 있니?” 조니는 웃으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어요” “뭐라고?”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조니, 나야 네 하나님.” 그리고 그는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이 예비한 그 영원한 거처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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