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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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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마 14:22~33)


6.25 전쟁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골 부락에 한 밤중에 소련제 폭격기가 몰려와서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온 주민들이 잠을 자다 깜짝 놀라서 이리저리 피신하게 됩니다. 한 어린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있었는데 이 엄마가 아기를 등에 없고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달려 나갔습니다. 아기도 살려야하고, 자신도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수십 리를 뛰어 도망가다가 이제 아기가 어떻게 되었나 해서 아기를 풀어서 돌아보니 세상에! 그건 아기가 아니라 베개를 등에 지고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참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당황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 우리의 목을 조여 오는 공포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믿음만이 이 두려움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글로벌금융위기 앞에 온 세계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을 보니 이런 제목들이 있었습니다. “공포가 1000 무너뜨렸다.” “코스피 1000 붕괴” “공포가 시장을 삼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스피 1000붕괴” “반 토막 난 주식, 두 토막 난 가정” 뭐 이런 제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한 가정은 일 년 전에 5000만원어치 주식을 샀는데 일 년이 지나고 나니 다 날아가 버리고 10%만 남았다고 합니다. 500만원 남고 4500만원은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어디 가서 찾을 때도 없고, 하소연 할 곳도 없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집안 친척들까지 다 끌어 모아서 5000원을 가지고 투자를 했답니다. 또 투자의 기본지식이 있는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나눠담아라. 조금 안전한 곳, 조금 위험한 곳 이렇게 분산해서 투자를 했는데 일 년이 지나고 나니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싸우다 싸우다 못해서 이혼위기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두려움과 공포심 때문에 너도나도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더 떨어지면 안 되지, 얼른 팔아버려야지’하고 다 팔아버리니까 주가가 여지없이 추락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금융위기를 보면서 경제에는 전혀 잘 모르는 문외한인데 참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 속에 겪는 재난이라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염이나 기근이나 폭우나 홍수나 이것 모두가 재난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입니다. 지진은 누가 막습니까? 그런데 금융위기를 보니 이것 또한 재난입니다. 누가 공격해 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위기가 싹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냐?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서로 믿지 못합니다. ‘아! 한국도 곧 문제가 된다더라. 한국도 부도가 난다더라.’ 그러니까 서로 서로 돈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결국 나라의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신 때문에.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실체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것입니다.

신문기사에 난 한 내용을 보니까 이렇습니다.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고, 위기를 두려워하는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실도 아닌 것이 엄청나게 침소봉대되어서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내가 여기에 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막 노는데 엄마가 옆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한참 놀다보니 돌아봐도 엄마가 없습니다. 아앙! 울어버렸습니다. 옆방에 있던 엄마가 얼른 쫓아와서 “얘! 왜 우니? 엄마 옆방에 잠깐 일하고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그때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풍랑 속에서 고통당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 안심하라.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나왔더라도 오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과 담대함을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전후 상황은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광야에서 굶주린 무리들에게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떡5덩이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손을 들어 축복기도를 하셨는데 제자들이 그것을 나눠주니까 5000명의 무리가 다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위대한 분이 어디 있느냐? 이런 분이 임금이 되면 우리는 굶어죽진 않겠다.” 예수님을 그것을 아시고 즉시 그 자리를 피하십니다. 그리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따로 떨어져서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풍랑이 몰아쳐서 제자들은 이제 속수무책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 우리 죽었구나.’ 하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큰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그런 풍랑을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무서운 풍랑, 이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또 그 풍랑이 일어난 시점이 한밤중이었습니다. 아주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가운데서 그런 풍랑을 만나니까 이것이 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위대하신 주님이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더라면 문제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두려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가 그 고난 받는 제자들을 보시고 물위를 걸어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그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오죽했으면 제자들이 뭐라 합니까? 유령이라고 더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몰라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 때 밤에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다보면 산에서 짐승소리도 나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가지고 겁을 내고 걸어갑니다. 저기 뭔가 하얀 것이 펄럭거립니다. 꼭 하얀 귀신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서워가지고 그냥 어쩔 줄 모르고 도망칩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누가 빨랫줄에 흰 빨래를 걸어놨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단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적입니다. 두려움이 온다는 것은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두려움을 다 몰아내실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려움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두려워하면 안 될까요?

