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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손에 있는 것의 가치 (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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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있는 것의 가치 (출 4:1~9)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작은 것 같지만 우리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시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산에 있는 쓸모없는 돌일지라도 위대한 조각가의 손에 붙들리면 위대한 조각품이 나오게 됩니다. 허름한 바이올린일지라도 위대한 음악가의 손에 붙들리면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다 낡은 붓일지라도 훌륭한 화가의 손에 붙들리면 사람을 감동시키는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열린 교회와 우리들을 사용하신다면 작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 시대에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삶을 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80대 노인 모세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광야에 버려진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신음하는 백성, 고통 받는 백성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내어 드릴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거절했습니다. 

1. 모세가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장 1절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도 않고 제 말을 듣지도 않으며 여호와께서 제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고들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에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모세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군인 자기 민족이 자신을 지도자로 받아들일 것인가? 
둘째는 적군인 바로가 자신의 말에 순순히 민족을 내어 줄 것인가? 
셋째는 맡겨진 사역에 있어서 이 많은 민족을 어떻게 먹인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믿어 줄 것이고,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치시면 바로가 허락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풍부한 재물을 가지고 애굽에서 탈출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확실한 미래 계획을 듣고도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획에 바로 동의하지 못하였습니다. 과거 자신의 뼈저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거가 창조적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악감정, 호감정, 중립감정이 있습니다. 악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람을 괴롭힙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당한 배신감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에 대하여 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애굽 왕자의 신분도,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인기도 하루아침에 다 상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다시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민족 지도자로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로 자격 문제입니다. 3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면 믿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상 그들은 모세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세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동족으로부터 쫓겨난 초라한 일개 양치기가 그들에게서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는 40여 년 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자처했다가 동족에게서 조소와 비난에 찬 말을 듣고 맥없이 물러나야 했었던 뼈저린 과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2:41).

둘째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 말의 신뢰성, 말의 권위 문제입니다. 모세가 애굽을 탈출하자고 말해도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말은 하는데 그 말을 따라주지 않으면 결코 주어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과거이 민족끼리 싸우고 있을 때 경험한 내용입니다.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것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믿지 않고 사이비로 생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인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거주한 이후(창 46:2-4) 족장시대와 출애굽 사이를 잇는 약 400년간은 소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임하지 않은 계시 부재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다고 말하면 그것을 믿어 줄 리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신적 권위도 의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누가 너를 우리의 주권자로 삼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과거의 뼈저린 경험을 통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절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사명으로 부름받으면 과거의 경험과 현제 자신의 조건 그리고 미래의 기대치를 통해 결정을 합니다. 교회건축의 사명으로 부릅니다. 선교의 사명으로, 전도의 사명으로, 기업의 사명으로, 자녀양육의 사명으로 등 갖가지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과거를 들어 핑계를 댑니다. 사실은 자신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데 다른 사람을 들어 회피해 버립니다. 첩보 수준이고 정확한 정보도 아닌데 목사님이 어쩧고, 사모님이, 장노님이, 집사님이, 권사님이 끝없이 회피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사명감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가 병들어 보십시오.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고 방치합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에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이유는 과거 한번 실패했기 때문에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세 가지 이유가 다 과거의 실패 경험으로 나온 말입니다. 

출애굽기 2장 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민족애와 의협심을 가지고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는 애굽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 민족끼리 싸울 때 그 일에 개입할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출 2:14)”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 자격문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에게 밀고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의 실패의 환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독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양약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는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가 거침돌이 되기보다는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의 실패, 인간관계의 실패, 배신의 아픔, 거부당함의 아픔, 실연의 아픔, 사랑의 실패, 용서의 실패, 인내의 실패, 신앙생활의 실패, 계획의 실패, 전도의 실패, 성경읽기의 실패...... 등은 얼마든지 우리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사용해 주십니다. 