첫째는 풍랑의 배후에 계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풍랑의 배후에 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에게 풍랑을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나서 1장 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큰 태풍을 내리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 인생에 광풍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광풍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욥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데, 물론 욥을 시험한 자는 사탄이지만 그것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주의 주관자이시고,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광풍을 허락하셨다면 우린 염려할 것 없습니다. 이 광풍을 멎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광풍을 일으키신 그 분이 이 광풍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이 광풍은 우리를 파괴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는 자들을 기억하시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8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이 왜 이런 광풍을 이 인류에게,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기엔 분명히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 무의미한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C. S 루이스라는 영국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 분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한번은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달려와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째서 그분은 우리 인생의 장에서 이런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십니까? 왜 이런 고통을 그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그 때 C. S 루이스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여보게! 고통이 있어도 교만한 인생인데 만약 인생의 장에 고통마저 없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 고통이 있어도 교만한데 고통마저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교만할까?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고통이란 하나님의 음성에 귀먹은 세상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일세.”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귀를 막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소리에는 귀가 예민했습니다.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단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돈을 벌고 집을 살 수 있단다.” “어디가 땅 값이 올라간단다.” 이런 데는 얼마나 예민한지 모릅니다. 쫓아가서 밤에도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 벌수 있느냐고.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를 막았습니다. 예배하는 자리에는 발을 끊어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대부분은 주일 낮 예배 외에는 일주일동안 교회 오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저녁 예배 오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오지 않습니다. 심야기도 끊었습니다. 주일 오전예배만 오직 나오는 것입니다. 참 그 마음이 훌륭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치 않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 변치 않습니다. 나는 오직 주일 예배만 나가리라. 무슨 수요예배와는 원수 지셨습니까?

여러분!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뭐 누구라고 말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고 TV의 음성을 듣고 TV를 찬양하고 탤런트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 주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오늘 고난과 고통의 풍랑을 통해서 우리가 물질을 버리고 쾌락을 버리고 맘몬주의를 벗어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TV를 주인처럼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제 이것 우상을 다 던져버리고 진정한 우리의 신이신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오늘 이 고통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온 지구의 인류들이 오늘 하나님의 고난의 메가폰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교만을 던져버리고 겸손함으로 무릎 꿇어야 할 것입니다. 풍랑의 배후에 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풍랑 가운데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주님은 풍랑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해와 달과 온 우주, 그리고 바다와 풍랑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바로 그 분이 그 풍랑을 유일하게 다스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 분은 한밤중에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물 위에 서실 수 있는 분. 물을 정복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또한 32절에 보니까 “그분이 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쳤더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니 바람이 잔잔해 졌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이와는 조금 다른 기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고물에서 주무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가 갑자기 풍랑이 몰려와서 어쩔 줄 모릅니다. 제자들은 아무리 해봐도 안 됩니다. 그 때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워서 우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 때 예수님이 나가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무서워하느냐 하시면서 그분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을 때 그 바람이 잔잔해지고 바다가 고요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풍랑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아주 사나운 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나운 개가 딱 한사람에게 순종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합니까? 주인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아주 착한 양 같습니다. 그 으르렁 거리는 개가 말입니다. 아무리 풍랑이 으르렁거려도 그 주인 되시는 주님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풍랑을 멎게 하시고, 풍랑을 다스리시는 그분! 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이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주님! 저를 명령해서 저도 좀 물 위를 걷도록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야! 베드로야 걸어오너라. 그랬더니 베드로가 정말 믿음으로 그 물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간이 물 위를 걷다니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최초의 사람이었고 최후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으로 물 위를 걸어갔는데, 동시에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소리를 듣는데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이고 내가 이러다 빠지면 어떡하지?’ 제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 순간에 베드로는 물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를 건져주세요. 구원해 주세요.”하고 소리쳤더니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물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에 빠진 우리를 건질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풍랑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역대하 20장에 보면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남왕국 유다를 공경해 왔습니다. 여호사밧왕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데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러면 너희가 견고히 설 것이다.” 여러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풍랑을 다스리시고 이 바다를 정복하실 수 있는 그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왜 우리가 풍랑가운데서도 두려워해서는 안 될까요?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니다. 30절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 안 해 보신 지가 오래되셨죠? 정말 여러분! 중대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소리 높여서 간절히 기도해 보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지금 별로 기도할 필요가 없죠? ‘왜? 만사가 형통한데 뭐.’ ‘뭐 잘 먹고 잘 사는데 기도할 필요가 뭐 있어?’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서서히 기도를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이 거친 금융위기의 풍랑을 잔잔케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민족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 주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어윈 대령이라는 미국의 조종사가 로켓트를 타고 달 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달에 가서 모든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을 해야 합니다. 캡슐을 타고 이제 지구로 떨어져야 하는데 내려오면서 중간에 낙하산을 폅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내려오지만 낙하산을 펴면 공기저항 때문에 캡슐이 천천히 속도를 조절해서 내려올 수가 있습니다. 두 개의 낙하산 중에 하나가 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기계고장이었습니다. 사령부에 보고했더니 사령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어떻게 공중에 있는 캡슐의 낙하산을 펼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그 속도로 떨어지면 아마 박살이 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 때 휴스턴 사령부에서 한 마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도합시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령부에 직원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순간 기도했습니다. 캡슐에 있는 어윈 대령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오리바람이 바로 공기저항을 주었고 이 캡슐의 속도를 조절해 주었습니다. 캡슐이 천천히 공기저항 때문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땅에 아주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누가 뭐래도 기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 순간에 회오리바람이 불어 올라와서 캡슐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금융위기,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지진을 누가 막습니까? 이 금융위기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것을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끈을 다시 붙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발견하는 가장 위대한 진리가 있다면 32절입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주님이 배에 오르시면, 주님이 지구촌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신다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그분이 선장으로 오르신다면 이 풍랑은 멈출 줄로 믿습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을 모셔드릴 때입니다. 그 분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선장으로 그 분을 모셔드릴 때입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어릴 때보면 어머니들이 동네 우물에 항아리를 이고 물을 길러 오십니다. 항아리를 내려놓고 바가지를 가지고 물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그냥 오시면 물일 출렁거려서 옷을 다 버리고 반도 안 남습니다. 걸을 때마다 출렁거려서. 어떻게 하십니까? 물을 다 붓고 항아리 위에다 바가지를 엎어놓습니다. 그러면 물이 출렁거리질 않습니다. 그대로 훌륭하게 이고 와서 집에 들여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풍랑 이는 바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신다면 이 풍랑은 멎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인생의 어려운 위기 가운데 정말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면 무엇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주님과 함께라면, 예수님이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신다면, 아니 주님이 내 손 잡아주신다면 무엇이 염려겠습니까? 

제가 종종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자 훈련에 관한 책을 많이 남기신 ‘리로이 아임스’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번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탑승할 시간이 5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날따라 공항은 사람들로 아주 북적거렸습니다. 명절인지 그렇게 사람들의 이동이 많았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자기가 타야할 게이트를 찾으려니까 저 끝에 있다는데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5분 내로 가야하는데 큰일 났습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주 말끔하게 생긴 신사가 이 항공사 직원의 복장을 하고는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리로이 아임스’ 목사님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지금 5분 안에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할 줄로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항공사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 옆에만 꼭 붙어있으면 만사가 해결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비행기 기장이거든요. 설마 기장 없이 떠나는 비행기는 없겠죠?” 

그 순간 ‘리로이 아임스’ 목사님은 깜짝 놀라 기절할 뻔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여기서 기장님을 만나다니.’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기분 좋게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 마음속에 이런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2장 25절입니다. “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주님이 내 우편에 계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풍랑의 위기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염려할 것 없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너희가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할 것이다.” 주님과 함께라면,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능히 풍랑을 헤치고 승리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마음의 두려움을 몰아내십시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두려움이 온다는 것은 믿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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