베드로가 실패 했습니다. 주님 3번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실패 했습니다. 가뭄으로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 누이라고 2번식이나 속였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고 첩을 얻어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이삭이 실패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흉년이 들자 먹고 살기 위해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야곱이 실패 했습니다. 형과 아버지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탈취하였습니다. 다윗이 실패했습니다. 자기 부하를 고의적으로 전장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남의 아내를 간음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실패를 영원히 기억하며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회개한 그들을 용서하시고 찾아가 어루만지며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실패 경험이 하나님의 소명보다 더 크게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래를 과거의 종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축복의 미래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풍성한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몇 번의 실패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의 경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를 추측해서 그곳에 가면 자신이 죽을 까봐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이 죽일까바 살인하고 도망자가 되어 숨어살고 있는 형편입니다. 잡히면 살인죄로 처형을 당하니까 왕궁에서 도망 나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고 싶겠습니까? 모세는 이 마음을 감추고 자신을 은폐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우리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계속 거절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는 자가 다 죽었느니라"라고 모세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이겠습니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최악의 상실입니다. 재산 상실, 건강 상실, 인기 상실, 명예 상실, 권력 상실 이런 상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 중에 가장 두려운 것이 모든 것을 상실하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두려움으로 대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죽음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죽음을 부활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5-5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신 사명을 붙들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산을 옮길 믿음으로 인간으로 볼 때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에스더 같은 여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다짐하고 나갈 때 민족이 살아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면 내어 드리면 됩니다. 아이가 좋은 물건 사서 계산대에 계산을 해야 하는데 그것 빼앗길 것같아 계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인에게 그 물건을 맡겨 계산하면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거절하는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세 가지 기적을 보여 줍니다. 

첫 번째 기적을 보여 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모세에게 질문합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던 모세가 실패의 경험을 한 후 좌절과 낙담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고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세의 '손안에'는 겉보기에는 초라하나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 하나님이 사용할 때, 하나님께 붙들림 받을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사용하여 홍해를 가르고 그 지팡이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모세는 대답합니다. "지팡이 입니다" 일상적인 물건입니다. 
모세가 보기에는 보잘 것 없은 것입니다. 양을 칠 때 사용한 것입니다. 이리를 몰아낼 때 사용한 것입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물건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물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질문하시지 않고 명령합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유익을 준 지팡이입니다. 그것 붙들어야만 처자식을 먹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지팡이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익숙했던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뱀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믿는 뱀처럼 변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지팡이었는데 자신을 죽이려는 뱀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모세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뱀에게서 피했습니다. 물리면 죽으니까 피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또 호령하십니다. 무엇이라 합니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합니다. 왜 하필이면 꼬리입니까? 뱀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머리를 잡아야 하지요. 꼬리 잡으면 뱀에 물려 죽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뱀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뱀을 다루는 기술을 이미 취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경험과는 전혀 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경험과 상반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위험이 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예측이 된다할지라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위험 있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압도되어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죽을 줄 알고 뱀을 피했는데 그 뱀의 꼬리를 잡자 그 징그러운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해 버렸습니다. 


두 번째 기적입니다. 
40년 동안 지팡이를 들고 사용하던 손입니다. 6절에 보십시오. 
모세에게 이제는 “네 손을 품에 넣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손을 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어 보니 손이 한센씨 병 환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당시 이 병은 불치의 병으로서 하나님의 저주의 표라 여겨졌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고 피하는 저주의 병이 자신에게 임한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존경하거나 인정하기는커녕 혐오하고 저주하는 질병이 자신에게 임한 것입니다. 인간 별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 말씀에 따라 손을 품에 넣었더니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환자에서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기적입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 육지에 부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작은 일이지만 네 손으로 실행하는 그 일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육지에서 물이 피가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일 강은 애굽의 산업과 교통의 중추였을 뿐 아니라 애굽인들에 의해 생명의 젖줄로서 신격화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 강이 생명의 신 '오시리스'(Osiris)가 내려준 성스러운 물이자, 태양신이 항해하는 천해(天海)의 일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수가 순식간에 죽음의 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애굽의 막강한 힘 별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애굽의 생명 젖줄인 이 물을 파괴와 죽음을 상징하는 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이적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풍유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이적은 자세히 보면 손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질문하는 것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에 들여 있는 지팡이가 사람을 죽이는 뱀으로 변하게 하고 다시 양들을 기르는 지팡이가 되게 합니다. 그 지팡이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도 될 수 있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이 한 순간에 한센씨 병에 들기도 하고 정상인이 되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하는 일을 통하여 살리는 물 나일 강이 죽이는 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도구로 만들게도 하시고 죽이는 도구로 사용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병들게도 하시고 치유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죽이게도 하시고 살리게도 하시는 하나님이 모세를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 내 손의 가치, 내 손이 하는 것 너무 과소평가할 것이 아닙니다. 

가치 있는 것이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근원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네 손에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의 손에 있었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5천명을 먹였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마지막 먹고 죽으려 했던 기름과 떡이 엘리야에게 주어졌을 때 그해 가뭄을 다 이기게 할 만큼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소년 다윗의 손에 들렸던 물맷돌 다섯 개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모세의 손에 40년 동안이나 무심코 들려 있던 마른 막대기가 민족 해방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사용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로, 나 자신을 온전케 하는 도구로, 우리가정과 이웃 사회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에게 지금 있는 자그마한 것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보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하수를 쳐 피를, 강에서 개구리를 올라오게, 티끌을 이가 되게, 메뚜기를 올라오게, 우박을 내리게, 홍해를 갈라지게, 반석에서 물이 나게,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지팡이지만 그것을 말씀에 불순종하여 혈기로 사용할 때 (민20:11-12) 비극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권능의 궤를 보십시오.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법궤를 매고 물에 들어가니 물이 말랐습니다. 여리고 성을 도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잘 못 사용하니까 법궤 빼앗기고 전쟁에서 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 4:11)" 범궤가 중요하지만 법궤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긴다고 했습니다(삼상2:30)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경멸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요13:32)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넘치도록 채워준신다고 했습니다.(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

영국의 비평가이며 사상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사파이어가 될 수 있다 모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에 오팔이 될 수 있다. 맨 흙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다이아몬드가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가, 우리가 하는 일이 살이고 치유하고 창조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창조의 능력으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이 왜 이렇게 모세에게 기적을 보여 주었습니까? 
기적을 일으켜주신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모세가 불순종한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것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 그 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네 손이 들고 있는 지팡이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모세에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기 위해 이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이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확실히 나타나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손의 치유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출 4:8)”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첫 번 이적을 일으키면 그것 우연히 일어날 수 있어, 마술사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두 번이나 표적이 일어나고 모세의 손이 직접 한센씨 병에 걸리고 낫는 것을 보면 모세를 믿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 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출 4:9)”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네 말을 듣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강력하게 설득하기 위해 세 번씩이나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해서 이런 이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는다면 애굽의 생명 젖줄인 이 물을 파괴와 죽음을 상징하는 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자존자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믿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모세에게 보여준 이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해 주고 믿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적을 위한 이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이적으로 통해 확증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이 문제가 아니라 모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적이 말씀하는 대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믿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의 문제이며 내 문제입니다. 내가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 기적을 행할 때 두 가지 어려운 명령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왜 이적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1:15)”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여러 이적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하나님은 이적을 믿게 만들기 위해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첫 번 기적에서는 “그것을 땅에 던지라.” “네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으라”라고 명령했습니다. 

두 번째 기적에서는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다시 손을 품에 넣으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세 번째 기적에서는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라.” “육지에 부르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모세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불가능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입니까? 모세의 순종을 통해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뱀의 꼬리를 잡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죽지 않고 다시 능력의 지팡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한센씨 병이 품에 넣는다고 정상이 될 수 없고, 나일 강 물이 피로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그런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궤를 매고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그 법궤를 매고 순종하니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리고성을 돌라고 명령할 때 순종할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네 상을 가지고 가라고 명령할 때 그 명령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손에 들고 있는 같은 지팡이지만 죽이는 뱀이 될 수도 있고 살리는 지팡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손이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한센씨 병든 손이 될 수도 있고 정상적인 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나일강물이지만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의 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손에 주어진 것 가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얼마든지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반드시 이루십니다. 모세는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기적도 얼마든지 동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일지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측된 미래가 손해될 지라도 순종합니다. 경험된 세계와 배치되고, 이성적 사유와 상충된다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이 들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순종할 수도 없고 순종하지 않으면 한 걸음으로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감당해야 할 사명은 너무 크고 자신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거 실패의 경험을 독이 아니라 거름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내 손에 있는 것 사용하지 않는다고 영원한 것 아닙니다. 권력도, 부귀도, 인기도, 명예도 일장춘몽과 같은 것입니다. 권력을 손에 잡은 자들을 보십시오.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드려야 하늘나라 창고에 쌓이는 일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 살기 좋은 세상, 공의가 통치되는 세상,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데 쓰임 받게 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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